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주목할 만한 하수민 작·연출의 창작극 '새들의 무덤'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주목할 만한 하수민 작·연출의 창작극 '새들의 무덤'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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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근현대사의 상처를 씻김하는 배우들의 연극
하수민 작 연출의 연극 '새들의 무덤'.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우리가 살아온 세상에서 비명횡사하고 한 맺힌 주검들에 대한 진혼(鎭魂), 해원(解寃), 씻김...

하수민 작 연출의 '새들의 무덤'(6월 5~20일/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작가의 관점이 전향적이고,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는 연출의 솜씨와 시너지를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2016년 초고(草稿) 이후 쇼케이스를 거쳐 지난해 초연 당시 호평을 받은 화제작을 재공연에서 보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창작을 발굴하여 지속적인 보완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지원의 결실이라는 점도 평가할 부분이다.

하수민이 쓰고 이성곤 드라마터그가 활성화시킨 '새들의 무덤'은 우리 근현대사를 소재로 삼았지만 이분법적이거나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민중과 개인사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현대 시리즈’는 “현재 우리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과거를 소환, 연극적 방식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작가는 1968년 한 어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제 수탈을 거쳐 해방이 되고, 6.25 전쟁을 거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념과 신구의 대립, 미제로 불리는 서구문물이 유입으로 윤리와 기치관이 흔들리는 마을에 학생운동으로 도망자가 된 젊은이까지 끼어든다.

하수민 작 연출의 연극 '새들의 무덤'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2막에 있지 않고 1막 후반부에 휘몰아친다. 지주 행세하는 수필(조형래)이 주인공 오루(서동갑)와 항구 개발을 위해 벌인 굿판. 이 씻김 굿판에서 세습무 당골네(김현)는 망자를 위한 혼 건지기를 주장하고, 갑자기 강신무가 되어 오루의 어미, 애비를 불러낸다.

불과 몇 세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오염됐고 남 탓하는 세태로 변해버렸다. 이것을 지켜본 오루도 병들고 말았다. 하수민 연출은 여기에 진도의 씻김굿을 연극적 방식으로 끌어들였다.

“새파란 죽음을 금새 삶의 에너지로 포옹하는 그 힘에 휘둘려 신명으로 솟구치는...”

작, 연출이 인용한 황루시의 표현처럼 처연한 굿판이 된 무대에서 관객인 필자는 신들림을 체험했다. 불과 한달 전에 진도 씻김굿을 공간 아울에서 볼 때도 느끼지 못했던 전율이 엄습해 몸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하수민이 그걸 연출하고 배우들이 제의연극에서 최고봉인 신명의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당골네 역의 김현 배우가 무대를 주도했고, 코러스를 이룬 배우들이 몰아의 경지로 에너지를 몰아붙였다. 막판에 섬주민들은 새가 되어 다같이 날아 오르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다른 관객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리고 인터미션. 후반의 이야기는 몰입되지 않았고 자연스럽지도 못했다. 프로그램에 있는 글처럼 “뭘 더 보여주려고? 뭘 더 떠오르게 하려고?”란 생각이 들었다. 새들의 무덤에 대한 진혼은 1막처럼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대신 하수민이라는 예인이 보였다. 필자는 그를 본적도, 그의 작품을 본 적도 없다. 젊은 세대인 그는 연극사와 메소드를 충실히 배우고 거기서 자기만의 방법론을 택한 것 같았다.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십분 활용했고, 극중극과 마임 기법을 끌어들여 상황을 설명하는 대신 무대를 비워버렸다.

연극은 텅 빈 무대에서 시작되었다. 장치도 소품도 없는 무대는 광장처럼 넓어 보였다. 연출은 그 빈 공간을 배우들로 채웠다. 개인과 무리로... 배우들을 오브제 삼아 새들의 무덤을 조형화하고 거기서 연극을 시작하고 거기서 연극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1인 화자(話者)와 새를 등장시킨다.

새, 새들, 새섬, 새들의 무덤.

“새야, 너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오루는 새를 따라 옛날로 돌아갔다가 새와 작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오루와 새는 근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참극과 비극의 현장을 함께 목격한다. 새는 오루의 유년과 청소년 시절, 성인이 되고 결혼하기 까지 분신처럼 따라 붙다가 가슴 무너져내리는 이별의 대상이 되어 날아간다.

연극  '새들의 무덤'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새들의 무덤'은 배우들의 연극이다. 굿판 장면에만 소도구가 등장할 뿐 오로지 몸 전체로 극을 만든다. 오루 역 서동갑 등 11명의 배우들은 이야기를 엮는 캐릭터도 연기하지만 군증이 되고 섬이 되고 새가 되어 대극장 무대를 꽉 채운다.

무리 속의 개인 연기도 보이지만 무리로서의 집단 연기가 극을 이끄는 동력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배우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 이 연극의 매력이다. 서동갑이 2시간 동안 무대를 지키며 화자의 역할을 진지하게 해냈고, 1막 초반 손성호가 보여준 할배 연기는 극의 백미였다.

당골 역 김현의 신들린 연기, 판수 역 장재호의 듬직한 연기, 수필 역 조형래의 가진자의 연기가 극의 축을 이루었다. 여기에 태봉 역 심민섭의 저돌 연기, 배손 역 곽지숙의 당찬 연기, 김시영의 할매 연기, 홍철희 김다임의 콤비 연기, 새와 오손, 도손 1인 3역을 맡은 박채린의 산뜻한 연기가 앙상블을 이뤄 탄탄한 연기력과 열정의 에너지가 합체된 역작을 만들어냈다.

'새들의 무덤'은 불행하고 비루한 우리네 인생사의 단면을 그리고 있지만 그것을 다시금 기억하고 새처럼 날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있다는 점에서도 호감이 갔다. 다만 아직 남아있는 빈틈은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고, 특히 1막과 2막의 이질성과 연계성이 좀 더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나름의 생각도 해보았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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