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꿈속에서 살고 꿈을 꾸듯이 떠나간 배우 윤정희
[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꿈속에서 살고 꿈을 꾸듯이 떠나간 배우 윤정희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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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인연, 윤정희를 추모하며]
1990년 1월 27일 개최된 영화의날 기념식장에서 필자와 함께 한 윤정희 배우(사진 맨 왼쪽)와 심혜진 배우. 뒷편 한쪽에 '사격장의 아이들'을 연출한 고 박상호 감독의 모습도 보인다.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한국영화 충무로 시대의 복판에서 사랑과 인기를 누렸던 ‘은막의 별’ 윤정희 배우가 설날을 사흘 앞둔 지난 19일 살고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일흔아홉에 삶을 접고 돌아오지 않는 먼 길로 떠났다. 근래 몇 해 동안 알츠하이머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근황이 알려진 뒤 가족 외에는 와병 기간 누구도 그녀를 만난 사람이 없었다.

부군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윤정희 배우가 바이올리니스트인 외동딸 진희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는 임종 메시지를 한국의 친지들에게 메일로 전했다. 고인이 다닌 성당에서 영결미사를 하고 가족장으로 장례가 끝난 후 그녀는 생전에 남편과 잠들기로 한 파리 근교 묘역에서 아프지 않고 고통이 없다는 적멸의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필자는 1967년 <청춘극장>으로 시작해 이창동 감독의 2010년 영화 <시>의 출연까지 300여 편을 남긴 그녀와 평생을 두고 ‘배우와 기자’관계였지만 특별히 가족과 같은 따뜻한 인연을 나누어 왔다. 고 변장호 감독이 제작하고 엄종선 감독이 연출한 <만무방>, 뉴질랜드로 이주한 전직하 제작, 고 박철수 감독의 <눈꽃>의 캐스팅에도 참여하며 ‘평생 친구’의 인연을 나누어왔다. 남편 백건우 피아니스트와 필자의 관계도 가까이서 마음을 나눈 지 오래된다.

2010년 말 신영균 원로배우의 기부 재산으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을 설립할 때 창립 이사로 필자가 고인과 함께 참여한 것도 남다른 인연 관계의 일면이다. 과거 신문사 기자 시절 파리를 방문할 때면 윤정희·백건우 부부는 늘 반갑게 맞이했고 부군의 연주 일정으로 빈번하게 귀국할 때는 음악회 초청을 해주기도 했다.

윤정희-백건우 부부/사진=인터뷰365DB
2008년 필자와 인터뷰 중인 윤정희-백건우 부부./사진=인터뷰365DB

윤정희, 일생을 두고 매혹의 자태로 희로애락을 연기하던 그 배우가 세상 밖으로 떠났다. 이제는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녀의 임종이 다가오면서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평소 필자와 주고받는 카톡으로 “진희 엄마가 위중하다”는 짤막한 한마디의 불안한 심경을 전해왔을 때는 필자는 습성대로 그 안타까운 소식을 인터뷰365 온라인 뉴스로 보도했다가 10여 분만에 삭제하고 말았다. 파리 시간 새벽에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카톡 전화를 통해 “아직 알 수 없는 일로 시선을 받는 것은 우리 가족의 고통”이라며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유가 따랐다.

아름답고 고고하게 살던 윤정희 배우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끝이 보이지 않는 먼 길을 떠났다. 한국영화 중흥기 트로이카로 일컫던 그녀와 남정임 두 배우가 떠나고 이제 문희 배우 한 사람이 남아있다. 달덩이 얼굴에 애교 넘치던 남정임, 크고 깊은 두 눈동자에 천의 표정을 담아내던 배우가 문희였다면 윤정희 배우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턱과 목의 리드미컬한 연기로 여자의 아름다움을 발산해 내던 천부적인 연기자였다.

정인엽 감독의 (사진 왼쪽부터) 문희, 남정임, 윤정희 배우 주연의 '결혼교실'/사진=KMDB

과연 연기 밖의 자연인 윤정희는 어떤 여자인가? 라는 질문에 필자가 답한다면 딱 두 가지를 앞머리에 꼽을 것 같다. 첫째는 이른바 프라이드가 남다르다는 점과 예의가 바르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존심에 상처받는 것을 극히 경계하고 싫어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면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며 살았다.

필자가 경외하고 사랑하던 윤정희 배우가 먼 길을 떠났다. 언젠가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더불어 오래전 망각의 시간으로 들어섰던 환자보다 마음의 고통을 더 아프게 겪으며 힘들어했던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남은 삶이 평화롭고 평온하기를 소망한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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