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촌에서 17억 장학기금 조성한 농민 강원모
벽촌에서 17억 장학기금 조성한 농민 강원모
  • 김철
  • 승인 20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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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역사 지닌 고향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 / 김철



[인터뷰365 김철] 조상 대대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가난한 시골에서 장학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30여 년 전 몇 백만 원으로 시작한 장학금이 현재 무려 17억여 원의 기금으로 불어났다. 농촌에서 꿈도 꾸기 힘든 거액이다. 장학기금이 쌓이면서 정식으로 ‘중동장학회’라는 재단법인까지 설립되었다. 외부의 도움 없이 벽촌에서 자력으로 이루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그 중심에는 고향을 지키며 향토 사랑이 남다른 한 농민의 집념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인공은 상주시 중동면 죽암리 강원모(74) 씨다. 그는 여기에 만족치 않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장학회도 별도로 만들었다. 한 개도 힘든 판에 두 개의 장학회를 발족시킨 보람 인생이다. 지금은 평범한 농민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이력은 간단치 않다.

농사를 지으며 고향 면사무소에서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일한 그는 정년퇴직 후 고향 면단위 농협조합장을 두 차례나 맡고 시의원으로 상주시의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지난해는 경북도(도지사 김관용)가 선정하는 ‘자랑스런 도민상’에 뽑혀 상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결실은 고향을 위해 헌신한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에 힘입은 결과이다.

그의 목표는 장학재단의 기금을 17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늘리는 것이다. 면 지역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초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외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지역출신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장학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농사일과 함께 상주시의회 의정동우회장과 범시민연합 상임고문을 맡으면서 장학기금의 확충을 위해 바쁘게 보내고 있는 그를 자택에서 만났다.


벽촌에서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떤 계기로 장학회를 결성하게 됐는지요.

첫 출발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고하신 전 안동복주여중 김주경 교장선생님께서 77년에 고향인 중동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사재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쾌척하며 중동장학회를 결성한 것이 모태가 되었지요. 지역유지인 박은석 씨와 저도 동참하면서 장학회가 조직적으로 출범한 것입니다. 현재 송아지 한 마리 값이 140여만 원 정도인데 당시는 10만원도 안 될 때였어요. 화폐가치로 따진다면 당시의 100만 원은 엄청난 액수였지요. 처음에는 셋이서 몇 백만 원으로 시작했습니다.



30년 전이라면 옛날이군요. 당시 학생들의 교육환경은 지금과 달리 열악할 때였지요. 장학금이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겠습니다.

그럼요. 학생들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납금도 제때 납부하기가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적이 우수하면서도 가난한 학생들의 집안에 10만원 상당의 송아지 한 마리를 구입해서 주려고 했어요. 송아지를 길러 학자금 마련에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농촌에서 소는 재산 형성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런데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당장 현금이 필요한 때문이지 송아지를 마다하고 현금으로 달라는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에피소드가 되지만 당시는 그만큼 가정형편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시겠군요.

그렇습니다. 당시만 해도 번듯한 규모였던 중동중학교가 올해부터 폐교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입학하는 학생들이 있어야 학교 문을 닫지 않지요. 지금 농촌에서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로한 분들만 농사를 짓고 있어요. 30여 년 전에 분교까지 합쳐 3곳에 있던 초등학교도 이제는 중동초등학교 한 곳만 남았습니다. 그마저 학생 수는 30여 명에 지나지 않아요.


몇 백만 원에 불과한 장학기금을 17억 원으로 늘린 비결이 궁금합니다.

처음 10년간은 창립멤버들이 사재를 털어 장학회를 어렵게 운영했습니다. 그런 뒤 89년부터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0년 만에 2억 원의 기금이 확보되어 재단법인 설립요건을 갖추고 정식으로 중동장학회라는 법인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우리 마을에 상주시의 위생처리장을 유치하면서 인센티브로 받은 20억 원 가운데 15억 원을 장학재단에 출연하면서 17억 원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기금을 앞으로 20억 원으로 확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중동면은 800여 가구에 주민들이라고 해 봐야 1천900여 명에 지나지 않을 만큼 작은 규모입니다. 중동장학회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마을 주민들과 면민들의 후원과 지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작은 면 단위에 이만한 규모의 장학재단을 운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인센티브를 장학재단에 출연하려 했을 때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던가요.

당연히 반대했지요. 위생처리장을 우리 마을에 유치한 이상 인센티브를 우리 마을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왜 엉뚱한 곳에 사용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의 간곡한 설득을 이해해 주시더군요. 대신 우리 마을을 위해 별도로 반천장학회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연간 900만원의 이자수익이 나오는데 이걸로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하고 경로잔치 같은 것도 열어 공동경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에 대한 주민들의 신임은 남달리 강하다. 그가 앞장서는 일이라면 주민들이 믿고 따른다. 위생처리장을 마을로 유치할 때도 쓰레기소각장인 줄 알고 처음에는 주민들이 거센 반대가 있었으나 쓰레기를 소각하고 남은 덩어리를 보존하는 것에 불과할 뿐 환경오염과 무관하다는 그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장학재단에 출연하자고 제안했을 때도 마을주민들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다가도 끝내는 그의 의사를 따랐다. 그 이면에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친절하면서 지역 일을 위해서라면 발 벗고 나서는 그의 열정이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재단설립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기 위해 2억 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기까지 그는 자신의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넣었으면서도 애써 숨기려 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장학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상당히 많겠군요.

17억 원의 장학기금에서 나오는 이자수익이 연간 7천600여만 원입니다. 현재까지 540여 명의 향토출신 초중고대학생들에게 모두 1억5천800여만 원의 장학금이 지급되었습니다. 현재 우리 면 출신의 학생들은 장학금 신청을 할 경우 어디에서 공부를 하든 상관없이 골고루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내에 학교가 초등학교 한 곳에 불과한 점을 고려해 초등학생들에게는 무조건 장학금을 주도록 했어요. 유일하게 남은 초등학교를 보존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전교생이 취미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도록 악기도 기증했고 골프 운동화도 구입해 주었습니다. 중학교가 폐교가 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다른 지역에서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당국에서 교통비로 연간 1인당 300여만 원을 지급하더군요. 우리 면에서 초등학교를 나오면 여러 가지로 혜택이 많은 셈이지요.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에서 우리 면으로 전입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중동장학회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도 전통문화 사업으로 효부상과 장한 어머니상 등을 제정, 시상하고 매년 면민체육대회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불우이웃돕기 사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중동장학회 창립재단 이사장을 맡은 뒤 지금은 후진들에게 물려주고 이사로 있다. 축산인으로도 성공한 그는 중동장학회를 중심으로 살기 좋은 향토를 가꾸는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떠나는 고향이 아니라 돌아오는 고향을 만드는 것이 장학회의 목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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