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이상우 작가로 다시 서다
언론인 이상우 작가로 다시 서다
  • 김희준
  • 승인 20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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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를 추리소설로 쓰는 것이 꿈”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정조대왕 이산>에 이어 최근 3부작으로 된 대하 역사소설 <대왕 세종>으로 출판계의 시선을 받고 있는 작가 이상우 씨를 만났다. 한자가 없는 가로쓰기 컬러신문시대를 해방 후 처음으로 연 언론인 출신이다. <일간스포츠> 사장을 역임하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 등을 창간하면서 스포츠 일간지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화려한 이력을 과거사로 묻어버리고 작가로 돌아간 그의 모습은 자유롭고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평생 신문을 만들면서도 추리소설을 쓰고 역사소설을 쓰는 한쪽의 펜도 놓지 않고 살았다. 발표한 장단편 소설이 100여편, 출간한 책만 50여권에 이른다. <악녀 두 번 살다>를 포함한 10여 권의 베스트셀러 중에 3편이 영화화 되기도 했다.

이제 그는 신문이야기보다 소설 이야기를 원했다. 아마도 만드는 신문마다 성공하던 그에게 신문시장의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은 마지막 신문 <굿데이>가 남긴 지난 몇 해 동안의 시련을 다시 떠올려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일들이 최근에 모두 정리되고 해소되었습니다. 모처럼 머리도 식힐 겸 해외를 다녀왔어요. 생각하면 나를 믿고 따르던 3백여 명의 마지막 <굿데이> 사우들에게 본의 아니게 고생을 시켜드린 점이 미안할 뿐이지요. 사실 개인적으로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시간이 됐습니다. 그러나 애석한 것은 신문은 성공했는데 경영에 실패한 것이었지요. 창간 다음해인 2002년 월드컵 때 특히 <굿데이>는 대단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월드컵조직위원회와 한국편집기자협회에서 공동 제정한 상 10개 가운데 5개를 <굿데이>가 차지할 정도로 새로운 편집과 콘텐츠를 인정받았습니다. 신문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요.

세 가지 정도로 요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선 신문광고시장이 크게 위축된 것, 무료신문이 생기면서 유가신문의 판매 및 광고시장이 동시에 흔들린 것, 그리고 경영이 어려울 때 나타나는 실속 없는 사람들에 의한 M&A의 실패입니다. 새로운 투자자를 잘못 선택한 점이 결정적인 불행이었습니다. 사원들은 눈부신 신문을 만들었는데 결국 경영에서 뒷받침을 못한 겁니다.

 

 

 

 

글 쓰는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추리소설로 시작하셨는데, 우리나라는 영국이나 유럽 등지에 비해 추리문학의 토양이 비옥하지 않습니다. 추리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기자 시절 필화사건으로 감방에 들어가 있는데 다른 재소자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부감방장으로 대우를 해주겠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특히 도둑들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괴도 루팡이나 셜록 홈즈 이야기를 죽 풀어놓았죠. 그런데 매일 밑천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더이상 부감방장 대접을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죠. 거기다가 약간 야한 것도 가미해서. 아주 호응이 좋았습니다. 나중에 감방에서 나온 다음 되새겨보니 그때 만들어냈던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겁니다. 이걸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잡지에 연재를 시작한 것이 추리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어떤 필화사건이었습니까.

대구 영남일보 견습기자 시절에 박정희 쿠데타 관련 기사를 썼는데, 그 일로 구속돼 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됐습니다. 사형을 구형받았죠. 처음에는 분노가 치솟다가 죽음을 각오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무죄로 석방되기는 했는데, 그때 경험으로 이후 절망스런 일 겪을 때마다 죽을 각오로 하니까 안되는 일이 없더군요.

 

구형이지만 사형이라는 말만 들어도 끔찍하군요. 가장 마음고생을 한 사건이겠습니다.

사실 마음의 고통이라면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시절 아내가 암으로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았을 때가 더 참담했습니다. 병원과 한방, 양방, 온갖 민간요법 그리고 해외에 암을 고쳤다는 치료제까지 구하러 다니며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아내 병상을 지켜야 했습니다. 집안을 거의 병원처럼 꾸며놓고 간호를 했습니다. 그 덕인지 얼마 못산다고 했지만 10년을 살다 갔습니다. 내 자신의 고통보다도 신음 속에 사는 아내의 고통을 내가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더 괴로웠습니다.

 

추리소설을 쓰다가 역사소설로 바꾼 이유는 무엇입니까.

원래 추리소설과 함께 역사소설도 썼지요. 첫 역사소설은 <신임꺽정전>이었는데 당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생각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로 추리소설을 써서 책도 100여권 냈는데 나이가 들면서 다시 역사소설에 관심이 깊어지게 됐습니다. 외국 작가들도 나이가 들면 점점 역사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역사소설을 쓰려면 자료 조사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연려실기술> 등을 정독했습니다. 앞으로 <왕조실록> 전체를 추리소설로 쓰는 것이 꿈입니다. 대원군에 이르기까지 추리적 기법으로 역사를 재해석하는 겁니다. 역사와 추리는 접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당쟁 등으로 얼룩졌고 특히 궁 안 등 밀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발표한 <수양대군 살인사건>이나 태조, 방원을 등장인물로 한 <북악에서 부는 바람> 등이 다 그 노력의 일부입니다.

 

얼마전에는 <정조대왕 이산>을, 그리고 최근에는 <대왕 세종>을 쓰셨습니다. <대왕 세종>은 드라마로도 방영중인데 특히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추신 건지요.

세종대왕을 한글을 창제한 문화군주로만 알고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사, 경제에 더 관심을 두었던 군주입니다. 요즘 중국과 문제가 되는 동북공정, 일본과의 독도 문제 등은 세종 시대를 연구하면 결론이 나오는 일들입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대마도를 정벌해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또 북방으로는 조선의 영토를 두만강에서 7백리 북쪽인 송화강까지라고 확신하고 영토 회복에 노력했습니다. 세종대왕의 또다른 업적인 한글 창제는 평등주의 때문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유교중심이던 당시 체제에서 불교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그 이유는 유교와는 달리 불교에서는 사람들이 평등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천민계급을 없애려 하다보니 우선 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야 했고 처음에는 그림으로 가르치다가 한자가 아닌 쉬운 글을 만들게 된 겁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고 있는 세종 모습과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드라마를 보니까 세자를 국본이라 부르던데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국본이라는 표현을 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문어체이고 실제로 부를 때는 세자나 동궁이 맞습니다. 또 양녕대군이 충녕대군(후일의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해 일부러 망나니짓을 한 것이 아니라 원래 파렴치한 짓을 많이 하며 평생을 산 것으로 실록에는 기록돼 있습니다. 청백리의 상징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이 뇌물 수수로 여러 차례 조사된 기록도 있고 장영실 또한 뇌물 혐의로 투옥됐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책에는 이처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 잘못 알려진 일들을 실록에 근거해 재조명했고 특히 대왕 세종의 업적보다는 인간 이도(李祹)의 인간적 고뇌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만인지상인 임금에게 어떤 인간적인 고뇌가 있었습니까.

일단 왕이 되자마자 장인 일가가 도륙을 당하게 됩니다. 장인은 사약을 받고 장모는 관청의 노예가 됩니다. 또 형인 양녕대군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도 부족해 아들인 임영대군도 똑같이 탈선을 저지릅니다. 형제와 아들들로 인해 사방에서 올라오는 탄핵을 막는 데 진저리를 칠 정도였습니다. 세종대왕은 성군으로 평가되고 있기는 하지만 재위 32년 동안 겪어야 했던 국가적, 가족적 고뇌가 극심했습니다.

 

 

 

 

역사적 기록이란 승자의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서 알게 된 것은 역사란 사실(事實)이 아니라 쓰는 자의 사실(史實)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실록을 정독하면서 알고 있던 상식과 다른 사실을 많이 발견했지만 또 한편으로 오류도 여럿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실록은 중립적 입장에서 기록되기는 하지만 사관이나 편찬 시기의 권력자들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종종 나타납니다. 실록은 당대가 아니라 후대 왕에 의해 편찬됩니다. 예를 들어 세종실록은 단종 때 완성됐지만 성종 대에 간행됩니다. 따라서 단종 때 편수관으로 임명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얼마전 뉴질랜드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책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추리소설인데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사건이 국내에까지 연결되는 겁니다. 당분간 힘이 닿는 대로 열심히 글을 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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