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모델 출신 재미동포 화가 진효비
톱모델 출신 재미동포 화가 진효비
  • 배병호
  • 승인 20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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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기념관에도 내 그림 걸려있다” / 배병호



[인터뷰365 배병호]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포화가 진효비. 부군이 재미동포 중 몇 안되는 차관보급 자리에 발탁된 진교륜 박사(미국 평화봉사단 기획정책실장)다. 부군의 성(姓)으로 바꾸었지만 한국에서는 본명이 최효비였다. 바로 1970년대 패션무대에서 루비나 이희재 등과 함께 톱모델로 활동했던 그녀가 ‘꽃과 십자가의 화가’로 미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현 부시대통령의 아버지인 H.W.부시 전 대통령의 텍사스 기념관에도 그의 그림이 걸렸다.


1980년 5월 패션쇼를 끝으로 모델 활동을 접고 디스플레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는 27년만인 작년 연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서울오픈아트페어에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면서 이제는 모델이 아닌 성공한 화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금년 초 서울의 조선화랑에서 개인전도 가졌다. 지금 그녀는 창작활동을 하면서 미국 정계의 거물 정치인인 부군을 내조하며 워싱턴 상류사회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



먼저 인기스타였던 모델 활동을 미련없이 청산하고 어느날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패션쇼에서 갈채를 받아가며 반도패션과 모라도니트의 전속모델도 하며 제법 큰 돈도 모았어요. 그러나 늘 마음 한구석에 못다 이룬 꿈이 사라지지 않았지요. 책을 끼고 살았고 뭔가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이 떠나질 않았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현대백화점에서 김창숙 부띠끄를 오픈할 때 김창숙 씨가 나에게 매장 디스플레이를 요청해 왔어요. 아마도 내게 그런 재능이 있다고 인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시험 삼아 손을 댔는데 그게 자신감을 안겨준 거죠. 히트했다고 할 만큼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어요. 욕심이 불끈 솟더군요. 제대로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를 공부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로 각오하고 떠난 거예요.


처음의 꿈은 현재의 모습과 거리가 먼 얘기 같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군요. 결혼도 하시고 화가로 변신하기까지는.

그렇습니다. 부푼 꿈은 떠날 때까지였고 도착 후 현실은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젊은 여자 혼자 편하게 공부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뉴욕의 FIT라는 패션스쿨에 다녔지만 언제나 화려하게 시선을 끌며 생활하던 나에게 낯선 사람들 틈에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생활의 외로움은 참기 힘들었어요. 흥분과 들뜬 기분은 잠깐이었고 향수병에 우울증이 겹쳐 심신이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때로는 우유 한 병으로 끼니를 때우다보니 체중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생활은 균형을 잃어갔어요.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서울의 루비나(모델 출신 패션 디자이너) 언니에게 울며불며 하소연을 하면 늘 따뜻하게 격려하고 용기를 심어주었지요. 언니는 “넌 다른 사람과 달라서 성공할 수 있어. 조금만 꾹 참고 견뎌. 넌 할 수 있다니까”라며 위로해 줬어요.



그 후 결혼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해외에서 외로움을 달래주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뉴욕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 소개로 뉴저지의 교회수련원을 찾게 되면서 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목사님을 남편으로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로부터 2주 후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톱모델로 활동해도 스캔들도 없이 곱게 지낸 여자라는 소개를 받고 곧장 자동차를 몰고 나에게 달려왔어요.


미국에 간 지 얼마 만에 만나셨어요?

불과 7개월쯤 됐을 때였어요. 만난 지 3일 만에 결혼 프러포즈를 받았어요. 나도 너무 편한 남자라는 데서 금방 호감을 느꼈습니다. 남편은 23살에 목사 안수를 받은 분이었지요. 2주 만에 약혼식을 올리고 그 해 겨울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천진난만한 소년 같아요. 첫눈에 우린 서로가 반했던가 봐요. 하하하.


그림은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아기를 가지려고 애를 썼지만 두 번째 아기까지 유산하고 한때 하나님이 원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다가 평소 내 스스로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쪽으로 눈을 돌려 브랜트우드 아트센터와 페퍼다임 대학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사사를 해준 교수가 나처럼 집념을 가지고 열심히 파고드는 사람이 없었다며 늘 칭찬을 해주어 큰 용기가 되었지요. 그보다 사실 백색의 캔버스를 앞에 두면 나는 자신감이 생겨요. 원래 마음이 여리고 누구와 싸우면 이기지 못하는 성격인데 캔버스와 마주치면 이건 내가 이긴다는 자신감 같은 게 생겨요. 언제나 즐거워요.


주로 꽃과 십자가를 소재로 삼는다는데 작품 창작에 따른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까?

꽃을 좋아합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로스엔젤리스 집에는 내가 심고 가꾸는 꽃들이 많습니다. 꽃의 세계는 우리 인간들 세상과 통하는 것도 많습니다. 아름답게 보인다고 모두 향기로운 것은 아닙니다. 잡초 속에 피는 꽃이지만 다소곳하고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꽃잎이 화려한 것 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도 많아요. 그리고 십자가를 염두에 두는 것은 작품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느끼게 하려는 것이지요.



그동안 어떻게 활동해 오셨습니까?

그룹전 말고 개인 전시회는 10차례 했어요. 가장 감명 깊은 전시회는 내가 다닌 페퍼다임 갤러리에서 꼭 한번 내 작품을 걸고 싶어 마음속으로 한 기도가 통해 어느날 초대작가로 전시할 기회가 마련된 때였어요. 그곳은 연간 전시계획이 미리 정해져 화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거든요.


지금은 어디에서 주로 살고 계세요?

로스엔젤리스에 집이 있지만 남편의 업무로 인해 버지니아에 살아요.


부군을 좀 소개해 주시지요.

신학교 장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젊은 시절에 9개 대학을 다니며 신학 교육학 정치학 수학분야에서 모두 박사 학위를 받고 레이건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선거위원으로 지지연설을 하면서 정치활동을 해오셨어요. 부시 대통령 부자 선거에 모두 참여해 아시아태평양공화당협회 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에 의해 평화봉사단 서열 3위인 기획정책분석실장을 맡게 됐지만 그전에도 차관보급인 원호성장관 수석보좌관이나 교육성 국제교육국장, 워싱턴DC 교육위원회 부교감으로 공립학교 수학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하며 분주하게 일해 오셨습니다.


부시 대통령 가문과는 친분이 두텁겠군요.

지금도 백악관의 UN담당 자문을 해 내가 초청 받아 간 것만 9차례인데 그곳 고위인사들의 부부 모임에 가면 내가 모델 출신에 화가라는 사실을 다들 부러워해요. 여기까지 온 건 솔직히 남편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대학 때 미술공부도 했다며 적극적으로 외조를 해준 덕이 큽니다.


부부 금슬이 남다르다고들 하더군요.

틀린 소문이 아닙니다. 우린 아직도 아이들처럼 이름 앞에 ‘내 사랑’의 호칭을 붙여 부릅니다. 잠잘 때는 손을 잡고 자야 잠이 오거든요.


말리부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의 저택을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모두 집의 규모와 정원시설에 놀랐다고 합니다. 두 분의 생활이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집은 크지만 절대로 화려하게 살지 않습니다. 우린 외식도 자장면 정도 밖에서 먹지 주로 내가 직접 만드는 김치 된장 요리를 즐깁니다. 백화점도 세일할 때나 가고 입는 옷이 10년 넘는 게 수두룩합니다. 수입의 40%를 매월 아프리카 선교단체에 기부합니다. 넓은 집안이 필요한 것은 내가 그릴 소재인 꽃을 가꾸기 위해서로 보면 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소망이 있으시다면?

하루 8시간씩 그림을 그립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모델로 당당하게 살고 화가로 남은 인생을 사는 것, 다시 산다 해도 또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남편을 다시 만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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