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정 대사의 미국 서부 여행스케치](7) 현란한 태양빛 마술사 앤티로프 캐년
- 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운 예술작품, 말발굽 밴드와 앤티로프 캐년
인터뷰365 장시정 칼럼니스트 = 9월 19일이다. 그랜드 캐년 일대를 돌아보는 그랜드 서클 투어를 떠난지 4일차다. 카옌타 시내 숙소를 떠나 160번 도로를 타고 어제 오던 길로 다시 내려오다가 98번으로 갈아타고 페이지(Page)로 왔다. 여유있게 왔는데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우선 '말발굽 밴드(Horseshoe Bend)'부터 보았다. 입장료는 차당 10불을 받았다. 이 밴드는 콜로라도강의 곡류(meander)에 말발굽 처럼 솟아있다. 크게 보면 그랜드 캐년의 동쪽 림(rim)에 위치한다.
말발굽 밴드의 위용
주차장에서 1㎞ 남짓 걸어가니 말발굽 밴드의 위용이 드러났다. 협곡의 높이가 300m 정도인데 생각보다 웅장하다. 아래로 콜로라도 강이 유유히 굽이쳐 흐르는데 강 위에 떠있는 보트가 영낙없이 일엽편주다.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샷을 찍기 위해선지 난간이 없는 바위 위로 올라가 포즈를 취한다. 이 대열엔 인종 구분이 없는듯 하다. 서양 사람들, 인도 사람들에다 우리 동포는 물론 평소 소심해 보였던 일본 아가씨들까지 너도나도 위험해 보이는 절벽을 뒤로 하고 두팔을 벌린다.
페이지 시내의 한식당에서 점심을 했는데 식당주인인 한국분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이곳 자치구역에는 나바호족 대통령도 있는데 일년에 한번 연방대통령을 만난다고 한다. 페이지 도시를 통채로 연방정부에 빌려주고 전기를 무상으로 공급 받으며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똑같은 나바호족 자치구역인 카엔타보다 시내가 더 깨끗하고 짜임새 있게 보였다. 나바호족 가이드는 자신들의 자치구역이 버지니아주보다 크다고 했는데 거주 인구를 물어보니 선뜻 대답을 못한다.
빛의 마술사 앤티로프 캐년
오후에는 앤티로프(Antelope) 캐년 투어를 갔다. 상부(upper) 캐년과 하부(lower) 캐년 두 곳이 있는데 나는 상부 캐년을 택했다. 하부 캐년은 평평한 상부 캐년과 달리 높낮이가 있는데, 빛을 많이 받아서 사진을 찍으면 오렌지 붉은 색조(orange glow)가 상부보다 강하게 나온다고 한다.
앤티로프 캐년까지는 페이지 시내에서 오픈카로 갔다. 총 투어 시간이 1시간 45분으로 이중 반 정도는 현장까지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현지인인 나바호 부족 사람이 운전도 하고 가이드도 하는데 포장도 안된 도로 위로 어찌나 빨리 차를 모는지, 손잡이도 없고 오직 안전벨트에만 의지해서 가는데 약간의 공포심이 들 정도였다. 노약자는 피해야 할 것 같다.
캐년이라지만 이건 마치 동굴같았다. 천정이 약간만 찢어져 있다. 그래서 슬롯 캐년(slot canyon)이라 하는 모양이다. 가만보니 어제 본 모뉴먼트 밸리의 반대 현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모뉴먼트 밸리는 바깥쪽이 깎여나가면서 안쪽이 남았고 이곳 앤티로프 캐년은 안쪽이 깎여 나가면서 바깥쪽이 남았다.
가이드는 어두컴컴한 캐년 안을 걸어가면서 내부 바위 형상이 동물 모양으로 생긴 것 등을 설명해 주면서 사진 찍을 곳을 가르쳐 준다. 투어 참가자들의 사진기를 직접 건네 받아서 대신 찍어 주기도 했다. 어떤 기술인지 붉은 색조가 또렷한 형형색색의 모습들이 나왔다. 머리 위로 보이는 한줄기 빛에 의존한 채 나도 이곳저곳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캐년을 나와 산등성이로 올라왔고 코끼리 모양의 뷰트를 지나 철제 계단으로 내려와 다시 오픈카에 올라 시내로 돌아왔다.
돌발 홍수에 조심해야 한다
1997년 8월에 하부 앤티로프 캐년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유럽 관광객 11명이 투어 중 익사했다. 소위 '돌발 홍수(flash flood)'라는 현상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투어 출발 전 사고가 나더라도 클레임을 걸지 않겠다는 서명을 해야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에서 홍수로 인명 피해가 났다는 뉴스를 가끔 접하기도 하지만, 사막지대에는 평소에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배수로 시설이 없거나 미흡해서 위험하다.
그래서 소량의 비가 오더라도 지형에 따라 비가 모이는 곳에는 순식간에 물이 들어찬다. 그래서 'flash flood' 경고판이 있는 곳에서는 비가 올 기미가 보이면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2차대전 시 암호로 사용된 나바호족의 언어
이 투어 주관사는 나바호 부족이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비용이 만만찮다. 참가비 125불에다 팁 20불을 주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가이드는 나바호 부족이 태평양 전쟁 시 일본군과의 암호전에 수 백명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특히 이오지마 상륙작전에서 공로가 컸다. 나바호족의 말은 동사 형태가 매우 복잡해서 일본군은 그 언어를 알아듣기는 커녕 흉내 낼 수도 없었다고 한다.
저녁에는 나바호 부족의 전통춤 공연을 보았다. '레드 헤리티지(Red Heritage)' 라는 팀의 후프 댄스와 노래 공연인데 저녁식사도 제공 하는 프로그램이다. 드럼 소리와 어우러져 매우 힘찬 선율과 동작을 보여주었다.
오늘 아침 카옌타 호텔에서 출발을 하려고 주차장으로 갔더니 개 2마리가 보였다. 어제 모뉴먼트 밸리의 드라이브 길가에서도 볼 수 있었던 유기견들이다. 줄 게 마땅찮아 가져온 비스켓을 주차장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려 주었더니 맛있게 먹어치웠다. 물을 주려고 요구르트를 얼른 먹고나서 그 용기에 물을 부어 주었더니 또 잘 먹었다. 옆에서 차를 출발시키려던 한 서양 여자가 이 광경을 보고 "heart breaking"한다며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음이 착잡해졌다. 누가 이 귀엽고 사랑스런 생명체들을 버렸나.
나는 이 일대에서 배회하는 유기견들을 보며 인디언 자치구역이라는 곳의 인상이 부정적이 되었다. 한마디로 원시적이지 않나? 하긴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자면 이곳만을 탓할 수도 없다. 우리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휴가철이 되거나 이사갈 때 개를 버린다. 젊은이들은 일시적인 호기심에 개를 데려다 키우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쉽게 버린다. 이렇게 한 해에 안락사되는 개들이 20만 마리가 넘고 서울 인근의 산에는 유기견과 길 고양이들이 넘쳐난다. 할 말 없다. 우리도 미개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