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끝으로 일군 치유의 삶] ⑨ 시드니서 영어 대신 그림으로 소통...그림은 국경을 넘었다
[기획 연재 - 유환석 화백의 생애기록 치유기] - 시드니서 육포 대신 개 간식 산 만화가 - 2000년 시드니올림픽 현장 파견, '헹가래 시드니 가다' 연재 - 낮엔 경기장 취재하고 밤엔 만평 그려 서울로 송고 - 영어 막히자 소와 말린 고기 그려 주문했지만 뜻밖의 실패 - 카메라와 취재 자료 잃고도 다시 펜 들어 현장 열기 기록 - “크게 지면 배치해준 신상돈 편집국장에게 지금도 감사”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은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대와 서민의 삶을 따뜻한 풍자로 기록해 왔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2026 원로예술인 아카이브 전시지원’ 공모에 선정돼,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를 14일부터 25일까지 춘천예술마당 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10회 연재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생애기록 치유기’입니다. 유 화백의 성찰이 후배들에게는 작은 이정표가 되고, 독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따뜻한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데뷔 50주년을 맞은 유환석 화백에게 물었을 때, 그의 기억은 26년 전 남반구의 도시로 향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현장 파견이었다. 당시 유 화백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의 간판 시사만화 '헹가래'를 연재하고 있었다. 그는 올림픽 기간에 '헹가래 시드니 가다'를 통해 경기장과 선수촌, 시드니의 거리와 사람들을 그림으로 전했다.
낮에는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선수와 관중의 표정을 살폈고, 밤이면 숙소로 돌아와 그림을 완성해 서울 본사로 보냈다. 하루의 취재가 끝나야 또 다른 마감이 시작되는 숨 가쁜 일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호텔에서 소주 한잔을 곁들일 육포가 생각났다.
“육포나 좀 사 와야겠다. 그런데 영어가 안 통하는데 살 수 있을까?”
걱정은 현실이 됐다. 근처 슈퍼마켓에 들어갔지만 ‘비프 저키(Beef Jerky)’라는 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손짓과 발짓을 보태도 점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말보다 선이 익숙한 만화가의 직업병이 발동한 것이다.
소 그리고 드라이기까지 그렸는데 ‘개 간식’
유 화백은 먼저 소 한 마리를 그렸다. 그것만으로 부족하자 드라이기로 바람을 쐬는 시늉을 하며 ‘말린 고기’라는 뜻을 설명했다. 종이에는 길쭉하게 말린 고기와 그것을 담은 네모난 비닐봉지까지 덧그렸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던 점원은 마침내 환하게 웃었다.
“오케이!”
유 화백은 뿌듯한 마음으로 물건을 받아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나 안주를 기다리던 기자 일행은 봉지를 보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자신 있게 사 온 것은 사람이 먹는 육포가 아니라 개에게 주는 간식이었다. 소를 그리고 말린 고기를 그렸으니 뜻이 통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사람이 먹는다’는 결정적인 정보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유 화백은 다시 종이와 펜을 챙겨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사람 얼굴을 크게 그리고, 벌린 입 안으로 고기가 들어가는 모습까지 분명하게 그렸다. 그제야 점원은 “아!” 하고 알아듣고 사람이 먹는 소고기 육포를 건넸다. 말은 막혔지만 그림은 결국 뜻을 전했다. 첫 번째 그림에서 생긴 작은 오해까지 더해져 슈퍼마켓은 웃음바다가 됐다.
사람의 입 그려 넣자 비로소 뜻 통해
다음 날 다시 그곳을 지나는데 전날의 직원들이 종이와 연필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었다. 육포를 사기 위해 온몸으로 설명하며 그림을 그리던 동양인 만화가가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유 화백은 즉석에서 몇 장의 그림을 더 그려주었다. 서로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표정과 웃음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고 했다.
“영어는 서툴렀지만 그림은 세계 공용어더라고요. 영어 한마디보다 그림 한 장이 더 빨랐어요.”
육포를 둘러싼 해프닝은 유환석이라는 시사만화가를 압축해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신문에서는 한 컷으로 권력의 모순을 꼬집었고, 낯선 시드니의 슈퍼마켓에서는 몇 줄의 선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설명했다. 그림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뜻을 전달하지 못했다. 개 간식이라는 엉뚱한 답을 데려왔다. 그러나 그는 민망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렸다. 무엇이 빠졌는지 생각한 뒤 사람의 얼굴과 입을 보탰다.
좋은 소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내 뜻을 전달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 때로는 오해가 실패로 끝나지 않고 서로를 웃게 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언어가 멈춘 자리에서 그림이 말을 걸어
유 화백이 50년 동안 그린 시사만화 역시 대중을 향한 끊임없는 대화였다. 긴 설명 대신 몇 개의 선과 짧은 말풍선으로 독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림은 번역기를 거치지 않아도 웃음을 만들고, 낯선 사람의 마음에 작은 다리를 놓았다.
시드니 슈퍼마켓에서 시작된 ‘국제 만화 외교’는 거창하지 않았다.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 틀린 그림을 다시 그릴 줄 아는 마음이면 충분했다.
지금은 경기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몇 초 만에 세계 어디로든 전송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의 취재 환경은 달랐다. 노트북은 무거웠고 무선인터넷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유 화백은 노트북뿐 아니라 원고를 디지털 파일로 바꾸기 위한 스캐너까지 챙겨 비행기를 탔다. 호주에 도착해서는 한국과 다른 콘센트 모양 때문에 변환 플러그를 뜯고 연결해야 했다. 가까스로 그림을 완성해도 본사로 보내는 일이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무선인터넷 없던 시절, 송고도 또 하나의 경기
현지에서 노트북 작업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컴퓨터 매장을 찾아가 포토샵이 설치된 컴퓨터를 빌렸다. 낮에 경기장을 돌며 현장을 취재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고 스캔한 뒤, 통신 상태를 살피며 서울로 전송했다. 오늘날에는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으로 끝날 일이 당시에는 장비와 시간, 인내를 모두 요구했다.
불편은 그림에도 흔적을 남겼다. 쉽게 고칠 수 없었기에 한 선을 더 신중하게 그었고, 전송에 실패하지 않도록 원고를 끝까지 확인했다. 기술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사람의 집중력과 책임감이 그 빈자리를 메워야 했다. 유 화백에게 마감은 단순히 정해진 시간까지 그림을 보내는 일이 아니었다. 시드니에서 보고 들은 것을 다음 날 한국의 독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약속이었다.
유 화백은 경기 결과만 받아 책상에서 만평을 그리지 않았다. 직접 경기장을 돌며 선수들의 표정과 관중의 열기, 시드니 거리의 공기를 눈과 마음에 담았다. 현장 스케치와 시사만평을 각각 만들어 본사로 보냈다.
그의 그림에는 시드니 상공으로 향하는 비행기와 올림픽 주경기장이 등장했고, 올림픽 취재를 앞둔 설렘이 담겼다.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의 감동은 한반도기와 오륜기로 표현했다. 경기장 밖의 거리와 해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의 모습도 한 컷의 주인공이 됐다.
선수의 땀과 관중의 함성을 먹은 펜
‘체조 요정’으로 불린 나디아 코마네치를 인터뷰한 것도 잊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귀국길에는 시드니올림픽 여자 공기소총 은메달리스트 강초현 선수와 같은 비행기에 올라 선수단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꼈다. 그가 담으려 했던 것은 메달의 숫자만이 아니었다. 경기를 앞둔 선수의 긴장, 승패가 갈린 뒤의 표정, 관중석을 가득 채운 함성까지 올림픽을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현장에서 태어난 만평은 서울 사무실에서 상상만으로 그린 그림과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선수의 땀 냄새를 맡은 펜끝과 함성의 진동을 들은 붓끝에는 현장의 온도가 스며든다. 같은 잉크라도 현장의 공기를 먹은 선에는 생명력이 있다.
당시 스포츠조선 신상돈 편집국장은 유 화백이 보내온 현장 만평을 일반 삽화처럼 작게 다루지 않았다. 그림이 가진 현장성과 가치를 알아보고 지면에 큼직하고 시원하게 배치했다. 유 화백은 지금도 그 판단을 고맙게 기억한다.
“크게 시원시원하게 써주신 것이 지금 생각해도 고맙습니다. 기획력과 감각이 뛰어난 편집국장이었어요.”
그림 크게 품어준 편집국장에 감사
작품은 작가 혼자 완성하는 것 같지만 독자에게 도착하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다. 현장에 사람을 보내는 결정, 원고를 기다려주는 데스크,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면을 내주는 편집자의 안목이 더해져야 한다.
그때는 마감을 맞추느라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세월이 흐른 뒤 그 이름을 다시 꺼내 고마움을 기록하는 일은 생애기록치유의 중요한 과정이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자신을 믿어주고 작품의 자리를 넓혀준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 화백은 자신이 열심히 그렸다는 사실과 함께, 누군가 그 그림을 크게 받아주었기에 독자에게 더 힘 있게 닿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빛나는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토샵 작업을 마친 뒤 회사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사고도 있었다. 카메라 안에 담긴 적지 않은 현장 자료까지 함께 사라졌다. 지금처럼 사진을 실시간으로 저장하거나 온라인 공간에 복사해두기 어려운 시대였다. 한 번 잃어버린 기록은 되찾기 힘들었다. 회사 장비를 잃어버렸다는 자책과 취재 자료를 복구할 수 없다는 허탈함이 컸다. 올림픽 현장을 뛰어다니며 모은 순간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듯했을 것이다.
카메라 분실 사고로 현장 자료 사라져
그러나 유 화백은 그 일로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현장으로 나갔고 다시 펜을 들었다. 카메라 속 사진은 사라졌지만, 직접 보고 느낀 장면은 그의 기억과 손끝에 남아 있었다. 기자는 취재수첩을 잃으면 기억을 더듬어 다시 쓰고, 화가는 그림을 잃으면 빈 종이 앞에 다시 앉는다. 기록하는 사람에게 상실은 멈춰야 할 이유가 아니라, 남은 기억을 더 단단히 붙잡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생애기록치유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카메라 분실은 지우고 싶은 실수로만 남지 않는다. 그 사건은 유 화백에게 기계에 담긴 기록보다 사람 안에 새겨진 기억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잃어버린 자료의 빈자리를 그의 펜이 다시 채웠다.
유환석 화백의 시드니올림픽 파견은 단순한 해외출장이 아니었다. 시사만화를 현장 취재 콘텐츠로 확장한 도전이었다. 경기 결과를 재치 있게 해설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장의 문화와 공기, 사람들의 표정까지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해 독자에게 전달했다.
폐지가 되지 않은 한 컷 만평
신문은 흔히 ‘역사의 초고’라고 한다. 그렇다면 만평은 그 초고의 여백에 남은 웃음과 한숨이며, 시대의 본질을 찌르는 짧은 메모다. 사진이 순간의 모습을 기록한다면 만평은 그 순간을 바라본 사람들의 마음까지 기록한다.
신문은 하루가 지나면 폐지가 된다. 그러나 좋은 만평까지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독자들이 “옛날 스포츠신문에서 보던 그 만화”라며 '헹가래'를 먼저 알아보는 것은 만평이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신문의 얼굴이었음을 보여준다.
생애기록치유는 성공의 장면만 골라 전시하는 일이 아니다. 웃지 못할 실수와 열악했던 환경, 잃어버린 것과 도움받은 일을 다시 꺼내어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업이다. 시드니의 육포 소동은 이제 웃음이 됐고, 무겁던 장비는 치열함의 증거가 됐다. 카메라 분실의 아픔은 다시 그릴 수 있는 용기를 일깨운 기억으로 남았다. 신상돈 편집국장의 과감한 지면 배치는 혼자라고 생각했던 길에도 자신을 믿고 밀어준 사람이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유 화백은 시드니에 금메달을 따러 간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노트북과 스캐너를 끌어안고 낯선 콘센트와 씨름하며, 현장의 숨결을 한 컷에 옮긴 그의 펜에도 보이지 않는 메달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메달의 이름은 ‘기록’이었다. 말이 막힌 곳에서는 그림으로 길을 냈고, 자료를 잃은 뒤에는 기억으로 다시 그렸다. 그렇게 남긴 선들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함성과 웃음을 독자에게 건네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