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뽑던 아저씨들, 심장을 두드리다
‘이빨’ 뽑던 아저씨들, 심장을 두드리다
  • 김우성
  • 승인 20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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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밴드 28s(이빨스)와의 유쾌한 만남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 사진 정경미] 록밴드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일정한 공통분모를 가진다. 우선 등장인물들이 대체적으로 ‘밴드’하기 힘든 배경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리저리 치여 기운 빠진 아빠들이거나(즐거운 인생) 규정대로 움직여야 할 학생들(스쿨 오브 락),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성(性)적 소수자이기도 하다(헤드윅 앤 앵그리 인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록’의 역할이다. 주인공은 산소호흡기와도 같은 록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험난한 여정에 위안을 얻는다.



현직 치과의사들로 구성된 밴드 '28s(이하 이빨스)'에게 록이 그렇다. 그들은 하루 종일 가운을 입고 환자들을 진료한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음 처리된 연습실로 모여 용암처럼 록을 토해낸다.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신나는 ‘펑크록’이다.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그룹 <노브레인> <크라잉넛> 등의 음악을 생각하면 된다.



홍대와 압구정 등지에서 무대에 오른 것만도 100 여회 이상. 이미 1집 음반도 발표하였고 ‘타짱걸’ 최현경을 등장시켜 뮤직비디오까지 촬영했다. 최근에는 2집 발매를 앞두고 있다. 음악 자체도 그렇지만 단순한 취미활동이라 보기에 예사롭지 않은 활동반경이다. 7월 초에 있을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이빨스를 만나러 서울 신사동에 있는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세컨드 기타를 맡고 있는 김재홍(닉네임 어금니) 씨는 낮에 치료해줬던 환자에게 문제가 생겨 이날 연습에 참석할 수 없었다. 과연 치과의사 밴드라는 게 실감났다.




음악이 ‘장난’이 아니던데요. 큰 무대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어느 지점을 보고 가는 건지 궁금합니다.

보컬 백승엽)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일단 미국에서 공연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고요... (일동웃음) 특별히 큰 무대 작은 무대 가릴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빨스가 설 수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달려갈 생각이죠. 그리고 다들 나이들이 좀 있어서 큰 무대를 상상하며 두근거리고 그런 게 없어요. 긴장하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기 때문에. 하하.

퍼스트기타 이민재) 그동안 소년소녀가장 돕기 릴레이 공연을 해왔는데 앞으로도 할 수 있는 한 계속 하자는 목표가 있습니다.





연습은 주로 언제 하나요. 공연을 앞두고는 더 빈번하게 하겠지요?

승엽) 매주 수요일 밤 9시에 모이고요. 11시까지 연습하는 걸 원칙으로 해서 더 길어지기도 해요. 공연이 임박하면 일주일에 두어 번 모입니다.



음악을 들어보니 비트가 굉장히 빠르던데요. 열정적인 연주가 상상 되고 때로는 격한 무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령에서 오는 핸디캡은 없나요?

승엽) 오십견 같은 거? 하하. 일단 무대에서 조금만 뛰어다니면 다리에서 쥐가 나요.

민재) 특히 드럼이 상당히 빨라서 가장 고생합니다.

드러머 홍윤기) 그냥은 박자 맞추기도 힘들고 해서 메트로놈 들으면서 연습하거든요.

승엽) 홍윤기 씨의 팔뚝을 보세요. 바디빌딩 하시는데 그 힘으로 버티는 거예요. 역도도 하시고.. 까불면 다 들어 올려요. 하하.



이빨스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은 100% 자체생산으로 그들만의 기분(?)을 솔직 유쾌하게 담아냈다. 다분히 코믹한 노랫말부터가 그렇다. 치과의사로서의 직업적 비애부터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짝사랑을 노래하기도 한다. 구강보건 계몽도 빠질 수 없다.



사람들은 나만 보면 / 항상 이빨 얘기만 하려 해 / 충치 풍치 뻐드렁니 / 내가 이빨인 건지 이빨이 난지 / 이제는 이빨들 정말 벗어나고 싶어 / 입 냄새 떠나고 싶어 (1집 수록곡 ‘이빨쟁이’ 中)


키스하고 싶을 땐 이빨을 닦아 / 하루 종일 닦고 닦고 또 닦으면 / 제 까짓 게 안 닦일 리 없건만 / 사람들은 모두 제 아니 닦고서 / 못 생긴 이빨 탓만 해 (1집 수록곡 ‘키스하고 싶을 땐 이빨을 닦아’ 中)


하루 종일 멍하니 거울만 보고 있어 / 아직 단정한 머리 언제쯤 덥수룩해질 건지 / 한 달에 단 한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헤어디자이너에 대한 짝사랑을 노래한 2집 수록곡 ‘한달에 한번, 루씨’ 中)




포털에 개설된 그들의 팬 카페 회원은 60 여명.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소수 초관심’ 지지층들이다. 특히 재미난 노랫말 때문인지 예상과 달리 중고생 팬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사인해 달라고 찾아온 유소년 팬도 적지 않다는 말에 상상만으로 유쾌한 그림이 그려졌다. 현재 마무리 작업 중인 2집에서는 강렬한 사운드로 가득 채워졌던 이전과 달리 좀 더 말랑말랑한 색깔의 음악이 덧입혀져 있어 대중들과 폭넓게 소통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노랫말들이 무척 편하고 친숙합니다. 가정, 일터, 사회에서 멤버들 각자의 위치가 표현되어 있다는 느낌이고요.

승엽) 펑크록이라고 하는 게 일단 복잡하면 안 될 것 같고요. 단순무식하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가는 거죠. 솔직한 종류의 음악이니까 가사도 따라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치과의사 밴드를 표방한 이상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1집은 우리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로 재밌게 꾸며보자고 출발했죠. 확실히 어느 정도 계산된 전략이었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반작용이라 하면?
윤기) 일단 치과의사 내부에서의 반발이 상당했어요. 밴드 이름부터가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해서 너무 경박스럽지 않나 하는. 그리고 위신의 추락이랄까요. 지금은 많이들 좋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드러머 홍윤기는 ‘설측교정치료법’으로 세계 3대 인명사전 (미국 마퀴스 후스 후, 미국 인명정보기관 ABI,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센터 IBC)에 동시 등재된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멤버들이 학창시절부터 음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민재) 저 같은 경우 이전에 통기타를 다루는 정도였고 대학 들어가서는 그룹사운드 동아리 들어가서 조금 했어요. 다른 멤버들도 뭐 그런 식으로 조금씩은 했었죠.

승엽) 저랑 오늘 안 나온 재홍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를 했고요.



정식 음반을 발표하기 전에 4년이나 호흡을 맞추셨다죠?

윤기) ‘맨인뮤직’이라는 팀을 결성해서 활동했었지요. 자작곡은 아니었고 70, 80년대 올드 넘버들을 주로 연주했었습니다. 원래는 두 명의 멤버가 더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이빨스를 시작하면서 시간적으로 자신 없어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빠지셨죠.

승엽) 함께하지 못한 두 분이 자신 없어하신 부분은 외모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만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하시나요?

민재) 맨 처음 출발할 때 기획사에 소속되는 게 좋을지 우리끼리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기획사에 소속되면 그 스케줄에 맞춰야 할 것이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조금 가시밭길을 걷게 되더라도 우리 힘으로 해보자고 결정하게 된 것이지요.





홍성옥 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신 게 언제였죠?

베이스기타 홍성옥) 얼마 안 되었어요. 2월 정도?



이빨스 카페에 백승엽 씨가 남긴 글을 보니 농담반 진담반처럼 ‘베이스기타를 다루는 미모의 여성 치과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꿈이 이루어진 셈이네요?

승엽) 사실은 베이스를 못 다뤄요.(일동 웃음) 그냥 배우면 되지 않겠나 하는 취지에 모두들 선뜻 공감했고. 하하.

성옥)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요. 노래를 했었어요.

승엽)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가수를 꿈꾸며 기획사에서 트레이닝도 받다가 막 잘 나갈 시점에 이빨스가 불쌍해보였는지 도와주러 오신 거죠.



그러면 이빨스에 합류 안했어도 음악적으로 무언가를 이뤄보고자 했던 상황이네요?

성옥) 그렇긴 했는데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오라는 것은 아니니까..

승엽) 그렇게 얘기하면 신비주의 전략이 무너지잖아.



백승엽 씨 같은 경우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진료 받으러 오신 분들이 음악 하는 사실을 많이 아실 것 같은데요. 나머지 분들은 어떠신가요? 환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병원에 이빨스 앨범을 틀어 놓는다든지.

민재) 방송에 나간 직후에는 많이들 알아보시는데 조금 지나면 또 모르시더라고요.

윤기) 병원에서는 시끄러워서 틀어놓기가 좀 그래요.

승엽) 이 분들은 진정한 이빨스가 아닙니다. 하하. 저는 막 틀어놓고 진료하거든요. 나이 드신 분들이 “아 이제 그만 좀 틀어”라고 하시죠. 그러면 저는 “이거 제가 불렀어요”라고 자랑하고요. 하하.






시종일관 탁월한 유머를 뽐내던 보컬 백승엽은 인터뷰를 마치며 돌아서는 기자에게 진지한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지만 ‘치과의사들이 먹고 살만 하니까 고상한 취미 활동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저희를 대하시면 이빨스의 음악을 들어보실 리 없을 테고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 지거든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지 계속 고민해왔고 앞으로도 고민할 것입니다. 음악을 통한 저희의 진정성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들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본업에 매달려도 정신이 없을 터인데 밴드 그것도 연주가 간단치 않은 록밴드를 결성해 음악으로 삶의 통증을 가라앉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프로 못지않은 실력으로 다져진 이빨스의 음악활동이 갈수록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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