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고 열정적인 연주를 위한 무한도전, 첼리스트 장한나
솔직하고 열정적인 연주를 위한 무한도전, 첼리스트 장한나
  • 김선
  • 승인 200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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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부인> 읽고 결혼 생각 없어져” / 김선



[인터뷰365 김선] 3세에 피아노를, 6세에 첼로를 시작해 7세에 국내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8세에 시향과 하이든 첼로협주곡을 협연했던 장한나. 11세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국제콩쿠르에서 심사위원 10명 전원일치 대상 및 현대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천재 첼리스트로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올렸다. 또 작년에는 지휘자로 데뷔무대도 가졌다.

지난 10월, 장한나는 비발디의 첼로협주곡을 담은 첫 바로크앨범을 내놓았다. 이 앨범을 발표하면서 런던체임버오케스트라와 함께 국내 5개 도시 투어 연주를 위해 귀국한 장한나를 만났다.

화려한 이력의 천재 음악가는 첼로를 내려놓은 순간부터 티없이 순수한 보통여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은 자유로웠고 하고 싶은 말을 막힘없이 토해내는가 하면 꾸밈없고 호방하게 잘 웃었다. 특히 인터뷰 내내 질문에 대한 능수능란한 대답은 달변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협주곡 앨범의 컨셉을 비발디로 선택했다. 처음으로 바로크 레퍼토리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300여년 전의 비발디를 21세기로 데려오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발디 하면 ‘사계’만 알더라. 비발디가 자신의 곡 중 ‘사계’만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척 억울해 할 것 같다. 하하하. 비발디는 30여곡의 첼로 협주곡을 남겼다. 그는 이 협주곡을 통해 첼로라는 악기를 처음으로 반주악기에서 솔로악기로 격상시켰다. 비발디는 현악기로 어떤 표현이 가능한지 파악했던 뛰어난 음악가다. 그는 고음과 저음, 긴장감, 화성 등 모든 측면에서 음악적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표현했던 작곡가이기도 하다. 나는 300년 전에 살던 사람들을 위한 연주가 아니라 21세기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비발디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이번 앨범에서는 비발디가 남긴 30여개의 첼로 협주곡 중 가장 개성있는 7곡을 뽑았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첼로협주곡 7곡의 두드러진 특색은 무엇인가?
비발디 첼로협주곡들을 여러번 반복해 들으면서 가장 개성있는 작품을 추렸다. 비발디의 첼로 협주곡들은 모두 비슷비슷해 다 똑같이 들린다. 첫 세션에 들어가면서 나를 포함해 프로듀서, 지휘자, 오케스트라단원들이 "다 똑같이 들릴 수 있는 협주곡들"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악보를 보면 분명히 다르다. 다르게 들리게 하는 것이 연주자의 능력이다. 이번 연주회에서 비발디의 7남매(자신이 연주한 7곡)의 각기 다른 개성을 연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다르게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발디의 음악 세계를 잘 전달하기 위해 곡 해석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악보를 런던에서 구하느라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작곡가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는 바로 악보다. 연주자가 작곡가에게 갈 수 있는 지도와 같다. 목적지로 도달하는 길은 있지만 그 길에는 비가 올 수도 있고, 사막이나 강을 만날 수도 있다. 음악가에 따라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황폐하게 될 수도,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10살 때 스승이었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는 "악보는 하늘과 같이 떠받들고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주자는 자신이 연주하는 곡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올인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야 청중에게도 그 감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발디 협주곡은 10분밖에 안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비발디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다. 낭만주의시대 음악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
데뷔 이후 차이코프스키나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등 낭만주의 첼로협주곡을 많이 연주했다. 낭만시대 음악은 색상으로 말하자면 짙은 색이다. 낭만주의시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안개가 가득 낀 산 위에 혼자 서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화음이 개인적인 감정들로 두텁게 쌓여있다. 반면 비발디의 음악처럼 바로크음악은 모든 것이 투명하고 아주 섬세하다. 나와 함께 협주하는 오케스트라는 12명도 안되는 적은 인원으로 구성됐다. 연주가 투명하게 느끼게 해야 하기 때문에 악기 하나하나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모든 것이 섬세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번 음반 녹음 전 왼쪽 새끼손가락이 찢어졌다. 가뜩이나 녹음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할 뿐 아니라 섬세한 비발디의 음악을 살려야 했기에 난감했다. 반창고를 붙이고 녹음을 하려 했지만 반창고가 계속 옆줄을 건드리며 소리를 냈다. 결국 맨손가락으로 녹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만 쉬면 아물 상처였지만 나흘간 계속된 녹음 동안 계속 쇠줄 위를 누르니 나을 틈이 없었다. 간혹 찢어진 부위로 줄을 누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아팠지만, 집중한 상태라서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요즘 음악인들은 연주보다 음반을 내는데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음반이 중요한 줄 몰랐다. 크고 나니 음반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음반은 평생 남더라. 언제 어디서든지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사람들이 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통로는 음반뿐이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진다.

음악인들은 연주 때마다 같은 곡을 다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매번 같은 곡을 반복해서 연주해도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게 하는 미묘한 연주예술의 세계가 궁금하다.
매번 연주를 준비하고 해석할 때 고민한다. 몇십 년을 연주해 내 식구처럼 친숙한 곡들을 어떻게 소화해 또 다르게 연주할까, 매번 똑같이 반복만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들 때문이다. 악보라는 것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보면 보이는 것만 보이지만,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니 말이다. 곡 해석은 일종의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곡들을 새롭게 연주하기 위해 항상 초심을 간직하려고 노력한다.



‘장한나 연주’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음악을 연주하던지 음악에 담긴 내면의 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준 원동력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다. 열정과 사랑을 내 소리에 표현하고 싶다. 내 마음을 거울같이 비춰주는 소리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2007년 5월 성남국제청소년관현악페스티벌에서 지휘자로 데뷔하며, 4년간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따랐다.
대학생이 된 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을 클래식에서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은 나에게 마음의 힘을 키워주고 밀어주는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힘을 어린이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었다. 예민하고 한창 자랄 그들에게 지휘자로 음악의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다.

지휘의 매력은 무엇인가?
오케스트라 전체 소리의 색깔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지휘의 시작은 악보를 아는 것이다. 악보를 통해 어떻게 연주자들이 역할 분담을 해야 하고 어떤 음악색깔로 표현해야 화음이 되는지 찾아내야 한다. 지휘를 한 이후부터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지난 6월말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변주곡’을 연주했다. 2003년에 연주한 이후 5년만의 연주였다. 이 곡은 기교적으로 굉장히 어렵고 난해하다. 길지 않은 곡이지만 연습시간이 무척 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올해 연습을 하면서 곡을 보니 '아니 이렇게 간단했던 곡이었나'란 생각이 들더라. 그동안 수많은 어려운 곡들을 소화해낸 탓이기도 했겠지만, 지휘공부 덕택에 생긴 넓은 사고와 시야 덕분이었다. 예전에는 곡 하나하나만 보고 해석하고 연주했다면, 이제는 차이코프스키란 작곡가의 긴 삶에 녹아든 곡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눈이 생겼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첼리스트이면서 이제 지휘자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음악적 위상을 평가해 본 일이 있는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현재 두 역할 모두 아주 시작단계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곡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피눈물을 흘리는 작업이다. 나는 청중과 작곡가 사이의 연결자라고 생각한다. 지휘나 연주할 때 작곡가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그들의 작품에 해가 되지 않도록 연주하려고 노력한다. 훌륭한 첼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 필수다. 지휘는 100여명의 연주자들과 함께 하므로 재미삼아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지휘를 하고 싶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

첼리스트라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들었다.
첼리스트나 지휘자로 불리고 싶지 않다. 여성 음악가도 싫다. 난 그냥 '음악가' 장한나로 불리고 싶다. 음악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음악가의 임무다. 훌륭한 음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음악가이고 싶다.

좋아하는 팬들이 많을 것 같다. 에피소드가 있는가?
e메일 주소를 공개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고 e메일로 격려편지들이 많이 온다. 연주회에 다녀간 분들이 감동받고, 덕분에 행복했다며 고맙다는 글을 볼 때마다 너무 기쁘다. 사람들에게 첼로에 대한 아름다움을 알게 해줬다는 보람도 느끼고 앞으로 걸어나가는 힘이 된다.



미국 뉴욕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에 올 때는 기분이 어떤가?
서울에 올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명절이 되면 한국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매번 한국에 올 때마다 들뜬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수첩에 하나하나 적어놓는다. 하지만 막상 뉴욕에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리스트를 보면 하나도 체크된 게 없더라. 아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중인데 음악과 철학이 서로 통하는 면이 있는가?
지금은 휴학중이다. 주변에서 철학도라 부르는 것이 참 어색하다. 공부가 음악에 도움을 주는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하하. 철학은 근본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세기를 아우르는 똑같은 고민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내 삶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고 내 일생을 구상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음악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음악이 내 전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문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통해 내면을 끊임없이 채워나가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 그래야 더 풍성한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겠는가.

늘 연주 때문에 바쁘면서 공부는 언제 하나?
내겐 연주준비가 언제나 중요해서 공부를 많이 못하고 있다. 학교 수업에 매달려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물론 공부가 중요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부전공 취미 정도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번에 복학하게 되면 논문을 준비해야 한다. 연주회 일정을 잡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바쁜 연주일정에다 대학생활이라니, 정신없이 사는 것 같다. 그러다가 젊음이 다 지나가면 후회되지 않겠나? 한번쯤 음악가의 삶을 후회한 적이 없는가?
없다. 너무 단순한 대답인가. 하하하. 워낙 어렸을 때부터 연주를 해왔다. 좋아했던 것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음악가는 내 직업이다. 그러니 지금 내 생활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 아닌가. 비록 주변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배낭여행을 가지 못해도 이것이 내 일생이고 인생이다. 오히려 내 나이 또래에 고민하는 진로 걱정같은 건 안해도 되니 좋다.

책도 좋아하는가. 요즘 읽은 책이 있다면?
좋아한다.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의 여행을 한 듯한 느낌이다. 책은 즐거움뿐 아니라 인생공부도 된다. 톨스토이를 존경하고 그의 작품 모두를 좋아한다. 얼마전에는 영국 작가 DH 로렌스의 작품을 읽었는데 엄청난 충격이었다.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사랑’ ‘사랑에 빠진 여인들’ 등을 읽었는데 결혼하고 싶지 않아졌다. 하하. 하긴 상대도 없지만. 톨스토이가 자상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진다면 로렌스의 작품은 날카로운 면도칼 같다.

일반적으로 클래식은 난해하다고 여긴다. 어떻게 하면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나?
음악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다. 편하게 잘 때 틀어놓고 듣는 것도 클래식과 친해지는 좋은 방법이다. 클래식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달라. 처음 만난 친구라고 생각해달라. 처음 만난 친구도 사귈수록 정이 들면서 차츰차츰 알아가는 단계가 있지 않는가. 클래식도 시간을 두고 여유를 가진다면 곧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난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이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클래식음악의 가이드가 되고 싶다. 그들에게 클래식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음악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선배로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습습관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연습시간을 정해줬다. 정해진 시간만 채우면 언제든지 나가서 놀면 됐기에 놀려고 꼬박꼬박 연습시간을 채웠다. 하지만 음악이란 세계에 매료되다 보니 어느 순간 연습 자체가 기쁨이 되더라. 노는 것보다 연습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음악가이다 보니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연주가 나온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최선의 연주를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


2006년에 이어 적십자평화순회대사로도 활동 중인데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좋은 악기를 대여 받은 덕택에 음악활동을 무리없이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가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 대사로 활동하면서 봉사를 통해 고통을 나누며 행복을 느꼈다. 사실 기쁨은 나누기 쉽지만 고통은 나누기 어렵지 않는가.



앞으로 꿈이 있다면?
솔직하고 정직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 어떤 음악을 연주하든지 음악에 담긴 내면의 소리를 들려줘야한다고 생각한다. 내 소리에서 열정과 사랑을 들려주고 싶다. 아낌없이 내 열정을 나누고 내 내면의 모든 것을 꺼내 함께 나누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자신을 재충전해야 되겠지. 또한 자기관리에서도 충실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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