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펀드매니저에서 가수로 다시 유턴한 김광진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에서 가수로 다시 유턴한 김광진
  • 김지원
  • 승인 201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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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다시 듣기’ 유행, 아들이 이제야 제 인기 인정해줘요”

【인터뷰365 김지원】빼어난 가창력이 아니지만, 포근하고 서정성 깃든 목소리는 추억으로 이끌게 하고, 부드러운 멜로디와 슬픈 감성의 노랫말은 아련한 상념에 젖게 한다. 가수 겸 작곡가 김광진의 감성어린 음악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난 10월 말 현재 멜론, 싸이월드뮤직, 엠넷닷컴 등 주요 온라인 음악사이트에는 ‘여우야’ ‘동경소녀’ 등 그의 노래가 상위권에 올라 있다.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 발표된 곡들이다. 이와 더불어 음악팬들 사이에서는 ‘김광진 다시 듣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풍경은 최근 케이블 채널 Mnet ‘슈퍼스타K3’의 작곡가 미션에서 투개월, 버스커버스커, 크리스, 이정아가 모두 김광진의 노래를 선택하면서 생겨났다.
최근 다시금 가요계 화두로 떠오른 김광진을 서울 서초동 그의 작업실에 만났다. 그는 9년간 다니던 동부자산운용을 6월 그만두고 7월부터 이곳에 작업실을 차렸다. 9월 19일부터는 KBS 해피FM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도 맡았다.
1991년 한동준의 ‘그대가 이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작곡가로 처음 음악계에 첫발을 내디딘 김광진은 작곡가, 작사가, 가수 그리고 금융회사 애널리스트로 유명하다. ‘편지’ ‘아는지’ 등 자신의 노래뿐 아니라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이승환의 ‘내게’와 ‘덩크슛’,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와 ‘기억해줘’ 등의 작사, 작곡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처음 가수로 활동하던 당시에 ‘삼성맨’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던 김광진은 현직 금융인으로서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국내 최초 CFA(공인재무분석가) 가수이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에서 MBA를 마친 김광진은 2007년 운용사 주식형 펀드 수익률 1위를 차지한 동부자산운용의 더클래식 펀드시리즈를 런칭 및 운영했고 바이오펀드를 처음 업계에 런칭하며 금융계에서도 맹위를 떨친 바 있다.

-요즘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고, 라디오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로 바쁠 것 같다.
“좀 바쁘다. 라디오 진행은 처음인데, 아침시간에 라디오 진행하는 게 너무 어렵고 힘들다. 아는 분야도 있지만, 시사문제에는 내가 깊이가 별로 없어 어렵다. 이런 프로그램 진행하려면 경력도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 좋아지겠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인생의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에 라디오 진행하는 것은, 음악 하는 사람이 진행하기엔 시간대가 너무 어렵다. 더욱이 박경철 씨의 후임이어서 더 부담된다. 마치 유희열의 후임으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을 하는 기분이다.”

-직장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음악작업도 하고 싶었고, 여러 가지 인생의 변화를 위해 그만뒀다. 동부자산운용에서 펀드운영만 9년 했다. 그간 좋은 성과도 있었지만, 펀드매니저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업이다.”

-얼마 전 ‘슈퍼스타K3’ 참가자들의 집중적인 선택을 받았는데.
“(참가자들에게)참 고마웠다. 투개월 친구들에게 ‘여우야’는 자기들이 태어날 무렵에 나온 곡들일 텐데¡¦. 버스커버스커가 ‘동경소녀’를 선택한 것도 특이했다. 버스커버스커 멤버들이 여러 가지로 특이한 것이 많더라. 어린 친구들인데 나름의 음악스타일을 갖고 있다. 음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친구들 같아 좋았다. 투개월은 둘 다 음악성이 뛰어나다. 여자(김예림)는 목소리, 음색 타고 났고, 남자(도대윤)는 기타를 잘 친다. 크리스는 진심을 담아 하는 노래하는 것 같았다.”

-당시 방송현장에서 가족과 관람하는 장면이 화면에 비치기도 했는데.
“아들, 딸 하고 함께 생방송 현장에서 봤는데, 아이들에겐 앞으로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 될 듯하다. 아빠 노래를 여러 명이 경연에 나와서 노래한 것도 그렇고, 아이들이 음악에 대한 느낌을 달리 했을 것 같다. 나도 대학시절, 외국 뮤지션의 내한공연을 보면서 아직도 강렬한 인상이 남아있는데, 초등학생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억이 (강렬하게)남지 않을까.”

-자녀들이 아빠를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다.
“아빠가 가수인데, 내가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간 아빠가 어떤 위치에 있는 음악인인지 몰랐을 것이다. 아들은 음악차트에 내 노래가 상위권에 올라오니까 꽤 흥분하더라. 나도 이렇게 인기를 얻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하.”

-사실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고 불렀는데, 너무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음악을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것 같다. 곡이 아무리 좋아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홍보가 되는 기회가 없으면 결국 그 좋다는 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내게 일어나기 드문 일이 일어났다. (이 인기가)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지만, 음악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쉽지 않다.”

-새삼 주목받는 느낌은 어떤가.
“음악 하는 사람들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히 반응이 있을 때 의욕이 생긴다. 반응이 없을 때 음악작업을 열심히 하기 힘들더라. 2002년 ‘솔베이지’(4집) 음반을 내고 참 열심히 했었다. 그 때엔 나름 심혈을 많이 기울여 앨범을 만들었다. 음악적 고민 많이 했고. 그런데 반응 없으니 음악 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2008년 5집 ‘라스트 데케이드’까지)한동안 음반을 내지 못했다. 그 이전까지는 2년 마다 하나씩 냈지만, ‘솔베이지’ 음반이 반응이 없으니 음반을 내지 않았다. 2008년 ‘아는지’(‘라스트 데케이드’의 타이틀곡)를 낼 때는 ‘반응이 없더라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요즘엔 음악작업에 의욕이 넘칠 것 같다.
“내가 좀 귀가 얇아서, 요즘 트렌디한 음악을 해야 하나, 아이돌 음악을 해야 되나, 이런 노래를 써야 되나,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내 노래를 요즘 좋아해주시는 걸 보면서, 꼭 트렌디한 음악이 아니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처음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음반을 냈을 때 힙합 장르가 히트할 때였다. 그래서 ‘나는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작곡한)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가 히트하는 걸 보면서, 꼭 그때그때의 트렌드를 좇을 필요는 없구나 생각을 했다. 나의 옛 노래들이 지금 반응이 좋을 수 있듯이 앞으로도 다양한 음악을 해도 되겠구나, 다양한 음악이 공존할 수 있구나 생각이 든다.”

-아이돌 가수에게도 곡 의뢰를 받을 것 같은데.
“음, 아이돌 가수로부터 곡 의뢰를 받고 현재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하고 작업하는 게 재미있고, 새로운 기분이다.”

-곧 새 음반을 만날 수 있나.
“지금 곡을 만들고 있고, 음반도 곧 낼 계획이다. 그런데 정규앨범을 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사실 정규음반이 지치는 일이다. 노래도 다 홍보를 다 못한다. 여러 가지 고민이 많다. 내겐 싱글 음반은 낯설고 멋쩍다. 늘 앨범을 내왔기에 이런 (싱글을 내는)시대에 적응도 잘 안되는 것 같고¡¦. 그런데 싱글을 발표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새 음반엔 어떤 음악을 담을 예정인가.
“하고자 하는 음악적 취향은 조금씩 세월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나도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갈지 모른다. 자기만의 음악으로, 고유의 색깔을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여러 음악을 기웃거리고 했지만, 나도 어떤 색깔을 분명하게 갖추지 못한 것 같다. 팻 메스니나 스티비 원더 같은 음악은 한번 딱 들으면 그의 노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나도 그러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 나도 그렇지 못하다.”

-향후 음악활동 계획은.
“공연을 많이 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혼자 하는 음악보다, 연주, 밴드 형태로 하려고 한다. 함춘호 신석철 박용준 김정렬 이성렬 등 그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세션들이 있다. 20년간 해오던 이런 분들과 공연을 하면 옛 색깔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마련이다.”

-SM엔터테인먼트 초창기 가수로서 현재 SM을 보는 감회는 어떤가.
“지금 SM엔터테인먼트는 우리 가요계에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너무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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