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영국 신사, 극단 로뎀 대표 하상길
연극계의 영국 신사, 극단 로뎀 대표 하상길
  • 서영석
  • 승인 200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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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키운 난(蘭) 없애고 오토바이 면허 땄죠”/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늦은 가을의 오후. 덕수궁의 돌담을 따라 한국 연극사의 애환을 따라 동고동락을 하고 있는 극장, 제일화재세실극장을 찾았다. 극단 로뎀의 하상길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우리 연극사에서 겨우 20년의 짧은(?) 연륜을 지닌 극단 로뎀, 하지만 가장 많은 대박(?) 레퍼토리를 지닌 극단으로 우뚝 자리매김을 한 명문극단이다. 고두심, 김혜자, 주호성, 김명국 등 단원들의 면면부터가 화려하다.

하상길 대표는 마흔이 다된 늦은 나이에 연극을 시작해 여태까지 배우로 연출가로 극작가로 극단 대표로, 궁극적으로는 연극지기로 살아오고 있다.

그가 배우로 출연했던 작품은 ‘매쓰 어필’ ‘신더스’ ‘요나답’ 등 50여편. 작가로는 희곡 ‘느영나영 풀멍살게’ 등을 썼고 연출한 작품으로는 ‘나, 여자예요’가 대표작이다.

연극의 모든 장르를 넘나든 하상길 대표를 통틀어 ‘연극지기’로 부르고 싶은 까닭은 그가 세실극장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세실극장은 대한민국 연극제가 1회부터 5회까지 열렸던 25년 전통의 극장. 자금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당국이나 연극협회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자 하 대표가 사재를 다 털어 세실극장을 연극전용관으로 지켜냈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게 세실극장의 문을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는 영국신사 하상길 대표, 온화한 미소와 여유있는 제스처는 여느 연극인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새로 오토바이 면허를 땄어요. 연극에 정신이 팔려 달려온 세월, 벌써 40년이 지났네. 더 늙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니 마음뿐 아니라 몸도 많이 젊어지는 느낌입니다. 30년 키우던 난을 다 처분했어요. 자식처럼 소중한 친구들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많은 시간과 애정을 난에게 쏟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난은 너무 정적(靜的)이어서 자신을 차분히 정리해 주는 맛은 있죠.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과 잘 맞는 것이 싫어서, 적극적이고 동적인 무언가를 찾고 싶었죠. 고민 중에 찾은 것이 오토바이, 하하하, 생뚱맞죠? 젊음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식구들은 무모하고 위험하다고 황당해 했지만 사위의 전폭적 응원이 큰 힘이 됐어요.


면허 따기가 무척 힘들다고 들었는데요.

해냈지요. 3번째 도전에서 거뜬히. 쉽지는 않았지만 노력해서 안되는 것은 없다고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연극을 하신 지가 꽤 되셨지요?

67학번이니 벌써 40년이 넘었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연극이 뭔지도 몰랐고 공연 한 번 본 적이 없었는데... 운명이란 진짜 묘한 놈이야. 입학 후 공부하기 싫어서 뭔가 흥미꺼리를 찾고 있었는데 다른 서클(동아리)은 모집은 끝났고 유독 건대극장만 신입회원을 받고 있더라고. 그래서 들어갔죠.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요.

뭔가를 마음 먹으면 몰입을 하는 성격이라 끝을 보자고 덤볐지요. 행정학과를 다니던 놈이 연극을 한답시고 공부를 포기하니 친구들도 강의실의 이단아로 치부하더라고. ‘그래? 좋아, 한 번 봐라 이놈들아’ 마음을 독하게 먹었지요. 이왕에 할 바엔 제대로 해보자고 당시의 최고 극단이던 실험극단 연구생 모집에 응시를 했지요. 상당히 경쟁이 치열했는데 덜컥 오디션을 통과했어요.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려는데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방황을 했지. 10여 년을 생활전선에서 표류를 했지만,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결국 서른여섯의 늦은 나이에 연극이라는 고향으로 돌아왔죠.


결혼을 하시고 생활의 안정을 기약하기 어려웠을 텐데...

연극에 대한 사명감이나 거창한 의식은 없어요. 예술을 한다? 몰입을 하는 성격 탓으로 그냥 최선을 다하자. 연극이 맞아서, 하고 싶어서 했을 뿐이에요.


대학로를 비롯 많은 극단들이 옛모습을 잃어가고 있지만 유독 로뎀은 그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아버님의 영향을 받았나봐요. 어린 시절 생각에 아버지는 나쁜 사람의 대표적 인물이셨어요. 한마디로 한량이셨죠. 외도에 도박, 싸움. 당시의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하지만 진정한 농사꾼이셨던 것만은 틀림없었어요. 당시 과수원을 하셨는데, 다른 농부들은 과실의 수를 늘리기 위해 가지 하나에 3~4개씩 열매를 달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한, 두개 가장 튼실한 놈만 키웠어요. 시장에 나가면 우리 복숭아를 따라 올 품질이 없었죠. 최상품만을 키웠으니. 또 당시에 천도복숭아가 유행을 했는데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우리 복숭아만 하셨어요. 농기구도 빌리시는 것 싫어하셨는데 그런 부친의 성격을 지금의 극단의 공연에서 내 성격에 반추되어 드러나니 정말, 피는 못 속인다고... 부친의 피를 받았으니 극단 로뎀의 공연이 대량보다는 제대로 된 연극, 최고의 품질을 자랑할 수밖에. 하하.



극단 로뎀은 유명 탤런트를 내세워 흥행만 노린다는 안 좋은 소문이 있는데요.

그런 못된 소리를 하는 연극인들은 스스로를 못난이라 자인하는 꼴입니다. 훌륭한 공연을 하자면 응당 좋은 배우를 섭외하는 것이 큰 몫을 차지합니다. 좋은 배우는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배우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배우라야 무대를 고급스럽게 꾸밀 수 있으니까요. 둘째, 가장 중요한 요소로 우리말 구사 능력(대사)이 뛰어나야 합니다. 셋째, 문학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극단 로뎀의 공연을 함에 있어서 이런 조건에 맞는 배우들을 찾다보니 유명한 탤런트들과 공연하게 된 것이지요. 스타 중에서도 세 가지가 충족이 되어야만 캐스팅을 합니다. 대사도 안 되고 품위도 찾아볼 수 없고 문학성도 없이 배우 흉내만 내는 배우들과는 차라리 공연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주옥같은 레퍼토리들이 대박으로 이어졌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물론 출연배우들이 워낙 스타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김혜자씨가 모노드라마 ‘셜리 발렌타인’을 할 때, 당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최고의 배우가 연습에 돌입하자 모든 스케줄을 완전 정지시키더라고. 오로지 연습, 하루 10시간 이상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연습에 매달리는데 연출을 하는 내가 말렸다니까. 자신의 이름에 혹시 누가 될까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모습은 차라리 영원을 갈구하는 종교인의 자세였죠. 많이 배웠지. 또 ‘나 여자예요’ 당시 고두심과 김미숙이 1, 2부를 나누어 공연을 하는데 선후배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피튀기는 노력과 경쟁,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역시 역시 최고다, 최고의 배우는 그저 되는 게 아니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연극을 하시면서 여러 꺼풀을 벗으셨는데...?

처음 배우로 시작해 여러 극단을 전전했어요. 극단 에저또, 실험극단, 극단 성좌, 극단 산울림 등 당시 최고라는 극단을 두루 거치며 연기 수업을 했는데 극단 운영에 있어서 조금 나하고 맞지 않았던 것같아. 그래서 로뎀을 창단해 배우에 몰입을 했는데, 대표가 배우를 하다보니 분장실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해 제작에 애로가 엄청 많은 거예요. 그래서 배우에서 제작자로 역할을 바꿨죠. 많은 연출가들을 초빙해 공연을 맡겼으나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커서 창단 후 7년이 지난 시점에 연출에 도전을 했죠. 연출가로 크게 각광은 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낙제점을 받지도 않은 무난한 연출이라는 평을 들었어요.


극작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우리 연극계가 거의 번역극 일색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죠. 훗날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후세들이 당시 한국의 시대적 정서나 감성은 어땠을까? 연극인으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지. 우리 시대, 우리의 정서와 고민을 담은 작품을 하고 싶었으나 창작극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더라고. 그래서 1995년에 ‘느영나영 풀멍살게’로 작가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된 거죠.



배우로 출발해 연출가, 극작가로 변신을 했는데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혼자 하는 예술을 했어야 적성에 맞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요. 아무래도 연극은 종합예술이다 보니 많은 사람과 부대껴야 하고 또 이쪽 사람들의 대부분이 기가 강하기 때문에 트러블이 잦잖아요. 자연 한쪽에 몰입을 하려면 성격상 극작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극단 로뎀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흔히들 극단 로뎀은 페미니즘 극단이라고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에요. (조금 흥분한 어조로) 박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강한 연극을 추구하다보니 드러난 결과일 뿐이에요. 국가, 정부나 사회 같은 집단에 의해 박해받는 개인들 이야기를 선호하다보니, 아직 한국적 시대적 사고에서 물리적, 상황적 약자인 여자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이죠. 그런 편견이나 오해는 로뎀의 작품을 꿰지 못하고 대충 훑어본 데서 나온 그릇된 생각이지. 사회의 가장 기본적 구성 단위인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 국가가 제대로 잡히게 되고 가정의 중심이자 약자는 여자이다보니 그들을 보호하고 싶었던 겁니다.


지난날에 비해 개과천선 했다는 말이 있던데요?

젊은 날 좀 별났지요. 성격 자체가 다혈질이고,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인간적으로 야비한 친구들을 용서하지 못했어요. 자연히 트러블이 생기다 보니 싸움도 하게 되고... 옛날이야기지. 집사람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면서 많이 좋아졌다 할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교리를 지키는 일인 것 같아요. 속에서 불이 나는데 술 먹고 싶어도, 싸우고 싶어도, 적당히 사기쳐 쩐(??)을 챙기고 싶어도 예수의 힘을 빌어 그저 참고 말지. 하하하.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친구들이 눈과 얼굴이 많이 선해졌다는 소리를 듣기도 해요.



보통 사람이면 일에서 손을 놓을 나이인데 여전히 현장에 있으십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내년에 새로운 장르, 뮤지컬 도전을 구상하고 있어요. 그 분야에서 새롭고 순수한 사람들과 같이 멋진 작품을 해야겠다는 의욕에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 또 일전에 공연했던 작품들을 다듬어 다시 무대에 세울 계획도 하고 있고... 아직은 할 일이 너무 산재해 있어서 손주녀석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해 안타까워요. 나이가 들다보니 나 자신보다 타인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내 아버지, 내 남편, 할아버지로 떳떳한 사람이고 싶어요. 그 입지에 걸맞는 수준 높은 공연을 계속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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