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6)아름다운 튀르키예 카이세리 뷴얀(Bünyan)마을과 사람들
- 환상의 절경, 뷴얀 마을을 가다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여러분이 생각하는 파라다이스의 풍경은 어떠한가. 아마도 나는 그곳을 다녀온 것만 같다. 평화롭고 아늑하고 햇빛과 바람이 기분 좋게 어울리는 탁 트인 너른 하늘과 초록 들판이 지평선을 이루는 곳이라면 말이다.
내 마음의 파라다이스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낮은 구름과 너른 벌판에 가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어쩌다 미루나무 몇 그루 올리브나무 한 그루 그림같이 서 있곤 하였다. 저곳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늘 생각만 하였다.
그 마을을 다녀왔다. 사실 첫 번째 아리산 트레킹(관련기사 참조 ▶(5)싱그러운 튀르키예 카이세리 아리산 산행 이야기)은 멤버 소개를 위한 서론이었다. 그런데 글이 한없이 길어져 다음 이야기로 넘겨 이 뷴얀(Bünyan) 마을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카이세리 뷴얀(Bünyan) 마을 트레킹
드디어 두 번째 트레킹을 하는 일요일 아침 7시. 무스타파 베이가 픽업하러 왔다. 이번에는 혼자다. 가다가 다른 동행을 태우는 줄 알았는데 도착해보니 자동차가 한 대 더 늘었다. 아홉 살 꼬마 아가씨 Elif 대원이 합류한 것이다. 커튼 가게 사장님 귤친의 딸이다.
마을 입구에 내리자마자 나는 반해 버렸다. 그만큼 아름다운 연두초록과 시냇물이 어우러져 환상의 절경을 이룬다. 이곳은 무스타파 베이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이기도 하다. 자신의 형제들과 친척들도 이곳에 살고 있고 심지어 점심 먹던 냇가의 밭은 자기 밭이라는 것이다. 지나가다 들른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 설명에 신나 하다가 돌아올 때는 애써 덤덤히 마을묘지에 부모님도 묻혀있다고 한다. 내가 터키 카이세리에 대해 한국 신문에 연재한다니 자신의 고향 마을을 우정 데려가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갖은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한 뷴얀의 풍광을 바라보며 물소리 우렁찬 시내를 옆에 끼고 트레킹 시작. 터키에 이런 곳이 있다니... 문득 2000년대 초반에 다섯 살 딸을 당나귀에 태워 거닐던 카파도키아 으흘랄라 계곡이 떠올랐다. 이곳에서도 멀지 않다고 한다. 이제 딸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먼 나라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마치 남처럼 시크하게. 나는 20여 년 후 남의 어린 딸을 바라보며 전생의 기억을 걷는 것만 같다.
뷴얀(Bünyan) 마을의 역사
뷴얀(Bünyan) 마을에 대해 알아보니 카이세리(Kayseri) 시내에서 40㎞정도 떨어진 히타이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인구는 3만 정도인데 내가 사는 Talas 옆 도시이다. 이란, 아시리아, 로마 문화를 경험한 후 아나톨리아 셀주크 국가를 거쳐 1515년 야부즈 술탄 셀림(Yavuz Sultan Selim)에 의해 오스만 제국이 되었다. 마늘이 유명했던지 예전에 Sarımsaklı(마늘 마을)로 불렸던 이곳은 1912년 시바스주에서 분리되어 카이세리주에 속하게 되었다.
그 땅을 밟는다. 카파도키아의 동굴 같은 집들도 드문드문 보이고 마을을 둘러싼 촘촘한 돌담이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이 돌담은 언제 쌓은 것일까. 성벽이었을까. 요새처럼 보이는 마을은 산꼭대기에 몇몇 집이 남아 있다.
양들의 천국과 양치기 아저씨
풀숲으로 들어가니 양 떼들이 반긴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양치기가 있다는 것이다. 무스타파 베이는 이 마을의 모든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잠시 서서 안부를 주고받는다. 방목하는 양 떼도 다 주인이 있어 나름대로 빨간색 등 표시가 있다. 평생 양들과 함께 지냈을 양치기 아저씨는 양처럼 선한 인상이다. 누구와 함께 오래 했느냐가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한다. 나의 얼굴은 지금 어떤 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문득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햇빛이 쨍쨍하지 않아 땀도 덜 나고 선선한 날씨. 트레킹에 안성맞춤이다. 구름조차 예술인 골짜기에 연두와 초록이 싱그럽고 가끔 만나는 거대한 동굴 바위들이 옛사람들의 자취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민들레 요정 엘리프
특히 민들레가 지천이어서 꼬마 엘리프는 꽃을 따기에 여념이 없고 사촌 언니 케림은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화관을 만든다. 꼬맹이가 나에게도 한 송이 주어 배낭에 꽂는다.
그다음엔 민들레 홀씨 불어대기 바쁜 엘리프. 천사가 따로 없다. 하비베는 그 동영상 찍느라 바쁘다. 얼마나 두고두고 좋은 추억이 될까. 드디어 민들레 화관이 완성되었다. 이 꼬마 요정을 보라. 아홉 살이라는데 처음엔 부끄러워하더니 한국 인형 달린 열쇠고리 하나를 주니 금세 마음을 열고 진흙 길이 나오면 '호잠Hocam(나의 선생님)'을 연신 부르며 여기를 딛고 이렇게 오세요 하고 나를 안내한다. 자기 이모, 고모들이 하는 걸 보고 가이드를 자처하는 것이다. 일행은 가끔 노래도 같이 부르다가 흥이 나면 밸리댄스며 발재간이 현란한 터키 민속춤도 춘다. 아, 이게 극락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터키의 인정이 부럽고 부럽다. 나도 어릴 때 저런 추억이 있었다. 외할머니댁을 할머니와 기차역에서 내려 하염없이 걸어갈 때 할머니가 따주던 봄꽃들. 그중에 엉겅퀴가 있었는데 어찌나 따갑던지 울상을 했지만 차마 할머니한테 따가워서 버리고 싶다는 말을 못 하고 들고 가던 기억. 할머니가 동네에 어찌나 서울사는 외손녀가 기특한지 자랑을 하는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던 기억. 그 꼬마가 할머니 연배가 되어 꽃다웠던 할머니를 그린다. 그래봤자 열여섯에 시집와 당시 50도 안 되었을 할머니.
오늘도 무스타파 베이는 먼저 쉬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쉬어가자고 해야 쉬는 '카이세라 가족 트레킹 클럽'.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었지만, 불굴의 노력으로 만능 스포츠맨이 되었다 한다. 그때는 장애가 있으면 공무원이나 사무직하기가 어려워 자기는 농장을 하려고 했단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하며 체력을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직업은 지금 변호사이다. 의지의 터키인 조르바.
도토리 점심 도시락 풍경
드디어 도토리 점심 먹을 시간. 나는 삶은 달걀과 딸기, 견과류, 셰케르바이람(사탕 명절)을 위한 초콜릿 사탕을 가지고 갔다. 다른 멤버들은 각종 빵에, 과일, 오이까지 넉넉히 챙겨왔다. 여긴 바나나가 비싼 과일이다. 다른 과일은 천국이다. 지금은 오디와 딸기, 사과, 오렌지가 지천이다. 값도 무지하게 싸다. 1킬로가 최소단위이고 오렌지 사과는 5킬로 10킬로 단위로 판다.
천국으로 가는 길
이 벚꽃 같은 길을 지나면 드디어 천국이라 할 풍광이 펼쳐진다. 처음엔 무슨 채소밭인 줄 알았다. 그냥 잔잔한 들꽃이 가득 피어있는 야생화 들판이었다. 거기를 가로질러 걸어가노라면 천국으로 입장하는 길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내가 꼭 걸어보고 싶어 하던 터키의 풍경이다. 낮은 구릉들 사이로 미루나무 뻗어 있고 연두와 초록이 색색깔로 한없이 펼쳐진 곳. 하늘에는 흰 구름이 유유자적 흘러가고 드문드문 집들이 그림처럼 자리 잡은 곳. 이곳이 뷴얀마을이다.
튀르키예 대지진이 지나간 후
이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도시에도 튀르키예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400명 안팎 살고 있다. 마침 한국의 공익기부재단 '아름다운 동행'이 이스켄데룬에 임시거처 100채를 지어주러 간다기에 우리 도시도 지원해달라 부탁하였다. 그동안 지진 파괴현장 취재와 지원은 많았지만, 그 이후 이재민이 살고 있는 상황과 열악한 조건에는 그다지 관심이 집중되지 못했다 하니 흔쾌히 승락. 마침 분얀 시장님 친구인 무스타파 베이가 이번에도 적극 활약 중이다.
쌀과 밀가루, 그리고 차이 등 터키인에게 꼭 필요한 생필품 지원을 위해 2023년 5월 5일 재단 관계자가 카이세리를 방문한다. 나도 그 연결을 돕고 일조할 수 있어 뿌듯하다. 이렇게 나는 서서히 터키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과 한국인이 함께 천국을 지킬 수 있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