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잊고 제주서 사는 장선우 감독
영화 잊고 제주서 사는 장선우 감독
  • 김다인
  • 승인 200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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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성취 했습니다. 영화 생각 안나요”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장선우 감독이 사라졌다.

지난 2004년 영화 <귀여워>에서 박수무당 장수로 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이후 영화계에서 자취가 없다.

1986년 첫 영화 <서울예수>부터 시작해 <성공시대>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 영화> <거짓말> 등 장선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10편이다. 그 10편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화제가 되지 않은 영화가 없었다.

글 잘 쓰고 영화 잘 만들던, 199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던 비범한 감독이 이리 흔적도 없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나.

수소문해보니 장선우 감독은 바람부는 제주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도 3년 동안이나.

‘노가다’ 하느라 바쁘고 힘들어 죽겠다는(통역하면, 인터뷰 하기 싫어 죽겠다는) 장 감독을 기어이 인터뷰 테이블에 앉혔다.



언제부터 제주에 머물고 계신가요.

이번 7월19일이 3년 되는 날이에요.


중산간 쪽인가요 아니면 해안 쪽?

서귀포 바닷가요.


왜 제주입니까.

좋아했으니까요. 오래전부터….


제주 토박이분들과는 잘 어울리십니까.

여기 사람들과 넘 잘 어울려요. 불쌍해 보이는지 넘 잘해주구요. 남이 버린 집 고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80년쯤 된 오래된 제주식 집에서 살아요. 춥고 습하고 바람 불면 날아갈 거 같고…근데 좋아요.



제주산 소주 한라산은 즐겨 드십니까.

소주는 별로 안 좋아해요. 형편 따라 마시기는 하지만. 아, 증류소주 화요, 그건 디따 근사해요. 아들이 이번 생일에 두 박스 보내주어서 잘난 척하고 사람들하고 마셨어요. 나누어주기도 하고.


제주에서 가장 좋은 건 뭔가요.

바람도 좋고요, 산도, 들도, 바다도, 먹을거리도, 사람들도 다 좋아요. 공무원들이 좀 그렇기는 한데…그것도 괜찮아요. 이곳에 1000일 넘게 있으면서 한 번도 같은 바다를 본 적이 없어요. 매일 매일 바다가 달라요. 우리집에서 보는 바다를 저는 천개의 바다라고 부릅니다.


근데 왜 제주에 계십니까, 영화는 다시 안하실 작정이십니까.

여기에 온 건 소원성취한 거라니까요. 10년도 훨씬 전부터 언젠가는 서귀포에서 살리라 벼르고 있었거든요. 소원성취 했죠. 있어보니 더 좋아요. 영화 생각 안나요.


혹시 제주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하고 계신 건가요.

제 각시 말인가요? 여기서는 각시라고 부릅니다. 색시, 마누라를 뜻합니다. …고마운 여자가 옆에 함께 늘 있어요. 사랑하지요.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은 작가 박영한의 동명소설을 장선우 감독이 1990년에 영화로 만들었다. 서울 변두리에서 사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악다구니 같은 현실 속에서 재단사 박중훈은 최명길과 예사롭지 않은, 선한 사랑을 한다. 질펀하면서도 유쾌하고 유쾌하면서도 알싸한, 속살 다 내놓고 사는 사람들의 얘기다. 필자가 꼽는 장선우 감독 베스트 중 하나다.


2002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감독하고 2004년 <귀여워>에 출연한 이후 장 감독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공백기간을 이어주시죠.

<귀여워>에서 제 역할이 괜찮았어요. 거기서는 홀연히 사라지던데요. 부적 하나 남기고…그러면 좋죠. 저는 홀연히 못 사라져서 이렇게 (인터뷰365에게) 시달리고 있잖아요.



2002년 어느 신문에 보니까 ‘가장 브랜드 가치 높은 감독이 성냥불에 데였다’는 표현이 있던데, 정말 그런 겁니까.

무슨 소린지…(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표현으로 들었다)


그동안이 만약 방황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방황은 언제나 하는 건데요 뭐. 한 번도 방황을 멈춘 적은 없어요. 사춘기 이후로. 그런데 지금 멈출 것도 같아요. 조금 더 이러고 있으면…이곳에서 길을 찾았거든요. 이제 그 길을 가야지요…똑바로 곧장 못 가더라도 갑니다.


한때 장 감독은 영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열망의 대상이셨는데, 본인에게 영화는 무엇인지요.

밥이요. ㅎㅎ


영화계를 떠나 있으면서 가장 그리운 것은요.

………


요즘 영화를 혹 보셨는지요.

지금 생각나는 건 그거요, 여기서 본 거 가운데…음 <비열한 거리>, 조인성 나오는 거. 슬프던데. 그리고 <가족의 탄생>, 매우 유쾌했어요. 그리고 극장 가서 본 건데 <추격자>, 돈 아깝지는 않았어요.


제주도에서 교우하는 영화인들이 있습니까.

여기에는 없구요, 가끔 서울에서 내려오는 이들이 어쩌다 있는데…그때는 만사 제치고 마십니다.


얼마전 이장호 감독을 제주에서 만나셨다는데 무슨 얘기를 나누셨나요.

이거는 먹는 풀이다, 이거는 못 먹는 풀이다…뭐 그런 거요.



글(혹시 미래의 시나리오)을 쓰고 계십니까.

쓰다가 말다가…그래도 시나리오 하나 더 쓰게 될지 모르겠어요. 영화까지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언젠가는, 제주도에서 받은 거 너무 많으니까 하나 정도 뭔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글을 잘 쓰시니까, ‘장선우 감독에 관한 기사’를 짤막하게 하나 쓴다면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우리 뒷집에 술주정뱅이가 하나 사는데, 혼자서. 술 마시면 아무도 못 말립니다. 근데 저한테, 앞에 살면서도 상대를 안해주니까, 그럴 때가 있어요. ‘버러지보다 못한 놈‘…맞는 말이에요.


필부로 살아가면서 가장 좋은 건 무엇입니까.

필부? 필부의 반대말은? 사대부? 군자? 뭐지요? 암튼 필부란 말이 좋네요. 이곳에 사는 재미가 그거거든요. 별의별 사람들과 다 만나고 또 어울리게 되요. 참 사는 거 같기는 해요.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 카페를 할 생각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냥 얻어먹고 주어먹고…텃밭이 하나 있거든요, 한 50평 되는…사방 20미터? 거기에 50가지 정도 각종 먹거리부터 잡초까지 잘 자라요. 걱정없어요. 손님 접대하는 게 언제나 좀 문젠데 일종의 유흥비가 좀 딸려요. 놀던 가락은 있어서…그래서 집 가까이에 맘에 드는 빈 집이 하나 나왔길래 제 각시가 카페 열겠다고 해요. 별채죠, 손님도 재우고. 놀러 오세요. 그 대신 이제부터는 유료니까 돈 좀 가져오셔야 돼요. 첨에는 커피하고 샌드위치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제가 꼬드겼죠. 수입맥주랑 와인은 좀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지금은 화요, 그 소주 정도는…그렇게 꼬셔요. 아직 열지는 않았는데, 간판에는 물고기 한 마리 그려놨어요. 변시지 선생님이 그려주신 물고기요. …물고기 한 마리 걸릴 거예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지금 여기에…잘 있자. 잘 놀자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사람들이 또 욕할 테니까. 잘 있자!




선우 감독에게 물고기 그림을 그려준 변시지(邊時志‧ 82) 선생은 제주도 태생으로 제주의 자연색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황갈색 바탕에 새와 조랑말과 바람과 사람을 그리는 제주화로 유명하다. 변선생이 그려준 물고기를 간판으로 물고기 한 마리 걸릴 거라니, ‘오병이어(五餠二魚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였다는 기적)의 기적이 문득 생각났다.

장 감독은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집 옆 빈 집에 카페 차리는 일에 웃통을 벗어부치고 나서고 있다. 제주 햇살에 익숙해진 등이 건강하다. 카페를 열면 증류소주 값 들고 제주행 비행기를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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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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