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기후변화와 커플, 그리고 지구의 '폐'...연극 '렁스'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기후변화와 커플, 그리고 지구의 '폐'...연극 '렁스'
  • 주하영
  • 승인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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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극작가 던컨 맥밀란의 2011년 초연 작품, 2020년 국내 초연 및 2021년 재공연
연극 '렁스' 공연장면. /사진=연극열전
연극 '렁스' 공연장면. /사진=연극열전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우리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유해한 존재일까, 유익한 존재일까? 80억 명에 달하는 인간을 수용한 채 탄소배출량으로 고통 받고 있는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더 이상 낳지 않는 것뿐일까?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음 세대가 감내해야 할 때,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연극열전 2021 레퍼토리 연극 '렁스'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계속 질문을 할 거야.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책도 사서 읽고, 강좌도 듣고,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울 거야. ... 우리는 대화를 계속 나눌 거야. 그리고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할 거야.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니까.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우리가 먹을 음식을 직접 재배하고, 그리고 비행기를 타지 않을 거야. 숲을 만들자. 너하고 나, 그리고 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지구에 뿜어내게 될 우리의 아이를 위해. 우리 셋이서.”

불안하고 상처투성이인 모든 상황을 두 팔 벌려 끌어안으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누며 함께 하기를 멈추지 않으면, 아이가 지구에 뿜어내게 될 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상쇄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환경을 생각하는 선택을 실행하면, 그러면 우리는 이 삶을 돌아보며 ‘나는 좋은 사람으로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까?

연극 '렁스' 공연장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지 모르지만,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 더 재주가 있는 듯 보이지만, 두 사람(류현경(사진 왼쪽), 이동하)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고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서로를 이끈다. /사진=연극열전
연극 '렁스' 공연장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지 모르지만,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 더 재주가 있는 듯 보이지만, 두 사람(류현경(사진 왼쪽), 이동하)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고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서로를 이끈다. /사진=연극열전

문화 인류학자이자 문명 연구가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2019년에 출간된 책 ‘대변동’에서 세계가 해결해야 할 4가지 ‘위기’의 두 번째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지만 실제로 그 복잡함과 혼란스러움, 모순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의 기후 전문가들뿐”임을 지적했다.

세계 인구 증가의 숫자와 한 사람이 지구에 평균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기후변화의 시작점이었다. ‘1인당 평균 인간 영향’은 한 사람이 평생 소비하는 평균 자원량과 생산하는 평균 폐기물량을 의미했다.

그리고 사람이 생산하는 폐기물에는 인간이 살면서 호흡으로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포함되어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화석연료로 인해 발생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급격히 증가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온실가스로 작용해 지구의 온도를 높였고, 식물의 생장에 악영향을 주었으며, 폭풍과 홍수의 횟수를 증가시키고, 매년 최고 온도와 최저 온도를 경신하도록 만들었다.

연극 '렁스' 포스터 컷. 공기 중의 산소를 흡입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관인 '폐(렁스, Lungs)'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존재인 '인간'을 상징한다. /사진=연극열전
연극 '렁스' 포스터 컷. 공기 중의 산소를 흡입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관인 '폐(렁스, Lungs)'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존재인 '인간'을 상징한다. /사진=연극열전

문제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서서히 축적되고 배출되는 탓에 갑자기 오늘 인류가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지구의 대기는 여전히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뜨거워질 것이라는 데 있었다. 지구온난화는 가뭄과 식량 생산 감소, 전염병의 확산, 해수면의 상승 등으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파괴적인 재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이 모든 상황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기후 변화는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모든 인간이 활동을 줄이고 화석연료를 덜 소비하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면 ‘위기’를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1년 7월, 그는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와의 인터뷰에서 인류 문명에게 남겨진 시간은 50년이라고 말했던 ‘대변동’의 예측을 ‘30년’으로 앞당겼다. 지구환경이 나빠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팬데믹이 발생한 상황에서 세계 인구 증가의 속도, 숲이 잘려나가는 속도, 기후 변화가 진행되는 현재의 단계를 고려하면, 인류 문명은 30년 안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위급한 경고였다.

이에 안희경은 다이아몬드가 말한 30년은 정부 간 협의체가 제안한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제로를 달성하는 목표와는 다른 얘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30년의 시간은 붕괴가 진행되는 시간이자 종착에 이르는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안희경은 “오늘처럼 다수가 안락한 내일을 기대한다면, 가능성이 남아 있는 10년 안에 인류 문명의 생존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연극 '렁스' 공연장면. 한 인물(이진희(W))의 대사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인물(오의식(M))의 대사가 시작되고, 말이 끝을 맺지 못한 채 다른 생각에 의해 방해를 받는 이 극은
연극 '렁스' 공연장면. 한 인물(이진희, 사진 왼쪽)의 대사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인물(오의식)의 대사가 시작되고, 말이 끝을 맺지 못한 채 다른 생각에 의해 방해를 받는 이 극은 "본질적으로 그냥 말하기"를 강조한다.사진=연극열전

영국 극작가 던컨 맥밀란의 연극 ‘렁스’의 주인공 커플은 30대에 접어들면서 아이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지구의 위기와 좋은 사람으로서의 선택을 연결시킨다.

2011년 미국 워싱턴에서 초연된 ‘렁스’는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인 2019년 런던 올드빅 극장 무대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고, Covid-19로 팬데믹이 지속되던 2020년 온라인 극장을 통해 또 한 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장면의 변화도 없고, 무대 위 소품도 없으며, 의상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암전조차 존재하지 않는 이 극은 관객들에게 모든 것이 노출된 상태에서 90분 동안 두 인물이 끊임없이 대사를 이어가야 하는 매우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국내 공연의 경우, 인물들의 삶의 발자국이자 탄소발자국을 의미하는 ‘신발’이 소품으로 더해지고 음악과 암전이 때로 사용되었지만 맥밀란의 희곡에는 시간과 장소의 변화를 지칭할 수 있는 어떤 조명이나 음향도 사용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 인물의 대사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인물의 대사가 시작되고, 말이 끝을 맺지 못한 채 다른 생각에 의해 방해를 받거나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이 극은 “본질적으로 그냥 말하기”를 강조하고 “살아있는 의사결정 과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시도를 실현한다.

연극 '렁스' 공연장면. 극작가 '던컨 맥밀란(Duncan Macmillan)'의 희곡에는 무대 위에 어떤 소품이나 배경이 사용되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지만, 국내 공연의 경우 인물들(이진희(사진 왼쪽), 오의식)의 삶의 발자국이자 탄소발자국을 의미하는 '신발'이 소품으로 더해진다. /사진=연극열전
연극 '렁스' 공연장면. 극작가 '던컨 맥밀란'의 희곡에는 무대 위에 어떤 소품이나 배경이 사용되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지만, 국내 공연의 경우 인물들(이진희(사진 왼쪽), 오의식)의 삶의 발자국이자 탄소발자국을 의미하는 '신발'이 소품으로 더해진다. /사진=연극열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올드 빅 극장의 영국과 미국 합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맥밀란은 200명 이상의 인물이 캐스팅되는 대형 작품에서 벗어날 필요를 느꼈고,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을 위한 극으로 하룻밤 만에 ‘렁스’의 초고를 완성했다.

관객들이 한 커플의 매우 사적인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를 바랐던 맥밀란은 충동적이고 과격할지 모르지만 검열되지 않은 날 것의 생각들을 그대로 늘어놓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어렵고 불편한 질문들이 제기되고 논쟁과 토론이 촉발되기를 원했다. 연극은 불쾌한 문제를 지적하고 모순에 대해 생각하며 복잡한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맥밀란은 당시 약혼녀와 함께 집을 사고 은행대출을 받고 아이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부모로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태에 있는지, 정말로 성장한 어른이 될 준비가 된 것인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작품 속에 담았다. 그는 작은 ‘펍 씨어터’에서라도 공연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렁스’가 전 세계 69개국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퍼져나간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명했다.

2020년 8월, 노르웨이에서 공연되는 ‘렁스’를 위한 유튜브 영상에서 맥밀란은 2011년에 자신이 몰두했던 세계의 상태에 대한 걱정과 기후변화에 대한 염려,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선택에 대한 질문이 “오히려 2020년에 와서 제 때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관객들이 당시 그가 느꼈던 것들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극 '렁스' 공연장면.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의 변화도 없고 암전조차 없이 시간과 장소의 변화를 인물들(정인지(W), 성두섭(M))의 대화 내용으로 파악하도록 만드는 <렁스>는 내용상 구분하면 총 16개의 장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연극열전
연극 '렁스' 공연장면.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의 변화도 없고 암전조차 없이 시간과 장소의 변화를 인물들(정인지(사진 왼쪽), 성두섭)의 대화 내용으로 파악하도록 만드는 '렁스'는 내용상 구분하면 총 16개의 장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연극열전

극이 시작됨과 동시에 관객들은 “아기”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이케야 매장에서 조명 램프를 들고 카트를 밀며 계산대에 서 있던 여자는 아기를 갖자는 남자의 갑작스런 제안에 패닉 상태에 빠진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여자는 남자의 일방적인 제안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여자의 머릿속은 아빠라는 존재가 양육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불안과 환경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커리어가 헌신으로 대체될 위험, 직계 조상들의 유전자가 아이에게 미치게 될 영향에 관한 복잡한 생각들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구가 너무 많아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위한 현명한 선택, 즉 ‘좋은’ 선택은 “인구를 늘리지 않는 데 기여하는 것”임을 덧붙인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말한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는 없어. 모두 우리 책임은 아니잖아. 우리가 나무를 심어서 숲을 만들 수도 있지. 쓰레기 매립지에 늘어가는 기저귀나 플라스틱 젖병에서 만들어지는 탄소 발자국을 해결하는 거야. 지구의 폐를 우리가 만드는 거지.”

연극 '렁스' 공연장면. /사진=연극열전
연극 '렁스' 포스터. /사진=연극열전

남자는 현재의 세상에 진지한 생각과 고민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악화되는 세상을 염려하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 인해 보다 야만적인 세상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음을 언급한다.

그는 자신의 논지가 “파시스트적”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책을 읽고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인류의 개선을 위해 고민하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것이 환경문제를 연구하는 여자가 품고 있던 생각이 아니냐고 되묻는 남자에게 여자가 답한다.

“맞아. 내가 가끔 그렇게 느끼는 거 맞아. 하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니까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고 역겹고 혐오스럽네.”

두 사람의 대화는 버림받은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입양’이라는 대체적 선택을 거쳐 자신들의 삶에 자리하고 있는 엄마, 아빠에 대한 안 좋은 기억, 아이를 위한 이상적인 교육방식, 현재 학교 시스템의 끔찍함에 대한 대화로 옮겨간다. 외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인지한 커플은 오랜만에 클럽으로 춤을 추러 가기로 결정한다.

연극 '렁스' 공연장면. 30대에 접어들면서 '아이'를 낳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커플(정인지(W), 성두섭(M))은 외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사진=연극열전
연극 '렁스' 공연장면. 30대에 접어들면서 '아이'를 낳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커플(정인지(사진 오른쪽), 성두섭)은 외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사진=연극열전

극이 진행되는 내내 두 사람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과도한 생각들은 상대의 가슴에 대못을 박듯 큰 상처를 남기는 폭력성과 잔인함을 갖고 있기도 하고, 관객들이 당황할 정도의 은밀한 사생활의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한다. 또 아이를 갖는 과정과 유산으로 인한 후유증, 헤어짐과 만남의 과정에서 불거지는 복잡한 갈등과 관계의 혼란스러움을 노출한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잠시 머물거나 내밀하게 품고 있던 생각일지 모르지만 실제 입 밖으로 나온 것들을 들으면서 “잔인하고 끔찍하고 역겹고 혐오스럽다”고 느끼게 되는 두 사람의 대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진지한 ‘사유’를 하도록 만든다.

“파리의 에펠탑의 무게와 맞먹은 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될 아이를 “지구상의 인류의 3분의 1이 사라져야 할 시점”에 낳아야 한다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던 여자는 결국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남자는 프리랜서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직업에서 보다 정기적인 수입을 위해 회사에 입사하기로 결심한다.

임신을 위한 노력, 실패할 때마다 더해지는 실망감,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함, 임신의 기쁨,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와 불안, 유산으로 인한 절망과 우울의 과정은 속도감 있는 대화의 흐름을 통해 관객들에게 상황을 전달하게 된다.

아이를 위해, 세상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지적인 책들을 읽고, 공정무역제품을 구매하고,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며,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를 위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등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불러온다. 그리고 훌륭한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한 바람과 아이와 함께하게 될 미래에 대한 상상이 펼쳐진다.

연극 '렁스' 공연장면. 예측할 수 없는 힘이 삶에 작용하게 될 때 인물들(류현경(W), 이동하(M))이 고수하던 원칙은 깨지고, 계획은 헛된 것이 되며, 상처는 깊어지고, 모든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사진=연극열전
연극 '렁스' 공연장면. 예측할 수 없는 힘이 삶에 작용하게 될 때 인물들이 고수하던 원칙은 깨지고, 계획은 헛된 것이 되며, 상처는 깊어지고, 모든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사진=연극열전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모든 노력은 갑자기 닥친 불행 앞에서 서로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고, 외로움에 지친 남자는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한다.

남자는 분노와 절망, 아픔과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진 채 벽을 세운 여자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여자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면서 우울의 늪에 혼자 침잠하는 것이 남자를 밀어내는 일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여자는 말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네가 이해해 주기를 원했어. 유산한 게 어떤 기분인지 네가 상상해보기를 원했어. 나한테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감정들이 있고 그 끔찍한 소용돌이 속에 너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원했어. ... 아이가 없어서 차라리 다행이야.”

사실 ‘렁스’는 현재 지구가 처한 환경의 위기와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 커플이 아이를 낳고 가족을 구성하게 되는 ‘관계’와 ‘과정’에 대한 고찰을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일의 까다로움,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의 차이, 생각을 겉으로 드러냄으로 인해 인지하게 되는 소통의 어려움, 예측할 수 없는 힘이 삶에 작용하게 될 때 드러나게 되는 인간의 모순적인 측면들... 원칙은 깨지고, 계획은 헛된 것이 되며, 상처는 깊어지고, 모든 상황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아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두 사람에게 찾아온다.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앞둔 남자와 헤어진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자 사이의 하룻밤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마치 계획하고 꿈꾸고 절망하고 상처를 주었던 모든 시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의 현실은 충동과 감정, 자연의 알 수 없는 신비로 인해 또 다른 선택과 중대한 결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떤 일의 결정이 때로 깊은 생각과 고민, 이성적인 판단과 세밀한 계획이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인지한다.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지 모르지만, 서로가 상처 주는 일에 더 재주가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하지만, 함께 있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보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도록 만드는 두 사람은 자신들이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연극 '렁스' 캐스팅 메인 포스터 컷. 2011년에 초연된 던컨 맥밀란의 연극 '렁스'는 2020년 '연극열전8'의 첫 번째 작품으로 국내에서 초연된 후 2021년 재공연 무대에 올랐다. /사진=연극열전

맥밀란은 2019년 올드 빅 극장의 공연을 위해 70억 인구를 80억 인구로 수정하는 등 통계 수치의 변화를 희곡에 반영했다. 그러면서 이미 부모가 되어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10년 전 자신의 고민을 돌아보는 일이 입가에 미소를 띠게 만들고 현재 변화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게도 하지만, 기후변화와 지구의 위기를 삶의 중요한 결정에 반영해야 하는 세대의 고민은 이전보다 더 유효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숨을 쉬는 것은 삶의 필수 조건이다. 공기 중의 산소를 흡입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관인 ‘폐(렁스, lungs)’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존재인 ‘인간’을 상징한다. 더불어 손상정도를 확인하기 어렵고 기능이 상당히 악화된 후에야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 지구의 ‘폐’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 두 개의 폐가 모두 기능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하나의 폐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커플을 이루거나 홀로 살아가는 인간 삶의 방식에 대한 은유가 되기도 한다.

현재의 세대는 가족을 이루는 일에 지구와 환경의 위기를 고려해야 할 현실에 직면해 있다. 두 사람의 아이가 성장하고, 한 사람이 먼저 다른 사람의 곁을 떠나고, 그들이 나무를 심어 가꾼 숲이 온통 사라지고, 더 이상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없는 암울한 미래가 다가와도 사랑한 시간과 추억, 삶의 발자국은 남겨진다.

예측할 수 없는 모든 것에서 상처와 피해를 남기지 않는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선택’을 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고민을 지속한다면, 아주 작은 변화쯤은 가능하지 않을까? 기후 변화, 지구의 위기, 그리고 인간의 삶이 조화를 이룰 수 있기 위해 인간에게 남겨진 ‘좋은 선택’은 무엇일까? 10월 1일~3일까지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하영
주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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