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끝으로 일군 치유의 삶] ⑤ “정정 만평이라도 그렸어야 했다” 50년 펜끝에 남은 후회
[기획 연재 - 유환석 화백의 생애기록 치유기] - 신문 보도 믿고 그린 유명 연예인 비리 의혹 - 몇 년 뒤 허위로 밝혀져 당사자에게 깊은 상처 - “명예회복에 힘 보태지 못한 것이 마음의 빚” - 잘못은 바로잡고 사람은 몰아세우지 않아 - 반성에서 더 깊어진 유환석의 ‘따뜻한 풍자’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은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대와 서민의 삶을 따뜻한 풍자로 기록해 왔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2026 원로예술인 아카이브 전시지원’ 공모에 선정돼,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를 14일부터 25일까지 춘천예술마당 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10회 연재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생애기록 치유기’입니다. 유 화백의 성찰이 후배들에게는 작은 이정표가 되고, 독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따뜻한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신문 만평은 한 컷으로 세상을 풍자한다. 독자는 잠시 웃거나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그 한 컷에 그려진 사람에게는 웃고 넘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펜을 든 사람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그 펜으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을 살펴야 할 책임도 함께 따른다.
50년 동안 시사만화를 그려온 유환석 화백에게도 그런 기억이 적지 않다.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공수래'와 '헹가래' 등을 연재하며 정치와 사회, 스포츠와 서민의 삶을 한 컷에 담았다. 현재 춘천예술마당 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에는 그의 성취뿐 아니라 시대와 부딪치며 지나온 고민의 흔적도 함께 놓여 있다.
생애를 기록한다는 것은 잘한 일만 골라 빛내는 작업이 아니다. 오래 마음에 걸렸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던 기억과 마주하고, 그때 하지 못한 말을 이제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유 화백에게는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그리지 못한 한 컷’이 있다.
항의 전화 앞에서 배운 펜의 책임
유 화백은 “생각보다 독자들의 항의는 많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만평의 내용이 독자 자신이나 가족, 주변 사람과 관련되면 상황은 달라졌다. “사실과 다르다”는 항의 전화가 걸려왔고, 어떤 이는 거친 말을 쏟아낸 뒤 그대로 전화를 끊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만평은 신문에 실린 기사에 근거해 그린다”고 차분히 설명했다. 시사만화가는 취재기자가 작성한 기사와 당일의 뉴스를 바탕으로 세상을 한 장면에 압축한다. 모든 사건을 직접 취재하고 확인하기 어려운 제작 구조에서 신문 보도는 만평의 가장 중요한 근거였다.
그러나 기사의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었고 독자의 지적이 맞는 것으로 확인되면 곧바로 사과하고 만평도 수정했다. “틀린 것은 고치는 게 맞다”는 생각은 50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그의 원칙이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이미 신문에 이름과 작품을 내건 사람에게 수정은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유 화백은 체면보다 사실을 앞에 두려고 했다. 틀린 선 하나를 지우듯, 잘못된 판단도 확인되는 순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문에 실린 기사 믿고 그린 만평
그런데도 지금까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일이 있다. 한 유명 연예인의 비리 의혹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였다. 유 화백은 당시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근거로 만평을 그렸다.
일부 독자들은 “직접 확인 취재도 하지 않고 만평을 그리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당시 유 화백은 신문 보도를 바탕으로 만평을 그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미 보도된 기사를 시사만화의 언어로 해석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뒤 그 의혹은 허위로 밝혀졌다. 이미 당사자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뒤였다. 기사는 지나갔지만, 그 기사를 바탕으로 그린 만평도 상처에 한 줄을 보탠 셈이 됐다. 유 화백은 그 일을 변명하지 않았다.
“그때는 정정 만평이라도 한 편 그려 명예회복에 힘을 보탰어야 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오래 반성했습니다.”
그는 당시 보도를 믿고 그렸다는 말로 자신의 책임을 덮지 않았다. 잘못된 사실이 밝혀진 뒤 침묵했던 것까지 자신의 아쉬움으로 받아들였다. 비판할 때 펜을 들었다면, 명예를 회복해야 할 때도 같은 펜을 들었어야 했다는 반성이다.
“명예회복에 힘 보태지 못해 죄송”
그가 오래 품어온 후회는 만평을 잘못 그렸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이 바로잡힌 뒤에도 정정 만평을 그리지 못했다는 점이 더 아프게 남았다.
신문은 다음 날이면 새 지면으로 바뀐다. 하지만 신문에 실린 사람의 상처까지 다음 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보도는 크게 나가고 정정은 작게 처리되거나, 사람들의 기억에는 처음 받은 인상만 남기도 한다. 만평은 그림이어서 그 인상이 더욱 선명하게 각인될 수 있다.
유 화백의 마음속에는 그때 그리지 못한 정정 만평이 오랫동안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그 기억을 글로 꺼내놓는 것은 과거를 지우거나 자신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뒤에 오는 언론인과 시사만화가에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기 위해서다.
생애기록치유는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오래 묻어둔 후회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경험에서 다음 삶의 원칙을 찾아내는 일이다. 사과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다음 사람의 상처를 줄이는 교훈은 될 수 있다.
“너무 세게 말고 살살 조지면 안 되겠느냐”
신문사 안에서도 만평을 둘러싼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독자들의 항의가 이어지면 데스크가 찾아와 “이번에는 조금만 순하게 가자”, “너무 세게 하지 말고 살살 조지면 안 되겠느냐”고 웃으며 수정 의견을 전하곤 했다. 유 화백은 대부분 “그러죠” 하고 고쳐줬다.
“굳이 갈등이나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싸우는 성격도 아니고요.”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조직 안에서 함께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다고 풍자의 칼날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비판해야 할 권력과 제도에는 날카롭게 다가가되, 사람을 불필요하게 모욕하거나 막다른 곳으로 몰아세우지 않으려 했다.
풍자는 세게 말한다고 반드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짧은 웃음과 비유 하나가 고함보다 오래 남는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목적이 있는 공격과, 잘못된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풍자는 달라야 했다.
‘따뜻한 풍자’는 반성에서 깊어졌다
유환석 화백의 시사만화가 오랫동안 ‘따뜻한 풍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것은 그림의 기교 때문만은 아니다. 권력을 향해서는 날카로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는 온기를 남기려 했기 때문이다. 잘못이 확인되면 고치고, 비판하되 상대의 존엄까지 짓밟지는 않으려 했다.
그가 후배와 후세에 남기고 싶은 것도 완벽한 기록자가 되라는 주문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틀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알게 된 뒤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이다. 처음의 비판만큼 크게 바로잡고, 상처 입은 사람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펜에는 비판할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 그은 선 위로 다시 돌아갈 의무도 있다. 유 화백은 오래전 그 만평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와서 당시의 지면으로 돌아가 정정 만평을 그릴 수도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후회를 숨기지 않고 다음 세대 앞에 내놓았다.
그 고백은 늦게 그린 또 하나의 정정 만평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한 컷은 바꿀 수 없어도, 다음 한 컷은 다르게 그릴 수 있다.
<계속>
[펜끝으로 일군 치유의 삶 - 유환석 화백의 생애기록 치유기]
① “계속 만화를 그려라”…꾸중 대신 건넨 격려, 소년의 인생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