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백년의 맛을 빚어내는 궁중음식연구가 한복려
조선왕조 5백년의 맛을 빚어내는 궁중음식연구가 한복려
  • 유성희
  • 승인 200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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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식은 입맛보다 몸을 위한 음식”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 한희순 상궁은 열세 살의 나이에 덕수궁 주방의 나인이 되었다. 순종의 계비 윤씨가 가장 아꼈을 정도로 궁중음식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1971년 조선왕조 궁중음식이 중요무형문화재 제 38호로 지정되면서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궁중음식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황혜성 선생(작고)은 1944년부터 30년간 창덕궁 낙선재 소주방(燒酒房)에서 한상궁으로부터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1972년 스승이 별세하자 뒤를 이어 제2대 기능보유자로 지정된다.

현재 궁중음식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한복려 원장은 황혜성 선생의 딸이다. 그 역시 어머니로부터 궁중음식을 전수받았고, 지금으로부터 1년 전 궁중음식연구원 정길자 교수와 함께 제3대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

여기까지가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전승계보이다. 창덕궁 옆에 위치한 궁중음식연구원에는 현재 두 기능보유자로부터 궁중음식을 계승받으려는 이들이 모여 꾸준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한복려 원장을 만나기 위해 궁중음식연구원에 들어서자 기와를 타고 내려온 초가을 햇살이 마당 한 구석 장독 위에서 반짝였다. 마당 안쪽으로 몇 걸음을 옮기자 몇 해는 묵었을 구수한 장 내음이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질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보유자로 지정된 지 1년이 되셨죠.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함께 해오던 일이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이다 보니 한국의 대표음식을 이야기 해줄 수 있다고 여겨 많은 분들이 찾아주고 계시죠. 더불어 외국에 나가서 우리나라 음식문화를 알리는 일을 더욱 활발하게 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국빈들에게 궁중음식을 선보이실 기회도 많으실텐데요.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음식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가장 반응이 좋았다라기보다는 이제껏 알고 있던 한국음식이 아니라고 무척 좋아해주셨습니다. 국가정상회담에 음식자문으로 종종 참여하게 되는데 외국인에게 음식을 대접할 경우에는 한상 가득 차린 음식보다는 순차적으로 나올 수 있는 메뉴를 정하는데요. 입맛 돋우는 가벼운 생선요리로 시작해서 고기요리, 주식인 면요리와 밥, 후식까지 골고루 시간대에 맞게 잡수시도록 마련을 하지요.

 

이제껏 생각하지 않았던 한국음식이라면...

외국에서 생각하기에 한국음식이라고 하면 너무 양념이 많아 진하거나 고추를 많이 쓴 맵고 강한 맛을 예상합니다. 하지만 궁중음식이라는 것은 재료의 맛과 색을 살려서 그 맛이 슴슴하면서도 영양과 몸을 생각하는 음식이죠.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새로우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음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에 특별한 것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음식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배워지는 게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덕분에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음식에 젖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또 재료를 생산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늘 귀하게 여겨야 된다고 하셨어요. 음식을 다룰 때는 정말 공손하게, 먹는 사람을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어머니는 제게 음식을 통해서 겸손함을 일러주신 분입니다.

 

 

한복려 원장은 궁중의 식문화를 다시 복원하는 국가적인 사업부터 문헌으로만 전해지는 옛날 음식을 현대음식으로 풀이하며 전 세계적으로 궁중음식을 알리기 위해 일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조리서 <산가요록(山家要錄)>을 5년 걸쳐 <다시 보고 배우는 산가요록>으로 발췌해 풀어냈다. <산가요록>은 세종 때 어의 전순의가 1450년께 집필한 궁중 생활백서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음식 전문서다. 대부분 한문이나 한글 고어로 되어있는 어려운 글을 현대인이 알기 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이 외에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의 메뉴개발과 지원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MBC드라마 <대장금>의 요리자문으로 유명세를 치른 적도 있다.

 

 

어머니의 곁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던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음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조선왕조 궁중음식이 1971년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면서부터입니다. 학창시절에는 어머니 조수역할을 하다가 71년부터 기능전수를 위해 조교를 하기 시작하였죠. 어머니께서는 ‘너는 나의 제자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곁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궁중음식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데요.

궁중음식이라고 해서 꼭 궁중에서만 먹는 것은 아닙니다. 궁중음식에는 복잡하고 기교를 부린 음식도 있지만 조리법이 단순한 음식도 많습니다. 오이나 호박, 두부 같은 일상음식이 궁중음식의 주재료로 쓰인다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죠. 궁중음식이 왜 그 나라의 최고의 음식인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최상의 재료로 올곧이 음식을 연구해 온 전문가가 정성들여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궁중음식연구원은 옛날 궁중의 훌륭했던 식문화를 정립해나가는 곳입니다. 단순히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을 뛰어넘어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음식을 기능 문화재로 지정한 유일국가인 만큼 큰 책임을 느낍니다.

 

 

 

 

 

원장님도 음식을 만들면서 실수를 할 때가 있나요?

실수도 하죠.(웃음) 음식을 만드는 것은 기분에 따라서, 간을 맞추는 게 달라질 수 있어요. 기분이 좋아야 음식 맛도 좋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만들어주는 음식만큼 맛있는 게 없죠. 저도 가끔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짜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다보니 손이 무뎌져서 재료의 크기가 커진다든지 하는 실수도 종종 있어요.

 

자제분들은 아무래도 인스턴트로 대표되는 요즘 입맛에 길들여져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대처하셨을지 궁금합니다.

그렇지요. 제가 음식을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관여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만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나가서도 먹을 때가 많잖아요. 아무래도 집의 음식보다는 바깥 음식이 입에 더 남고 길들여지게 되지요. 그래서 웬만하면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에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라면이나 햄버거를 어쩔 수 없이 먹을 때도 있잖아요. 저도 할 수 없이 먹어야 할 때가 있었고, 또 그런 음식이 맛있을 때가 있어요. (웃음)

 

원장님도 라면을 드신다고요?

그럼요. 사실 조미료가 들어가는 음식이 입에서는 굉장히 당깁니다. 이런 음식은 몸에서 거북스러운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인스턴트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단순한 관념보다는 ‘이 음식이 나한테 좋지 않구나’하고 몸에서 스스로 느껴야 먹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인데요. 원장님이 생각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음식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을 먹는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정이 음식을 통해 전해진다고 하죠.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면서 만들어주는 음식이 진정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음식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면 먹는 것도 아무거나 먹게 되잖아요.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음식도 잘 알아서 먹는 법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죠.(웃음) 그렇지 않나요? 배고플 때 반찬 없이 먹는 밥 한 그릇이 가장 맛있을 때가 있어요. 정말 내 눈앞에 놓여진 음식이 나를 위한 정성의 음식이라고 한다면 그것만큼 맛있는 것도 없을 테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간을 제대로 맞춘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일 것입니다. 간이라는 것은 짠 맛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와 사이를 채워주는 맛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어울러 지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간을 맞춘 음식이고 가장 맛있는 음식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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