국민을 웃게 만드는 ‘네로황제’ 최양락
국민을 웃게 만드는 ‘네로황제’ 최양락
  • 유성희
  • 승인 200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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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당해 호주 이민 갔을 때는 너무 억울했어요”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석 석탑 국보 20호는 무엇일까요?”

YS : “증답! 남산타워!”

JP : “불국사에 있는 거잖아... 정답 탑!”

DJ : (다보탑에 대한 부연설명을 한참 하다가) “정답... 데스크탑! (사회자의 핀잔이 이어지자) 하얀거탑? 탱크탑?...... 빅뱅의 탑?”

MBC FM <재미있는 라디오>의 ‘3김퀴즈’는 한국 현대정치의 핵심 인물들이 나란히 등장(?), 누구나 맞히기 쉬운 문제를 놓고 매일 저녁 설전을 벌인다. 정답을 정확히 알고 있는 양, 중후한 목소리로 힌트 아닌 힌트를 잔뜩 늘어놓던 3김은 결국 엉뚱한 오답을 외쳐대며 폭소를 자아낸다. 정답의 기회는 청취자들의 몫이다.


상황극 코미디가 절정이던 80년대 후반. ‘스타 중의 스타’로 올라선 개그맨 최양락의 진가가 요즘 라디오를 통해 새삼 발휘되고 있다. 그가 2002년부터 진행해온 <재미있는 라디오>는 운수업 종사자들을 비롯해 퇴근하는 샐러리맨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수많은 열혈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다.


방송을 앞둔 최양락을 <재미있는 라디오> 스튜디오 앞에서 만났다. 기자가 명함을 건네자, 자신은 명함이 없어 주민등록증이라도 보여주겠다며 주섬주섬 지갑을 뒤지기 시작한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분위기를 추스르고 잠시 한눈을 팔았는데, 기자가 볼 때까지 실제로 주민등록번호를 가리키며 꿈적도 않고 있다. 성능 좋은 폭소탄에 연타로 기습당한 기분이었다.



TV와 달리 라디오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청취가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라디오>의 경우 집중을 하며 듣게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예상하시나요?

그럼요. 저는 정말 개그를 좋아하는 분들, 웃고 싶은 분들을 위해 <재미있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콩트를 하지만, 웃기겠다고 작정한 프로그램은 우리가 유일한 것 같아요. 이건 부분적인 개그가 아닌, 진짜 개그프로거든요.


운전하는 분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던데요.
많이들 좋아해 주세요. 이런 사연도 있었어요. 60대 회장님이 퇴근을 하다가 ‘3김 퀴즈’ 정답이 나오기 전에 집에 도착을 했대요. 운전기사분이 “회장님, 도착했습니다.”해도 그 회장님은 “가만 있어봐”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3김 퀴즈’ 정답을 듣고는 그제야 수고했다며 돌려보냈다는 거예요. 너무 웃긴다고 여기저기서 종종 항의도 하시고요.(웃음) 이럴 때 큰 보람을 느끼죠.


우리 사회의 사건과 이슈를 다뤄가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미를 주고 있는데요. 아이디어는 100퍼센트 직접 구상하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박찬혁 작가라고 있습니다. 지금 인터뷰 하고 있는 이 시간에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주는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하고 있을 겁니다. 박 작가는 매번 그렇게 상을 받더라고요. 라디오는 텔레비전에 비해 작가의 영향력이 특히 더 큰데, 박 작가의 주옥같은 아이디어가 80%라면 나머지 20%는 배칠수씨와 저의 연기라고 할 수 있어요.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박 작가에게 전달하기도 하고요. 저와 배칠수, 박 작가는 황금 트로이카예요.(웃음)





민감한 이슈를 희화화하는데 정치권에서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는 없나요?

그런 건 인터넷 보급이 안됐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지금은 인터넷에서의 풍자가 엄청나잖아요. 방송은 오히려 심의가 있으니 상식선을 벗어나서 무리할 수가 없어요. 노태우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나 이 사람은 코미디 소재로 다뤄도 좋습니다’라고 한 이후부터 방송에서 ‘네로25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같은 정치풍자 개그가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그나마 항의라고 해봤자 “약간 잘못된 표현이네요. 유감입니다”라고 점잖게 전화 한두 번 오는 정도였어요.


배칠수씨와 서로 웃음 참는 게 방송에서 전해지더라고요. 누가 제일 많이 웃나요?

제가 많이 웃어요. 제가 웃음이 터졌을 때 상대방이 참아주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같이 웃음이 터지면 견디지를 못해요. 그때는 배칠수씨가 마무리 멘트를 하기도 해요. 배칠수씨와는 라디오를 통해 처음 만났어요. 난 배칠수가 누군지도 잘 몰랐었죠.(웃음) 텔레비전은 모르겠지만 라디오에서만큼은 배칠수가 최고가 아닌가 싶어요. 라디오 9단이에요. ‘3김퀴즈’와 ‘대충토론’은 배칠수씨의 공이 큰데, 라디오에서의 최양락 배칠수는 ‘쿵’하면 ‘짝’이고 ‘아’하면 ‘어’하는 환상의 콤비예요. 어떨 때에는 여기를(허벅지를 ) 꼬집어 가면서 원고를 읽습니다. 연기를 하는 우리가 허벅지 꼬집어 가며 할 정도인데 듣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기도 해요.



최양락의 얼굴에는 뻔뻔함이 배어있다. 잘난 이의 그것이 아닌, 시골아저씨의 순박함이 담긴 뻔뻔함이다. 온갖 시비와 걱정거리에도 느긋한 척 ‘괜찮아유~’를 내뱉던 모습은, 넓은 아량이라기보다 뻔뻔함의 역설로 큰 웃음을 유발했다. 그는 8, 90년대 공전의 히트코너인 ‘남 그리고 여’ ‘네로 25시’ ‘고독한 사냥꾼’ ‘슈퍼차 부부’ ‘코미디 모의국회’ ‘알까기 제왕전’ 등 다양한 캐릭터를 거치면서도 특유의 뻔뻔함을 잊지 않았다.

그는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KBS <젊음의 행진> <유머 1번지> <쇼비디오쟈키> <코미디 세상만사>, SBS <웃으며 삽시다> <코미디 전망대> 등에 출연하며 차곡차곡 히트작을 쌓아왔다.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코너 ‘남 그리고 여’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던 팽현숙과는 실제 결혼으로 이어지며 최초의 희극인 커플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숱한 유행어를 제조하며 최고의 시간을 보내던 그가 어느 날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방송에서 보이지 않던 시기가 있었죠? ‘알까기 제왕전’으로 복귀하기까지 어떻게 지낸 건가요?

SBS <꾸러기 대행진> MC가 교체되면서 호주로 이민을 갔어요. 세대교체가 됐던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최고라고 생각했다가 내 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죠.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가 1년 만에 돌아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고지식했던 것 같아요.


‘알까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시 드라마와 영화에서까지 묘사될 만큼 선풍을 일으키며 인기가 대단했는데요. 어떻게 구상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바둑은 하수인데 배워보려고 심심찮게 바둑프로그램을 시청해왔어요. 그런데 예전에 조치훈 기사가 한 수 두는데 2시간 17분이 걸린 적이 있어요. 2시간 17분이면 영화 한편 감상하고 밥 먹고, 차 마시는 시간이잖아요. 그러니 진짜 도인들의 싸움이죠. 얼마나 매력 있습니까. 어떤 대회는 한 수 두는데 몇 억이 오간다고 생각해보세요. 해설도 조용한 게... 그렇다면 그 심각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알까기를 한다면? 딱! 떠올랐죠. 하지만 그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정말 눈물겹도록 좋았어요. 명퇴(?) 당하고 호주로 갈 때는 억울한 심정이 컸어요. ‘내가 마흔도 안됐는데 벌써 쫓아내나’ 싶었는데. ‘알까기’로 다시 인기 얻었을 때에는 속으로 통쾌했어요. 그때는 너무 즐거워서 혼자 운전하면서도 깔깔대고 웃었어요. 집에서도 하하하 웃고.


당시 단발머리가 굉장히 파격적이었어요.

오랜만에 다시 방송을 시작하면서 강행한 스타일이었어요. ‘알까기’는 정통바둑에 대한 패러디 개그인데 바둑 쪽에서 보면 얼마나 사이비 같겠어요.(웃음) 단발머리가 좀 더 사이비 콘셉트와 어울릴 것 같아서 하게 된 거죠. 그때 쌍커풀 수술도 하면서 비장한 각오를 품고 방송에 나왔어요.


‘알까기’ 이후에도 단발머리를 꽤 오래 유지 하셨잖아요.

그건 그냥 갑자기 또 바꾸기도 뭣해서 그런 거였어요. 다시 그 머리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지금 이야기 하면서도 얼굴 벌개지잖아요.(웃음) 상대방의 입장에 처해봐야 이해를 할 수 있다는 말, 저는 단발머리 하면서 실감했어요. 부부끼리 외출할 때 보통 남편은 금방 준비 끝내고 집사람 닦달하잖아요. 근데 단발머리만 해봐도 머리관리가 너무 힘든 거예요. 제가 쪼그려 앉아 있으면 집사람이 드라이 해주고 그랬어요.


서태지씨가 방송에서 우스갯소리로 ‘최양락의 단발머리는 음악인생의 치욕이자 재앙’이라고 했는데...(웃음)

(놀란 듯) 서태지씨가 그랬어요?


당시 오랜만에 컴백한 서태지씨의 머리가 단발이었는데, 사람들이 ‘최양락의 단발머리’와 비교했던 반응 때문에 나온 이야기였어요.

서태지씨를 의식한 적은 없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코미디 하우스>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을 패러디 한 적은 있어요. 헤드뱅잉 하다가 어지러워 쓰러져 실려 가는 콩트였어요.(좌중폭소)





그동안 연기해 온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변화무쌍 했어요. ‘다양함’이 최양락의 개그 스타일인가요?

예전에 담당 PD들이 김형곤, 심형래, 최양락을 라이벌로 많이 거론했었어요. 제 입으로 얘기하기 쑥스럽지만... 그건 맞지요? 김형곤씨는 정치풍자 개그를 했고, 심형래씨는 바보 캐릭터였어요. 영구를 해도 바보, 펭귄을 해도 바보, 파리를 해도 바보. 비유를 하자면 발라드 가수가 발라드만을 평생 부르는 거예요. 좋은 전략이라고 볼 수 있죠. 근데 저는 락도 불렀다가 트로트도 불렀다가 발라드도 부릅니다. 한 가지만 하는 건 제가 지겹고 재미없어 못해요. 그동안 해온 코너들도 변화를 갈구했던 제 의도대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이에요. 또 한 가지, 어딘가에 떠돌던 이야기를 가지고 개그를 하는 건 개그맨으로서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개그맨들은 앞서 가야해요. 사람들의 기대치가 상당하거든요. 그래서 개그맨이 어려워요.


얼마전 김학래 이봉원 임미숙 팽현숙 황기순 등 80년대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함께 코미디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예전 추억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오랜만에 무대에 함께 오른 분들은 오죽 좋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에 이봉원 이경실 조혜련씨와 함께 SBS <야심만만> 신년특집에 출연했는데 반응이 아주 난리였어요. 강호동씨가 저한테 ‘그동안 입이 근질거려서 어떻게 참았냐’고 하더라고요. 결국 ’나는 잘해 오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변화되는 방송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새삼 느꼈어요. 우리가 했던 건 희극 연기를 하는 코미디였잖아요. 사실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개그를 하는 건데 나는 꼭 분장을 하고 ‘괜찮아유’ ‘에구에구’를 해야만 개그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동안 집에서 왜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라디오를 처음 진행할 때만 해도 ‘내가 무슨 라디오야’ 싶었는데 굉장히 재밌고 저한테 잘 맞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변하려 하지 않고, 단순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올 여름에는 <웃찾사>를 통해 후배들과 무대에 서기도 했죠?

개그가 너무 하고 싶어서 출연했는데 2주 만에 정리됐잖아요. 하하. <웃찾사>는 빠르게 뿜어내는 20대 개그 아닙니까. 번지수를 잘못 찾아서 헤맸죠.


개그계에서는 특히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다시 개그무대에 섰을 때를 대비해 보여줄 만한 비장의 무기는 없나요?

재미있는 소재가 있다고 해서 ‘잘 묻어뒀다가 내년 가을에 발표해야지’ 하고 묵혀둘 순 없어요. 사람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내년 가을이 되기 전에 누군가는 터뜨리게 돼있어요. 괜히 아껴뒀다가 다른 사람이 선수 친 경우를 많이 경험해 봤는데... 정말 내일은 없어요. 개그는 그 즉시 해야 해요.(웃음) 2009년이 되면 2009년만의 정치,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있어요. 유머도 경제 좋을 때와 어려울 때 유머가 다르고,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코드는 변하게 마련이에요. 지금의 오락프로그램이 집단 MC체제에서 점점 인원 감축이 되는 상황으로 변하듯이 말이죠. 그때그때의 상황을 고려해서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말투나 성격으로 보아 짐작하건대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대수롭지 않게 호탕하게 넘길 것 같아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부족한 부분이 많은 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아마 요즘 시기의 방송에 적응을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 때의 형식이 일주일 내내 연습을 하면서 완벽할 정도가 됐다 싶을 때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감독의 역량이 많이 발휘된다고 봐요. 요즘 개그맨들을 보면 재미있게 노는 사람들에 가까워요. 방송에서 말을 더듬으면 ‘말을 더듬는 명수’ ‘이때 뒤로 넘어지는 호동’ 이런 식으로 자막이 뜨잖아요. 개그맨들은 그냥 재미있게 놀고, 감독의 연출에 의한 웃음유발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죠. 우리는 이런 혜택이 없었어요. 근데 또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는 그렇게 놀지를 못해요. 어떻게 1박 2일 동안 저렇게 놀 수가 있나.(웃음)


인생을 살면서 후회되거나 안타까웠던 순간도 있었나요?

술이에요. 내가 만약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웃음) 사람들을 만나 실수를 했던 것 중의 99%가 술 때문이에요. 담배는 골초였다가 5년 전에 끊었는데, 이상하게 술은 못 끊겠더라고요. 주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술을 마시면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좀 더 강하게 소위 독설을 해요. 주량이요? 많이 마시죠. 나이 생각해서 많이 줄이긴 했는데, 그래도 소주 두병은 들어가더라고요. 하하. 생각해보니 이봉원은 개그맨끼리 결혼한 것도 그렇고 술 좋아하는 것까지 똑같아. 아버지들이 아들한테 그러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남자가 술은 좀 할 줄 알아야한다’고.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술은 안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평소에는 큰 실수 안하고 경우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술만 마셨다 하면 실수하고 헛소리 하니까. 평소에는 애 엄마하고 말다툼도 잘 안하는데 술 때문에 다 무너져요. 아우~ 안타까운 노릇이야.(웃음)


건강엔 이상 없는 거죠?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았어요. 혹시 이상 있을까봐 결과 나오기까지 꼬박 일주일을 심각하게 보냈어요. 평생 동안 몸 돌보지 않고 술과 담배에 빠져 살았으니 걱정이 될 만도 하죠. 다행히도 ‘어떻게 그래도 술은 안 드시나봐. 간은 멀쩡하네.’하더라고요. 근데 봉원이도 결과가 똑같아. 그러니까 우린 또 그 말에 술이 받는 몸이다 생각하고 다시 마시기도 했는데. 간은 70, 80% 망가질 때까지 모른다고 하잖아요. 건강하다는 얘기 나왔을 때 조심하란 얘기죠. 제가 만약 죽을 때가 돼서 유언을 남기라면 ‘세상에 태어나서 술은 원 없이 먹고 간다’고 할 것 같아. 하하.


새해에 소망이 있다면요.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인데 아빠의 예전 유명세를 알지만 친구들이 몰라주는 것에 대해 굉장히 원통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자기 친구들은 강호동 유재석 아저씨는 잘 아는데 아빠는 인정을 안 한대나요. 하하. 앞으로는 TV 방송에도 많이 나와서 새로운 최양락 만의 개그를 선보일 겁니다. 옛날의 관심을 다시 되찾고 싶어요.(웃음)





개그맨의 본능일까? 진지한 듯 말을 이어가다가도 상대방의 웃음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는 속내가 시종일관 엿보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는 녹음기를 향해 “수고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라디오스타가 떠나간 자리에는 한동안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행복이 뭔지, 누군가에게 행복을 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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