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기쁨과 슬픔, 상실과 고통의 이야기...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앨리스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기쁨과 슬픔, 상실과 고통의 이야기...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 주하영
  • 승인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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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마란스 극작, 1996년 퓰리처상 드라마부문 최종 후보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삶이 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법을 그대로 모방하는 기교로 버텨온 '스티븐(이재균, 사진 오른쪽)'에게 '마쉬칸 교수(남경읍, 사진 왼쪽)'는 "음악의 핵심은 기쁨과 슬픔의 조합"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한다./사진=나인스토리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침묵 다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가장 가까운 것은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은 침묵 속에서 탄생한다. 그림도, 음악도, 춤도 모두 인간의 내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가장 내밀하고 깊은 곳에서 시작된 생각, 감정, 소리, 이미지는 예술로 표출된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음악은 음표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 속에 있다”고 말했다.

침묵 속에서 시작된 예술은 사람들을 이어준다. 예술이 담고 있는 생각과 감정, 소리, 이미지는 다른 이들에게 ‘공감’이라는 경험과 기억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독일의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인 로베르트 슈만은 “음악은 항상 저 너머에 있는 것과 담화를 나누도록 허락하는 언어”이며, “인간의 마음 속 어둠에 빛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바로 예술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생각의 깊이를 담아냄으로써 삶을 표현할 수 있으며, 위로를 선물하고 치유의 길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노래 수업을 맡은 '마쉬칸 교수(남경읍)'와 슬럼프에 빠진 천재 피아니스트 '스티븐(이재균)'./사진=나인스토리

1995년 미국의 극작가 존 마란스는 자신이 젊었을 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음악 공부를 하면서 보낸 몇 달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연극 '올드 위키드 송(Old Wicked Songs)'을 초연했다.

LA 드라마 로그 어워드, 뉴욕 드라마 리그 어워드, 오티스 건지 최고 연극상을 연달아 수상한 '올드 위키드 송'은 1996년 퓰리처상 드라마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학에서 노래를 가르치는 50대 후반의 교수 ‘요제프 마쉬칸’과 슬럼프에 빠진 25살의 천재 피아니스트 ‘스티븐 호프만’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삶과 감정, 관계와 진실, 예술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연극 '올드 위키드 송'은 영국과 뉴질랜드, 일본,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2개의 국가에 소개되면서 현재까지도 공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마쉬칸 교수(남경읍)'와 미국에서 온 젊은 피아니스트 '스티븐(이재균)'은 모든 면에서 상반된 입장과 다른 의견을 품는다./사진=나인스토리

‘미국 초연 25주년’을 기념하는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이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 중이다.

국내 공연의 제목에 원작에는 없는 ‘음악극’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진 이유는 이 작품이 마쉬칸 교수의 스튜디오 315호에서 펼쳐지는 1840년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에 대한 노래 수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란스는 희곡의 '작가 노트'를 통해 “비록 극의 3분의 1이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것은 연극이지 뮤지컬이 아님”을 강조한다.

사실 '올드 위키드 송'의 가장 큰 특징은 극 자체가 슈만의 '시인의 사랑'에 대한 분석을 담은 해설서로서 기능할 뿐 아니라 인물들의 서사를 이어나가고 인물 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매개체로서도 슈만의 가곡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면에서 상반된 입장과 다른 의견을 품고 있는 마쉬칸과 스티븐은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통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이해를 경험하게 되고, 서로의 아픔과 고통, 슬픔과 기쁨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의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1840년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이해'를 경험하도록 만든다. '마쉬칸 교수(남경읍)'와 '스티븐(이재균)'/사진=나인스토리

마란스는 작품의 배경을 1986년 봄부터 여름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신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던 1988년에 논란을 불러왔던 ‘쿠르트 발트하임의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출’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지만 그가 근간으로 삼고 있는 일화는 1978년 그의 나이 21세 때 젊은 청년으로서 겪었던 ‘분노’의 감정이다.

작사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독일 가곡 ‘리트(Lieder)’ 형식을 공부하고자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분석했던 지식과 유대인으로서 당시 비엔나의 음악 선생으로부터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던 경험은 연극 '올드 위키드 송'의 틀을 형성한다.

또, 여행을 하면서 나치들의 끔찍한 대학살이 자행되었던 다하우 강제 수용소의 흔적이 대부분 은폐되고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고 있음을 목격했던 실제 경험은 미국에서 온 젊은 유대인 피아니스트 ‘스티븐’의 모습 속에 고스란히 담겨진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극작가 존 마란스(Jon Marans)는 1978년 자신이 21세 때 젊은 청년으로 겪은 비엔나에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 '여러 층위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마쉬칸 교수(남경읍)'와 '스티븐(정휘)'/사진=나인스토리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마란스는 당시 아름다운 도시 비엔나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으나 다음 순간 감춰진 “두 번째 층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분노와 배신감, 진실을 향한 갈망은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주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비엔나에서의 경험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내면에 감추어진 것 사이에 여러 층위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식하도록 만들었고, “정말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물을 진짜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마란스는 이러한 ‘다른 층위의 진실’을 서른 살의 슈만이 스무 살 무렵의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음악을 덧붙인 '시인의 사랑'이 품고 있는 좌절된 사랑의 감정들과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세대와 그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하고 선 다음 세대의 아픔을 연결함으로써 드러낸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마쉬칸 교수(남경읍)'와 '스티븐(이재균)'./사진=나인스토리

2010년 브리스톨 리버사이드 씨어터의 '올드 위키드 송' 공연의 연출을 맡게 된 마란스는 “왜 슈만의 곡을 극의 중심으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20대의 하이네의 감성에 30대인 슈만이 음악을 더하는 과정에서 나이든 사람이 젊은 시절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이해의 깊이”가 추가되었고 이는 삶의 고통을 이미 경험한 마쉬칸 교수가 스티븐이라는 젊은이와 맺게 되는 관계와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누구의 삶에나 어려운 시기가 있게 마련이고, 무언가를 잃게 되거나 좌절과 분노, 아픔과 고통을 겪게 될 때 인간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종의 ‘애도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점에서 '올드 위키드 송'은 “슬픔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던 순수함의 상실, 무엇이든 꿈꿀 수 있었던 열정의 상실, 누군가를 향해 피어오르던 사랑의 상실, 마지막 보루처럼 기대를 품었던 인간성의 상실, 그리고 상실의 고통이 동반하는 분노와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닳고 해진 마음을 ‘웃음’ 속에 감추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인간의 마음은 한없이 복잡하고, 삶은 명확하지 않으며, 내면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삶이 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법을 그대로 모방하는 기교로 버텨온 스티븐에게 마쉬칸 교수가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베리스모(verismo)’를 대표하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팔리아치'를 볼 것을 권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마쉬칸 교수(남명렬, 사진 오른쪽)'가 '스티븐(정휘, 사진 왼쪽)'에게 이탈리아의 사실주의인 '베리스모(verismo)'를 대표하는 오페라들을 볼 것을 권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사진=나인스토리

슬픔과 분노를 감추고 고통 속에서도 관객들을 향해 웃어야만 하는 광대 카니오의 아리아는 마쉬칸 교수의 삶에 빗댈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피아니스트의 특징을 배우처럼 재현하는 스티븐의 삶 또한 대변하게 된다.

또, ‘광대들’을 뜻하는 '팔리아치'의 프롤로그 아리아에 등장하는 “극본을 쓰는 작가는 관객들에게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 날 자신이 체험한 일들을 무대 위에 옮긴다”는 가사는 극작가인 마란스의 경험이 '올드 위키드 송'이라는 예술로 변모하게 된 방식을 설명하게 된다.

모든 재능이 고갈된 듯 1년 동안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없었고 그 어디에서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스티븐은 저명한 쉴러 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 비엔나로 찾아온다. 하지만 먼저 마쉬칸 교수의 노래 수업을 3개월 동안 받아야 한다는 당혹스러운 사실에 짜증을 느낀다. 피아노와 전투라도 하려는 듯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달려드는 스티븐의 모습을 본 마쉬칸은 그의 오만함과 고집스러움이 천재 피아니스트의 좌절과 절망의 방어적 태도임을 인식한다.

마쉬칸은 “아름다운 음악의 핵심은 기쁨과 슬픔의 조합”이며 그것이 곧 “삶의 핵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노래 수업을 시작한다. 마란스는 2막을 구성하는 8개의 장면에 악곡의 종결부인 코다(Coda)를 추가함으로써 슈만의 '시인의 사랑' 16곡 중 총 9개의 곡을 적용한다.

아름다운 5월에 열정 가득한 사랑에 빠졌지만 고통 속에 분노하고 원망하며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품은 채로 모든 감정을 커다란 관에 담아 바다 속 깊이 가라앉혀 버리는 시인의 이야기는 삶의 고통을 넘어서는 ‘성장과 치유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마쉬칸 교수(남경읍)'는 '스티븐(이재균)'의 오만함과 고집스러움이 천재 피아니스트의 좌절과 절망의 방어적 태도임을 인식한다./사진=나인스토리

어떤 면에서 마쉬칸의 대사들은 슈만의 연가곡의 멜로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진실을 향해 직행하는 스티븐의 질문들은 매번 감추어진 이면의 뉘앙스를 품고 있는 마쉬칸의 대답들로 인해 시적 함축성을 지니게 된다. 사랑에 빠진 기쁨을 말하지만 슬픔의 멜로디가 더해진 제 1곡이나 원망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분노의 선율이 더해지는 제 7곡, 내 슬픔을 알아주길 바라지만 꿈속에서 혼자 흐느껴 울 뿐 침묵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고 마는 제 8곡과 9곡, 16곡은 마쉬칸의 숨겨진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마란스는 “하이네의 시의 가사가 첫 번째 의미를 담고 있다면, 슈만의 음악이 두 번째 의미를 더하고 있음”에 주목하는데, 젊은 예술가인 스티븐이 나이든 예술가인 마쉬칸의 내면에 메아리치는 소리를 듣고 성장된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방식은 하이네의 시가 슈만의 음악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차원을 더하게 되는 방식과 같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1955년에 재건된 오페라 극장이 폐허와 상처를 품은 현재가 아닌 이전의 아름다웠던 과거의 모습만을 따르고 있고, 독일에 있던 나치 친위대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나치들을 품었던 역사가 쉽게 은폐되는 오스트리아에서 마쉬칸은 10년 동안 추를 움직이지 않은 멈춰버린 시계처럼 자신을 박제된 시간 속에 가둔다.

‘웃음’이라는 가면을 쓴 채 분노와 슬픔, 고통과 상실, 죄의식을 내면에 간직한 마쉬칸은 비엔나의 지식인들이 유대인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발언을 하기 전에 먼저 그 자리를 선점하는 선택을 한다. 다른 사람의 칼날에 찔리는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를 찌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쉬칸의 태도는 스티븐이 그를 오해하도록 만들고, 비엔나의 학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아버지와 약속했던 다하우 강제수용소 방문은 스티븐의 ‘분노’의 감정에 불을 지핀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오스트리아에서 살아 온 '마쉬칸 교수(남경읍)'와 미국에서 온 젊은 피아니스트 '스티븐(정휘)'은 모든 면에서 상반된 입장과 다른 의견을 품는다./사진=나인스토리

폭발하는 분노 속에서 비엔나가 감추고 있던 추한 진실들과 직면한 스티븐은 폭풍처럼 마쉬칸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쉬칸의 진실은 소매를 걷어야만 보이는 수용소 죄수 번호처럼 “보고 있으나 보고 있지 않을 때, 듣고 있으나 듣고 있지 않을 때, 아무것에도 집중하고 있지 않으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만 엿볼 수 있는 어둠 속 악몽과 같다.

1940년 아름답던 5월의 어느 날 짐을 싸라는 명령과 함께 시작된 마쉬칸의 악몽은 강제수용소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43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억을 거의 잃도록 만든다. 자신이 살기 위해 외면해야 했던 죽어가는 동료들의 모습은 모두 얼굴 없는 존재들로 어둠 속에 각인되어 있지만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했던 고통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오랜 시간 천천히 알코올램프로 가열하면서 진공 추출 방식으로 끓여낸 진한 커피처럼 과거의 모든 아픔과 슬픔은 그의 내면에 고스란히 축적된다. 마쉬칸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스티븐을 향해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안에 숨겨진 이야기 하나쯤은 갖고 있는 법이라네. 그것을 모두에게 말하면 그 의미가 퇴색되지.”

마쉬칸의 상처와 고통은 결국 자살시도로 이어진다. 고통의 끝에서 인간이 바라게 되는 것은 “안식과 평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통은 분노를 가슴 속에 묻은 채로 드러낼 수 없는 슬픔과 모든 것을 지우고 싶은 트라우마 속에서도 지워낼 수 없는 감정들을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잊어버리는 ‘오스트리아’라는 환경 속에서 느끼는 좌절과 절망에 기인한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 장면. 삶이 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법을 그대로 모방하는 기교로 버텨온 '스티븐(정휘)'에게 '마쉬칸 교수(남경읍)'는 "음악의 핵심은 기쁨과 슬픔의 조합"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한다./사진=나인스토리

마쉬칸의 말처럼,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오래된 나쁜 노래들”은 위세척을 하듯 깨끗하게 비워낼 수가 없다. 스티븐은 마쉬칸의 이야기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사라지게 될 것을 우려한다. 그는 이전 세대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친구’로서 그의 비밀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마쉬칸은 ‘침묵’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임을 피력한다. 대화를 쌓아간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시간을 기다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고,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이 음악이 되듯 침묵에 귀룰 기울이고 응답하는 과정 속에서만 진정한 이해가 싹튼다.

마란스는 '올드 위키드 송'의 에피그라프로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한 사람의 위상은 그가 애도하는 것과 그가 그것을 애도하는 방식 속에서 드러난다”라는 문구를 차용한다.

마쉬칸은 자신이 상실한 것들을 슈만의 연가곡이라는 음악을 통해 애도하고, 마란스는 마쉬칸의 애도를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사회적 진보를 위한 요소”로 활용한다. 그것이 마란스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장면. 1840년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이해'를 경험하도록 만든다. '마쉬칸 교수(남명렬)'와 '스티븐(최우혁)'./사진=나인스토리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공연장면. 1840년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이해'를 경험하도록 만든다. '마쉬칸 교수(남명렬)'와 '스티븐(최우혁)'./사진=나인스토리

그는 방안에 있는 코끼리를 보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코끼리가 그 곳에 없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진실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외면한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스티븐으로 하여금 마쉬칸의 마음 속 어둠에 묻혀 있던 ‘다른 층위의 진실’을 볼 수 있도록 만든다. 음악은 보이지 않던 것들에 ‘빛’을 드리운다. 이제 스티븐은 더 이상 피아노를 향해 전투하듯 달려들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을 쓰다듬듯 감정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스티븐은 모든 고통과 슬픔, 아픔과 상실을 바다 깊은 곳으로 떠나보내는 마쉬칸을 바라보며 '시인의 사랑'의 마지막 피아노 솔로 부분을 연주한다.

시인의 고통이 담긴 ‘오래되고 나쁜 이야기’는 다음 세대로 넘겨지겠지만 ‘희망’ 또한 남겨질 것이다. 시인이 남겨준 고통의 이야기가 그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배우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월 1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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