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끝으로 일군 치유의 삶] ⑥ 10m 화폭에 불러낸 50년 인연, 그제야 보인 ‘혼자 산 인생은 없다’
[기획 연재 - 유환석 화백의 생애기록 치유기] - 어린 시절 가족부터 언론·만화계 인연까지 한자리에 - 수많은 얼굴로 완성한 ‘사람으로 그린 자서전’ - “나를 도와준 사람은 많은데 나는 누구를 도왔나” - 감사와 미안함을 다음 세대를 위한 다짐으로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은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대와 서민의 삶을 따뜻한 풍자로 기록해 왔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2026 원로예술인 아카이브 전시지원’ 공모에 선정돼,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를 14일부터 25일까지 춘천예술마당 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10회 연재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생애기록 치유기’입니다. 유 화백의 성찰이 후배들에게는 작은 이정표가 되고, 독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따뜻한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사람의 인생은 무엇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 날짜와 사건을 모아 연표를 만들 수도 있고, 오래된 사진을 차례로 붙여 앨범을 만들 수도 있다. 유환석 화백은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다. 자신의 70년 인생과 만화가로 살아온 50년 세월을 ‘사람의 얼굴’로 기록했다.
그의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길이 10m에 이르는 ‘기억 속의 얼굴들’이다. 긴 화폭을 따라가면 어린 시절의 가족과 친구, 학창 시절의 스승, 신문사 동료와 선후배, 언론·만화·문화예술계에서 만난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잠시 스쳐 간 사람도 있고, 한 시절을 함께 웃고 울며 건너온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초상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를 지나간 사람들의 초상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유환석 화백의 만인보(萬人譜)’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연도와 직함으로 쓴 이력서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로 쓴 자서전이다.
얼굴을 그리자 잊고 있던 추억 떠올라
작업은 1950~60년대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학창 시절과 청년기를 지나 강원일보와 스포츠조선에서 일하던 시간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2026년에 닿는다. 연도와 사건, 건물과 장소, 말풍선과 인물들이 10m 화폭 위에서 하나의 생애로 연결된다.
생애기록은 기억을 단순히 불러내는 일이 아니다. 흩어져 있던 기억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당시에는 별개로 보였던 만남들이 시간이 흐른 뒤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유 화백도 얼굴을 하나씩 그리면서 잊고 있던 장면들과 다시 만났다. 한 사람의 눈과 입을 그리면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몸짓을 더하면 함께 있었던 장소와 당시의 공기가 되살아났다. 얼굴 하나가 기억의 문손잡이가 되어 오래 닫혀 있던 시간의 방을 열어주었다.
작품은 거대한 기억의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하다. 한 사람의 생애가 한 줄기 강이라면, 화폭 속 얼굴들은 그 강으로 흘러든 크고 작은 지류다. 어느 물줄기도 혼자 바다에 닿지 못하듯, 한 사람의 삶도 수많은 인연 없이 완성될 수 없다.
몇 개의 선으로 되살린 한 사람
유 화백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정교한 초상화처럼 얼굴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 몇 개의 선으로 머리 모양을 그리고 눈과 입을 찍은 뒤,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몸짓이나 말 한마디를 보탠다. 신문 시사만화가로 반세기 동안 갈고닦은 ‘압축의 힘’이다. 긴 설명 대신 표정 하나, 자세 하나, 말풍선 하나가 그 사람의 성격과 당시의 상황을 불러낸다.
일부 인물은 주인공처럼 크게 등장하고, 일부는 화면 한쪽에서 조그맣게 웃는다. 그러나 그림의 크기가 인연의 크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화폭에 들어갔다고 더 소중하고, 미처 그리지 못했다고 덜 소중한 것도 아니다. 10m의 화면에도 다 담지 못할 만큼 그의 생애를 지나간 사람은 많았다.
한 사람을 그리면 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 그 얼굴을 보태면 뒤에서 몇 사람이 더 손을 흔들었다. 화폭에는 끝이 있지만 사람 사이의 인연에는 정해진 규격이 없었다.
곳곳에 담긴 유머는 작품을 무겁지 않게 한다. 당시에는 심각했던 사건도 세월이라는 체를 한 번 거치고 나면 웃음 섞인 추억이 된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던 한마디가 수십 년 뒤 더 선명하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오래된 서랍을 하나씩 열 듯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관람객도 자연스럽게 ‘내 인생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지’ 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꺼내게 된다.
“나를 도와준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유 화백은 전시를 준비하며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 “나를 도와준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내가 도와준 사람은 별로 없구나” 앞에 멈춰 섰다.
50년을 돌아보며 발견한 것은 자신의 성취보다 자신을 밀어준 손들이었다. 재능을 알아봐 준 스승이 있었고, 낯선 세상으로 이끌어준 선배가 있었다. 마감의 시간을 함께 견딘 동료와 작품을 기다려준 독자도 있었다. 혼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의 삶 곳곳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생애기록치유글은 아름다운 추억만 골라 적는 글이 아니다. 고마움을 미처 전하지 못한 사람, 더 잘해주지 못해 마음에 남은 사람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이다. 감사는 삶을 따뜻하게 하고, 미안함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바꾸게 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그곳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받은 도움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기 위해서다.
시대를 기록하던 펜이 사람을 기록하는 펜으로
‘기억 속의 얼굴들’은 유환석 한 사람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 스승과 동료, 선후배와 우연히 만난 사람까지, 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는 혼자 찍은 독사진보다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 훨씬 많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걸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돌아보면 넘어질 때 붙잡아준 손과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준 목소리가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유 화백의 50년 작품 세계를 상징한다. 신문 지면에서 권력과 사건을 풍자하던 펜이 이번에는 자신의 기억을 향했다. 시대를 기록하던 펜이 사람을 기록하는 펜으로 돌아온 것이다. 50년 동안 세상을 그려온 화백이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결국 ‘사람’이었다.
‘기억 속의 얼굴들’ 앞에서는 조금 천천히 걸어볼 만하다. 한 예술가의 50년을 보는 동안 우리 역시 자신의 삶을 지나간 얼굴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누구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으며, 이제 누구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가.
우리도 누군가의 기억 속 한 칸에 얼굴 하나를 남기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크게 그려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표정으로 기억되느냐일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