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인터뷰] 다큐에 인생을 던진 故 이성규 감독
[추모인터뷰] 다큐에 인생을 던진 故 이성규 감독
  • 김두호
  • 승인 201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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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루하거든 인도로 가라"

다큐멘터리 제작 겸 감독으로 집념과 열정의 생애를 보내온 이성규 감독이 13일 오전 2시쯤 숨을 거뒀다. 故 이성규 감독은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 후반 작업 도중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최근 병세가 악화돼 춘천의 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이성규 감독은 1963년 춘천에서 태어나, KBS춘천방송총국에서 라디오 구성작가로 방송을 시작했으며 이후 다큐멘터리 전문 프리랜서 PD로 활동했다. 2011년에는 1999년부터 2009년에 걸쳐 10여년 만에 완성해낸 영화 ‘오래된 인력거’를 공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고인의 신작 ‘시바, 인생을 던져’는 인도에서 벌어지는 4인 남녀의 좌충우돌 인도 방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1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인터뷰365에서는 지난 2012년 1월 이성규 감독과 '오래된 인력거'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당시 인터뷰를 다시 옮긴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김두호】서울지역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아가며 영화 관객들의 발길을 꾸준히 모으고 있다. 프리랜스로 TV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이성규 감독(49)이 10여년을 두고 인도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무대가 낯선 인도 땅이고 두 주인공도 그곳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현지 인력거꾼이다.

스스로 방문횟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인도를 드나들며 담아낸 이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는 우리에게 구한말에 찍은 빛바랜 사진 속의 골동품으로 떠오르는 도구지만 인도에서는 아직도 편리한 단거리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작품에서 인간 나귀로 살아가는 인력거꾼의 일상이 현실과 꿈의 틈에서 음울하게 진행되면서 비록 이방인이지만 저층 인간의 척박한 삶은 어디서나 땀과 눈물에 젖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살아있는 인력거꾼의 인간 보고서 같은 다큐멘터리이다.

이성규 감독은 자신을 소개하는 첫머리에 ‘나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입니다’였다. 태어나면서 불치의 간질과 기관지천식의 병치레를 안고 성장했고, 중증 허리 디스크는 수술을 받았지만 카메라를 들지 못하는 체력으로 떨어졌는가 하면, 간경화, 신부전증에 치아는 모두 틀니를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드러눕지 않고 20여년을 TV리포터, TV 다큐프로 연출, 90년대엔 르완다 소말리아 등지의 내전 현장 기록물 취재활동을 했고, 1999년부터 프리랜스로 자신의 다큐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자신이 ‘휴먼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그는 안동 예안이씨 충효가문의 종손 이준교 씨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 <종가>를 찍다가 인터뷰365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10년간 일과 삶의 두 바퀴를 굴려 만들어 낸 자신의 <오래된 인력거>를 한사람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간절한 심경을 읽게 했다.

인도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현장 모습


<오래된 인력거>를 10년간 찍었다는 얘기를 알고 있다. 엄청난 분량일 텐데 도대체 몇 차례나 인도를 방문한 건가?
찍은 분량을 시간으로 보면 2만분(分)이 넘는다. 적어두지 않았지만 1999년부터 약 60회쯤 인도 캘커타(인도의 舊都로 현지 명칭은 콜카타)를 찾아갔다. 1년 이상 머물 때도 있었다.

그 많은 분량을 어떻게 한편의 영화로 편집을 했는지 상상이 미치지 않는다.
드라마적인 요소를 추려 전달 가능한 영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보고 겪은 현장 이야기이기 때문에 극적인 요소를 추려내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다큐 소재로 왜 하필 인력거인가?
주인공인 인력거꾼 샬림(52)을 만나면서 비롯됐다. 1990년대부터 TV 다큐를 찍기 위해 해외를 드나들다가 나의 연출 스태프인 이승준 감독과 체류비용이 적게 드는 인도에서 자유롭게 다양한 다큐를 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테레사수녀원의 자원봉사자들의 일상을 찍으려다가 카스트제도의 피해자들을 다룬 <보이지 않는 전쟁>을 만들었고 이어서 인도에서 13편의 다큐를 만들었다. 그 작업과정에 샬림을 만났다. <오래된 인력거>에는 이슬람 신도인 샬림과 함께 힌두교도인 마즈노(20)라는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10년 넘게 인도를 오가며 촬영 활동을 하는 데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정부의 지원과 민간투자로 재원을 조달했다.

촬영중 한낮 더위를 이기지 못해 시원하게 등목을 하는 이 감독

<오래된 인력거>는 대표적인 국제 다큐영화제인 암스테르담영화제 경쟁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캐나다 핫독스영화제에도 초청받아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주인공 샬림은 어떤 인물인가?
7명의 자녀를 둔 하층인생이다. 인력거를 끌어 돈을 모으면 삼륜오토바이를 사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15년 동안 뛰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나와 10여 년간 사귄 형제나 다를 게 없지만, 촬영 막바지에 카메라를 거부하기도 했다. 비극적인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나 샬림과의 오랜 우정으로 이 문제는 바로 해결할 수 있었다.

마즈노는?
그는 내가 몇 차례 방문한 비하르 시골 출신의 젊은 인력거꾼이다. 그를 2009년 캘커타에서 만났을 때, 처음엔 서로를 기억할 수 없었는데, 촬영 후반부쯤 1999년 나에게 과자를 얻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촬영이 급진전됐다. 그는 입이 무거워 말을 걸려면 취중에야 가능했다. 카스트 전쟁 때 아버지가 지주에게 살해당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인력거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가진 교통수단인가?
이동반경이 주로 500m인데 2km까지 갈 때도 있다. 단골 이용자를 상대로 움직이는 인력거가 많다. 보통 부녀자와 노인층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중노동이지만 노인 인력거꾼들이 많다.

<오래된 인력거>에서 이외수 작가를 내레이터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작품의 성격에 가장 적절한 분 같았다. 인연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윤락가 부근에서 친구들과 자주 놀았는데 우리를 불러모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분이 이외수 작가였다.

그곳이 어디인가?
고향 춘천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병골이었다. 태어나면서 간질과 기관지 천식을 앓아 아버지는 넉넉지 않은 재산을 아들의 치료뒷바라지에 많이 쏟아 부었다. 알고 보면 오래전 별세하셨지만 아버지가 인간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었다.

어떤 점에서?
밀양의 부잣집 자손인데 할아버지가 만주 독립운동 길에서 아버질 낳았다고 들었다. 귀국 후 아버지 형제 중에는 운명이 엇갈려 빨치산도 있고 토벌국군도 있었다. 인쇄소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용사로 돌아와 다시 중동의 노동자로 다녀오셨다. 시대의 변혁기를 고루 온 몸으로 체험하신 분인데 춘천에서 아시아극장 매점을 운영하게 되어 나는 어릴 때부터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인도인이 다 된 듯, 직접 인력거를 끌고 있는 이 감독


카메라를 손에 잡게 된 유래를 알 것 같다.
사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당시 극장에서 서영춘, 하춘화 쇼도 보았고 <노인과 바다> <벤허> <맨발의 청춘> 등 영화는 닥치는 대로 보았다. 놀이터가 영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나의 치료비로 인해 매점을 팔고 노동을 시작했고 어머니는 작은 식당을 운영했지만 가난했다. 나도 아이스케이크 통을 메고 행상할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대신 가리봉동 볼펜 조립 공장에서 일했고 신문배달도 했다.

그럼 중학교까지만 다닌 건가?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끝내고 대학에 진학한 것이 22살 때였다. 뒤늦게 각오를 하고 공부를 계속했다. 한림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시절에는 연극배우로 춘천 지역극단에서 활동했다. 클래식 음악프로의 작가로 지방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 졸업 후 방송국에서 작가로 근무하고 프리랜스 프로듀서로도 활동했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뛰기 시작한 것도 방송국 일의 연장선에서 발전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1997년 프로듀서로 직접 촬영까지 하기 시작했다. 프리랜스로 활동해 주로 해외 출장 작품이 많았다. 소말리아 등 분쟁 지역을 찾아가 목숨 걸고 카메라를 돌린 작품도 많다. 인도는 워낙 많이 방문해 덕분에 힌디(힌두어)를 익혀 이젠 편하게 현지 주민들과도 소통이 된다. 한국인도학회의 명예회원으로 대접 받을 정도로 반(半)인도인이 됐다.

<워낭소리> <울지마 톤즈> 등 다큐 영화가 영화관 관객들을 모아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다큐 작가로 그 작품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극영화 이상의 호평을 듣기 위해서는 다큐도 극영화 못지않은 감동이 따라야 한다.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은 개인적으로 아주 절친한 사이다. 다큐를 너무 드라마적으로 구성하면 다큐 연출의 정도가 아니라는 비판도 따르지만 돈을 받고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드라마적인 요소를 부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큐 촬영은 준비된 콘티에 따라 찍는 극영화와 달리 힘든 과정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
참으로 황당하고 지루한 시간을 수없이 반복한다. 예기치 않은 돌발 사건이 터지기도 하고 상상했던 장면을 담기 위해 며칠을 뛰어다니고 기다릴 때도 많다. 다큐 촬영현장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인력거꾼과 함께 달리며 찍다가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주인공의 표정이 바뀌면 그의 눈치를 봐가며 카메라를 돌려야 한다.

정이 듬뿍 든 인도인 가족과의 기념촬영

지금은 건강해 보인다.
아니다. 간질은 어쩌다 발생하지만 2006년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의사로부터 카메라도 들면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래서 작품을 제작하지만 지금은 카메라 연출을 내가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간경화에 신부전증, 치아도 틀니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지방의 물은 석회가 많아 금방 이가 상한다. 장기간 생활하다가 이가 모두 삭아 없어졌다.

가족은?
40살에 늦장가를 갔다. 5살짜리와 11개월 된 딸이 있다. 아내와 만난 것도 인도였다. 다큐를 찍을 때 여행 온 아내를 우연히 만났고 귀국 후 다시 우연히 재회한 것이 인연이 됐다.

한마디로 인도는 어떤 나라인가?
인간의 숨결이 느껴지는 나라이다. 온갖 형태의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움직이고 노출 된 곳이지만 물질만능의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인간 삶의 원형질을 만나는 나라다. 이런 이야길 자주 한다. “삶이 지루한가요? 심심한가요? 혹은 우울한가요? 그럼 당신은 인도로 가셔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겪을 10년 동안의 인생극장을 인도에선 단 한 달 동안 겪게 됩니다. 심심할 틈도 없고, 지루할 틈도 없으며, 우울할 틈마저 없답니다. 인도는 여행자에게 압축형 인생극장을 제공하거든요.”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김두호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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