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사단장 출신 화가 하정열 "스위스 무관시절 北 김정철 만나" (下)
[김두호가 만난 人] 사단장 출신 화가 하정열 "스위스 무관시절 北 김정철 만나" (下)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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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된 장군의 꿈은 여전히 통일 대통령
-통일 평생 열망...호도 ‘통일’(統一)로 작명
-스위스 무관시절 北 김정철 만난 하정열 화백
-북한학 박사로 성균관대 겸임교수로 활동
-군인 집안...육해공 사관학교 출신 군인이 6명
사단장 출신이자 대통령 국방비서관을 역임한 중진 아티스트 하정열 화백. 그는 우주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우주화가'다. 37년간 몸담아온 군대를 떠나 화가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그는 북한학 박사이자, 교수,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방송평론가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통일 평생을 열망해온 그는 호도 ‘통일’(統一)로 작명했다고 한다.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우주는 우주의 티끌 같은 지구에 사는 인간의 과학이 풀어낼 수 없는 끝없이 신비로운 상상의 영역이다. 중진 아티스트 하정열 화백(1951∼)은 우주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독창적인 ‘우주화가’다.

무한한 우주를 창작 마당으로 펼쳐놓고 삼라만상의 꿈과 희망, 사랑과 나눔, 교류와 융합, 소생 등이 다양하게 주제와 테마로 생성되는 그림언어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우주를 향한 상상력과 화풍, 표현방식, 조형세계는 ‘우주미술’의 새로운 장르로 평가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그는 아티스트 세상과 동떨어진 육사 31기 육군 소장의 무관출신이다. 37년간 군복무를 하며 어깨에 번쩍거리는 별 두 개를 단 지휘관으로 사단장을 거쳐 3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다. 대통령 국방비서관의 막강한 경륜도 있다. 지난 이력이 그저 평범하지가 않다. 이름부터 ‘정열’인 그는 통일과 평화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통일 아리랑> 상하 시리즈를 비롯해 <한반도 희망이야기> <한반도 평화통일전략> <상호주의 전략> 등 출간한 통일 안보관련 전문 저서가 11권에 달한다. 

 '우주삼라만상2020-9'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하정열 화백./사진=하정열 제공  

여기에 미술작가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종합대상과 뉴욕아트페어 미술부문 대상을 비롯해 국내외 미술전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우주를 품은 대작품전’의 개인전시회만 지난 1월 마루아트센터(서울 인사동) 개최까지 17차례가 된다. 우주의 꿈을 비구상과 반구상으로 담아내는 그의 작품전은 100호가 넘는 대작들이 주로 선을 보인다. 창작과정이 특별한 것은 한국화로 통칭되는 동양화의 화구가 먹과 한지인데 하 화백은 여기에 서양의 기본 재료인 유채를 융합해 동서양의 재료와 사상을 아우르는 조형기법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수석부이사장, 대한미술협회 고문 등을 맡고 있는 중진 화가로 2모작 삶의 무대를 미술로 옮긴 뒤에도 통일 안보분야 전문가로 한국안보통일연구원원장, 북한학 박사로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또 KBS 등에서 통일안보 관련 해설위원과 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안보관계 발표 논문이 40여 편, 시인으로도 등단해 발표한 시집도 <삶의 흔적 돌> 등 5권이 있다.

‘우주화가 하정열’의 호는 ‘통일’(統一)이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자신의 평생 열망이기도 해 선뜻 작명한 호가 통일이다. 통일 하정열 화백은 인간의 지혜로 풀 수 없는 우주 삼라만상의 보이지 않는 섭리를 창작예술의 주제와 이념으로 추구하며 아티스트의 열정을 화폭에 담아내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고 시도 발표한다. 또 한편은 국가안보 통일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후반의 인생을 사통팔달의 재사(才士)로 펼쳐가고 있다.

[김두호가 만난 人] 사단장 출신 ‘우주화가’ 하정열 화백 (상)에 이어서

화가로 '2모작인생'을 살고 있는 하정열 화백은 장군출신 아티스트다. 육사 31기 육군 소장의 무관출신인 그는 사단장을 거쳐 3군사령부 부사령관, 청와대 국방비서관 등을 지냈다. /사진=하정열 제공

- 해외 주재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한 시기도 있지 않았는가?

"중대장 시절도 DMZ에서 보냈고, 대대장도 3사단 백골부대의 최전방 철책경계선에서 북을 바라보며 근무했다. 대령시절에 독일주재 국방무관으로 갈 기회가 뒤로 미루어지면서 대신 1992년 스위스 주재 무관으로 가게 되었다. 그 당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 국제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과 함께 공부했고, 나도 김정철을 잘 안다. 남과 북을 떠난 사람들이 이념적 정치적 색깔을 내세우지 않으면 어디서나 한민족 동포로 정을 나누며 공존공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 나는 그 무렵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미 대표단의 최초 핵협상이 북의 제1당사국인 남한을 배제하고 개최되는 것을 바라보며 한국의 국방무관으로 심한 좌절감과 괴리감을 느꼈다. 미국은 협상 후 내용을 우리 대사관에 통고식으로 전달해주었다. 북한의 국방관계 협상 상대국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우리는 옵서버로 참가할 자리도 없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미국을 우리의 동맹국가로 중시하지만, 전시작전통제권만은 우리가 환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주장해왔다. 그것은 우리의 국제적인 주권과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데 첫 번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독일처럼 우리도 평화를 지키는 강한 힘을 키우면서 평화적으로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국력이나 국방력을 미국 눈치나 보는 허수아비로 생각하면 남북의 평화통일 등 남북관계는 미국을 통하지 않는 한 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로부터 우리의 국방이 신뢰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미국에서 엄청난 군 장비도 도입하고 주둔비용을 지원하는 등 막대한 국방비를 유지해 가며 자체적으로도 막강한 육해공 국군조직을 가진 나라다. 그럼에도 독립적인 국가의 국방으로 국내외에서 인정을 못 받아 제구실을 못하는 점들이 안타깝다."

- 하 화백의 통일관을 주제로 출간한 일련의 저서들이 많다. 더구나 대학에서 연구과제로 북한학을 선택해 박사학위를 받고 겸임교수로도 활동해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시절에 군 관련 영입인사로 정치활동도 하지 않았는가?

"평화통일에 기여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마음고생도 많았다. 정치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러 직책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으나 애써 고사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해왔다. 여전히 안보통일과 관련된 연구 활동은 우리 겨레의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나의 천직이라 생각하며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시절 군 관련 영입인사로 한 때 정치활동을 한 하정열 화백./사진=하정열 제공

- 사단장 시절 군부대와 이웃 민간 지역 주민 사이에 군민 음악, 체육축제 등 친선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이기자축제’가 화제에 오른 일화가 있다. 대체로 군부대는 철망을 사이에 두고 이웃 도시나 동네사람들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다.

"이기자부대 사단장일 때 내 나름의 용기를 낸 시도였는데 지역 사회에서 따뜻하게 받아들여 좋은 선례를 남겼다. 지휘관들이 때로는 능동적인 결정으로 부대를 이끌어 가야한다. 군부대가 국민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보안을 지키면서 국민과의 화합을 시도하는 것도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 여전히 통일 대통령의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는가?

"막연한 꿈이 되었지만 버리지 않았다. 리더십이 필요한 공직이나 정치활동도 떠났지만, 평생 연구하면서 동참해온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기여할 기회를 맞이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37년 6개월의 소임을 다하고 군을 떠나면서 2모작 후반기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는 평생을 국방 안보분야에서 보내며 못다 한 미션을 계속한다는 생각에서 통일공부, 즉 북한학을 계속 연구한다는 것, 두 번째는 틈을 내지 못해 준비하지 못한 국가전략에 관련한 저술활동, 세 번째가 내 나름의 숨은 재능인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군에 있을 때도 여가를 최대한 활용하여 앞장서서 하고 싶었지만, 분단된 나라에 근무하는 군인이 그런 낭만적인 티를 낸다는 것은 경계받은 일이라 적극적이지 못했다."

꿈꾸고 도전하면 이뤄진다

-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분야다.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일에는 꿈과 자신감이 잠재되어 있다. 흔들어 깨우면 된다. 나는 화가들의 산실인 홍익대 미대의 최고위 교육과정 등 미술과 디자인 분야 수업을 쉬지 않고 이어가면서, 미술계의 중진인 이동일(동양화), 이상덕(수채화), 정의부(서양화), 정형준(비구상), 하종현(비구상 단색화)화백의 사사를 받아 열심히 배우면서 동서양의 사상과 물질을 융합하는 화가의 잠재된 재능을 스스로 흔들어 깨웠다. 그러다가 황홀하게 마주친 주제가 우주였다."

- 발표한 시의 주제도 통일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 것 같다. ‘나는 한그루 나무되어 / 반동아리 허리에 / 뿌리 내리고 싶소 / 나는 타고르의 등불 되어 / 웃음 잃은 삼천리를 / 밝히고 싶소 / 하나가 둘이 되고 / 둘이 우리가 되어 / 팔천만 숨결이 / 다시 하나가 되도록 / 나는 / 그날 그날을 위해 / 불사조가 되고 싶소’라는 발표 시 한편이 절절한 하정열 시인의 통일 염원을 느끼게 한다. 출간한 시집들의 주 테마가 호국과 통일인 것 같다.

"‘소망’이란 시는 대대장 시절에 전방철책에서 영하 30도의 혹한에 전우들이 경계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은 소박한 시이다. 지금은 고흥의 나로호발사 관람장의 통일공원에 시비로 서있다.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 호국과 통일보다 더 큰 과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미술은 작가의 자유로운 표현 영역이다. 읽고 감상해주는 분들이 공감을 함께 나눌 수도 있지만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세상을 작가는 마음대로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이나 미술 창작은 매력적이다."

고흥의 나로호발사 관람장의 통일공원에 위치한 '소망' 시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하정열 화백. 그는 "대대장 시절에 전방철책에서 영하 30도의 혹한에 전우들이 경계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은 소박한 시"라고 말했다. 

-하 화백의 <국가전략론> 저서 내용 중에 저 출산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려를 조명한 대목이 있다. 지금 1인1가구 시대의 주역 중에 미혼의 젊은 세대가 많다는 통계가 매년 증가추세로 나타난다. 또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20년째 인구대비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자기 중심적인 사회, 이기적인 생활문화가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게 생각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우리 사회는 배려와 포용보다 대립과 고독의 인간관계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가정, 직장, 국가가 모두 나와 연관된 고리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해야 서로 책임감을 느끼고 부족한 것을 서로 보완해주는 따뜻한 사회가 된다.

제 앞가림만 치중하면 모래알 사회가 되어 큰 흐름을 함께 할 수가 없다. 미래의 꿈도 함께 하고 사회적 국가적 문제도 책임감을 공유하면 대립이 생기지 않고 인간사회가 온기를 찾게 된다. 이를테면 저 출산이나 고 자살률의 해결점도 교육과 사회 풍토의 변화를 위한 정신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밝은 미래를 향해 함께 손잡고 갈 수 있는 희망의 사회, 약자도 배려받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복지사회공동체를 만들어 가야된다. 출산율을 높이고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회의 역동성이 중요한데 평화통일이 우리 국민들의 역동성을 높일 수 있는 전환점의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 ‘장군의 가족’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진다.

"나와 남동생과 매제, 동서, 처삼촌까지 우리 집안에 육해공 사관학교 출신 군인이 6명이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국가에 봉사하는 직업인인데 모이면 저절로 충성심 경쟁을 한다. 자식은 남매인데 이사를 많이 하는 군인의 아들 딸로서 초등학교 때 아홉 번의 전학에도 잘 적응해주어 무척 대견하고 고맙다. 아들은 기업체 간부, 딸은 방송사 앵커로 활동하지만 그림 소질이 탁월한데 딸이 못 이룬 꿈을 내가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서른 번이 넘는 이사에도 군인가족으로 소명을 다해준 부인과 풍족하지 못한 집안에도 사회발전과 가정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며느리가 있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하정열 화백./사진=인터뷰365

- 통일 대통령을 꿈꾸며 살아온 장군으로, 또 우주의 꿈을 담아내는 화가로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동학혁명의 성지인 정읍의 두승산 자락에서 태어난 것을 늘 긍지로 생각하며 평화통일의 꿈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왔다. 그곳은 민족종교인 증산교, 차천자교 창시자들과 전봉준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어릴 때 남의 미래를 알아보는 시각장애인 부부가 지나가다가 내 머리를 만지며 우리 부모에게 외국을 오가며 나라 일을 할 아이이니 잘 키우라는 말을 한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그 한마디가 나라를 생각하는 인생의 좌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국가를 위하는 길을 운명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

세상은 꿈꾸고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 바로 큰 꿈은 용기와 도전, 자신감을 동반한다. ‘할 수 있다’는 신념이 내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의 바탕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싶다. ‘미루나무를 겨냥하는 자의 화살보다 태양을 겨냥하는 화살이 높이 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주시대의 시대정신(Zeitgeist)은 ‘도전’, ‘개척’, ‘사랑’과 ‘융합’이 될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며 희망을 갖고 자신만의 인생을 설계하면서 산다면, 때로는 좌절하더라도 의미있고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젊은이여 꿈을 꾸며 도전하자! 앞으로 우주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우주는 드넓고 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다음은 영문으로 번역한 기사 전문입니다.] 

<Painter Ha Jung-yul, a former division commander whom Kim Doo-ho met (2)>

- I met Kim Jong-cheol of the North while I was in Switzerland

Interview365 Dooho Kim Interviewer = The universe is an endlessly mysterious realm of imagination that cannot be solved by the science of humans living on a tiny thing of the universe. Artist Ha Jung-yul (1951~) is an original “painter of cosmos” who works on the theme of universe.

He unfolds the infinite universe as a workshop. And he shows the language of paintings in which dreams and hopes, love and sharing, exchange and fusion, and revitalization are created in various subjets and themes. His imagination, style, expression, and formative world toward the universe are also evaluated as a new genre of ‘art of the cosmos’.
 
Surprisingly, he  is far from the world of the artist. who was graduated 31st from Korean Millytary Akademy. He served as a officer for 37 years, a general with two stars on his shoulders, as a division commander and then vice commander of the 3rd Army Command. He also has a mighty career as a defense secretary for the president Kim. His past history is not just common. From his name, ‘jung-yul which means Passion’, he has published novels on unification and national security such as <Unification Arirang> top and bottom series, <Story of Hope on the Korean Peninsula>, <Peaceful Unification Strategy on the Korean Peninsula> and <Reciprocity Strategy>. It reaches the volume.

In addition, as an art artist, he has won the Grand Prize at the Korea Art Exhibition and the Grand Prize in the Art Division at the New York Art Fair, as well as awards at domestic and international art exhibitions. Only the solo exhibition of the “Great Works with Universe” will be held 18 times until the Maru Art Center (Insa-dong, Seoul) was held in January. His exhibitions of cosmic dreams in both non-figured and hemispherical forms are mainly lined with larger than 160X130cm. What makes his creative process special is that Ha is working on art with a formative technique that encompasses Eastern and Western materials and ideas. Ha is working on art by fusing ‘Hanji and Korean Ink’ which is a basic Eastern material. and ‘Canvas and Oil’, which is a basic Western material.

He is a senior vice-president of the Korea Fine Arts International Association and an advisor to the Korean Fine Arts Association. He is an expert in the field of unification and national security after moving his life to art. He is also an adjunct professor of National Strategy at Sungkyunkwan University. He has also worked as a commentator and critic on unification and national security at KBS. There are more than 40 theses on his security relations presentation, and 5 poetry books, including <The Traces of Life>, a collection of poetry published as a poet.

The nickname of “space painter Ha Jung-yul” is “Unification”(統一).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is the longing of his people, is also his lifelong aspiration. Painter Ha Jung-yul pursues the invisible providence of the universe, which cannot be solved by human wisdom, as the theme and ideology of creative art. He writes novels and attempts presentations in his spare time while embedding the passion of the artist on the canvas. On the other hand, while working as an expert in the field of national security and unification, he is spreading his second half of his life as a all-round player.

-Wasn't there a time when you worked as an defense attache at an overseas embassy?

"I spent my days as a company commander in the DMZ, and the battalion commander also worked at the front line of the 3rd Division's Baekgol unit, looking at the north. During my colonel’s days, the opportunity to go as a defense attache in Germany was postponed, and in 1992 I was instead taken as a defense attache in Switzerland. There are some things that remain in my memory at that time. At an international school, our children studied with Kim Jong-un's elder brother, Kim Jong-cheol, and I know Kim Jong-cheol well. I felt that if the people who left the North and the South did not display ideological and political colors, they could share friendships and co-exist as Korean compatriots anywhere.

Also, I felt severe frustration and dissension as a defense attache of South Korea as I watched the first nuclear negotiations by the North Korean-American delegation be held in Geneva, Switzerland, excluding South Korea. After the negotiations, the United States delivered the details to our embassy in the form of a notification. North Korea's defense relations negotiation partner was not us, but the United States. We didn't even have a chance to participate as observers.

I put emphasis on importance to the United States as our ally, but insisted on the principle that only wartime operational control rights should be redeemed. This is because it is the first condition to secure our international sovereignty and status as a state. Like Germany, we must pursue peaceful reunification while fostering strong power to keep peace. If North Korea regards our national and defense power as a scarecrow that the United States notices or sees, inter-Korean relations such as peaceful reunification between the two Koreas will not be resolved unless they go through the United States.

Above all, our national defense must be trusted by our people. We are a country with a strong armed forces organization, maintaining enormous defense expenditures such as introducing enormous military equipment and supporting garrison expenses of armed forces U.S.. Nevertheless, it is unfortunate that it has not been recognized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as an independent state's national defense."

- There are a number of books published on the subject of Unification. In addition, did President Moon Jae-in not even engage in political activities as a military-related recruitment greeting while representing the Democratic Party by choosing North Korean Studies as a research project at university, receiving a doctorate, and working as an adjunct professor?

"With the conviction to contribute to peaceful reunification, I ran for the Assembly election and then failed. And there were many hardships in my heart. Even after retirement from politics, I had the opportunity to participate in various positions, but I has been devoting myself to my work. Still, I believe that research activities related to national security and unification are my vocation to pursue peaceful reunification of our Korean people, and I am striving steadily."

- There is an anecdote that the “Igija Festival,” which regularly held friendly events such as military music and sports festivals between military units and neighboring civilian residents as the division commander, became a hot topic. In general, military units are disconnected from exchanges with neighboring cities and neighborhoods through the barbed-wire fence.

"It was an attempt to show my own courage when I was the commander of the Lee Gi-ja division, but it was warmly accepted by the community and set a good precedent. Commanders sometimes have to lead their troops with active decisions. Military units cannot exist apart from the people. It is also a way for the country and the people to try to reconcile with the people while protecting security."

-Are you still not giving up your dream of becoming a unified president?

"It became an empty dream, but I never give it up. Although I have left public offices and political activities that require leadership, I have a desire to face the opportunity to contribute to the peaceful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I have participated in through my lifelong research.

After leaving the military after completing my duties of 37 years and 6 months, I made plans for my life in the second half of my two crops. The first is to study unification, that is, to continue researching North Korean studies, with the idea of ​​continuing the mission that I could not do while spending my whole life in the field of defense and security, and the second is to write about the national strategy that I could not prepare because I could not afford it, and the third was mine. It was a work of writing poetry and drawing, which was my hidden talent. Even when I was in the military, I wanted to take the lead in making the most of my leisure, but I wasn't active because I was warned that soldiers working in a divided country had such a romantic look."

Dreams and challenges come true

- Writing poetry and drawing is an area that cannot be achieved overnight.

"Whatever you want to do, there is a potential for dreams and confidence. Shake it up to wake it up. I am continuing my class in art and design, such as the highest-level curriculum at Hongik Art University, the birthplace of painters, and the leading artists in the art world: Dongil Lee (Oriental painting), Sangdeok Lee (watercolor), Euiboo Chung (Western painting), Hyungjun Jung (non-figured), Jonghyun Ha (non-figured, Monochrome). While studying hard under the study of an artist, I awakened myself to the painter's potential talent for fusion of Eastern and Western thoughts and materials. Then, the subject I encountered ecstatically was the universe."

- The themes of the published poems seem to have many contents related to unification. 'I want to become a tree / on the back of the devided korean peninsula / I want to take root / I want to become a lamp of Tagore / I want to lighten the three thousand-ri that lost laughter / One becomes two / Two become us / Eight million breaths / To become one again / I / For that day / For that day / I want to become a phoenix'. One side makes me feel the desperate poet Ha Jung-yul's desire for unification. The main theme of published poetry books seems to be homeland and reunification.

"The poem “Somang(desire)” is a simple poem that was written while watching my comrades struggle to guard against a cold of -30 degrees Celsius on DMZ in the days of the battalion commander. Now, it is standing at the Unification Park at the Naroho Firing Station in Goheung. I don't think there is a bigger task for our generation living in the era of division than national protection and reunification. Literature or art is an area of ​​free expression for the artist. Those who read and appreciate may share empathy, but they may think differently. However, the creation of literature or art is attractive in that the artist can freely show a world that cannot be achieved in reality."

- Among the contents of painter Ha's <National Strategy Theory>, there is a point that pointed out the problem of the low fertility rate and highlights concerns. Statistics show that there are many unmarried young generations among the leading roles in the era of one person and one household now, showing an increasing trend every year. In addition, Korea has ranked first among OECD countries in the suicide rate relative to the population for 20 years. Where do you see the cause?

"Self-centered society and selfish lifestyle can be pointed out as the cause. There is a proverb that it is turning green with envy when a cousin buys the land. But our society is leading to a society of confrontation and solitude rather than consideration and inclusion. When the family, the workplace, and the country all develop into a sense of community that is related to me, it becomes a warm society that feels responsible for each other and complements what is lacking.

If I only focus on covering myself, I can become a sand grain society and cannot share a big flow. If we share a sense of responsibility for future dreams and social and national issues, confrontation does not arise and human society finds warmth. For example, the solution to low birth rate or high suicide rate should be a mental exercise for education and social climate change. We must create a society of hope that can go hand in hand toward a bright future, and a welfare society where the weak can feel happiness while being considered. In order to increase the fertility rate and lower the suicide rate, social dynamism is important. I hope that peaceful reunification can serve as a turning point to increase the dynamism of our people."

- I am curious about the kind of 'general's family'.

"There are six officers in my family, including me, my younger brother, my sister-in-law, two my brother-in-law. The officer is a professional person who defends and serves the country, and when we gather, we competes for loyalty by ourself. My children are siblings, and as a son and daughter of a soldier who moves a lot, I am very proud and grateful for adapting well to nine times transfers when they were in elementary school. My son works as a corporate executive and my daughter works as an anchor for a broadcaster. I think I'm replacing the dream that my daughter couldn't achieve because she is excellent in painting. I am a very happy man because I have a wife who has moved more than thirty times and has served as a military family, and a daughter-in-law who is doing her best for social development and family stability even in poor household."

- Do you have any words you would like to convey to young people as a general who has lived with the dream of becoming a unified president, and as a painter who captures the dream of the universe?"

"I have always been proud of being born on the foot of Dooseung Mountain in Jeongeup, the holy place of the Donghak Revolution, and walked boldly toward the dream of peaceful reunification. It is also the birthplace of the founders of Jeungsan-kyo and Chacheon-ja-kyo, which are ethnic religions, and Bong-jun Jeon. As a child, I remember not forgetting that a couple of blind people who recognized the future of others passed by, touched my head and told my parents to raise me well because I will render distinguished services for the country while traveling abroad. Perhaps it is not known whether that word served as the coordinates of life for the country, but I have lived thinking the path for the country as fate.

The world is up to those who dream and deliver more. Big dreams are accompanied by courage, challenge and confidence. I want to tell you, that the belief that I can do it, has become the basis of various experiences in my life. I would like to convey the saying, 'An arrow aiming at the sun rises higher than the arrow of a person aiming at the poplars. The Zeitgeist in the age of Universe will be 'challenge', 'pioneering', 'love' and 'convergence'. If you look into the future, have hope, and design your own life, it will be a meaningful and happy life even if you are sometimes frustrated. Dear young man, let's dream and challenge! For us who will live in the Universe age in the future, the universe will be wide and there will be more work to do!"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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