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소 53년 역사상 최초 여성소장 정희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53년 역사상 최초 여성소장 정희선
  • 유성희
  • 승인 200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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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성재의 사인을 밝혀낸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53년 역사상 최초로 첫 여성 소장이 탄생했다. 정희선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국과수는 수사를 과학으로 끌어올리는 중심점 노릇을 하는 기관이다. 특히 ‘쓰나미 지진’과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은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기술력을 세계에 알린 사건으로 기록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의 감정결과로 인해 사건의 판도가 일순간에 바뀌었던 까닭이다.

한국 과학수사의 자존심, 국과수를 올해부터 새로 이끌어 가는 정 소장은 지난 1978년 국과수에 들어온 이래 약ㆍ독물과장, 마약분석과장을 거쳐 2002년에 여성 첫 법과학부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 소장은 최근 5년 간 국내외 학술지에 약물 및 마약관련 연구 논문 40여 편을 게재하고, 관련 특허 4개를 보유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과학수사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 소장은 국과수에 우먼파워를 일으키기도 해 그가 국과수에서 일을 한 지 30년 만에 소장 자리에 오르는 동안, 국과수에는 단 3명뿐이었던 여성이 43명으로 늘었다.

과연 국과수의 총책임을 맡은 정희선 소장은 어떤 인물인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울 강서구 신월동에 위치한 국과수를 찾았다.


 

부임하고 4개월 동안 어떻게 보내셨나요?

아무래도 중책을 맡은 만큼 인사 다니고, 여러모로 바쁘게 지냈어요. 최근에는 막바지 예산 구성 때문에 조금 바쁘고요. 오늘은 국과수를 평가하기 위해 외부에서 다녀가셨어요. 우리 과학수사 수준을 증명 받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그러한 차원에서 국제적으로 인증 받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에서 인정받았듯 우리나라 과학수사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하지만 그에 반해 시스템은 미흡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CSI 과학수사대’를 보면 굉장히 멋있게 보이잖아요.

 

‘CSI 과학수사대’를 보시나요?

가끔 보는데 제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다른 부분이 더러 눈에 보여요. 현장조사를 나간 사람이 증거를 가지고 직접 실험해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를 보면 우리가 필요 없지 않겠어요?(웃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과학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저럴 수도 있겠다’ 싶은 부분도 꽤 있는데 전문가의 자문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 같아요. 사실과 동떨어진 부분도 많이 있지만 국과수를 이만큼 홍보해준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부터 국과수에서 일하겠다는 뜻을 가지셨나요?

원래 약대를 다녔어요. 재학 당시 국과수 소장님께서 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하신 적이 있었죠. 졸업을 하면 으레 약사가 되거나 다른 연구소를 가기 마련인데 저는 강연을 듣고 국과수의 일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라고 느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마침 연구소에 자리가 나서 기회겠구나 싶었죠. 당시 국과수 소장님의 강연이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우리의 일이 청소년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진로를 선택하는 중요한 순간에서 미리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잖아요.

 

대학 시절 영향을 받았던 국과수 소장 자리에 이제 정 소장이 계십니다. 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작은 단서 하나만 가지고 과학수사로 인해 커다란 사건이 풀린다는 것. 그건 정말 과학의 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예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 그리고 과학을 재미있게 느끼고 좋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다보면 실제사건 사례를 이야기 해줄 때 아무래도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과학수사’ 하면 일반적으로 사체 부검이나 유전자 감식이 떠오르는데요.

부검의 경우 살인범죄와 연결된 경우가 많은데, 사인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칼에 찔렸다거나 머리에 상해를 입었다거나 하는 등의 상처부위들을 통해 흉기로 사용된 도구를 밝혀내는 식이지요. 어떤 이유에서 죽임을 당한 것인지 사인을 밝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야말로 강력범죄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네요.

예전의 경우 피의자의 자백이나 또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면, 현재는 법의학을 통해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범죄사건을 해결하는데 지원을 해 주고 있어요. 또한 재판정에서 수사의 증거물을 가지고 변론함으로써, 유죄 또는 무죄로 밝히는 데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요. 국과수 직원들이 거의 다 재판정에 갔다 왔다고 보시면 되요. 저 역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 1년도 안되었을 때인데 필로폰 관련 증언을 하러 법정에 간적이 있어요. 그때는 아직 어리니까 다른 선생님들이 같이 가주고 그랬어요.(웃음)

 

 

 

 

유죄라고 결론 내린 사건을 과학수사로 인해 무죄로 입증시킨 사례가 있나요? 내지는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 경우도 많았을 것 같고요.

사건의 결과를 완전히 뒤엎었다기보다는 과학수사를 바탕으로 무죄로 입증된 경우가 있겠죠. 유죄로 입증하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한데 지난번에는 여성분이 칼에 40군데 이상을 찔려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성폭행 범죄였는데 용의자 유전자 분석을 해보니 이전에도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잡히지 않았던 범인이었어요. 여죄까지 밝힌 것이죠. 지난해에는 휴대폰 배터리 폭발로 인해 사람이 죽었던 사건 이 있었습니다. 부검을 해보니 폭발로 인한 상처가 아닌 거예요. 교통사고에서나 났을 법한, 외부충격에 의한 장기 손상이었어요. 수사방향을 바꿔 다시 목격자의 진술을 들으니 차에 치인 사고였다는 게 밝혀졌었죠. 국과수에 부검하시는 법의관 선생님들이 자주 하시는 이야기가 있어요. “돌아가신 분들이 뭔가를 얘기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들어주는 게 누구겠느냐”고요. 투철한 사명감이 듭니다.

 

가장 뿌듯했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사건 하나하나는 내 분신과도 같아요. 가수 김성재씨의 사인을 밝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팔에 주사바늘 자국이 28개나 있어서 마약 사건일 거라는 판단 하에 금방 밝혀내겠다 싶었어요. 300종의 마약을 일일이 조사했는데 찾아지질 않는 거예요. 그렇게 화합물을 늘려가며 실험한 결과, 동물마취약이라는 것을 밝혀냈죠. 고인의 사인을 밝혀내서 뿌듯했고, 무엇보다 몰랐던 걸 발견했다는 보람이 컸어요. 직원한테 ‘사건이 꿈에서까지 나타나 잠을 못 이뤘다’고 얘기해 주니까 직원은 또 ‘소장님이 꿈에 나타나서 왜 못 찾느냐고 하더라’는 겁니다.(웃음) 그만큼 서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예요.

 

일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요?

많았지만.. 아무래도 사건이 해결 안 되었을 때 스트레스가 굉장해요. ‘오대양집단자살사건’의 경우처럼 풀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는 왜 못 찾았을까 싶고 늘 궁금해요. 마음의 짐처럼 여전히 한구석에 남아 있어요. 사건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길을 가다가도 ‘혹시 빼먹은 실험은 없나’하고 계속 생각하면서 걸어요.(웃음)

 

 

 

 

직접 부검에도 참여 하시나요?

그렇진 않아요. 예전에 페루 사람이 마약을 잔뜩 섭취해 몸속에 숨겨 넣고 우리나라를 경유하던 비행기 안에서 죽은 경우가 있었어요. 마약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부검하는 곳에 가서 보기도 하죠.

 

우리나라 과학수사 기술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세계에서 인정받는 분야가 많은데 특히 우리가 잘하는 분야가 ‘영상부검’이에요.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검문하던 중 우리나라 해경이 숨진 사건이 있었는데요. 영상 판독 결과 해경을 삽으로 내리쳐 숨지게 한 중국선원의 얼굴이 멀리서 촬영이 됐는데 국과수에서 식별해 냈어요. 영상부검의 경우 국과수 직원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체적으로 특허를 받은 겁니다. 중국에서 영상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왔다 간 적도 있어요. 그들에게는 아무리 뛰어난 유럽의 기술력이라 하더라도 프로그램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유럽의 경우 서구인의 체형에 맞게 프로그램을 만들었잖아요. 신장만 하더라도 유럽과 아시아는 차이가 크죠. 한국사람 체형에 맞게 만든 프로그램이니 아시아인들에게 오히려 더 적합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죠.

 

일을 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발휘되는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화재나 교통사고 감식반을 제외하고는 여성이 속하지 않은 부서가 없어요. 마약분석, 약ㆍ독물의 경우는 여성들이 잘해요. 아무래도 섬세한 여성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파트에서 많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여성이 국과수 소장이 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니까 이것도 여성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죠.(웃음)

 

자제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중학교 2학년 딸이 있는데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자랑스러운 생각은 있나봐요. 근데 본인은 과학을 하고 싶지 않대요. 아직은 가수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고 그래요. 그렇게 가수들이 좋대요. 하하.

 

자녀와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으시죠?

오히려 딸이 같이 안 놀아줘요. 사춘기가 되어서.(웃음) 물론 바빠서 같이 보내는 시간은 적지만 되도록이면 주말에 뮤지컬도 보고 여가시간을 함께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중이예요.

 

 

 

 

새해에 바라는 소망이 있으시다면.

제가 78년 국과수에 들어와서 올해까지 30년을 이곳에 있었어요. 임기 동안 다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직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법과학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믿고 사건을 의뢰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데에 초석을 다지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현재 ‘국제법 독성학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데 열심히 해서 학회 회장을 하고 싶어요. 지금껏 아시아권 사람들이 집행위원에 들어간 경우는 없는데 아시아에서, 그것도 여성인 제가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이 나우]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지난 9월 26일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정희선 원장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원장을 역임한 과학수사 분야의 권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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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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