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이겨내고 알코올 중독자 치유하는 허근 신부
알코올 중독 이겨내고 알코올 중독자 치유하는 허근 신부
  • 김희준
  • 승인 200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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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에서 9년째 단주 모임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언제 한잔 하자. 남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인사말이다.

하지만 술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세 병이 되어 마침내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될 정도가 되면 문제가 커진다.

술을 즐겨 마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 자체를 입에 담기 싫어한다. 자신은 술을 즐길 뿐 결코 중독은 되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허근(58) 신부 역시 그랬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던 술이 그를 삼켜, 술에 중독된 ‘문제 신부’로 추락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술독에 빠졌다가 일어난 자신의 아픔을 바탕으로 올해로 9년째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는 허 신부를 중림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근엄한 분위기일 거라 지레짐작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허 신부는 눈부터 시작한 웃음이 얼굴 전체로 환하게 꽃피고 말이 활달한 ‘명랑 신부님’이었다. 알코올 중독 문제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허 신부의 이런 모습에 한결 마음을 놓을 것 같았다.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단주 캠프는 어떤 것입니까.

단주 캠프라는 말을 하지만 실은 ‘피정’입니다. 가톨릭 용어죠. 뭐라 할까, 명상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네요.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단주를 하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모임이죠. 99년 10월부터 했으니 내년이면 만 10주년이 됩니다.


몇 명이나 이 모임에 나오고 있는지요.

가족까지 포함해서 15~20명 정도입니다. 중독자나 가족들을 상담하면서 심각한 경우에는 병원으로 인도하고 가벼운 경우나 퇴원 후 단주를 계속할 수 있도록 치유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오는 분들의 직업도 다양하겠습니다.

언론인, 대기업 임원도 있었고 주부 등 다양합니다. 얼마전 모 대기업 임원은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후 후원금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알코올 중독 증세만 아니면 정부 각료까지 되셨을 분도 있었습니다.



현재 국내 알코올 중독자 수는 몇 명이나 되는 걸로 파악하고 있나요.

정확하게 통계가 나온 것은 없지만 전체 인구의 10~20퍼센트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나라에서 볼 때 이 통계가 정확하게 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인지 통계 내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이라 의심해 봐야 합니까.

우선 열흘 이상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경우, 그리고 필름이 끊기는 경우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도 어떤 충격으로 연이어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의 가능성이 생기는 겁니다. 알코올 중독이란 음주량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코올 조정 능력을 상실하면 소량이라도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적당한 양에서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마셔서 끝내 문제를 일으킵니다. 일단 자신이 음주 조절 능력을 잃어버렸다면 알코올 중독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술에 의한 직․ 간접 질환과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이 하루 평균 12.3명이라 돼있다. 또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술 마시는 인구의 3분의1이 중독위험을 안고 있는 고도위험군이라 한다. 고도위험군이란 1회 평균 음주량이 소주 1병(여성인 경우 소주 5잔)을 넘어서는 경우를 말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알코올 중독자는 22%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한다.



아예 술맛이 딱 떨어지게 하는 약은 없습니까.

충동억제제가 있기는 합니다. 우리의 뇌는 술을 먹었을 때의 상태를 기억해두기 때문에 술이 조금이라도 입에 닿으면 술 마시고 싶은 욕구가 크게 증가합니다. 중독자일수록 강하죠. 충동억제제는 술 마시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것인데 술 생각뿐 아니라 다른 감정들도 무디게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술 끊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이걸 봐도 저걸 봐도 아무 느낌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의지로 끊어야죠.


술 마시고 실수를 하거나 곤혹스런 경험을 하면 다시는 술을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하는데 며칠 지나면 슬그머니 다시 먹는단 말입니다.

보통 술을 먹은 상태에서는 기분이 한껏 업 됐다가 다음날 아침 술이 깨면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우니까 다시 술을 먹게 되는 겁니다. 술 먹는 습관이란 게 무섭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기피하던 사람들도 점차 다시 병원에 들어가면 되지 하고 실컷 술 먹고 스스로 병원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노숙자와 같은 현상이죠. 처음에 노숙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무겁겠습니까. 사람들 눈치도 보이고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길바닥에 앉아 술도 먹고 남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누워 자기도 하는 겁니다. 그 이치와 같지요.


사목센터의 상담 사례들로는 어떤 경우가 있었습니까.

알코올 중독 남편을 견디다 못한 어떤 부인은 제게 와서 이혼서류를 내보이며 못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이건 병이다. 병인데 치료를 해준 적이 있느냐, 치료를 한번 해보고 결정해라, 지금 당장 이혼한다고 뭐 그리 달라질 게 있느냐, 3개월만 참아달라. 그래서 남편의 중독 증세를 고치고 계속 살게 됐지요. 어떤 사람은 치료를 받고 나왔는데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자 그 근처에서 한잔을 먹다가 아차 해서 저희한테 연락을 했어요. 우리 직원이 나가서 함께 얘기를 하고 이후에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해 원상회복했죠. 11년 동안 단주에 성공했던 어떤 분은 부친이 돌아가시자 문상을 받는 자리에서 잠깐 술을 마셨대요. 인사차 마신 거지 폭음도 안한 거예요. 하지만 다시 술을 입에 대게 됐고 예전의 알코올 중독 상태로 되돌아가는 데는 3개월밖에 안걸렸습니다. 11년 동안의 노력이 단 3개월 만에 무너진 거죠.


말씀하시는 게 스스럼없어 상담하러 오는 분들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하하. 제가 겪었던 일이니까 오히려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동변상련이죠.



쭙기가 좀 뭣했는데, 운을 떼시니 여쭙겠습니다. 신부님께서도 심한 알코올 중독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마 사제가 되기까지 엄격한 규율을 지키다가 서품을 받고 나서 자유로워진 탓이 클 겁니다. 사제가 되기 위한 수련은 매우 엄격합니다. 사관학교 같죠. 세 번만 잘못을 저지르면 바로 쫓겨나게 됩니다. 80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82년 해병대 군종 신부를 할 때 어울려서 많이 마셨습니다. 심할 때는 세 명이서 소주 한 짝을 마신 적도 있었습니다. 3년 군 복무 마칠 때는 음주 습관 굳어 버렸죠. 제대 후 성당을 맡게 됐을 때 저녁 시간이 많이 남게 되자 처음에는 신자들과 저녁을 하면서 반주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제가 신자들에게 전화를 하더군요. 저녁을 하자고. 그러면서 술이 늘어갔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8병 맥주 24병을 비워냈습니다. 해장술도 마셨죠. 아침미사를 마치고 해장술을 마셨는데 문득 창 밖을 보니 해가 지고 있던 적도 있습니다.


실수도 많이 하셨겠습니다.

한번은 신자들과 3차까지 술을 마시고는 헤어져서 혼자 성당으로 돌아오는데,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를 밤새 헤맨 적이 있습니다. 성당에 가려면 지하도를 건너야 했는데, 술에 취한 탓에 지하도 안에서 성당으로 나가는 방향을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수없이 방황을 하다가 겨우 성당으로 가는 출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아침해가 떠있더군요. 그뿐이 아니었어요. 술 마시고 신자들과 싸워 신자가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해 아침 미사를 보좌신부가 대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일어나지도 못해 아예 미사를 집전하지 못하고 큰 대자로 뻗어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술에서 깨어나자마자 어떤 첫 생각이 드셨나요.

가장 괴로운 건 아침에 눈을 뜨면,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지난 밤에 무슨 일인가 안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 떠오를 때입니다. 그로 인한 수치심과 자괴감. 이를 잊기 위해 다시 술 마시는 겁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도 받으셨지요.

96년 제가 있던 난곡동 성당 근처 버스정류장에 음식점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그 집에 가서 음식을 시키고는 나오기도 전에 소주 2병을 먹곤 했습니다. 보다 못한 음식점 주인이 고기 한 점을 구워 들고는 이거 한 점만 드시고 술 드시면 우리 집에 있는 술 다 드리겠다고 애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 몸무게가 46킬로그램밖에 안나갔어요. 보다못한 가톨릭 서울교구의 김옥균 주교께서 그러다 죽는다시며 어머니와 함께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늘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다.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 했지만 사실은 그러지 못했죠. 결국 주교님과 어머니의 설득을 따르기로 했고 주교님이 서울에서는 치료가 안된다며 전남 광주의 성요한병원에 입원하라셨습니다.


허 신부는 친가로 7대, 외가로 6대가 천주교를 믿은 집안으로 성직자와 수도자가 여러 명 있다. 초등학교 시절 옹기 장사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매일 아침 미사에 참석하던 허 신부는 자연스럽게 신부에의 꿈을 키웠고 소신학교, 대신학교를 거쳐 198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5남매 가운데 허 신부와 동생 두 명이 함께 사제의 길을 걷고 있다. 신학교 시절 엄격한 규율 탓에 술을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허 신부는 군종 신부 시절 음주 습관에 길들여진 후 20년 가까이 술독에 빠져 지냈다. 결국 허 신부는 성요한병원에서 ‘중대한 위기의 알코올 중독자’라는 소견을 받고 페쇄병동에 입원했다. 입원 초기 허 신부는 자신이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고, 4단계에 이르는 치료 기간 동안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감금생활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했고 술 속에 감추려 했던 자신의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회복단계에 이르렀을 때 허 신부는 주교님께 편지를 해 퇴원 후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해 죽을 때까지 사목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98년 봄에 입원해 1년 후 여름에 퇴원한 허 신부는 동생이 본당 신부로 있는 대화동 성당에 머물면서 매주 광주의 병원으로 통원 치료를 하는 한편으로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 건립을 추진한다. 그리고 1999년 종교계 최초로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를 설립한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허 신부가 책장에서 증서 같은 것을 꺼내 편다. 단주증서였다.


신부님 성함으로 돼있네요.

제 겁니다. 한 해 동안 단주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저도 매년 이걸 받습니다.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신부님의 알코올 중독 병력 때문에 단주 모임이 훨씬 격의없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알코올 중독이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그것도 성직자가…. 하지만 단주 모임에 온 사람들에게 저도 중독자였고 그들의 고통을 잘 안다고 말을 건네면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 같고 마음도 쉽게 여는 것 같습니다. 아,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벤처 기업 사장이 바이어와의 잦은 술자리 끝에 중독 증세를 보여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센터에 왔습니다. 술에 취한 채 슬리퍼를 끌고 나타난 그 사람이 저를 보자 대뜸 험한 욕을 해대는 겁니다. 알고 보니 15년 전 제가 그분 할머니의 장례미사를 집전했는데 그때 제가 술을 먹고 냄새를 풀풀 풍기며 한 겁니다. 저는 그 유족들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그 사람은 저를 기억하고 있던 거죠. 저한테 “술에 취한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는데 할머니가 천국에 가실 수 있겠어?”라고 고함을 치고 욕을 하더군요. 아차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15년 전 저는 중독자였고 당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함께 치료를 해보자고 설득을 했습니다. 결국 병원으로 갔는데 병원 가서도 처음에는 신부에게 사기 당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치료 마치고 다시 센터에 와서 단주 모임에 참여했고 저와도 친해졌습니다.


신부님과 알코올 중독 치료, 잘 안맞는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와서 보니 그 선입견이 틀린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를 시작한 것도 외국에서 선교차 오신 분들이었어요. 1990년 외국 신부 두 분이 국내에서 알코올 중독에 걸렸는데 자국에 가서 치료를 하고 돌아온 후 알코올 중독 치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상계동 성당에서부터 단주 모임을 시작된 겁니다.


앞으로도 센터 운영을 계속하시겠죠.

제 힘이 다할 때까지 하겠습니다. 이 일은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치료하면서 저 자신을 치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 외국에서는 2주 이상 입원을 하지 않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금단증상 등은 대개 2주 동안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더 문제죠. 센터에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제 뒤를 이어 이 일을 맡아줄 후배 사목도 키워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부님, 술을 잘 먹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자기 주량만큼 먹는 거죠. 한번 중독은 영원한 중독이 되기 싶습니다. 술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나는 술을 좋아하지 중독은 아니다’는 자기 과신이 문제입니다.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말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변명입니다.



허 신부는 시집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고백록 <나는 알코올 중독자> 등의 책도 썼다. 책 속에서 허 신부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여러 진단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음주 습관이 있다면 음주 조절 능력을 상실했다는 경고라고 쓰고 있다.


-조금만 마시고 끝내려고 마음 먹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나 기억을 잃을 정도로 마신다.

-더이상 술을 마시면 위태롭다, 해고된다, 이혼 당한다 등의 문책을 들어도 술을 계속 마신다.

-술이 깼을 때 초조감, 손 떨림, 불면, 식은 땀 등의 증상을 진정시키거나 예방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며칠이고 식사도 거른 채 계속 마시다가 몸이 술을 받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야 겨우 멈춘다. 연속 음주를 한 후에 한동안 술을 끊었다가 다시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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