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슈퍼모델 출신 사업가 모린 김
홍콩의 슈퍼모델 출신 사업가 모린 김
  • 김두호
  • 승인 200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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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고의 여자로 살았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모린 위그너 김(한국명 김형숙 46)은 홍콩에 본사를 둔 미용상품의 세계적인 브랜드 고스파(GOSPA)의 사장이다. 패션모델 활동을 한 미모와 부드러운 여자의 향기를 느끼게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하루 평균 12시간 일에 중독되어 늙을 시간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삶의 길잡이가 되어 준 ‘So what!’이라는 주문(呪文)이 있다. ‘그래 어쩔 거냐’라고 스스로를 일깨우고 자극하는 그 외침에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하고 싶은 일이나 말이 막힐 때 두려움 없이 부딪쳐 보자는 일종의 용기와 뚝심이 함축돼 있다. 그것이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했고 매사에 ‘나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자신감으로 살아났다.


사업 파트너로 만난 독일인 조오지 위그너 씨와 결혼해 20여년을 해외에서 살다가 몇 해 전부터 모국 나들이를 시작한 그가 최근 서울에서도 사업을 시작했다. 2006년 월드컵 공식와인이었던 독일의 ‘리슬링’ ‘돈휄더’ ‘스팻부군더’ 등의 명품 브랜드를 자신의 이름인 모린(Morin)으로 바꾸어 한국 시장에 가져와 눈길을 모으고 있다. 150년 전통의 독일 대표 브랜드도 ‘모린’으로 갈아 끼울 만큼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언제나 당당한 최고의 브랜드다. 유럽지역에 수출되는 60여종에 이르는 그의 회사 제품 중에도 그의 얼굴사진과 이름이 붙은 브랜드가 많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 의상디자이너로 출발해 해외에서 슈퍼모델이 되고 기업체 사장이 된 홍콩의 아름다운 여장부 모린 위그너 김의 인터뷰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다.


실례 되는 말이지만 우리말 발음이 다소 어색하다. 한국을 떠난 것이 언제인가?

1980년대부터 해외에서 살았다. 20여년을 외국인들 속에 살다가 우리말을 다시 시작하니 아직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잊은 용어들도 많아 생각을 섬세하게 표현 못하기도 하지만 이제 많이 회복됐다.


주로 어디에서 살았는가?

집과 회사가 홍콩과 독일에 있다. 남편이 ‘고스파’의 조오지 위그너 회장이다. 독일인이다. 공장은 중국에 있고 본사는 홍콩에 있지만 제품을 주로 유럽시장에 수출한다. 남편은 기술개발과 생산을 맡고 내가 무역과 마케팅을 총괄해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젊은 시절의 꿈과 사랑,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학창시절부터 디자이너가 꿈이었다. 그림을 좋아해 그것이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대한 감각으로 이어졌다. 초기 디자인스쿨의 하나였던 시대복장학원을 다닌 후 독립해서 하얏트호텔 부근에 랑데빵당이라는 의상실을 열었다. 그때 럭키(지금의 LG)에서 주최한 디자인 공모전에 내가 만든 비키니 수영복과 비치 타월, 티셔츠 등을 응모했다. 그 시대 우리의 유행 감각으로는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지금 남편이 된 위그너 회장이 나의 작품을 발견해 국내보다 수출용으로 히트 가능성이 있다고 수출 사업을 권유해 해외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


그럼 그때 남편이 된 위그너 씨가 공모전 심사를 맡았다는 건가?

그는 당시 독일의 화장품 등 생활용품 브랜드인 헨켈(Henkel)의 아시아지역 사장이었다. 럭키와 라이선스 계약관계로 한국에 많이 머물렀다. 그땐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국제결혼이나 유학, 수출실적을 증명할 수 있는 사업가가 아니면 힘들었다. 조오지 씨의 도움으로 나의 제품이 수출되기 시작했고 어린 처녀로 처음 생산된 포니 자가용을 직접 몰고 다녔다. 세무서에 가면 직원들이 몇 백만 원의 세금액수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조오지 씨를 만나면서 삶의 새로운 전기도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집은 아주 보수적인 안동 김씨 집안이다. 국제결혼은 상상할 수 없었고 허락을 받을 수도 없었다. 나도 그를 결혼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린 매우 오랫동안 사업 파트너 관계를 유지했다. 그도 나의 탁월한 디자인 감각을 사랑했다. 특히 의상 소재가 다양한 소재의 혼용이나 합성을 모를 때 내가 처음으로 가죽, 실크, 면, 섬유 등을 적절하게 혼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내가 작품을 발표하고 생산도 하기 전에 샤넬에서 모작이 먼저 나와 히트치는 일도 있었다.


두 사람이 사업에서 인생 파트너가 된 사연이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처지였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해 독일에서 인도에 도착한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인도로 와 줄 수 있느냐는 초청 전화였다. 그때는 단수여권 시대여서 다시 여권을 신청해야 하니 당신이 나를 만나고 싶으면 서울로 오라고 대답했다. 그건 비즈니스 통화가 아니라 보고 싶어서 한 전화였다. 그런데 그는 인도에서 업무를 포기하고 그곳 델리 국제공항에서 곧장 서울로 날아왔다. 공항에서 인도의 다른 지역으로 갈 비행기에서 수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것을 모른 척하고 비행기를 바꿔 탔다는 이야길 지금도 자주한다. 결국 우리 집안에서 결혼식을 올려주지 않아 해외에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고 아기를 안고 처음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도 가족은 파란 눈의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모델 활동을 한 것은 언제인가? 어떻게 그럴 기회가 왔는지?

내 스스로 기회를 찾고 만들었다. 나는 본래 우리 토종 여성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수줍음 많고 남 앞에 나서기를 매우 힘들게 생각하는 여자였다. 당시에는 영어도 유창하지 못할때라 더욱 그러했는데 언제나 패션쇼에서 마주치는 모델들의 모습을 보면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자기 과시를 잘해 부러웠다. 홍콩의 유명한 모델학교인 캐트웍 프로덕션을 찾아가 1년 과정의 교육을 단기과정으로 특별 사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모델학교에 등록을 하고 슈퍼모델 3개월 속성과정을 밟게 되었다. 사방이 유리벽인 발레 홀에서 표정관리, 걷기, 자세, 화장법을 익혔고 더욱 중요한 발견은 ‘나는 최고의 여자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다’라는 자신감을 갖는 정신자세였다. 그때 마주친 ‘So what!'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모델 수업 중 그레이스 유 원장님의 권유로 홍콩 TVB-TV가 주관한 코스모폴리탄 표지 모델 콘테스트에 참여했고, 표지 모델로 당선하게 되면서 미스 니베아 화장품 전속 모델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코스코폴리탄을 비롯한 패션잡지의 표지모델로 소개되고 샤넬, 아이그너, 랑콤, 바르샤체 등 많은 광고를 하게 되었다. 우승하기까지 수줍음이 많던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그레이스 유 원장님의 도움이 컸다. 이후 슈퍼모델 콘테스트에서 1등으로 선발되었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합격 후 2등과 자리가 바뀌었다. 슈퍼모델 우승자를 축하하는 파티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안하다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모델 교육을 권하기도 한다. 나 자신이 모델 교육을 받은 후 한층 자신감 넘치고 당당해진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영하고 있는 GOSPA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인가?

위그너 회장은 이미용제품이나 생활용품의 기업인이며 발명가로 독일에서도 저명한 사람이다. 그가 국제 발명특허를 획득한 제품이 126개에 이르고 그중 60여개를 우리 회사가 생산하고 있다. 매출 규모는 500여억 원이지만 제품 중 퍼머용 재료 등 헤어용품은 유럽과 미국 등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Morin이란 브랜드로 독일 수입와인을 한국에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곳에서도 사업을 시작한 것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 와인이다. 와인 중에 맛에 익숙한 것이 독일 와인인데 간혹 서울에 오면 독일 와인을 찾지만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독일의 명품 와인을 수입토록 주선해준 분이 건강으로 사업을 못하게 되어 인수를 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등 근래 독일에 오는 국빈들이 마셨다는 와인이 2006 독일 월드컵 공식 협찬 브랜드인 ‘리슬링’ 등 전통 와인들이다. 150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지만 내 이름으로 주문해 내 사진과 함께 내가 디자인한 상표를 부착해 수입을 한다. 10월 1일 우선 63빌딩 옆에 있는 리첸시아빌딩에 모린와인 시음카페를 만들어 오픈한다. 진정한 명품의 브랜드 가치는 껍데기인 상표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품질에 있다고 본다. 한국에게 최고의 독일 와인 맛을 보여주며 내 이름의 새로운 브랜드를 심고 싶은 것이다. 그게 굳이 서울에서 내가 사업을 시작한 목적이고 얻고 싶은 보람이다.



일에 욕심이 많아 늘 바쁘게 사는 것 같다. 하루 몇 시간 일을 하는가?

홍콩에서의 회사생활은 아침 8시 반에 시작해 밤 10시에 퇴근한다. 박람회나 마케팅으로 해외 출장이 있으면 새벽까지 작업을 한다. 회사와 집, 그밖에 나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10m 밖에 사는 사람도 모르고 살았다. 언젠가 홍콩의 고려대교우회 모임이 개최되어 어윤대 전총장 등 알고 있는 지인들이 참석했는데 홍콩에 살면서 홍콩의 동포들을 모르고 지낸 나를 신기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 옆도 안돌아 보고 살아 어쩌다 홍콩을 방문하는 친구들이 오히려 지도를 펴들고 나를 안내하며 다닌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40분 거리의 마카오도 얼마 전 처음 구경했다.


그럼 취미생활이나 여행 등 개인적인 여가생활은 포기한 건가, 외면한 건가?

두 가지 모두 맞다. 일을 위해 개인적인 시간은 포기하고 외면했다.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도 비즈니스를 시작한 몇 해 전부터였다. 나를 두고 서울에서 만나는 분들이 ‘유리병 안의 공주’라고 부른다. 한국여자이면서 지금 우리 물정을 너무 모른다고 어느 날 박준 씨(헤어 디자이너)가 권유해 고려대 ICP 최고위과정을 다녔다. 그곳에서 좋은 분들 많이 만나면서 사업욕심보다는 재미있게 사는 지혜도 배웠다. 즐기며 하는 일거리로 와인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 지난 시간에 아쉬움도 따르겠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씨를 뿌리고 가꾸어 추수를 하는 농부의 삶이나 사업가의 삶이나 같다고 생각한다. 나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뿌리고 키운 제품의 마케팅 실적이 나타나면 추수하는 희열을 느끼며 살았다. 전혀 놀고 즐기지 못한 시간에 미련도 없고,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나는 일에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내 인생에 후회할 일도 겪지 않았다.


아들을 소개할 수 있는가?

17살로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홍콩에서 소년기까지 내 곁에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낳기만 했지 엄마가 일에 매달려 아이도 집안일을 보는 여자가 키웠다. 아버지를 닮아 성격이 반듯하고 꼼꼼하다.




아직도 못다 이룬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그렇게 일하고 사업에만 매달려 산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는가?

아니다. 일이라는 벽 속에 깊숙이 묻혀 조그맣게 반짝이는 별만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별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해와 달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서울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을 일 밖에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도 느끼고 해도 느끼고 있다. 내가 살았던 길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고 인간관계에서 보면 너무 편협하고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인관계를 넓혀 가며 남을 위해 보람 있는 일에도 참여 하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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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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