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끝으로 일군 치유의 삶] ⑩ 휴가 못 간 만평, 원고 봉투 홀로 버스 타고 서울행

[기획 연재 - 유환석 화백의 생애기록 치유기] - 며칠 치 미리 그리고 떠나도 뉴스에서 귀 떼지 못해 - 대형 사건 터지면 휴가지가 곧바로 임시 작업실 - 낮 11시 초판 마감 맞추려 춘천서 버스에 원고 맡겨 - 상봉터미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받아 신문사로 전달 - “오늘 잘 그려도 내일은 다시 빈 종이와 마주해야 했다”

2026-08-28     신향식 칼럼니스트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은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대와 서민의 삶을 따뜻한 풍자로 기록해 왔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2026 원로예술인 아카이브 전시지원’ 공모에 선정돼,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를 14일부터 25일까지 춘천예술마당 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10회 연재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생애기록 치유기’입니다. 유 화백의 성찰이 후배들에게는 작은 이정표가 되고, 독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따뜻한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환석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오전 10시를 넘기자 휴가지의 피서객들이 바다와 계곡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환석 화백의 귀는 라디오 뉴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밤사이 큰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을까. 아침 뉴스에 새로운 소식이 나오지는 않았을까. 며칠 치 만평을 미리 그려놓고 휴가를 떠났어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세상은 시사만화가의 휴가 일정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대형 사건이 터지는 순간 미리 그려둔 만평은 낡은 뉴스가 됐다. 휴가지의 방은 곧 임시 작업실로 바뀌었다. 가족들이 물놀이를 나간 사이 유 화백은 한쪽에 종이를 펼쳐놓고 라디오 소리를 높였다. 그에게 휴가는 일을 멈추는 시간이 아니었다. 작업실의 주소가 잠시 달라지는 것에 가까웠다.

오전 몇 시간 동안 치르는 ‘그림 생방송’

유환석

당시 스포츠조선의 제작 시간을 알아야 그 긴박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름은 조간신문이었지만 다음 날 날짜를 단 가판이 전날 낮부터 나오는 제작 체계였다. 1차 마감은 오전 11시 무렵으로 매우 빨랐다.

아침 편집회의가 끝나면 유 화백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날의 정치·경제·사회·스포츠 뉴스를 빠르게 훑어 소재를 골라야 했다. 무엇을 풍자할지 정한 뒤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장면으로 압축하고, 인물의 표정과 말풍선을 다듬어 원고까지 완성해야 했다.

오전의 몇 시간은 그에게 생방송과 다름없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마감시간이 기다려주는 일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시계가 편집국 벽에 걸려 있는 듯했다.

시사만평은 시의성이 생명이다. 나라를 뒤흔든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휴가 전에 그려놓은 한가로운 소재를 내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 휴가 중입니다”라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다시 펜을 들어 그날의 세상을 새로 그려야 했다.

가족은 물놀이, 아버지는 방에서 만평

1990년

휴가지에서도 유 화백은 가족과 온전히 어울리기 어려웠다. 가족들이 바다와 계곡에서 여름을 즐기는 동안 그는 방 안에 남아 뉴스를 확인하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이디어가 금방 떠오르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 컷 안에 사건의 본질과 웃음, 풍자를 모두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무거우면 만평의 맛이 사라졌고, 웃음만 앞세우면 사건을 가볍게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림 한 장을 두고 머릿속에서는 수십 개의 장면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가족의 웃음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와도 펜을 놓을 수 없었다. 휴가지에 함께 와 있으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버지를 가족들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시간에는 만평가의 책임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직업을 이해하고 불편을 함께 견뎌준 가족의 희생도 들어 있었다. 생애기록치유는 자신의 고생만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고생 곁에서 말없이 기다려준 사람을 뒤늦게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메일도 스마트폰도 클라우드도 없던 시절

그림을 완성했다고 일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이메일도 스마트폰도 클라우드도 없던 시절이었다. 종이에 그린 원화를 서울의 신문사까지 보내려면 사람과 교통수단의 힘을 빌려야 했다.

휴가지에서 급히 만평을 완성한 유 화백은 원고를 봉투에 넣어 춘천버스터미널로 달려갔다. 서울행 버스 기사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원고 봉투를 맡겼다. 몇 시간 뒤에는 신문사 아르바이트생이 상봉터미널로 나가 버스에서 봉투를 받아 편집국으로 가져갔다. 유 화백은 휴가지에 남아 있었지만 그의 만평은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근한 셈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는 여행객들의 가방과 보따리 사이로 얇은 원고 봉투 하나가 실려 있었다. 그 안에는 다음 날 날짜를 달고 수많은 독자를 만날 만평이 들어 있었다. 버스가 늦으면 원고도 늦었다. 상봉터미널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이 도착 시간을 확인하며 기다렸고, 편집국에서는 마감 시계가 쉼 없이 돌아갔다.

그 시절에는 사람만 버스를 탄 것이 아니었다. 뉴스도, 만평도 버스를 타고 마감시간을 향해 달렸다.

인터넷 대신 사람이 뛰고 버스 엔진이 원고 날려

유환석

지금이라면 완성한 그림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거나 파일로 저장해 몇 초 만에 보낼 수 있다. 서울을 넘어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는 일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당시에는 원고 한 장이 신문 지면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그림을 완성한 만화가와 원고를 맡아준 버스 기사, 터미널에서 기다린 아르바이트생, 그것을 받아 지면에 배치한 편집기자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전달망을 만들었다. 인터넷 대신 사람이 뛰었고, 와이파이 대신 버스 엔진이 원고를 날랐다. 기술은 부족했지만 사람 사이의 믿음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돌이켜보면 만평 한 장은 유 화백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누군가 원고를 맡아주고, 누군가 시간에 맞춰 받아주며, 누군가 독자 앞에 놓아주었기에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그 평범한 도움들이 고마운 인연으로 다시 보이는 것도 생애기록치유가 주는 선물이다.

“휴가라고 대신 그려줄 사람도 없었지요”

“매일매일 하는 게 힘들었지요. 휴가라고 누가 대신 그려줄 사람도 없잖아요.”

유 화백은 50년 시사만화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묻자 거창한 사건보다 ‘매일 그려야 했던 생활’을 먼저 떠올렸다.

논설위원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를 나눠 맡거나 돌아가며 칼럼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시사만화가는 혼자 세상 전체를 훑어 그날의 한 컷을 찾아내야 했다. 정치도 알아야 했고 경제도 읽어야 했다. 사회적 사건과 스포츠계의 흐름도 놓칠 수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렇다고 만평 자리를 하얗게 비워둘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 대신 그려줄 수도 없었다. 유 화백이 시사만화를 ‘고독한 작업’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그 고독은 퇴근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머릿속 한편에는 늘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하루치 끝내면 다음 날 아침 또다시 숙제

‘내일은 또 무엇을 그리지?’

오늘 밥상을 잘 차렸다고 내일 밥상이 저절로 차려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 기막힌 만평을 그렸다고 내일의 아이디어가 따라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치 숙제를 끝내고 나면 다음 날 아침 또다시 빈 종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 화백은 하루의 독자를 위해 하루의 생각을 바쳤다. 그렇게 쌓인 하루가 '헹가래' 약 5,000회와 '공수래' 약 2,000회가 됐고,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50년이 됐다.

생애기록치유는 지나간 고생을 미화하는 일이 아니다.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을 다시 바라보며 무엇이 자신을 버티게 했는지, 그 곁에 누가 있었는지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고독했던 마감도 돌아보니 함께 달린 시간

유환석

유 화백이 기억 속 휴가지로 다시 돌아가 보니 방 안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던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없이 기다려준 가족이 있었고, 원고를 맡아준 버스 기사가 있었다. 상봉터미널로 달려간 아르바이트생과 만평 자리를 지켜준 편집국 동료, 다음 날 그림을 기다린 독자도 있었다. 당시에는 혼자 치르는 마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니 수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뛰고 있었다.

이번 10회 연재를 통해 유환석 화백이 꺼내놓은 것은 화려한 이력만이 아니었다. 숫자에서 사람을 발견한 소년의 눈, 꿈을 지켜준 교사의 한마디, 세상을 보여준 선배의 손, 잘못된 만평을 바로잡지 못했던 후회, 동료와 후배에 대한 감사, 해외 취재에서 겪은 웃음과 상처가 함께 담겼다.

그 기억들을 다시 쓰는 동안 과거는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오늘의 자신을 만든 의미로 돌아왔다. 상처는 성찰이 됐고, 후회는 책임이 됐으며, 고독은 감사로 바뀌었다.

오래전 어느 여름날, 유환석 화백의 원고 봉투는 홀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그 봉투는 결코 혼자 달린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50년이 걸렸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