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나진환의 현란한 연출, 정동환의 황홀한 연기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나진환의 현란한 연출, 정동환의 황홀한 연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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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피악의 6시간 대작...배우 정동환 1인 5역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 장면./사진=극단 피악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연극 4편을 시리즈로 보는듯한 6시간의 연극 여행은 뿌듯하고 행복했다. 현장 예술인 연극은 충분히 매력 있고 인간적이었기에...

극단 피악이 도스토예프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0월 12~31일)은 1부 3시간(인터미션 10분), 2부 3시간(10분) 등 총 6시간의 대작을 평일 번갈아 공연한다. 주말에는 1, 2부를 연속 관람할 수 있는데 오후 2시에 시작해 밤 9시30분(막간 휴식 90분)에 장장 7시간 30분을 투자해 관람했다.

완판 공연을 보고 난 첫 느낌은 연극은 고유하며 영원하리라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과 BTS와 '기생충'이 세계를 누비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연극예술이 왜 필요한지 그 가치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나진환의 연출이 현란하게 빛을 발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 정동환의 연기가 황홀했다면 연극의 매력과 존재 이유를 증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1, 2부를 연속으로 볼 수 있어 고전명작 한편을 현대 연극으로 완독한 뿌듯함과 연극만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원작을 각색 연출한 나진환의 해석과 연출력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파리8대학 공연학 박사인 그는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단테 신곡-지옥편'에 이어 마라톤 하듯 6시간짜리 '카라마조프...'를 이해랑예술극장 무대에 올렸다. 2017년 버전보다 1시간이 줄었지만, 방대한 소설을 이해하기 쉽게 풀었고, 소도구와 오브제를 활용한 연극술을 장마다 배치해 전작보다 볼거리가 풍성했고 연극성이 짙어졌다.

방대한 소설 전작을 4등분하여 장마다 특색있는 이야기를 펼쳤고, 소도구와 오브제를 이용한 상징적 이벤트와 행위예술을 펼쳤다. 이반의 대서사시 대심문관 장면에서 진흙과 물감과 가루로 벌거벗은 예수를 능멸하는 행위들은 후반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대결 장면에서 재현되어 소설과는 다른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안겼다.

천과 거울, 비닐 등 다양한 소재로 장면을 만들어 내는 연출기법은 처음은 아니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신선했다. 특히 2부에서 무대 양옆에 쌓아둔 건초더미를 무대에 풀어놓고 펼치는 재판 장면은 이 작품의 압권이었다.

8명의 배우가 앙상블을 이룬 코러스의 음악과 춤도 묵직한 연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 후편 모두 라이브로 연주한 피아노 음악은 고전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기능적인 무대미술(임일진)이 심플하면서도 신과 인간의 관계를 명징하게 대비시켰다. 1층에 유리문의 작은 공간을 설치해 감옥 등 다목적으로 활용한 점도 좋았고, 상층부로 이어지는 계단 또한 상징성이 강했다.

캐릭터의 특성을 살린 의상(김은영), 심도를 보인 조명(이수연), 피에로 등 현장에서 펼친 분장(백지영) 등 안정된 스태프진과 백호빈의 극중극 같은 코러스 안무도 연출의 콘셉트와 조화를 잘 이뤘다.

나진환의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는 정동환 배우와 궤를 같이 했기에 깊이와 완성도를 이룰 수 있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 정동환(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사진=정중헌

70대의 정동환은 고강도 몸 연기를 강조한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스타트로 대서사시 '단테 신곡-지옥편'에 긴 호흡의 연기를 펼친 그는 '카라마조프...'에서 젊은 배우도 힘든 1인 5역(해설자, 조시마 장로, 대심문관, 식객, 변호사) 6시간 연극의 등정에 또다시 올라 연일 개가를 올리고 있다.

탄탄한 배우와 가수가 있어 K팝과 영화가 한류를 이루듯 한국 연극에 정동환의 연극만을 위한 열정과 도전이 있어 연극의 본질이 이어지고, 나진환 연출의 ‘몸의 인문학’도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본다.

이번 '카라마조프...'에서 사형 직전의 도스토예스키 역으로 서막을 장식한 정동환은 ‘이반의 대서사시 대심문관’에서 대심문관 역을 맡아 신들린 연기로 관객을 무아의 경지로 몰입시켰다. 반면 식객 역에서는 피에로 분장으로 등장해 조시마 장로와는 전현 다른, 빠른 말투와 경쾌한 행동으로 생동하는 아우라를 뿜어냈다.

법정장면이 주를 이루는 2부에는 유독 긴 독백이 많은데 변호사 역을 맡은 정동화은 20여분에 걸치는 독백을 통해 도스토옙스키가 하고자 하는 신의 존재와 인간의 행복에 대한 명쾌한 예지를 설파했다.

정동환-나진환 콤비가 만드는 연극은 긴 호흡을 요하고 독백 또한 연기하기도 관람하기도 만만치 않지만 세 편을 거듭 보다 보니 내성이 생겼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카라마조프가의 얽히고 설킨 심리와 인물 간 관계를 정동환이 자상한 해설로 풀어내 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극단 피악의 강점은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과 앙상블이다. 정동환을 중심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역을 맡은 한윤춘(이반), 주영호(드미트리), 김찬(알료사)과 의붓아들 조창원(스메르자코프)이 고르게 탄탄한 연기력을 펼쳤다.

특히 믿고 보는 배우 한윤춘이 새롭게 해석한 이반 역을 맡아 무대에 지칠 정도로 혼신의 열연을 해냈다. 그와 2인극을 엮는 스메르자코프 역 조창원이 음흉하면서도 연민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과 흡인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강한 캐릭터의 드미트리 주영호와 카체리나 정수영의 연기 호흡이 매끄러었고, 청순한 영혼의 알료사 김찬과 그루센카 박결이의 앙상블도 상큼했다. 아버지 표도르 역 이기복은 좀 젊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후반 검사 역에서 긴 독백으로 뚝심을 보였다.

고전의 현대화에 이상적인 좌표를 제시해온 나진환의 작품 분석이 탄력을 받은데다, 정동환을 비롯한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력이 6시간 동안 한 맥락으로 앙상블을 이루는 2021년판 극단 피악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다양한 연극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작품의 내용은 터치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작품 해설에서 본 “원작이 가지는 인문학적 힘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현대적인 연극 언어로 표현되어, 오늘날의 가장 본질적인 인간 문제에 대한 예술적인 무대를 선사할 것이다”는 문구에 공감을 표하고 싶다.

무대가 넓고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있어 배우들의 마이크 사용이 불가피 했겠지만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가 울리고 뜬데다 전달이 잘 안된 것은 작품의 품격에 옥의 티였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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