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심장이 간직한 의미, 그리고 죽음...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앨리스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심장이 간직한 의미, 그리고 죽음...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주하영
  • 승인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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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 소설 원작, 2017 몰리에르 어워드 1인극상 수상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은 시간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죽음으로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 그 놀라운 가능성의 긴박감은 무대 뒤 스크린에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시간의 추이에 따라 고조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은 시간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죽음으로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 그 놀라운 가능성의 긴박감은 무대 뒤 스크린에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시간의 추이에 따라 고조된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우리에게 ‘심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명을 지탱하는 펌프질의 근원,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엔진일까? 아니면 우리의 마음과 감정, 욕망과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존재를 설명하는 그 무엇일까?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소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서술자는 차가운 2월의 겨울날 완벽한 서핑의 경험을 기대하며 들뜬 마음으로 바다를 향하는 만 19세 청년의 심장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태어난 그 순간부터 활기차게 뛰기 시작해서 그의 심장이 뛰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심장들도 덩달아 빨리 뛰게 만들었던 그 심장이 무엇인지 모른다. 무엇이 이 심장을 벅차게 했는지, 무엇이 깃털처럼 춤추게 만들고 돌처럼 짓누르게 만들었는지, 무엇에 혼란스러워하고 녹아내렸는지, 스무 살 난 육신의 블랙박스가 무엇을 걸러내고 기록하고 간직해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초음파가 만들어내는 연속적인 이미지만이 그 울림을 보여주고 그것을 부풀게 하는 기쁨과 옥죄는 슬픔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1분마다 최대 5리터의 피가 몸을 돌게 만들고, 하루에 거의 10만 번씩 수축되는 심장!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수축의 신호들은 기계장치를 통해 전위차를 드러내며 밀물과 썰물의 파도와 같은 그래프를 그려낸다.

밀려가고 쓸려가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파도, 그 파도와 같이 움직임을 반복하는 심장, 그 심장이 튀어오를 듯 솟구치는 전율을 사랑하는 시몽(손상규)은 "존재의 본질을 단 하나의 동작에 붙잡을 수 있는" 서핑의 순간을 즐긴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밀려가고 쓸려가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파도, 그 파도와 같이 움직임을 반복하는 심장, 그 심장이 튀어오를 듯 솟구치는 전율을 사랑하는 시몽(손상규)은 "존재의 본질을 단 하나의 동작에 붙잡을 수 있는" 서핑의 순간을 즐긴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시몽 랭브르라는 청년의 심장은 그가 사랑하고 전율하며 절망하고 슬퍼했던 모든 감정의 파고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끊임없이 순환을 반복하며 그렇게 만 19년을 힘차게 뛰어왔는지도 모른다.

“한 번의 고동 속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시퀀스, 고통과 욕망”, 두려움과 환희, 전율과 안도를 반복하며 움직여온 심장, 시간 속에 때로는 미칠 듯이 때로는 잔잔하게 곡선을 그려내는 심전도 그래프로 그 변화를 추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간 신체의 동력!

그렇다면 세찬 뜀박질을 끊임없이 반복할 뿐 아니라 감정과 욕망의 고조에 따라 속도를 달리하는, 개폐 장치와 역류 방지 장치를 갖춘 이 심장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박동을 기록하는 기계 장치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심장이 멈춰버리는 순간, 사라지게 되는 것은 육체의 기능일까? 지속되던 시간일까? 아니면 인간 존재일까? 두뇌가 모든 기능을 멈춰버린 육체의 심장은 시간을, 마음을, 생동하던 삶의 기억을 과연 간직하고 있을까?

소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2014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11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배우인 에마뉘엘 노블레는 2014년 우연히 작가 드 케랑갈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고, 그녀의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3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15년의 배우 경력 끝에 자신만의 1인극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던 노블레는 다성적인 목소리를 품고 있을 뿐 아니라 24시간이라는 시간 속에 모든 액션의 과정이 담겨있는 드 케랑갈의 소설이야말로 자신이 찾고 있던 작품이라는 확신으로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

1인극으로 구성된 공연은 배우가 서술자를 포함한 16개의 인물을 순간적으로 바꿔가며 표현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1인극으로 구성된 공연은 배우가 서술자를 포함한 16개의 인물을 순간적으로 바꿔가며 표현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노블레가 각색 및 연출, 배우를 모두 담당한 1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2015년 아비뇽에서 초연되었고, 2017년 몰리에르 1인극 상을 수상했다. 2019년 한국에 초연될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던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현재 정동극장에서 초연 배우 그대로 재공연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뇌사 상태에 이른 만 19세 젊은 청년의 심장이 24시간 안에 심근염을 앓고 있는 만 50세 여인에게 이식되기까지의 과정을 해설자를 비롯해 청년의 부모, 여자 친구, 응급학과와 장기이식센터의 모든 의료진들, 그리고 이식 수혜자에 이르기까지 16명의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연극으로 각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블레는 프랑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드 케랑갈의 소설이 장기 이식이 이루어지기까지 과정을 마치 시간과 전쟁을 하듯 경주를 선보이는 서스펜스를 느끼게 할 뿐 아니라 기증자를 둘러싼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결정과 내면의 투쟁, 어려움, 감정의 폭발을 보여주고, 의사들의 냉철함과 의료시스템의 발전역사까지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무엇보다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고,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생명의 기회와 죽음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세상이 완전히 이기심에 기초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임을 강조했다.

노블레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아이를 둔 부모의 고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상의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소설은 시몽 랭브르라는 청년의 심장이 가장 세차게 뛰며 전율했던 서핑의 순간부터 그가 첫 사랑을 만나 첫 키스를 나누던 순간, 그의 부모가 사고 소식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던 순간, 살아있는 듯 보이는 아들의 장기 기증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서 거센 파도로 몰아치던 고통의 순간과 더불어 낯선 사람들의 심장이 움직이던 순간들 또한 조명한다.

시몽(윤나무)은 물 속 온도가 9도에서 10도에 이르는 가운데 1시간 정도면 완전히 지쳐버릴 것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완벽한 파도를 고르기 위해 신중을 다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시몽(윤나무)은 물 속 온도가 9도에서 10도에 이르는 가운데 1시간 정도면 완전히 지쳐버릴 것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완벽한 파도를 고르기 위해 신중을 다한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마치 그리스 시대 영웅의 비극서사시를 읊조리는 음유시인처럼 드 케랑갈의 소설은 뇌사 상태에 빠진 시몽의 심장이 여전히 ‘사랑’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를 부모와 여자 친구에 대한 서술 뿐 아니라 그의 심장이 기계 장치에 의존해 뛰고 있는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생체의학국 의사, 장기 이식팀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며 장기 이식의 역사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은 한 사람의 비극적 죽음이 전혀 관련 없는 낯선 사람을 수혜자로 선택해 새로운 삶을 위한 생명을 고동치게 하는 순간 그 끝에 이른다.

높은 곳에서 새의 눈으로 모든 인물들을 관찰하듯, 카메라를 각 인물에게 들이대 자유자재로 줌인을 반복하듯 관조와 밀착, 확장과 응축, 팽창과 축약을 반복하는 드 케랑갈의 소설은 끝없이 밀려오고 쓸려가는 파도를 연상케 하며 하얗게 부서지는 잔상을 남길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심장 박동이 된다.

캐스트 이미지 컷. 2019년 초연에 이어 해설자를 포함한 16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1인극을 맡은 배우 손상규(위)/ 윤나무(아래)).사진 제공 - 제공=프로젝트그룹일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캐스트 이미지 컷. 2019년 초연에 이어 해설자를 포함한 16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1인극을 맡은 배우 손상규(위)/ 윤나무(아래)./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소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장기 이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던 독자들에게 세밀한 지식과 사유, 그리고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 만드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심장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것, 존재를 이루는 육체, 감정, 기억에 대한 고찰,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수선하고 깁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시몽과 같은 나이의 아들을 가진 네 아이의 어머니로서,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랑하던 아버지를 잃은 딸로서, 췌장암에 걸린 환자의 투병을 지켜본 친구로서, 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뒤 찾아온 패닉 증상으로 고통을 겪은 한 사람으로서 드 케랑갈은 자신의 경험과 사유, 질문과 조사의 결과를 소설 속에 풀어내고 있다.

드 케랑갈은 영국 언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삶을 지속시키는 육체의 기관으로서의 심장 과 사랑, 감정, 기억을 상징하는 의미로서의 심장이 지닌 “이중적 속성”에 주목하면서 “심장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어졌고,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심장이 옮겨지는 밤의 이미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심장 외과 전문의인 오빠의 도움으로 실제 이식 수술을 참관할 수 있었고, “세상을 창조한 일곱째 날 하느님은 서핑을 가셨다”는 문구를 붙여놓을 만큼 서핑에 온 열정을 담았던 가족구성원으로 자라난 그녀의 경험은 소설 속에 온전히 녹아있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시몽의 몸에서 빠져나온 심장의 상태를 확인하는 외과의사 비르질리오 브레바(윤나무)는 "심장은 심장을 넘어선다"는 말의 의미와 그 상징적 권위를 신뢰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시몽의 몸에서 빠져나온 심장의 상태를 확인하는 외과의사 비르질리오 브레바(윤나무)는 "심장은 심장을 넘어선다"는 말의 의미와 그 상징적 권위를 신뢰한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신에게 발생한 일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한 방식으로서 소설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는 드 케랑갈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인물들에게 자신이 반영되고 있음을 긍정한다.

정확히 그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없지만 자식의 죽음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마리안과 죽음을 향해가면서 심장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클레르를 통해 드 케랑갈은 심장을 기증하기로 결정하는 어머니와 살기 위해 심장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어머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문판 번역을 맡은 제시카 무어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초기 희곡 ‘플라토노프’에서 주인공 플라토노프의 죽음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 질문에 “죽은 자들은 묻고 산 자들은 수선해야지!”라고 답하는 대사에서 소설의 제목이 탄생했음을 언급하는데, 영어로 “to mend(수선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에 주목한다.

드 케랑갈 역시 ‘치유하다(heal)’가 아닌 ‘수선하다(mend)’가 자신의 의도에 보다 적합한 단어임을 강조한다. 이는 그녀의 목적이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옮겨가는 심장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자식의 죽음 뒤에 남겨진 부모의 마음과 삶을 ‘수선하는 일’과 망가진 심장으로 인해 끝에 이를 뻔한 삶을 ‘깁는 행위’로 수선하는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추운 겨울 날 새벽, "파도의 왕(Kings of the waves)"이 되고자 파도를 고르던 시몽(손상규)은 '테이크 오프'를 위한 자세를 잡는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추운 겨울 날 새벽, "파도의 왕(Kings of the waves)"이 되고자 파도를 고르던 시몽(손상규)은 '테이크 오프'를 위한 자세를 잡는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사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이러한 남겨진 자들의 삶의 수선과 그들을 위한 시몽의 육신 복원 과정,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가능케 했던 고대 그리스 영웅이나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묘사되는 시몽에 관한 부분이 과감히 삭제되어 있기 때문에 ‘심장’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

암흑 속에서 심장 박동 소리로 시작되는 연극은 소설의 앞부분을 그대로 배우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새벽 5시 50분, 파도 소리가 더해지는 가운데 푸른 바다의 영상이 펼쳐지고, 무대 위 테이블 위에 올라선 배우는 완벽한 서핑 경험을 위해 파도를 고르며 “존재의 본질을 단 하나의 동작 안에 붙잡는” 시몽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몽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순간은 오로지 이 때 뿐이다.

오전 9시 20분, 구조대원들이 해안 도로에 도착하고, 소형 트럭의 운전석과 보조석에 있던 두 사람은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끼어 앉아 있던 청년은 정면 유리창을 뚫고 나갔음을 발견한다.

10시 12분, 시몽이 구급차에 실려 르아브르 병원에 도착한다. 피 속에 잠긴 시몽의 뇌는 빠르게 파괴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1959년 국제 신경학회에서는 소생의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모리스 굴롱과 피에르 몰라레에 의해 “심정지는 더 이상 죽음의 징표가 아니며, 이제부터 죽음을 정의하는 것은 뇌 기능의 정지이다”라는 혁명적 선언이 있었다.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이 이루어지고 심장이 뛰고 있지만 두뇌 활동이 정지된 환자들, 육체에 연결된 기계장치를 제거하는 순간 심정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상태를 ‘비가역 코마’라 정의하게 된 일은 소생의학의 비약적 발전과 장기 이식의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

11시 40분, 응급의학과 간호사에게 연락을 받은 시몽의 어머니 마리안이 모습을 드러낸다.

12시 30분, 그녀는 “시몽이 입은 손상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응급의학과 의사 피에르 레볼은 뇌사 판정을 위한 뇌전도 기록을 요청한 다음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토마 레미주에게 전화를 건다.

비어 있는 무대 위에서 서핑 보드, 사무실의 가구, 심장 적출 및 이식이 이루어지는 수술대 등으로 변모하는 '테이블'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배우(손상규)는 수술실의 긴박감과 쏟아지는 에너지, 뜨거운 열기를 온 몸으로 표현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비어 있는 무대 위에서 서핑 보드, 사무실의 가구, 심장 적출 및 이식이 이루어지는 수술대 등으로 변모하는 '테이블'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배우(손상규)는 수술실의 긴박감과 쏟아지는 에너지, 뜨거운 열기를 온 몸으로 표현한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 숀에게 할 말들을 정리하며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는 마리안, 시몽의 상태에 대해 알게 되고 절망으로 솟구치는 분노를 어찌할 줄 모르는 시몽의 아버지 숀, 4시간 간격으로 2회 실시되는 뇌전도 기록 2개가 30분 동안 평탄 뇌파를 나타낼 경우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음을 전달해야 하는 의사 레볼,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비극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부모에게 심장이 뛰고 있는 아이의 장기 이식 동의 절차를 요청해야 하는 토마...

토마는 모든 개인이 장기 이식에 있어 잠재적인 수혜자로 추정된다면 죽은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인 기증자로 단정될 수 있다는 '동의 추정 원칙'을 시몽의 부모에게 언급하지 않는다. 거부의 가능성 또한 기증의 조건이며, 거부 의사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면담의 3분의 1은 장기기증 거부 의사로 끝난다.

삶을 사랑하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에 가장 큰 기쁨을 느꼈던 육체적인 청년, 터질 듯이 빨라진 심박수를 분당 50회 미만으로 낮춰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스포츠맨의 심장을 가진 젊은이라고 해서 죽음을 고려해보지 않았을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또 너그러운 마음과 타인에게 베푸는 성품을 가졌다고 해서 장기 이식에 동의할 거라 단정할 수도 없다. 죽음에 이른 육체는 다른 이에게 필요한 장기를 품고 있는 ‘장기 보관소’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을 향해 가는 다른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과 이타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신체에서 분리된 장기가 보존될 수 있는 시간은 단 '4 시간', 그 시간 안에 시몽의 심장은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클레르의 신체 안에 자리를 잡아야만 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인간의 신체에서 분리된 장기가 보존될 수 있는 시간은 단 '4 시간', 그 시간 안에 시몽의 심장은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클레르의 신체 안에 자리를 잡아야만 한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연극은 이 어려운 선택 앞에서 시몽의 부모가 어떻게 장기 이식에 동의하게 되었는가의 내면적 소용돌이를 상당부분 생략한다. 또, 기증을 허락한 장기에 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익명성을 갖도록 만들 뿐 아니라 기증자의 신체 정보에 맞는 수혜자를 빠르게 찾아 연결해야 하는 생체의학국 의사 마르트 카라르의 단상 역시 생략한다.

대신 연극은 기증자의 신체를 떠난 심장이 육체 밖에서 보존될 수 있는 4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다른 신체에 이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의료팀의 모습에 속도를 더한다.

18시 50분, 뇌사 판정과 함께 1980년대 초 장기 이식에 혁신을 몰고 온 거부반응 억제 치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심장이식 최고 권위자 아르팡 교수의 환자 클레르 메장에게 연락이 간다.

19시 30분, 15년이 걸리는 전문의 과정을 12년에 마쳤을 뿐 아니라 “심장은 심장을 넘어선다”는 생각으로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고자 심장외과를 선택한 의사 비르질리오 브레바가 호출된다.

22시, 심장, 폐, 간, 신장을 적출하기 위해 전임의와 레지던트로 구성된 팀들이 곳곳에서 도착하고 르아브르 병원의 수술실이 열린다.

비어있는 무대를 채우는 것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밀물과 썰물의 파도 그래프를 그려내며 심장처럼 고동치는 '배우(윤나무)'와 관객들의 상상력을 돕는 화면의 영상과 조명, 테이블 뿐이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비어있는 무대를 채우는 것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밀물과 썰물의 파도 그래프를 그려내며 심장처럼 고동치는 '배우(윤나무)'와 관객들의 상상력을 돕는 화면의 영상과 조명, 테이블 뿐이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23시 50분, 시몽의 육체 속에서 심장이 멎게 되는 클램핑의 순간, 고통 속에서 의식이 멍해진 마리안은 전국 각지로 아들의 장기들이 흩어지게 되면 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낯선 사람의 몸에서 그의 심장이 뛰게 될 때 줄리엣을 향한 그의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지만 시몽은 심장을 넘어서는 존재이고, 만 19년 동안 그녀의 기억 속에 온전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온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파리의 병원에서 이식을 기다리는 클레르는 상념에 빠진다. 누군가의 비극이 자신에게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 한없이 무겁고, 오늘 밤 죽음에 이른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자정이 지난 12시 30분, 파리의 병원에 심장이 도착하고 아르팡 팀은 이식 수술에 들어간다. 비르질리오는 아르팡 교수의 맞은편에서 빠른 속도로 수술을 이어나간다.

새벽 4시, 마침내 클레르의 몸에 시몽의 심장이 이식되고, 전기 자극이 가해지며, 두 번의 시도 끝에 클레르의 몸 안에서 태초의 심장박동이 시작된다.

새벽 5시 49분, 시몽이 서핑 알림을 받던 시각에서 정확히 24시간이 흐른 시점, 긴박했던 심장 이식의 모든 여정은 마무리 된다.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간다. 각자 자신만의 인상과 경험을 품은 채로...

연극은 클레르의 이식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르아브르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시몽의 육체가 복원되는 장면을 구현하지 않는다.

르아브르의 병원과 파리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심장 적출과 심장 이식 수술의 과정은 조명과 배우의 연기, 스크린의 화면 영상의 도움으로 구현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장면. 르아브르의 병원과 파리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심장 적출과 심장 이식 수술의 과정은 조명과 배우의 연기, 스크린의 화면 영상의 도움으로 구현된다./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토마가 그를 위해 부르는 애도의 노래도, 인간의 육체가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놀라움을 느꼈을 뿐 아니라 수술실 밖으로 울려 퍼지는 토마의 노랫소리에 감동해 눈물짓고 있는 간호사 코르델리아 아울의 모습도 언급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연극은 심장의 이식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미국에서 ‘샘 테일러’라는 다른 번역자에 의해 출간된 영문판의 제목이 ‘심장’이었음을 강조라도 하듯, 연극은 ‘심장’이라는 육체의 기관이 다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옮겨가는 긴박한 과정을 펼쳐 보인다.

클레르의 몸에서 다시 뛰기 시작한 시몽의 심장은 무엇을 간직하고 있을까? 새롭게 시작되는 시간 속에서 그 심장은 무엇에 흔들리고, 무엇에 솟구치며, 무엇에 무너지고, 무엇에 전율하게 될까? 그리고 또 다시 끝에 이르렀을 때 그 심장에게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의 멈춤일까? 망각일까? 아니면 세상의 끝일까? 6월 27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하영
주하영
jhy0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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