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서 유물 무더기 발굴...가장 오래된 한글활자·물시계 등 쏟아져
인사동서 유물 무더기 발굴...가장 오래된 한글활자·물시계 등 쏟아져
  • 이은재 기자
  • 승인 2021.06.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금속활자 1600여 점, 세종 천문시계 등 발굴
서울 공평동 땅에서 출토된 한글 금속 활자 세부 모습(사진=문화재청)
서울 공평동 땅에서 출토된 한글 금속 활자 세부 모습/사진=문화재청

인터뷰365 이은재기자 = 서울 도심 종로구 인사동서 가장 오래된 한글활자 등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 시대 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籌箭)의 실체도 처음 확인됐다. 또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銃筒)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같이 묻혀있는 형태로 발굴됐다. 

29일 문화재청은 (재)수도문물연구원이 발굴조사 중인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금속활자와 세종시대 천문시계 등 다양한 금속유물들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발굴된 금속활자 1600여 점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다.

일괄로 출토된 금속활자들은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발굴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등은 최초의 사례다.

동국정운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韻書)다.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된 ㅭ, ㆆ, ㅸ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해 연결하는 어조사의 역할을 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출토됐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다.

또 현재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하여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들의 실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물시계 부속품인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사진=문화재청)
물시계 부속품인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사진=문화재청

도기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됐다.

동제품은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의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되며,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 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으로 의미가 크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됐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가늠한 용도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세종은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현존하는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대의 과학기술의 그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소형화기인 총통(총구에 화약과 철환(총알)을 장전하고 손으로 불씨를 점화해 발사하는 무기)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으로 총 8점이다. 조사 결과 최상부에서 확인됐고, 완형의 총통을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 크기이다.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계미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되었다. 장인 희손(希孫), 말동(末叱同) 제작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장인 희손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차승자총통‘의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누어 출토됐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龍鈕, 용 모양의 손잡이)도 있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했다. 종신의 상단에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서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쓰인 옛 서체로, 자형이 반듯하고 각이 진 것이 특징이다.

다만 왕실발원의 동종에는 주로 해서체(흘려 쓰지 않고 정자로 바르게 쓴 한문서체)가 사용되므로, 왕실발원의 동종과는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1469년 추정 ‘전 유점사 동종(국립춘천박물관 소장)‘, 1491년 ‘해인사 동종(보물)‘ 등의 유물과도 비슷한 양식이다. 

조사 지역은 현재의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 견평방에 속하며,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와 전의감을 비롯해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 죽동궁 등이 위치, 남쪽으로는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이 있었던 운종가가 위치했던 곳이다.
 
조사 결과,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의 문화층(2~7층)이 확인됐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에 해당되며, 각종 건물지 유구를 비롯하여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확인됐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일부 확인됐다. 이들의 사용,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이 있어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문물연구원 측은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안전하게 보관 중"이라며 "앞으로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전기, 더 나아가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은재 기자
이은재 기자
1007@interview365.com
다른기사 보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