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끝으로 일군 치유의 삶] ④ “만평은 앉아서 그리는 게 아니야”...‘춘천 촌놈’ 끌고 다닌 선배의 속뜻

[기획 연재 - 유환석 화백의 생애기록 치유기] - 유환석 화백, 정중헌 국장과의 인연 공개 - “세상 사람들 만나고 시대의 표정 읽으라” - 대학로·신촌·압구정서 문화예술계 인사 소개 - 편집회의에서는 “매일 히트작 낼 순 없다” 감싸 - “더 넓은 세상 보여준 보호자 같은 분”

2026-08-21     신향식 칼럼니스트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은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대와 서민의 삶을 따뜻한 풍자로 기록해 왔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2026 원로예술인 아카이브 전시지원’ 공모에 선정돼,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를 14일부터 25일까지 춘천예술마당 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10회 연재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생애기록 치유기’입니다. 유 화백의 성찰이 후배들에게는 작은 이정표가 되고, 독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따뜻한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365 신향식칼럼니스트 =  “오늘은 또 어디를 가는 겁니까?”

“만화는 앉아서 그리는 게 아니야!”

시사만화가 유환석 화백의 데뷔 50주년 기념전 '따뜻한 풍자'에 내걸린 대작 ‘기억 속의 얼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면 웃음이 터지는 장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정중헌 국장(1990년대 초 당시 스포츠조선 문화예술부장)이 한 손으로 유 화백의 옷깃을 잡고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간다.

그 옆에는 ‘서울의 문화예술 관광’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끌려가는 유 화백은 펜을 든 채 눈이 빙글빙글 돈다. 마치 “오늘은 또 어디를 가는 겁니까”라고 묻는 표정이다. 그 우스꽝스러운 한 장면에는 한 젊은 만화가를 키우려 했던 선배 언론인의 마음이 숨어 있다. 이 그림에 담긴 사연이 궁금해 유 화백에게 카카오톡으로 물었다.

생애를 기록한다는 것은 지나간 사건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의 마음을 오늘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일이다. 당시에는 그저 정신없이 끌려다닌 하루였지만, 반세기가 흐른 뒤 돌아보니 그 손길에는 후배의 세계를 넓혀주려는 선배의 뜻이 담겨 있었다.

대학로 연극판으로, 신촌과 압구정으로

“정중헌 국장께서 어디를 주로 데리고 다니셨나요? 왜 데리고 다니셨대요?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지금 감사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다음 날 아침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제법 긴 답변이 와 있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온 유 화백에게 당시 서울 문화예술계는 낯선 세계였다. 정 국장은 그런 후배를 대학로 연극판으로, 신촌과 압구정으로 데리고 다녔다.

배우 이순재를 비롯해 가수 조영남, 연예인 김현경 등 문화·연예계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했다. 미술과 영화, 연극, 시사 이야기도 틈틈이 들려줬다. 유 화백의 표현을 빌리면 “강원도 촌놈인 내가 모르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세상을 보여준 셈이다.

정 국장이 보기에 시사만화가의 교과서는 책상 위에만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의 얼굴과 말투, 거리의 풍경, 공연장의 공기와 예술가들의 생각까지 직접 보고 들어야 한 컷의 만평도 깊어질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만화는 앉아서 그리는 게 아니야”라는 말은 단순히 밖으로 나가라는 주문이 아니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시대의 표정을 읽으라는 선배의 가르침에 가까웠다. 만평의 선은 책상에서 그어도, 그 선에 담길 표정과 체온은 사람들 속에서 얻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배우 이순재·가수 조영남 등과 연결

정 국장이 여러 사람을 소개한 것은 단지 인맥을 넓혀주려는 뜻만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 그들의 언어와 생각을 듣고, 익숙한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시야는 혼자 힘으로만 넓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먼저 세상을 경험한 사람이 낯선 문을 열어주고, 그 문턱을 함께 넘어가 줘야 한다. 유 화백에게 정 국장은 서울 문화예술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 사람이었다.

그 시절 유 화백은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로와 신촌, 압구정을 오가며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공연장의 공기와 거리의 풍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밑그림으로 쌓였다. 그리고 훗날 수많은 시사만화 속 인물과 장면으로 되살아났다. 지나간 삶을 돌아보면 당시에는 무관해 보였던 만남들이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 지난 시간은 추억을 넘어 감사의 기록이 된다.

정 국장은 유 화백에게 세상을 보여준 ‘문화 안내자’인 동시에 편집국 안에서는 든든한 ‘보호자’이기도 했다. 편집회의에서 유 화백의 만평을 놓고 비평이 나오면 정 국장은 그의 편에 섰다.

편집회의 비평 때는 “매일 히트작 만들 순 없다” 변호

“논설이나 칼럼은 여러 사람이 나눠 쓸 수 있지만 만평은 혼자 그립니다. 매일 히트작을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취지로 후배를 감싸줬다고 한다. 하루 한 컷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시사만화가의 고독과 부담을 알아준 말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유 화백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대목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 대목이 제일 좋았는데, 마치 보호자처럼 해 주셨습니다.”

웃음이 섞인 유 화백의 표현 뒤에는 오랜 고마움이 묻어난다. 문화예술의 세계로 후배의 손을 잡아끌고, 때로는 비평의 바람 앞에서 방패가 되어준 선배였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줬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그 믿음은 마음속 안전망이 된다. “매일 잘할 수는 없다”는 정 국장의 말은 실패를 눈감아준 것이 아니라, 한 번의 결과로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 않겠다는 보호의 언어였다.

사람은 자신을 지켜준 사람을 떠올릴 때 오래된 상처만이 아니라 그 시절을 견딜 수 있게 해준 힘도 함께 발견한다. 도움받았던 기억을 다시 꺼내 감사의 이름을 붙이는 것, 그것 역시 생애기록치유의 중요한 과정이다.

끌려가던 손이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그래서 전시장 그림 속 정 국장의 손에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유 화백의 모습은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당시에는 눈알이 헤롱헤롱할 만큼 힘겨운 ‘서울 문화예술 관광’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손은 결국 한 젊은 만화가의 시야를 더 넓은 세상으로 끌어낸 손이었다.

“국장님, 50년 공부했으니 이제 졸업 검사해 주시죠.”

50년 동안 시사만화가의 길을 걸어온 유환석 화백은 그 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반세기가 흐른 뒤, 자신의 만인보 한구석에 그 시절의 선배를 다시 불러냈다. 후배를 키우려 했던 선배의 안목과 자신을 품어준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후배의 마음. 웃으라고 그린 한 컷인데 오래 들여다보면 슬며시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다.

한 사람의 생애는 혼자 완성한 작품이 아니다. 길을 열어준 사람, 넘어질 때 감싸준 사람,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준 사람의 손길이 겹쳐져 비로소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유 화백이 ‘기억 속의 얼굴들’에 정 국장을 그려 넣은 것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이제라도 “그 손의 뜻을 알겠다”고 전하는 뒤늦은 감사이기도 하다.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준 손길에 감사

전시장에서는 그림 속 장면이 거꾸로 이어질 법하다. 그때는 정 국장이 ‘강원도 촌놈’을 서울 문화판으로 끌고 다녔다면, 이제는 유 화백이 이렇게 말하며 정 국장을 자신의 50년 속으로 이끌 차례다.

“국장님, 50년 공부했으니 이제 졸업 검사 한번 해주시죠.”

보호받으며 자란 후배는 언젠가 또 다른 후배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받은 믿음과 기회를 다음 사람에게 건네줄 때, 한 사람의 고마운 기억은 다음 세대의 길이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