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4)천지신명이 흠모한 철쭉꽃 여신 수로부인
[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3)도깨비의 원조 비형랑과 비형랑 노래 부적 이어서
사랑노래 속에 담긴 벽사의 주문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바야흐로 청룡의 해를 맞이하여 용왕의 아들 처용과 결혼한 ‘처용의 아내’에 초점을 맞춘 노래로 시작한 삼국유사. 두 번째로 진지왕과 복사꽃 새악시 ‘도화녀’가 만나 벌이는 한 치 양보없는 사랑의 기준을 두고 벌인 기 싸움 노래, 그것이 주 내용일 것 같았지만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귀신 쫓는 비범한 반인반신 ‘비형랑’이 태어난 것이 결론. ‘도깨비왕자’ 또는 ‘도깨비형’이 삿된 여우귀신 길달을 다스리고 귀신들을 거느려 백성들을 위한다. 아버지 진지왕도 4년 짧은 왕 노릇으로 못 다한 일이다. 백성들은 ‘비형랑의 노래’를 불러 재앙을 쫓는다.
이렇게 삼국유사 인물들은 얼핏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 백성들을 위한 ‘벽사(辟邪)’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처용과 아내는 역병을 주관하는 역신을 물리쳤으며 비형랑은 도깨비의 원조로 삿된 귀신들을 혼내주고 다스려 백성들이 그 이름을 써 붙이면 얼씬도 못 하게 하였다.
수로수로 수로부인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이번에는 사랑가와 백성의 노래 둘 다 실려있는 흔치 않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터키는 지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이다. 곧 철쭉의 계절이 찾아올 것이다. ‘철쭉’하면 생각나는 절대미인 수로부인이 있다. ‘벼랑의 철쭉꽃을 바치는 노래’ 곧 ‘헌화가’의 주인공이자 바다 용왕을 겁박하는 ‘해가’의 주인공, 신라 성덕왕 시대를 살았던 순정공의 부인 되시겠다.
무려 ‘향가 헌화가’와 한시 ‘해가’의 두 노래의 주인공은 맡은 수로부인은 유부녀. 외간남자들의 구애 속 두 노래가 현장에 울려 퍼질 때 함께 있던 남편 이찬 김순정은 누구일까.
남편이 있건 말건 개의치 않는 수로부인과 천지신명의 연쇄 납치 사건은 어찌 보면 스릴러이다.
시작은 벼랑의 철쭉꽃을 따다 바칠 남성을 찾는 것으로 수로부인이 발단을 일으키지만 사단은 바다의 신 용왕이 수로부인을 용궁으로 납치를 하는 데서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문제는 수로부인 있는 곳에는 그를 대동한 무리들과 마을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것이다. 천길 벼랑의 철쭉꽃을 꺾어오라니 누가 목숨을 걸고 유부녀의 청을 따르겠는가.
다음엔 바다의 용왕이 용궁으로 수로부인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져 구출해내는 일이 펼쳐진다. 이렇게 트러블 메이커 퀸이 된 수로부인은 단 두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산에 가면 산신이 납치, 연못에 가면 연못의 신이, 온갖 신들 곧 천지신명이 수로부인을 보기만 하면 납치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수로부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과 상대해 그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거나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큰일났다고 펄펄 뛰는 건 남편과 그의 신하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수로부인 구출 작전에 나서고 ‘말의 힘이 쇠도 녹인다’는 진리로 구출에 성공한다는 스토리텔링.
도대체 수로부인의 그 담대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왜 천지신명은 수로부인을 보기만 하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인가. 왜 노옹은 수로부인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철쭉을 꺾어다 바치고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죽을 힘을 다해 중구삭금(衆口鑠金)을 실현해 수로부인을 구출하는가. 단지 자용(姿容) 절대의 미인, 예뻐서라고?
이것이 사실일까. 남편 강릉태수 순정공은 실존 인물일까. 그들의 딸은 성덕대왕신종보다 더 큰 황룡사 종을 주조했던 경덕왕의 왕비 삼모부인이라는 것을 아는 이 얼마나 될까. 조목조목 눈여겨 볼 일이다. 신기하게 삼국유사에 나온 한 사람을 주목하다 보면 의외의 인물들이 감자 줄기에 달린 감자들처럼 주렁주렁 달려 나온다.
성덕왕 때 일어난 일이지만 순정공은 그의 두 아들 효성왕과 경덕왕 때까지 기록이 나타나고 있고 부부의 딸은 경덕왕의 왕비 삼모부인이 된다. 당시 신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왕의 일도 알아야 한다.
삼국유사 속 수로부인
그러면 본격적으로 706년경 철쭉꽃이 흐드러지던 어느 봄날로 떠나 보자.
경주에서 강릉으로 부임하는 도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는 순정공과 수로부인 일행. 곁에는 돌로 된 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두르고 있고 그 천길 낭떠러지 위에 문제의 철쭉꽃이 만발해 있다.
자태와 용모가 절대적인 수로부인, 그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을 찾는다. 아무도 위험해 나서지 못할 때 암소를 끌고 길 가던 노인이 그 꽃을 꺾어 와 노래까지 지어 바치는 것이 아닌가.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이러했다.
자줏빛 바위 끝,
잡은 손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이 하시어든
꽃을 꺾어 드리옵니다.
그 노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단지 동네 지리를 잘 아는 촌로인 것일까. 그러나 그 노래는 젊은 기개로 가득 찬 구애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이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게다가 남편이 버젓이 동행하고 있고 그의 직책이 강릉태수라는 벼슬아치인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가히 도발이라 할 만하다.
이곳이 현재 어디쯤일까가 지자체의 관건이다. 강릉태수로 가는 길이 소풍처럼 느껴지고 이쁜 꽃을 꺾어 가지고 싶을만큼 설렌다면 어쩌면 부임하는 첫날이나 그즈음일지도 모르겠다.
먼저 수로부인 헌화가에 대한 답가를 들어보자.
수로부인의 노래
저 멀리 아주 높이
봄처녀 제 오시네
한 다발 꽃분홍 철쭉이 나를 부르네
철쭉꽃 피어 겨울 동장군 물러가네
아프고 괴로웠던 추운 시절 잊게 하네
마른 마음 물오르고 가물었던 겨울
새로이 푸른 봄(靑春) 피어나네
암소끌고 오신 이여
헌화 그 정성으로 올해 농사 가물지 않도록
천지신명이여 굽어 살피소서
실제 철쭉에는 약초로 해독작용과 항산화로 생기를 돋게 하는 효능이 있다 한다. 수로부인은 이 꽃으로 남편의 부임지인 강원도가 가뭄에 시달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곳 사람들을 위해 천지신명께 제사라도 지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찬 김순정은 진골만이 할 수 있는 벼슬이다. 강원도의 민심을 위무하러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수로부인은 그 남편에 걸맞는 능력과 매력, 미모를 겸비한 자용절대 여인이어야 한다. 아니 남편은 그저 수로부인을 거드는 조연으로 설정된 삼국유사의 행간의 뜻을 읽어야 한다.
용왕의 납치와 바다노래(海歌)
그러므로 헌화가와 같은 도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일 한 번의 일화로 그쳤다면 수로부인이 ‘자용절대(姿容絶代)’의 칭호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철쭉에 노래까지 선사 받은 수로부인, 그 후로 이틀 동안 편하게 강릉으로 가는 행차에 이번에는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범한 노인 정도가 아니라 바다의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납치해 간다. 순정공이 쫓아가다 넘어지면서 발을 굴러봐도 소용없는 일. 그러자 또 다른 노인이 해결사로 나타난다. ‘중구삭금(衆口鑠金), 여러 입이 쇠를 녹인다’는 말이니 경내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언덕을 두드리면 용도 두려워하여 부인을 도로 내놓을 것이라 하였다. 그 노래가 ‘용아, 용아’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거북아, 거북아’로 시작된다.
해가(海歌)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인 납치한 죄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
김수로왕이 탄생할 때 부른 ‘구지가’와 거의 같은 버전이다. ‘수로’ 대신 ‘머리’를 내놓고 ‘납치’를 들먹인 정도의 차이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겹의 상징이 맞물려 있다.
첫째, ‘수로부인(水路夫人)’과 ‘수로왕(首露王)’의 이름이 겹친다. 한자는 다르지만 우리 말로는 동음동의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비슷한 말로 ‘수리’가 있다. 삼국유사 문무왕 조에 ‘문무왕의 서제 ‘수레공(車得公)’의 이름을 스스로 무진주 안길에게 단오(端午)라고 소개하는데 신라 말로 단오를 술의(車衣)라고 한다 하였다.’ ‘車衣’는 향찰식 표기로 ‘수레’를 뜻하는데 당시 발음은 ‘술의>수릐’에서 수레로 변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수로, 수릉(首陵), 수릐, 수리, 술의(戌衣)’ 등은 모두 꼭대기, 정수리, 태양 등 높고 강하고 신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둘째, 거북이 토템이나 바다와 관련된 상징일 수 있다. 처용의 가면이 역신을 물리치는 부적이 되고 비형랑 노래가 귀신을 물리치듯 김수로왕의 거북이 노래도 또한 비슷하게 개사를 해 주문으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라는 말이다. 옛 어른들이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짓 하지 말라는 말도 이 말과 다르지 않다. 인터넷세상 댓글 시대가 된 뒤로는 ‘악플’이 손가락질에 해당된다. 이로 인해 상처 입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무심코 던진 악의적인 한 마디에 사람들은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나 용왕의 유부녀 납치 같은 잘못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것이 또한 ‘여론’인 것이다. 중구삭금에서 유래된 손가락질, 악플, 여론을 되새겨 보게된다.
삼국시대의 중첩되는 상징들
그리하여 구출된 우리의 수로부인, 남편 순정공에게 용궁을 다녀온 소회 보고는 고작 바닷속 칠보궁전과 음식의 맛과 미묘한 향기뿐…. 전혀 납치에 대한 두려움이나 구출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없이 오히려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한 수로부인을 그저 좋아하고 떠받드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방임형의 남편 순정공의 태도는 마치 처용이 역신과 잠자리를 한 부인을 보며 처용가를 노래하고 춤추던 태도가 연상된다.
당시 신라의 풍속은 서로의 배우자에게 관대했던 것일까. 그 후에도 수로부인은 깊은 산 커다란 못을 지날 때마다 번번이 신들에게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백제 무왕이 된 서동의 출생이 떠오른다. 서동은 과부였던 어머니가 남쪽 못의 용과 관계하여 낳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용신과의 관계로 수로부인이 용과 관계하여 낳은 딸 삼모부인을 용녀로 보는 설을 낳기도 한다.
수로부인의 이러한 일화들은 미모로 인한 단순 납치일까. 그녀도 심정적으로 동조했을 만한 전략 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까. 신라의 ‘화랑세기’를 보면 ‘미실’(?-609?)은 진흥왕을 비롯하여 동륜태자, 진지왕, 진평왕에게 자신의 미모를 통한 ‘색공’으로 섬기며 왕비를 배출하는 대원신통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 노릇을 하였다. 미실이 왕들과의 관계를 통해 대원신통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면, 수로부인은 신격의 존재들과의 접촉에서 차원이 다르지만 미실과 상통하는 신령함이나 권력을 쥐게 되지는 않았을까.
수로부인은 범상한 벼슬아치의 부인이 아니라 신과 대등하게 수작하는 신격의 여인이다. 다음에는 좀 더 자세히 수로부인의 딸과 남편 순정공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수로부인의 위상을 가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