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끝으로 일군 치유의 삶] ⑧ “대~한민국!” 함성 속에서 유환석은 경기보다 사람을 그렸다
[기획 연재 - 유환석 화백의 생애기록 치유기] - 2002년 광화문 거리응원 현장에서 만평 소재 찾아 - 막대풍선 대신 스케치북 들고 시민의 표정과 몸짓 관찰 - 약 3주간 매일 연재한 '헹가래의 월드컵 엿보기' - “가장 빛났던 주인공은 하나가 된 국민이었다”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은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대와 서민의 삶을 따뜻한 풍자로 기록해 왔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2026 원로예술인 아카이브 전시지원’ 공모에 선정돼,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를 14일부터 25일까지 춘천예술마당 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10회 연재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생애기록 치유기’입니다. 유 화백의 성찰이 후배들에게는 작은 이정표가 되고, 독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따뜻한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2002년 6월, 광화문은 더 이상 서울 도심의 한복판이 아니었다. 빌딩 숲은 거대한 축구장으로 변했고, 붉은 티셔츠를 입은 수십만 시민은 모두 국가대표 응원단이 됐다.
“대~한민국!” 함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도심이 출렁였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깨를 걸었고, 골이 터지면 서로 얼싸안으며 울고 웃었다. 낯선 이와 나를 가르던 경계가 붉은 물결 속에서 잠시 사라진 여름이었다.
그 뜨거운 현장에 유환석 화백도 있었다. 당시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사만화 《헹가래》를 연재하던 그의 손에는 막대풍선 대신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다. 목청껏 응원하면서도 시민들의 표정과 몸짓을 놓치지 않았다.
온몸에 태극기를 두른 청년, 부모의 목말 위에서 손을 흔드는 어린이, 북을 치며 응원을 이끄는 붉은악마, 어느새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경기장 밖에도 수많은 주인공이 뛰고 있었다.
거리응원 속에서 만평의 주인공 만나
유 화백은 사람들의 열광만 보지 않았다. 환호 뒤에 담긴 간절함과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을 보았다. 만평은 책상에서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건져 올리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시사만화가는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남들과 다른 장면을 찾아야 한다. 축구 경기를 그린다고 반드시 공과 선수만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 화백의 눈은 골대 밖으로 향했다. 거리에서 함께 뛰고 환호하던 국민의 표정이 오히려 그에게는 더 큰 이야기였다.
그는 눈길을 끄는 응원 복장과 익살스러운 표정, 군중의 역동적인 몸짓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았다. 세계 각국 응원단의 독특한 분장과 개성을 표현한 캐리커처도 그렇게 태어났다. 얼굴에 국기를 그린 응원단과 ‘Reds!’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은 그의 펜 끝에서 월드컵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됐다.
함성이 식기 전에 다시 시작된 마감
“현장에 나가보면 기사나 방송 화면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 한마디 속에 만평의 실마리가 숨어 있지요.”
복잡한 사건을 한 컷으로 압축해야 하는 시사만화가에게 현장은 거대한 교과서였다. 거리의 웃음과 탄식, 작은 몸짓 하나가 때로는 긴 기사보다 정확하게 시대의 마음을 말해주었다.
경기가 끝나면 시민들은 여운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유 화백의 하루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됐다. 신문사로 돌아온 그는 광화문의 열기가 식기 전에 펜을 들었다.
머릿속에서는 붉은 물결과 함성, 거리에서 마주친 얼굴들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골라야 했다. 현장에서 받은 벅찬 감정을 한 장의 그림으로 바꾸는 또 다른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독자들 마음까지 그림에 담아
그의 월드컵 만평은 경기 결과를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한국의 4강 신화를 축구공과 숫자 ‘4’로 압축하고, 월드컵 트로피와 각국의 국기를 한 화면에 담아 세계인의 축제를 표현했다. 히딩크 감독의 익살스러운 캐리커처에는 국민의 통쾌한 마음을 실었다.
사진이 결정적 순간을 붙잡는다면 시사만화는 그 순간을 바라본 독자들의 마음까지 한 장면에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골 장면보다 시민의 환호가 많았고, 선수 못지않게 응원하는 국민이 크게 자리했다.
유 화백은 경기만 그린 것이 아니었다. 2002년 여름을 살아낸 사람들의 얼굴과, 그 얼굴들이 함께 만들어낸 시대의 표정을 그렸다.
매일 치른 '한 컷의 경기'...'헹가래의 월드컵 엿보기'
유 화백은 약 3주 동안 매일 새로운 월드컵 만평을 신문에 실었다. 매일 현장으로 나가 새로운 장면을 찾고, 다시 신문사로 돌아와 독자를 만날 한 컷을 완성했다. 그렇게 탄생한 연재가 '헹가래의 월드컵 엿보기'였다.
온 국민이 같은 경기를 본 만큼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시선이 필요했다. 전날의 환희에 기대어 다음 날의 만평을 그릴 수도 없었다. 경기가 계속되는 동안 마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찾아왔다.
그러나 당시의 고단함을 돌아보는 유 화백의 기억에는 피로보다 감사가 먼저 남는다. 시사만화가로서 국민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고, 그 감동을 자신의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 인생에서 가장 붉고 뜨거운 한 페이지
삶의 어떤 순간은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당시에는 현장을 뛰어다니고 마감과 싸워야 했던 바쁜 나날이었지만, 이제 돌아보면 그 시간은 유 화백의 예술 인생에서 가장 붉고 뜨거운 한 페이지였다.
생애기록치유는 아름다운 기억만 골라내는 일이 아니다. 치열했던 시간을 다시 바라보며 무엇이 자신을 견디게 했는지 발견하는 과정이다. 유 화백이 2002년의 만평을 다시 펼쳐보면 그림 속 시민들과 함께 젊은 날의 자신도 되살아난다. 거리의 작은 장면 하나도 놓칠까 눈을 빛내던 만화가, 함성이 식기 전에 신문사로 돌아와 빈 종이와 마주했던 자신이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광화문의 붉은 물결은 사라졌고 당시의 함성도 기억 속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유환석 화백의 그림 안에서는 태극기를 두른 청년과 목말을 탄 아이, 서로 부둥켜안은 시민들이 여전히 웃고 있다.
2002년 6월, 대한민국을 가장 높이 들어 올린 것은 승리의 기록만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의 기쁨까지 자신의 기쁨으로 받아들였던 마음이었다. 유환석 화백의 만평은 그날의 경기 결과보다 오래 남은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보여준다. 우리가 함께였던 순간의 얼굴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