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자이니치', 재미 속에 정한이 짠한 재일교포 가족 이야기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자이니치', 재미 속에 정한이 짠한 재일교포 가족 이야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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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현석 작, 연출...코로나 블루 시대 치유제
차현석 작 연출 ‘자이니치’(在日)/사진=후암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연극이 왜 좋을까? 재미가 있어서다. 지난 21일 개막한 차현석 작 연출 ‘자이니치’(在日, 31일까지 대학로 스타시티 7층 후암씨어터)는 재미가 쏠쏠했다.

코로나 '집콕'으로 고팠던 공연 갈증을 한방에 날려준, 박수치고 싶은 무대였다. 중간에 약간 지루한 부분이 있었지만 배우들이 물 흐르듯 연기를 잘했고, 시사성 있는 주제지만 교훈을 주려하기보다 관객이 보고 느끼도록 하는 설득력과 공감대가 있었다. 필자는 이 연극을 쓰고 연출한 차현석을 한국 연극의 차세대 주역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이야기를 만드는 DNA를 천부적으로 타고 났으며, 상상력과 표현력이 자유자재 무소불위다.

그가 일본 체류 중 한 야쿠자 장례식에 참석했던 체험을 토대로 했다는 ‘자이니치’는 제목 그대로 재일교포들의 실상을 한 가족을 통해 시니컬하게 그려냈다. 재미있다고 했지만 그 재미가 즐거움이 아니라 한과 정이 교차되는 정한(情恨)이 서려있고 아픔이 묻어나는 허허로운 재미인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야쿠자로 살던 둘째가 쓰나미로 깔려 죽어 장례식장에 첫째 이치로(권태원), 셋째 카네토(윤상현), 넷째 토모야키(문태수), 막내 코지(유재동), 그리고 한국인 사업 친구인 영화 제작자 박기환(이응호)이 15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다.

장남 이치로는 민단(民團), 셋째와 넷째는 조총련, 막내는 한국 프로야구 넥센 4번 타자다. 쓰나미에 휩쓸려 죽었으니 유서가 있을 리 없지만, 작가는 둘째 형을 아끼는 넷째로 하여금 자신의 유골이나마 한국 땅에 묻어주고 평소 좋아하던 우메보시(매실)를 먹고 함께 웃어달라는 유언장을 만들어냈다. 극 중의 아버지는 북송선을 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막내는 첫째의 아들임이 밝혀지는 층격도 던진다.

다다미를 깐 좌식 장례식장이 무대인 이 연극의 묘미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는 이들의 정체성이 ‘일본인 같은 한국인’ 캐릭터로 묻어나는데서 엿볼 수 있다. 조총련인 둘째 카네토는 조선말을 쓰라고 거듭 말하지만 형제간 말투나 관습은 일본색이 짙은 식이다. 또 하나는 서로 이념이 다르고 살아온 길,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지만 공연 내내 핏줄은 진하다는 정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죽어서 재가 된 유골조차도 국적이 다른데다 방사선 오염까지 겹쳐 한국 땅을 밟기 힘든 상황이지만 형제들은 화장(火葬)에도 타지 않은 매실 씨라도 한국으로 보내기로 하면서 연극은 막을 내린다.

차현석 대표는 프로그램에 “진정한 통일은 영토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마음과 마음의 통일이 우선이지 않을까?”라고 썼다. 또한 “정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그래서 연극 ‘자이니치’의 ‘스토리텔링의 힘’이 더 끈적하게 가슴에 달라붙는다.

차현석 작 연출 ‘자이니치’(在日) 포스터.

과공은 비례라지만 차현석 연출의 용병술도 칭찬하고 싶다. 대학로 연극가나 TV에서 낯익은 배우들이 아닌데도, 듬직한 연륜의 권태원, 개성이 돋보이는 호남의 윤상현, 진짜 야쿠자 출신 같아 보이는 문태수, 뺀질거리기는 하지만 막내다운 귀염성과 배려심을 보이는 유재동, 이 남자 넷은 이 연극을 위해 존재하듯 캐릭터에 푹 빠져 숙성된 맛을 풍긴다. 여기에 한국인 박기환 역의 수다스러운 과장 연기가 양념처럼 보태져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남자들만의 연극이 다소 퍽퍽할 수도 있는데 이들 5인의 배우들은 찰떡 앙상블로 관객을 한 눈 팔지 못하게 한다.

필자는 연극을 분석하며 보는 편인데 차현석의 ‘자이니치’는 재미에 빨려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90분을 즐겼다. 코로나로 우울하고 갑갑한 시대에 창단 20주년을 맞은 극단 후암의 ‘자이니치‘는 이럴 때 왜 연극이 필요한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코로나 블루 시대에 진정한 치유제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와 다른 견해나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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