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② AI는 왜 비슷한 서사를 반복할까
[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② AI는 왜 비슷한 서사를 반복할까
  • 이은희 인터뷰어
  • 승인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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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시대, 2026년 AI 스토리텔링 핵심은]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인간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생성하는 기술과 개념을 의미한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은 AI스토리텔링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생성형 AI 시대에 스토리텔러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짚는다. 나아가 2026년을 맞아 AI를 창작의 도구로 사용하는 시대에 창작자가 가져야 할 역할과 책임을 살펴본다. 본 칼럼은 두 편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주] 

‘2026년, 스토리텔러의 조건은 질문–구조–검증’이라는 텍스트로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사진제공: 제미나이
‘2026년, 스토리텔러의 조건은 질문–구조–검증’이라는 텍스트로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 = 2026년, AI 스토리텔링은 AI가 ‘무엇을 쓰나’보다 ‘어떤 이야기 틀을 반복하는지’를 이해하는데서 시작된다.

생성형 AI가 글과 이미지를 '그럴듯하게' 생산하는 시대, 논쟁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AI가 창작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이제는 ‘AI가 어떤 이야기 구조를 기본값으로 재생산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AI가 새 이야기를 ‘창조’하느냐보다 “어떤 결말을 더 자주 고르나”,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라고 제안하나” 같은 ‘이야기 습관’을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갈등 상황에서 ‘대화’보다 ‘응징’이 더 먼저 나오면, 그건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의 기본 틀 문제일 수 있다. 유럽연구위원회(ERC) Advanced Grant 프로젝트인 'AI STORIES'는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연구로 주목받는다. ERC는 유럽에서 학문적으로 가장 경쟁적인 연구비 중 하나로 꼽히며, ‘Advanced Grant’는 해당 분야에서 이미 큰 업적이 있는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대형 지원이다. 그만큼 “이 주제가 중요하고, 검증할 가치가 크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연구책임자 질 워커 레트버그(Jill Walker Rettberg, 노르웨이 베르겐대) 교수는 제안서에서 ‘대형언어모델(LLM)의 출력이 서사 원형(narrative archetypes)에 의해 근본적으로 구조화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여기서 ‘서사 원형’은 ‘영웅의 성장담’, ‘악을 벌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이야기’, ‘권선징악’처럼 문화권마다 자주 반복되는 대표적인 이야기 틀을 뜻한다. 지금까지 AI 편향 논의가 주로 특정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빈도, 즉 연접 관계의 통계에 집중해 왔다.

woman과 nurse의 인접을 넘어, 이야기 틀 자체의 편향으로

질 워커 레트버그 베르겐대 교수./사진=아이빈드 세네셋(Eivind Senneset), 베르겐대(UiB) 홈페이지

레트버그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표현의 편향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기존 연구들은 대부분의 데이터셋에서 'woman' 또는 'she' 같은 단어가 'doctor'보다 'nurse'와 더 자주, 통계적으로 더 가까이 등장한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이런 데이터로 훈련된 LLM은 간호사는 여성, 의사는 남성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출력함으로써 편향을 재현한다.

AI STORIES는 단어가 아니라 ‘이야기가 굴러가는 방향’에 집중한다. 이야기의 갈등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는지,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문제 인물로 놓이는지 같은 구조를 본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게시물, 뉴스 기사, 마케팅 문구, 소설 등 훈련 데이터에 내재된 서사 구조 자체의 편향이 모델 출력에 스며드는지를 묻는다. 즉, AI가 단지 ‘말투’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기본 줄거리’, 예컨대 갈등은 타협으로 풀리는지, 처벌로 끝나는지, 누군가의 희생으로 정리되는지 까지 따라 배우는지 확인하려는 시도다.

레트버그 교수는 "AI가 언어·서사·문화에 기반한 기술이 된 이상, AI 개발이 인문학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강조한다. 이 가설이 유효하다면 AI를 사용하는 방식뿐 아니라, AI의 문화적 다양성을 평가하고 규제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문제의식이다.

"미국식 서사가 세계를 덮을 수 있다"…문화 다양성의 서사적 위협

AI STORIES가 던지는 경고는 문화 다양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 다양성’은 음식·축제 같은 표면적 차이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갈등을 어떻게 풀고, 정의를 어떻게 세우며,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시키는지 같은 ‘가치의 운영 방식’까지 포함한다.

현재 다수의 LLM이 영어, 특히 미국 중심 데이터에 크게 의존해 학습되는 만큼, 학습 자료가 한쪽에 몰려 AI가 세상을 해석하는 ‘기본 습관’도 그쪽으로 기울 수 있다. 비영어권 텍스트를 유창하게 생성하더라도 깊은 내용은 지배적 훈련 데이터의 '기본 서사'로 조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결과물은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이야기의 결론, 누가 문제이고, 해결은 처벌인지 회복인지, 갈등은 타협인지 승자독식인지는 미국중심 문화권의 익숙한 틀을 따라갈 수 있다는 뜻이다.

레트버그 교수는 한 기고에서 "생성형 AI가 전 세계의 챗봇 응답과 검색 결과를 동질화된 미국식 서사로 채우면서 지역 서사를 밀어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질화’라는 말이 어렵다면, “어느 나라에서 질문해도 비슷한 결말·비슷한 교훈·비슷한 악역과 영웅이 반복되는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결국 다양한 지역의 문제 해결 방식이 ‘한 가지 표준 해답’으로 덮일 수 있다는 우려다. 그가 든 사례는 노르웨이의 아동문학 '카르데뭄네 시의 사람들과 도둑들'이다. 이 이야기는 도둑을 처벌하지 않고 재활시키며, 이들이 나중에 마을을 구한다는 내용으로, 노르웨이 형사사법체계가 처벌보다 재활을 우선시하는 원칙을 문화적으로 뒷받침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런 결말에 익숙해지면, “사람은 바뀔 수 있다”, “공동체는 회복을 통해 안전해진다” 같은 관점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될 수 있다. 이야기 한 편이 사회 규범을 설명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셈이다.

반면 헐리우드 영화 속 강도는 미화되거나 죽음으로 처벌된다. ‘처벌’이 가장 선명한 결말로 제시되고, 갈등이 빠르게 정리되는 구도가 많다. 도둑이 바뀌어 공동체에 기여하는 서사보다, 제거·응징으로 마무리되는 서사가 더 익숙한 장르도 많다.

이 두 서사는 단순한 문화적 참조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이야기 틀' 자체를 구조화한다. 즉 “나쁜 일을 했으니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가 기본값인 사회와, “다시 살게 만드는 것이 더 안전하다”가 기본값인 사회는 같은 사건을 보고도 다른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다.

이야기는 ‘가치관의 자동완성’을 만드는 장치다. 연구진이 문제 삼는 것은 언어의 다양성이 아니라, 이러한 이야기 틀이 한 방향으로 굳어질 가능성이다. 언어가 여러 개여도, 결말과 해결 방식이 한쪽으로만 반복된다면 문화 다양성은 겉모습만 남는다. 그래서 AI 시대의 위험은 ‘번역을 잘하느냐’보다 ‘어떤 결말을 표준으로 삼느냐’에 더 가깝다는 문제의식이다.

AI STORIES는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검증까지 설계했다. 연구팀은 먼저 여러 종류의 질문(프롬프트)을 대형언어모델에 던져 어떤 결말과 해결 방식이 반복되는지 데이터를 모아 패턴을 찾는다. 다음으로 ‘화해·회복’ 같은 특정 서사가 많은 자료를 추가로 학습시킨 모델과 ‘응징·처벌’ 서사가 많은 자료를 학습시킨 모델을 비교해, 학습 데이터의 이야기 틀이 출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읽고 분류한 서사 분석과, 그 결과가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지 세는 통계 분석을 함께 써서 문화권별 ‘기본값 서사’가 어디까지 재현되는지 살핀다. 연구팀은 스칸디나비아·호주·인도/나이지리아 등 여러 지역의 서사를 대조해 미국 중심 모델의 기본 서사와 비교할 계획이며, 프로젝트 결과는 'AI의 서사학(A Narratology of AI)'으로 정리될 예정이다.

AI 서사의 세 가지 구조적 특징

레트버그의 연구와 그간의 인터뷰를 통해서 AI 서사이론이 밝혀내는 AI의 작동 원리는 명확하다. AI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는 세 가지 뚜렷한 패턴이 있다.

첫째, AI는 확률적으로 흔한 전개를 선호한다. 수많은 텍스트에서 학습한 결과,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서사 구조와 표현을 먼저 제시한다. 이는 안정적이지만 예측 가능한 결과를 낳는다. 혁신적인 이야기보다는 이미 수천 번 반복된 이야기가 더 높은 확률로 선택된다.

둘째, AI는 맥락 충돌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덮는다. 논리적 비약이나 서사적 긴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럴듯한 연결어를 배치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읽기는 편하지만 깊이는 얕아진다. 진짜 이야기가 가진 '불편한 진실'이나 '해결되지 않는 긴장'은 AI의 출력에서 자동으로 제거되는 경향이 있다.

셋째, AI는 새로움보다 평균적 설득력을 최적화한다. 독창성보다는 많은 사람이 수긍할 만한 '안전한 이야기'를 생산한다. 이 세 가지 특징은 AI가 본질적으로 '평균값에 강한 시스템'임을 보여준다.

‘AI도 창작한다’는 주장, 핵심을 놓치고 있다

AI도 결국 창작하는 것 아닐까? 인간도 기존 지식을 재조합해 글을 쓰는데, 그게 AI와 뭐가 다를까?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창작의 기준은 ‘새로움’ 그 자체가 아니라 책임·의도·검증의 구조에 있다.

인간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단어와 이야기 구조에 책임을 지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의도를 세우며, 결과물이 세상에 나가기 전에 스스로 검증한다. 반면 AI는 확률에 따라 문장을 이어 붙일 뿐, 그 문장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서사적으로 정합한지 판단하지 못한다.

따라서 AI를 사용하는 창작에서 진짜 창작자는 AI가 아니라, 그 책임과 의도, 검증을 끝까지 수행하는 사람이다. AI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창작자의 역할은 축소되고, 도구로 쓰되 최종 판단과 책임을 놓치지 않을 때 비로소 창작은 인간의 것이 된다.

AI는 강력한 증폭기다. 그러나 증폭할 신호가 없으면 커지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소음이다. AI는 평균값으로는 놀라울 만큼 능숙하지만, 평균을 깨는 질문과 긴장, 맥락의 깊이를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2026년 AI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프롬프트 기술’이 아니라, AI가 반복하는 기본 서사를 알아차리고 그 흐름을 바꿔치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다시 말해, 무엇을 말할지 질문으로 방향을 정하고, 어떻게 말할지 구조로 길을 만들며, 끝으로 검증을 통해 책임을 완성하는 것이다. AI가 써주는 시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책임지는지가 갈리는 시대다.

이은희 인터뷰어

감독이자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를 전공했다. 영화 '순정'을 연출했으며, 장편 시나리오 '민사소송'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앤캐치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예술대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는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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