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 조광화 연출의 의미 있는 시도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 조광화 연출의 의미 있는 시도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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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괴테 원작 재창작한 조광화 연출의 '파우스트 엔딩'
- 파우스트 역 여배우 김성녀 맡아...인류 종말을 섬뜩한 미장셴으로 표출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국립극단의 신춘공연 '파우스트 엔딩'은 여러모로 화제가 될만한 연극이다.

국립극단 창단 70주년(2020년) 기념으로 기획된 외국작품이다. 작가 겸 연출가인 조광화는 괴테의 원작 '파우스트'를 재창작 수준으로 희곡화 했고, 1부와 2부를 압축해 '파우스트 엔딩'이라는 제목을 달아 100분 공연으로 연출했다.

조광화 연출은 파우스트 역으로 여배우 김성녀를 캐스팅했다. 젠더감수성을 고려하면서 “파우스트가 여성이라면 그레첸과의 교감도 가능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도 가능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연극 '파우스트'는 1977, 1984, 1997년 세 차례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977년 파우스트 역은 작고한 장민호 배우였고, 1997년 장민호 연기 인생 50주년 공연에서도 파우스트 역은 장민호였다.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는 결론 부문을 원작과 달리했다. 원작은 기독교식의 ‘구원’이라는 결론을 냈지만, 조광화는 “신에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지고 지옥으로 간다고 해석해 ‘엔딩’에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국립이기에 가능한 배우와 스태프를 활용했다. 1977년 이해랑 연출의 '파우스트'는 파우스트 장민호, 메피스토 김동원, 마르테 백성희, 그레첸 손숙, 바그너 이호재였고 총 62명이 출연한 대규모였다. 1997년에는 파우스트 장민호, 메피스토 신구, 젊은 파우스트 이상직이 출연했다.

 이번 캐스팅은 파우스트 김성녀, 메피스토 박완규, 마르테 권은혜, 그레첸 신사랑, 바그너 김세환, 발렌틴 장재호 등 17명이었다.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2월 26일 개막해 3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조광화 버전의 '파우스트 엔딩'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성과를 거두었을까. 먼저 이번 공연에 적용한 시도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국립극단 창단 기념작으로 적합했는가. 국립극단 원로배우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이 선정했다니 그럴만한 의도가 있겠지만, 필자는 희곡이 탄탄한 근현대 명작들과 고전보다 더 큰 의의를 지녔다고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1부와 2부를 합쳐 재창작하고, 결론 부분을 달리해 자신의 연출 방식대로 공연한 조광화의 시도와 실험은, 비록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의미있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우스트 역을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바꿔 김성녀를 캐스팅한 것은 어땠을까. 미디어에 보도된 만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김성녀는 창극에서 정극 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배우이고, 이번 어려운 무대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매끄럽게 연기해냈다.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하지만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여자 무용수를 남자로 바꾼 파격의 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젠더감수성을 의식해 원작의 성을 바꾼다는 것은 자칫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파우스트의 성을 바꾸다 보니 쌍벽을 이룬 악마 메피스토의 존재감이 약화 된 감이 없지 않다고 본다. 이번에 메피스토 역을 맡은 박완규는 '돼지우리', '국물 있사옵니다' 등에서 탁월한 연기를 펼친 명연기자로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으나 주인공과 팽팽하게 부딪히는 긴장감은 덜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파우스트 엔딩'을 관람하면서 내용을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퍼핏으로 작동한 늑대와 호문클루스 인형은 흥미로웠고, 스태프들의 협업으로 만든 공상과학적 무대는 신선했다. 그 무대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펼쳐낸 조광화의 미장셴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머지 않아 닥칠 인류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아 섬뜩함이 느껴졌다.

'파우스트 엔딩'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 사진 앞쪽은 들개 퍼핏(줄인형)의 모습./사진=정중헌

다음은 필자가 지난 1일 공연을 보고 페이스북에 올린 관극 소감이다.

마지막 장면에 '파우스트 엔딩'을 재창작하고 연출한 조광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파괴된 도시에서 파우스트가(구원받는 원작과 달리) 지옥으로 가는 그 폐허의 거리에 빨간 눈의 들깨들이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요즘 웹툰이나 넷플릭스 영화에서 인류 종말 모습과 좀비들이 등장하는데, 조광화의 '파우스트 엔딩'의 들개 퍼핏(줄인형)은 더 실감나게 공포를 자아냈다.

그러나 초반부터 내용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 조광화는 “이러다간 정말로 세상의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 즉 파우스트적인 엔딩을 경계하자”고 했지만, 솔직히 원작의 중요한 정신을 살려 재창작했다는 공연의 내용은 아련하기만 했다.

불행히도 학창 시절 번역된 '파우스트'를 완독하지 못했다. 앞서 국립에서 한 연극 '파우스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필자에게 이번 '파우스트 엔딩'은 전작보다 조금 이해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난해했고, 열중할수록 머리가 조여왔다. 그래서 작품을 소화하고 이해했다기 보다는 구경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원작이 있긴 하지만 이만한 스케일로 재창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립극단이기에 가능했고, '남자 충동', '프랑켄슈타인' 등 다수의 작품을 쓰고 연출한 조광화의 창작력과 연출력이 있기에 ‘조광화 버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본다.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배우들의 응집력도 탄탄했다. 파우스트 역을 김성녀가 맡은 것은 파격이긴 했지만, 연기파 배우가 잘 해내서인지 특이성이나 변별력은 찾기 어려웠다. 메피스토 역 박완규는 명성에 걸맞게 매끄럽게 숙련된 연기를 펼쳤으나 돋보이지는 못했다. 압권은 시민, 학생, 군인 등과 들개 역을 해낸 코러스들의 앙상블이었다. 특히 줄인형을 조종하며 연기해낸 배우들의 군중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안겼다.

종말적 아우라를 연출해낸 스태프들의 협업 무대는 볼만 했다. 문수호의 퍼펫디자인은 시선을 집중시켰고, 정승호의 무대디자인과 홍문기의 의상, 노주연의 소품이 잘 어우러졌다. 여기에 변지민의 음악, 정태진의 조명, 채송화의 분장, 김석기의 음향과 영상이 무대에 깊이를 주었다.

'파우스트 엔딩'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조광화의 '파우스트 엔딩'은 괴테의 불후의 명작을 21세기, 특히 바이러스로 인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체험하고 우울증과 공포심까지 안겨주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엔딩을 상상력으로 구현시켰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국립극단이 하고 많은 번역극 중에서 왜 방대하고 난해한 '파우스트'를 택했을까 이해가 안 갔는데, 조광화의 '파우스트 엔딩'을 보면서 한국 연극도 과학과 기술로 당면한 현실 문제와 미래 세계를 상상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실험이나 형식도 관객과 소통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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