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양정웅 연출·남윤호 연기가 빚어낸 대작 '코리올라누스'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양정웅 연출·남윤호 연기가 빚어낸 대작 '코리올라누스'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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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현실감있게 재해석...전력투구로 연기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 공연장면./사진=LG아트센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200분 동안 무대에 연출이 보였고, 주연 배우는 영욕의 순간들을 당당하면서도 신념 넘치는 연기로 객석을 압도했다.

LG아트센터 마지막 무대에 올려진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7월 15일까지)는 에너지와 아우라와 메시지가 잘 숙성된 ‘연극다운 연극’이었다. 연출은 셰익스피어 재해석 전문가 양정웅이고, 배우는 영국에서 정통 연기를 연마한 남윤호다.

역량 있는 연출가에 탁월한 배우, 여기에 탄탄한 연기진과 스탭들이 일체가 되어 역사를 오늘에 되비추는 거울로서의 소임을 충실하게 해냈다.

연극 '코리올라누스'의 최대 강점은 현실감이다.

기원전 5세기 로마의 인물을 소재로 17세기 초 셰익스피어가 마지막으로 쓴 이 작품은 정치성이 강한 비극이다.

양정웅 연출은 시대 배경을 현대의 벙커로 옮겨와 칼 대신 총으로 제압하는 상황을 전개한다. 2500년 전 한 시대 영웅이 겪었던 영광과 오욕의 순간들이 마치 오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보는 것 같은 현장성, 현대성이 짙게 묻어나 어떤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울 정도였다.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 공연장면./사진=LG아트센터

어떤 장면은 코리올라누스 역 남윤호 배우가 독백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대화로 상대를 설득하는 몰입 연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다. 이 연극의 미덕은 남윤호라는 배우가 이 작품을 위해 3년을 준비했고, 앙상블 연습을 거쳐 무대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많고, 더 멋진 신체 조건을 지닌 배우도 있지만, 남윤호만큼 작품을 분석하여 역할을 이해하고 이를 무대화하기 위해 전력투구로 자신의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 내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배우 남윤호의 절정 연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 실험극장의 '에쿠우스'에서 앨런 역을 한 남윤호의 연기를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적이 있다. 그간 내로라하는 유망주들이 앨런 역을 맡아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남윤호 만큼 작품 전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설정해 똑 부러지게 연기한 배우는 보지 못했다.

작품에 대한 고찰로 텍스트를 이해하고, 캐릭터를 분석해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연기자의 자질과 투철한 프로의식을 그 때 발견하고 ‘주목할만한 배우’로 점찍어 두었는데 이번에 명불허전(名不虛傳), ‘남윤호의 코리올라누스’라고 할만큼 복합적 캐릭터를 심도 있는 인물로 형상화 해냈다.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 남윤호와 출연진들./사진=정중헌

특히 이번에 양정웅 연출과 함께 창조해낸 코리올라누스는 더 인간적이고 더 매력적이다.

전장에서 승리해 로마 공화정의 최고 집정관에 오르지만 호민관의 이간질로 시민들에게 배척받아 추방당한다. 로마와 적대관계인 볼스키족에 가담하여 권토중래를 벼르지만 어머니와 아내, 아들의 간청으로 평화조약을 맺은 코리올라누스는 배신자 누명을 쓰고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전쟁영웅이지만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다가 오만함으로 내몰리고, 원수를 갚기 위해 결기를 세우지만 모정과 가족 앞에 눈물을 보여 배신자로 처단되는 복잡한 캐릭터다.

이 어려운 타이틀롤을 영국 로열아카데미 씨어터랩에서 석사를 마친 배우 남윤호가 도전했다. 양정웅 연출과 조우하여 각색에 참여해 작품을 분석하고, 언어를 다듬고, 몸을 만들고, 화술을 연마하고 연기진과 앙상블을 맞추는 등 이 연극 한 편을 위해 전력투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대에서 커 보였고 당당하면서도 매력이 뿜어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연출가 양정웅의 작품 세계를 깊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독창적 해석으로 본고장 영국에서 호평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고전을 현대와 융합시키고, 신체, 언어, 이미지를 다채롭게 구사하는 독자적 연출 세계를 인정받은 그는 특히 캐릭터 구축에 뛰어나다는 평을 들어왔다.

양정웅 연출은 남윤호 배우를 만나 기원 전 코리올라누스를 현대의 우리 삶 속에 구현해 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박제된 인간의 재현이 아닌, 우리처럼 고뇌하고 갈등하고 투쟁하는 인간상(像)을 빚어냈다. 그리고 그 인물의 매력을 배우를 통해 관객에게 부각시켰다.

극 초반에 볼스키족 장군 오피디우스(김도완)와 웃통을 벗고 격투하는 장면에서 두 배우의 근육질 대결은 한 편의 무용처럼 리드미컬하면서 멋졌다. 진흙탕 물을 뒤집어 쓴 남윤호 배우가 무대에서 실제 샤워하며 전라의 뒤태를 보여준 이벤트도 셰익스피어 그에서 보기 드문 연출이었다.

양-남 콤비가 합작해낸 또 하나의 쾌거는 화술이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비롯해 수많은 번역극에서 보였던 특정 어투의 고정 관념을 깨고, 지금 우리가 쓰는 현대 언어로 구사해 대사의 내용이 전달되고 이해가 쉬웠다. 특히 주인공 코리올라누스의 대사와 독백은 정확한 화술,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살아나 잘 들렸으며 자연스러웠다.

'코리올라누스' 연습사진, 김도완 - 남윤호 /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코리올라누스' 연습에 한창인 배우 김도완과 남윤호./사진=LG아트센터 

원톱의 남윤호와 함께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력도 만만치 않아 극을 보는 재미를 더했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 세력은 집정관, 원로원, 호민관으로 나뉘는데 이중 귀족들로 이루어진 원로원은 집정관과 호민관에게 영향력 있는 중재 역할도 한다. 그래서 원로원 귀족 메니니우스 역의 비중이 큰데 이 배역을 국립극단 출신의 연기파 배우 한윤춘이 맡았다.

필자는 최근 '단테 신곡-지옥편'과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에서 한윤춘의 연기력과 매력에 경도되었는데, 이번에도 믿고 보는 배우라는 정평에 맞게 안정감 있는 연기와 명확한 화술로 극을 끌어가는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역시 연기력과 매력을 겸비한 오피디우스 역 김도완은 이번 무대에서 남윤호와 쌍벽을 이루는 연기 대결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특히 후반부의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는 인상에 남았다.

코리올라누스의 엄마인 볼롬니아 역 김은희, 아내 버질리아 역 김리나도 남윤호의 감성을 흔드는 진정성 있는 연기로 멋진 가족 앙상블을 이뤄냈다. 2막 초반 엄마와 아들이 서로 무릎 꿇고 팽팽히 맞서다가 남윤호가 눈물 흘리며 처연하게 무너지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였다.

시민을 선동하고 이간질하며 시민 사회의 힘을 대변한 호민관 역 김대진과 한상훈의 호흡도 잘 맞았고, 귀족과 상반되는 설정으로 캐릭터를 차별화한 점도 좋았다.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 공연장면./사진=LG아트센터

양정웅의 연출 의도는 무대 세트와 색감에서도 잘 드러났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공간을 무대미술가 임일진은 지하 벙커로 설정했고 등퇴장 통로도 대형 엘리베이터로 집중해 현대성을 강조했다. 벙커 내부는 몇 개의 조명등과 거울이 달린 세면대, 샤워 부스, 변기와 이층침대 등 소품을 배치해 주거용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대신 거대한 날개가 달린 환풍기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살렸다. 무대 정면의 너른 공간은 의자와 탁자만으로 변화를 주어 위정자의 권력 무대가 되었다가, 시민들이 의사를 표시하는 광장으로도 활용했다.

의상(도연)과 무대미술과 연출은 색채에 중점을 두어 작품 전체를 차별화했다. 흑색, 백색, 회색으로 소속을 구분했으며, 무채색 분위기에 조각 종이, 흙탕물, 노랑색 가루 등을 뿌려 생동하는 변화의 포인트를 주기도 했다.

칼도 등장하지만 배우들의 주무기는 총이다. 현대 복장에 총만으로 로마 시대 '코리올라누스'는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 우리 앞에 선다.

양정웅 연출은 ‘가급적 원작 그대로’하고자 했다는데, 원작 그대로 해도 오늘 세계와 한국, 특히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섬뜩하리만큼 원작을 빼닮았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SNS에서 벌어지는 이념과 양극화와 젠더 문제 등 갈등 양상은 이 무대에서 보여 지는 시민들의 집단주의와 너무도 닮아있다. 양정웅 연출이 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는지 공연을 보면서 이해가 되었다.

7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연출해 주목 받아온 양정웅 연출이 남윤호라는 걸출한 배우를 만나 완성도 높은 대작으로 선보인 연극 '코리올라누스'는 올해의 연극으로 꼽힐 만하다. 특히 양정웅의 매력적인 무대술과 남윤호의 혼신을 다한 열정이 연극다운 연극의 시너지로 나타났다는 것은 아무리 상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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