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3요소는 ‘관객, 관객 그리고 관객’ 공연제작자 김의숙
연극의 3요소는 ‘관객, 관객 그리고 관객’ 공연제작자 김의숙
  • 조현진
  • 승인 200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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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가치를 계산기로 증명할 행복한 공연을 꿈꾼다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올 여름엔 참 지겨운 일들이 많았다. 어느해 보다 뜨거웠던 태양, 언제 끝날지 모르던 탈레반의 인질사태, 그리고 예년엔 볼 수 없었던 긴 장마까지. 열기가 식고, 인질들이 풀려나면서 이 여름은 끝났다. 그렇게 9월이 시작되었지만 일요일의 대학로엔 축축한 빗줄기가 여전했다. 그래서 일까? 일요일 임에도 어쩐지 대학로는 차분했다. 이런 분위기의 대학로는 어쩐지 낯설다. 누가 뭐라 해도 대학로는 흥과, 난장과 소란이 있어야 제 맛이 아니던가? ‘대학로의 맹렬 CEO’ 김의숙을 만났다. 금년 서울연극제에서 처음으로 신설된 '프로듀서상'의 1호 수여자 였고, 대학로에 언제나 신선한 자극을 불러 일으킨 공연을 만들어 온 그녀 역시 이 차분한 대학로의 일요일 오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올 여름은 비가 많이 와서 대학로가 전체적으로 재미를 못 봤겠다.

맞다. 아무래도 소극장이 많다보니 서로들 몸 붙이고 공연을 봐야하는데 비 많이 오면 찝찝해서 들어오기 싫어하지. 너무 더운 것도 문제다. 공연하는 2시간쯤 에어콘 쎄게 틀다가 밖에 나가면 제까닥 감기 걸리기 딱 좋다. 나도 여름 내내 감기 달고 살았는걸 뭐. 그러니까 대학로 사람들 올 여름엔 다 재미 없었을 거다.


우선, 당신이 누군지를 좀 알려줘야겠다. 대학로 사람들은 당신을 다 알지만, 밖에 사람들에겐 낯서니.

대학로 사람들도 다 나를 알지는 못한다.(웃음)


설마. 인터뷰 전에 대학로 안에 꽤 많은 세대와 분야의 사람들에게 당신을 물었더니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 문제는 당신을 모두 ‘의숙이’ 혹은 ‘의숙이 누나’ ‘의숙이 언니’ 이렇게 호칭하는 것이지만. 아무도 김의숙 프로듀서, 김의숙 대표 이런 호칭은 안 쓰더라. 모르는 사람이 들으니까 식구 부르는 것 같더군.

그래? 식구처럼 부른다는 말은 듣기 좋은 걸? 그들이 나를 가족처럼 인정한다는 것도 기쁜 일이고. 참, 내가 누군지 알려달라고 했지? 음...이름은 김의숙이고, 아직 40이 안된 싱글 여성이다. 좋은 남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꼭 써줘라. 나는 대학로에서 공연을 만들고, 공연을 팔고 하는 사람이다. 그 일을 위해 <파임 커뮤니케이션스>라는 주식회사를 대표하고 있고. 뭐 그 정도다.


자타가 공인하는 현재 대학로의 실세그룹인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KAPAP)의 부회장이기도 하고?

실세 아니다.(웃음) 말 그대로 그냥 프로듀서, 공연제작자들이 같이 공부 좀 하자고 만든 단체일 뿐이지. 그 단체에 소속된 제작자들이 대학로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보니 실세 운운하는 소리들을 하는 거다. KAPAP야 말로 정말 대학로를 한 가족, 하나의 나무라는 울타리로 생각하는 프로듀서들의 모임이다.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처럼 살면서 파이를 키우자는 거지. 그러니까 서로 형, 누나 하면서 만들어진 거다.


겉으론 그러면서도 사실 대학로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는 압력단체가 아닌가?

압력 행사할 일이 없다니까. 혹시 연극의 3요소를 아는가?


물론이다. 배우, 관객, 희곡.

그렇다. 세익스피어 이후로 이 3대 요소 중 배우와 희곡은 엄청나게 발전해 왔다. 무대 위에서 헬리콥터까지 날아다니는 세상 아닌가? 하지만 관객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고정된 의자에 앉아 앞만 바라봐야 했으니까. 즉 우리는 다른 것보다 이 ‘관객’을 어떻게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뿐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선 광고보고, 예고편보고, 온갖 정보를 다 습득한 다음 보고싶은 영화를 찾아서 극장에 가는데 아직도 연극은 일단 대학로를 와서 보고 싶은 연극을 찾는 방식이다. 이래가지곤 경쟁력이 없으니 프로듀서들이 힘을 합쳐서 하나의 공연이 아니라 이 대학로라는 덩어리를 어떻게 마케팅 할 수 있느냐를 연구하는 거지.



그렇다. 김의숙은 공연제작자이다. 숙명여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연극에 꽂혔다. 연출가가 되고 싶어서 대학로의 문을 두드렸지만 희곡작가인 이강백 선생에게 ‘왜 멀쩡한 놈들이 다 연출한다고 설치는지 모르겠다. 정말 애정이 있다면 차라리 전문적으로 연극판에 돈이 돌게 만드는 일을 찾아봐라.’ 라는 말을 듣고 자본과 무대에 한 발씩을 담구는 프로듀서의 인생을 김의숙은 결심한다. 1994년 이었다. 사수인 명계남과 의기투합해서 만든 ‘문화공장’은 그런 ‘연극표 팔아서 직원들 밥 먹이는 꿈’의 시작이었다. 문화공장의 기획실장으로 김의숙은 <늙은 도둑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명계남, 박광정, 유오성을 한 무대에 올리는 파격적인 ‘명광성’ 캐스팅을 성공하며 <늙은 도둑이야기>는 대학로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한다. 이 일을 통해 대학로의 ‘젊은 여성 프로듀서’라는 포지션을 확보한 김의숙은 이듬해인 1995년 ‘극단 이다’를 세운다. 양희경의 모노드라마 <늙은 창녀의 노래> 이상우의 <비언소> 명계남의 <콘드라베이스><너도 먹고 물러나라><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등 ‘극단 이다’는 연이은 화제작들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들을 통해 아직 20대 후반이었던 김의숙은 대학로의 독보적인 프로듀서중 하나가 된다.



그때 갑자기 영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왜?

나도 왜 지금은 그 잘나가던 시절에 유학을 선택했을까 싶다. 바보같이.(웃음) 그런데 그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잘 안 풀리는 숙제지만 나라는 역할이 도대체 뭘까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나는 공연이라는 예술분야에 있고, 분명히 예술가로 분류할 수 있는 작가, 연출가, 배우들하고 어울림에도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게 좀 우울했지.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나는 나의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꿈꾸며 연극판에 들어 온 건데 내가 실제는 고민하는 일은 창의력이 아니라 관객숫자, 제작비 같은 고민들이었으니까. 처음엔 나 스스로에게 멋진 공연을 만들고 있으니까 넌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는 거야. 라고 속이고, 쎄게 술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날려보려고 했는데 그게 안 사라지더라고. 불꺼진 무대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기분으로 계속 살게 되고.


음.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였으니까. 이런 문제와 잘 타협하며 어울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거지. 그래서 ‘극단 이다’를 후배에게 ‘잘 키워서 학비 보내라. 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오마.’하고 영국으로 떠난 거다. City University라는 학교에서 아트 매니지먼트와 문화경영을 공부했다.


그래서 해결은 했나?

웬걸. 가자마자 후회했지. 첫 학기 강의를 들으며 아! 프로듀서는 예술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구나. 나는 Art가 아니라 Work를 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았다. 이 차이를 이해하겠나?

아니. 조금 더 설명해줘라.

공연이건, 영화건, 미술이건 관객과 만나는 순간은 Art다. 관객은 그 것을 완성된 문화상품으로 판단하고 돈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Art가 아닌 Work다. 피카소가 그린다고 해도 절반쯤 그린 그림은 예술이 아니다. 그냥 ‘작업 중’인 것이고 완성 전까지는 모두 ‘연습’ 이지. 그게 완성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물건을 ‘예술’로 받아들이는 거다. 즉 프로듀서의 일이란 이 물건이 Art로 보일 때 까지 Work를 반복하는 사람 중 하나다. 10명이 하건 1,000명이 하건 무대는 배우만 올라가게 된다. 관객은 그 배우들을 보며 예술이라고 판단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나도 안 억울하더라고. 하하.


그럼 그 ‘Work의 초식’을 가지고 다시 대학로로 돌아온 것이겠군.

결과적으론 그렇다. 사실 대학로로 돌아오기까지 나름대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 역할이 뭔지에 대해 분명해지니까 사실은 영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극단 이다’ 도 아주 잘 나가고 있을 때 였으니까. 박사과정까지 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친 오빠가 한국에서 시작한 밴쳐사업이 갑자기 커졌다. 사람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좀 도우라는 말을 거절하기 힘들어서 돌아온 거다. 대학로가 아니고 밴쳐 판으로. 전혀 예상 못한 귀국이었지. 99년에 돌아와 오빠의 사업을 돕다가 이 고생 저 고생 하고 대학로에 다시 완전히 랜딩한 것은 2001년이다.



돌아온 김의숙은 ‘파임’을 설립한다. 파임은 이전 그녀가 만들었던 ‘극단 이다’처럼 대학로에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것 만이 아닌, 다른 극단의 공연을 마케팅하고, 대학로 밖으로 공연이 나갈 길을 모색하는 것을 모토로 했다. 프로듀서의 길이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인한 그녀에게 이제 대학로는 ‘순수한 열정의 무대’ 만이 아닌 ‘예술과 자본이 만나는 확장성’의 실험으로 다가왔다. ‘파임’은 유시어터와 극단 신협의 작품들을 마케팅하며 시작된다. 영화도 아닌 연극 = 소극장이라는 인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쉽진 않았을 텐데.

물론이다. 연극계 사람들 스스로가 연극을 작은 규모로 바라보고 있는 시각자체가 문제였다. 몇 백만원, 몇 천만원으로 겨우겨우 제작하고 있는데 전문적 마케팅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하는 비아냥도 많았다. 이젠 대형 뮤지컬도 많이 나오고 그러니까 공연에 마케팅이란 표현이 자주 나오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런 개념을 가지지 못했을 때다.


그런데? 나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극단에 돈이 없는데 어떻게 마케팅이 성사될 수 있나?

이론이 아닌 실질적 마케팅의 개념은 매우 간단하다. 유료관객을 늘인다는 것이다. 돈을 내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많아지면 규모의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논리인데 그때까지 연극계는 이 노력이 부족했다. 그냥 예산을 짜고 짜면서 공연을 만들고, 신문기사 하나 잘나오고, 거리에 포스터 붙이고, 기업체 찾아가서 광고 담당자에게 얼마주면 프로그램에 광고 실어드리겠습니다. 하는 정도 수준이었다. 이걸 기획이고, 마케팅이라고 불렀던 거다. 배우와 연출가, 즉 예술 하려고 맘먹은 사람들이 그런 일 하려니까 힘들고 우울하고 그랬던 거지. 우선 파임은 마케팅이니 뭐니를 떠나서 ‘우리가 그런 일 할테니 너희는 좋은 공연 만들어라.’라는 역할을 맡으며 시작된 거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한에서 어떻게 하면 이 공연에 관객이 많이 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에 광고 받는 거 말고 다른 자본이 대학로에 들어올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집단이 된 것이다.

그래서 ‘파임’은 그때부터 ‘돈,돈,돈’ 하며 뛰어다녔다. 정부건 문화단체건, 투자사건, 기업이건 간에 찬스가 보인다 싶으면 달려든 거다. 물론 처음엔 대학로에서 우리를 좀 ‘이상한 애들’이라고 봤지만 금새 파임의 자리는 생겼다. 우리랑 일을 해서 떼돈을 벌진 못하더라도, 함께 안한 것보다는 좋은 성과가 난다는 것이 알려지니까.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 온 거다.


분명히 그런 것 같다. 파임의 이력을 보면 직접 제작한 작품들도 보이지만, 매우 독특한 마케팅 프로젝트들이 보인다. 의류회사인 베이직하우스와 문화마케팅을 제휴했던 것이나, 비아그라를 파는 한국화이자의 후원으로 <다시 서는 남자>를 만든 것이나.

<부부 쿨하게 살기>같은 공연도 있었다. <다시 서는 남자>나 <부부 쿨하게 살기>같은 것은 이전까지 대학로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처음엔 배우와 연출가들이 오해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 공연들 다 성공을 거뒀다. 왜냐하면 프로듀서에게 공연이란 관객에게 관람욕구가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다시 서는 남자>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획을 해보니 이 소재에 대해 관객이 보고 싶다는 판단을 하더란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이 되더라. 그러니까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배우도, 화이자도 설득이 되었다. 무대에 올리니 정말로 40~50대 남성관객들이 넥타이 메고 극장에 왔다. <부부 쿨하게 살기>도 그렇다. 마치 연극이 20대 연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더라. 웬걸. 젊은 부부들이 가득 찼다. 이런 식인거다. 관객을 개발하고 설득을 하는거지. 이 작품들은 지방까지 돌며 공연을 할 수 있던 것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대학로 소극장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공연이 이젠 투자 산업화 까지 된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보는 듯 하다. 그런데 좀 외람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대학로 산업화의 선봉에 섰던 김의숙과 파임은 여전히 대학로에 있다. 이 말은 이제 어지간한 극단들이 모두 대형 뮤지컬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신에겐 그런 시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예민한 질문이다. 그냥 그 분들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라고 대답하면 안될까?(웃음)


안 된다.(웃음)

음... 우선 나는 지금 대형 뮤지컬로 투자가 몰리는 현상을 너무나 환영하는 사람이란 것을 먼저 분명히 말한다. 아주 좋은 현상이고, 이 모습이 오래갔으면 정말 좋겠다. 투자하는 작품마다 다 성공해서 연극하는 사람들 모두 부자가 되면 참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의 가치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공연의 가치라는 것이 단순하게 얼마를 넣었을 때 얼마가 나온다는 가치로 해석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나, 투자를 하는 사람이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공연에는 계산기로 두드려서는 확인이 안되는 가치가 있다. 바로 관객이 느끼는 ‘감동의 가치’라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대입해보면 쉽다. 히딩크 감독 인건비, 선수들과 스탭들에게 들어간 비용, 연습비용 등등을 두드리면 그 월드컵을 위해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쉽게 계산된다. 하지만 우리가 4강을 갔을 때 국민들이 느낀 그 감동의 가치를 어떻게 비용으로 환산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이 가치가 금액으로 환산되는가? 공연도 이런 식이어야 하는 거다. 이 감동의 가치가 평가받아져야 함에도 현재의 투자구조는 이 부분에 대한 계정이 없다. 따라서 만드는 사람이나 투자하는 사람모두 계산기에 의존하는 셈밖에는 못하는 것이지. 나는 이런 산수에 자신이 없다. 내가 원하는 셈법도 아니고.


이상적인 말이긴 하지만 그 말은 김의숙이라는 프로듀서가 등장하기 이전의 대학로 소극장 논리와도 같은 것인데.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축구이야기를 이어 대입하자면 대학로는 ‘K-리그’같은 거다. 이 리그가 살아서 관중들이 몰려야 좋은 대표선수들이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지금 대형뮤지컬을 바라볼 때 2가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인프라의 문제다. 몇 개의 대형 뮤지컬을 만들면 배우, 스탭 등 대학로 인력이 다 투입된다. 즉 모든 인프라가 몰리는 거다. 이러면 대학로라는 토양은 황폐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반복적이지만 자본에 대한 염려이다. ‘감동의 가치’를 수익으로 환산하지 않는 현재의 투자구조에서는 난 프로듀서로써 큰 돈을 움직일 자신이 없다. 내게도 큰 작품 한번 하라고 투자하겠다고 오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모두 단서가 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다음에 더 큰 투자를 하겠다는 거지. 공연의 성공이란 것이 무언가? 돈을 번다는 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무대를 만들고 10년 20년 무대에 올릴 레파토리를 개발하는 것도 장기적으론 성공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하지만 자본은 그런 참을성이 없다. 투자자에게 이번에 시작해서 3년쯤 꾸준히 올리면 그때부턴 20년간 뽑아먹을 스태디 공연이 될겁니다 라고 말할 때 투자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직 우리 공연계는 거기까지 가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자본의 잔혹성을 많이 체험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밴쳐의 스타CEO가 된 오빠에게 얼마나 많은 자본이 기웃거렸는지 모른다. 그거 하루아침에 싹 날아가더라. 내 판단에서 투자 자본이란 그런거다. 지금 대형화되고 있는 무대도 서너개 실패하면 자본은 뒤도 안돌아보고 떠날 거라는 거다. 그래서 현재 구조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게임에 들어가기엔 영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대학로는 확장되어야 하지 않은가? 김의숙이 생각하는 확장은 어떤 것인가?

간단하다. 관객에게 2만원 받으면 부끄럽지 않은 공연이다.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5만원 받아도 부끄럽지 않다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거다. 이렇게 차근차근 가는 것이 나에게는 확장이다. 최근에 해외출장을 많이 다녔다. 우리가 만든 공연인 <인당수 심청가>를 곧 중국에 소개시킨다. 그 공연계약을 위해 중국에 다녀왔고,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발도 보고 왔다. 거기 있는 분이 다른건 못봐도 <빌리 엘리오트>는 꼭 보라고 해서 봤는데 공연 끝나기 1시간 전부터 펑펑 울었다.


왜?

너무 좋아서. 우리가 안 만들어도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공연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계속 공연을 만들어야 하나하고 함께 갔던 프로듀서들과 밤새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가 그 새벽에 무슨 말이 나왔냐 하면 저들도 자기들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거고,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거 아니냐는 답이 나온거다. 바로 그거다. 나에게 확장이란 그런 행복한 무대다. 돈을 버는 무대이전에 관객도 배우도 연출가도 모두 행복을 느끼는 무대를 만드는 것. 그 작업이 내 역할이구나를 다시 깨달은 거다. 그래서 대학로는 하나의 덩어리, 하나의 집이 옳다. 내 작품 하나 적자가 나도 그 작품을 통해 발견된 연출자, 배우가 다른 작품에서 성공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 관객을 넓힐 수 있는 공연들이 대학로를 뒤 덮을 때 진정한 확장은 실현되는 것이지.


그럼 김의숙의 도전은 여전히 대학로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대학로는 하나의 지역이 아니다.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연극의 실체다. 이 안에서 작고, 큰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대형 뮤지컬이 대학로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학로 밖의 자본이 투입되었다고는 하지만 만드는 사람, 출연하는 사람이 다 대학로 사람들 아닌가? 즉, 그 자본이나 나나 다 Work를 하는 중인 것 뿐이다. 대학로는 완성된 Art가 관객과 만나는 곳이다. 자본이 풍족하건 부족하건 간에 이 예술은 끊임없는 생명력을 가진다.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 복판을 걸어야겠다는 것이다. 작건 크건 공연을 만들면서 말이다.




김의숙은 요즘 김옥랑, 윤석화씨의 학력위조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참 불편하다고 했다. 그들의 잘잘못을 떠나서 20년 이상 대학로에서 자신들이 가진 것을 쏟아 부으며 살아온 이들이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인데 학력문제로 그런 그들의 역할을 너무 빨리 끝내게 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런지가 염려스럽다고 했다. 그런 눈으로 김의숙은 공연을 읽고, 대학로를 본다. 머리에서는 쉼 없이 새 공연과 꽉 채워진 객석에 대한 생각을 한다. 희곡,배우,관객. 연극의 3요소 중 관객을 자신의 화두로 삼은 프로듀서 김의숙. 그녀는 다시 자신이 제작한 공연인 <유쾌한 거래>가 공연되고 있는 대학로 ‘쇼틱씨어터’ 로 몸을 돌렸다. 어느새 비는 그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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