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끝으로 일군 치유의 삶] ③ 퇴근해도 머릿속은 마감 중이었다

[기획 연재 - 유환석 화백의 생애기록 치유기] - '헹가래' 5000여 회, '공수래' 2000여 회 연재 - 뉴스에서 소재 찾고 스케치·먹선까지 ‘하루 한 컷’ - 신문사 퇴직 뒤에도 붓 놓지 않고 더 왕성한 창작 활동

2026-08-20     신향식 칼럼니스트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은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대와 서민의 삶을 따뜻한 풍자로 기록해 왔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2026 원로예술인 아카이브 전시지원’ 공모에 선정돼, 데뷔 50주년 특별전 '따뜻한 풍자'를 14일부터 25일까지 춘천예술마당 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10회 연재는 시사만화가로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생애기록 치유기’입니다. 유 화백의 성찰이 후배들에게는 작은 이정표가 되고, 독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따뜻한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시회장에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빈 종이 한 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시계는 마감 시간을 향해 가는데 그려야 할 한 컷은 아직 머릿속에도 없다. 정치·경제·사회·스포츠 기사를 다시 훑어보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되풀이해서는 만평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아는 사건에서 아무도 보지 못한 장면을 찾아야 한다. 시사만화가 유환석의 하루는 그렇게 빈 종이와의 눈싸움으로 시작됐다.

독자들은 신문을 펼쳐 완성된 만평 한 컷만 본다. 잠시 웃거나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면으로 넘어간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시사만화가는 몇 시간, 때로는 하루 종일 생각한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누구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볼 것인가. 어디까지 날카롭게 찌르고, 어디에서 웃음으로 받아낼 것인가. 한 컷은 작았지만 그 안에 들어가야 할 세상은 너무 컸다.

화가의 출근은 뉴스를 읽는 일부터

유환석 화백은 강원일보와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에서 시대의 흐름과 서민의 삶을 그려왔다. 스포츠조선의 '헹가래'를 5,000여 회, 강원일보의 '공수래'를 2,000여 회 연재했다. 민주화와 외환위기, 올림픽과 월드컵, 정치권의 갈등과 서민들의 한숨이 그의 펜을 거쳐 한 컷의 기록으로 남았다.

스포츠조선 재직 시절 그의 일과는 그림보다 뉴스가 먼저였다. 아침이면 정치·경제·사회면은 물론 스포츠 기사와 방송 뉴스까지 두루 살폈다. 사건의 크기만으로 소재를 정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오늘 독자들은 무엇 때문에 답답해할까. 어디에서 웃고, 무엇에 고개를 끄덕일까.’

그 질문이 만평의 출발점이었다. 주제가 정해졌다고 곧바로 펜을 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같은 사건을 어떤 사물에 빗댈지, 어느 장면에서 반전을 만들지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구도를 세웠다가 허물었다. 정치인의 표정 하나, 말풍선 속 단어 하나에 따라 풍자의 방향이 달라졌다.

만평은 긴 기사를 짧게 줄인 그림이 아니다. 복잡한 사건의 껍질을 벗겨 그 안의 핵심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때로는 긴 논설보다 모자 하나, 빈 의자 하나, 비뚤어진 미소 하나가 더 많은 말을 했다.

아이디어는 퇴근 시간을 몰랐다

시사만화가의 노동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디어 구상은 사실상 하루 24시간 계속됐다. 식사하면서 들은 옆자리의 대화가 소재가 되고, 출퇴근길에 본 시민의 표정이 등장인물의 얼굴이 됐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내일은 무엇을 그리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화가의 몸은 퇴근해도 생각은 편집국에 남아 있었다.

아이디어가 잡히면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 말풍선의 문구, 화면의 빈자리까지 다듬은 뒤 먹선으로 다시 살려냈다. 그러나 먹선을 그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선 하나가 너무 세면 사람이 미워 보였고, 말 한마디가 길면 풍자의 맛이 사라졌다. 완성한 원고를 바라보다 다시 지우고 고치는 일도 흔했다.

더구나 시사만화에는 기다려주는 시간이 없었다. 스포츠조선의 가판 마감이 낮 11시 무렵이던 시절에는 아침 편집회의가 끝나는 순간부터 시계와의 경주가 시작됐다. 소재를 고르고, 비유를 찾고, 그림을 완성해 제작에 넘길 때까지 허비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만평 자리를 비워둘 수도 없었다. 시사만화가에게 “오늘은 영감이 오지 않았다”는 말은 결근 사유가 되지 못했다.

마감 뒤 큰 사건 터지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

겨우 원고를 끝냈는데 큰 사건이나 속보가 터지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다. 방금 완성한 그림이 몇 분 만에 ‘어제의 만평’이 되는 세계였다. 세상이 방향을 틀면 펜도 즉시 방향을 바꿔야 했다. 마감은 화가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뉴스는 휴가 날짜를 피해 오지 않았다.

“매일매일 하는 게 힘들었지요. 휴가라고 누가 대신 그려줄 사람도 없잖아요.”

유 화백이 돌아본 시사만화가의 일상이다. 오늘 한 컷을 잘 그렸다고 내일의 아이디어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치 숙제를 마치면 다음 날 다시 하얀 종이가 기다렸다. 그는 그 일을 가족의 끼니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비유했다. 오늘 밥상을 잘 차렸다고 내일 밥상이 저절로 차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헹가래' 5,000여 회는 단순히 그림 5,000장을 뜻하지 않는다. 세상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가장 적절한 비유를 찾아낸 생각의 노동이 5,000번 반복됐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독도 있었다. 논설위원은 각자의 전문 분야를 나눠 맡을 수 있지만, 시사만화가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스포츠를 혼자 넘나들어야 했다. 웃음을 만들어야 했지만 정작 작업하는 사람은 웃을 틈이 없을 때도 많았다.

5000번 반복한 ‘생각의 노동’

그러나 유 화백은 그 고된 시간을 원망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자신의 한 컷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었다. 누군가 그의 그림을 보고 웃었고, 답답했던 마음을 잠시 풀었으며, 때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교감이 다음 날 다시 빈 종이 앞에 앉게 했다.

하루가 지나면 신문은 새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날 사람들의 웃음과 한숨을 담은 만평은 시대의 표정으로 남았다.

신문사에서 퇴직한 뒤 그의 생활은 오히려 더 바빠졌다. 정해진 편집국으로 출근하지 않을 뿐, 세상을 읽고 그리는 일에서는 물러나지 않았다. 주간조선 등 다른 매체에 '헹가래'를 기고하며 정치와 사회, 민생 현안을 만평에 담는다. 전시와 공공미술, 일러스트레이션과 후배 교육으로도 작업의 영역을 넓혔다. 직장에서는 퇴직했지만 창작에서는 은퇴하지 않은 셈이다.

젊은 시절에는 마감이 그를 책상 앞으로 불러들였다면, 지금은 그리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펜을 들게 한다. 조직의 시간이 끝난 자리에 작가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에게 은퇴는 붓을 놓는 일이 아니라, 남이 정해준 지면에서 벗어나 자신의 화폭을 더 넓히는 일이었다.

‘퇴직’은 했지만 펜은 은퇴하지 ‘현역’ 중

유 화백의 50년은 창의성이 번쩍이는 영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번의 기발한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날 다시 세상을 살피는 태도였다.

후배들에게 그가 남길 수 있는 말도 거창하지 않다. 아이디어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답이 보이지 않아도 빈 종이 앞을 지키라는 것이다. 좋은 만평은 손끝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보고, 깊이 생각하고, 끝까지 고친 시간 속에서 태어난다.

오늘도 그의 책상에는 새로운 종이가 놓인다. 수천 장을 그린 원로에게도 빈 종이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그러나 그는 다시 뉴스를 읽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펜을 든다. 시계는 또다시 마감을 향해 가고 있다. 그의 생각은 아직 현역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