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24년 전 백두산 필름 TV로 처음 공개한 원일한 박사
[그때 그 인터뷰] 24년 전 백두산 필름 TV로 처음 공개한 원일한 박사
  • 김두호
  • 승인 20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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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언더우드 가문 3세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원일한 박사(미국명 Underwood, Horace Grant)는 87세 되던 해인 2004년 굴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에 새겨 안고 정든 이 땅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산소는 조부 원두우(손자인 원일한 박사와 미국 이름이 같음), 부모 원한경 박사(Underwood, Horace Horton)부부,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떠난 부인(원성희 전 이화여대 종교음악과 교수/미국명 도로시 와슨)까지 3대 가족들이 나란히 잠든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묘지에 있다.


원일한 박사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우리 역사의 인물인 언더우드 1세(원두우)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한다. 고종황제가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르며 신뢰를 했다는 그는 1885년 4월에 최초의 미국인 의사이면서 선교사로 배를 타고 인천포구에 첫발을 내디딘 후 개화기의 선각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 총각 선교사는 경신학교와 연희전문학교(현재의 연세대)도 세우고 고아원과 교회도 짓고 한영 영한사전과 한글판 성경도 저술하며 이 땅에 정착했다. 그 아들 원한경 박사도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일생을 교육과 선교, 문화 및 육영사업에 바쳤고 마지막까지 한국의 인정과 풍물을 사랑하다가 떠났다.


언더우드 가문의 3세가 되는 원일한 박사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 서울역전 앞에 있던 세브란스병원(현 연세의대)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니고 뉴욕에서 해밀턴대학을 졸업한 뒤 조부가 세운 연희전문학교 강단에 섰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해군 장교가 되어 2차대전에 참전한 그는 해방 이듬해 경성대를 서울대로 재건개편하는 시기에 교무과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전쟁(6.25)이 일어나자 다시 미 해군에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고 휴전협정 때는 통역관으로 역사의 변화를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

평화가 찾아오자 연세대로 돌아가 교육학교수와 총장서리를 역임하며 정년을 맞이했다.


필자가 원일한 박사를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은 1984년 정초 연세대재단 이사로 재직하던 67세 때였다. 24년 전이다.

원박사는 그 때 선친 원한경 박사와 구한말 백두산을 관광하며 16mm 영사기로 담은 필름을 53년 만에 TV에 처음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미수교국인 중국을 중공으로 호칭하던 당시 누구도 백두산을 구경할 수 없었고 제대로 찍은 사진 한 장도 구경하기 힘들 때 동화상으로 시청자들이 백두산과 압록강의 전경을 보게 된 것은 충격에 가까운 화제거리였다.

연세대 캠퍼스의 백양로가 끝나는 본관 2층에 있던 원일한 박사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나는 연희(延禧) 원(元)씨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창밖에는 연희전문의 대학 이름에서 관향(본관)을 가져오고 성씨는 영어 성(언더우드)의 첫글자 발음에서 따와 한국인의 족보를 만든 설립자의 동상이 바라다 보였다.





몇 살 때 백두산 구경을 하셨습니까?

내 나이 14살 되던 해였지요. 일제 강점기인 1931년 7월 여름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비롯해 우리 다섯 가족과 세브란스의 닥터 8명이 함께 갔어요.


교통편이 불편했던 시대인데 어떻게 가셨습니까?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까지 가서 다시 트럭을 타고 북청을 거쳐 혜산진까지 갔지요. 그곳에서 말을 임대해 타고 삼지연으로 들어갔어요. 백두산 입구에서 천지가 있는 정상까지는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 때 구경하며 느끼신 풍경은?

쭉쭉 뻗은 노송과 아름다운 야생화가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천지의 물은 맑고 깊으면서 얼음처럼 차가와 여름인데도 무릎 위로는 몸을 물에 담글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천지못 한구석에는 따뜻한 온천수가 흘러나와 수영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카메라는 누가 찍었습니까?

아버지(원한경 박사)가 16mm 영사기를 가져 가셔서 백두산과 압록강의 뗏목 등 그때의 풍광을 고루 담으셨어요.


서울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며칠이나 걸렸습니까?

꼬박 보름이 걸렸습니다. 백두산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열 명이 넘는 단체가 불편한 교통에 숙박시설도 제대로 찾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어요. 관광도 고생이 따라야 추억이 되는 것 같아요. 백두산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필름을 53년 만에 공개하게 된 사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필름이 귀할 때였고 매우 힘든 곳을 담아와 사실 가보처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2차대전 직전에 오리지널 필름을 아버지가 미국에 있는 삼촌댁으로 보내 보관토록 했어요. 복사본이 있어서 간혹 우리 가족들이 이곳에서도 보기는 했는데 최근 미국에서 오리지널 필름을 찾아내 서울에 가져온 것을 방송국에서 알고 소개를 하게 된겁니다.


할아버지 대부터 집안 내력을 대다수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오르는 정겨운 우리 농촌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선친의 글을 읽기도 했습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가문으로 생각됩니다.

하하하. 코만 양코지 내가 어디로 보나 미국인 같습니까? 아마도 75%는 한국인이고 나머지 25% 정도가 미국사람이라고 할까요?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족은 사람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이 땅의 하늘과 강산을 모두 사랑해 왔어요.


한국의 경치 중에 어디가 가장 좋습니까?

한려수도 동서해안 설악산... 모두가 좋아요. 언제가도 싫증이 안나는 곳입니다. 봄이면 진달래 피는 산이 좋고 가을이면 빨간 단풍으로 물든 산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럼 싫어하는 것은 없습니까?

딱 하나 있어요. 어느 도시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면서 하늘을 회색으로 칠해 선생이 왜 하늘이 푸르지 않고 회색이냐고 묻자 하늘 색깔이 늘 회색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점점 도시가 공해로 찌들어 가고 있어서 그게 싫어요.


젊은이들에게 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국의 기적을 경제발전이라고 합니다만 그보다 앞서는 것은 교육기적입니다. 불과 수 십년 전만해도 문맹자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내가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내 인생 경험을 통해 볼 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험심과 용기를 가져야 하고 동시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사회생활에서 포용력도 생깁니다.




인터뷰를 하던 날 교통사고로 인한 찻길의 정체로 약속시간을 한참이나 넘겼다. 그러나 원일한 박사는 그 시간에 찾아온 다른 사람의 면담요청을 거절하고 먼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비워 두고 기다렸다. 누구든 한번 약속한 것을 지키는 신뢰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노신사였다.

원일한 박사에게는 아들 삼형제가 있고 그중 원한광 박사(65)도 연세대 교수로 오랫동안 봉직하고 차남인 동생 한웅 씨와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한국에는 막내인 한석 씨(54 미국명 피터 언더우드)가 미국 조지아주정부 한국사무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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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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