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침·뜸에 일생 바친 마지막 공인침구사 김남수 옹
[그때 그 인터뷰] 침·뜸에 일생 바친 마지막 공인침구사 김남수 옹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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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의학은 과학의학이 아니라 균형의학”
2008년 본지와 인터뷰 당시 구당(灸堂) 김남수 옹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지난 27일 향년 105세로 세상을 떠난 구당(灸堂) 김남수 옹은 평생을 침뜸 보급화에 일생을 바친 '침뜸의 대가'였다. 

1915년 전남 광산군(현 장성군)에서 태어난 구당은 11살 때부터 선친으로부터 뜸과 침을 전수 받은 후 평생을 침뜸과 더불어 살았다. 1943년 침사 자격을 얻은 그는 서울 홍릉에서 침술원을 운영하며 뛰어난 솜씨로 '현대판 화타(명의)'로 불리기도 했다. 평소 “배워서 남 주자”는 신조처럼 침뜸의 대중화에도 매진했다. 100세를 맞이한 2015년에는 고향 장성군에 무극보양뜸센터를 열고 침뜸의 보급화에 노력했다. 

돈벌이 보다는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뜸 치료란 자신이 새로 개발한 비방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이어온 전래 민간요법인 것"이라며 나눔 정신을 실천했다. 1980년대 ‘뜸사랑’이란 봉사단체를 조직한 이후 65세 이상 노인 등에게 무료 침뜸 봉사활동을 펼쳤다.

구당은 대한침구사협회 입법추진위원회 위원장, 정통침뜸연구소 원장, 녹색대학대학원 자연의학과 석좌교수, 중국 북경 침구골상학원(현 북경중의약대학) 객좌교수 등을 지냈으며, 대통령 표창(2002), 국민훈장 동백장(2008), 미국 대통령 자원봉사상 금상(2012) 등을 수상했다. 

다음은 2008년 당시 본지와 가진 인터뷰다.  

침뜸 치료로 화제 몰고 온 마지막 공인침구사 김남수 옹... “우리 의학은 과학의학이 아니라 균형의학”

'침뜸의 대가' 구당(灸堂) 김남수 옹

2008년 추석 연휴기간, KBS에서는 이틀에 걸쳐 특집프로그램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를 방영했다. 방영분 가운데는 피부이식까지 고려해야 했을 정도로 심각했던 화상환자의 환부가 그의 침술로 말끔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보여졌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이후 구당의 침술원에는 새벽부터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미 출판된 그의 저서는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터넷에서는 찬반양론이 갈리며 연일 토론이 벌어졌다.

1943년부터 서울 홍릉에서 침술원을 운영하고 있는 구당 김남수 선생은 마지막 남은 ‘공인’ 침구사다. 한국전쟁 와중이던 1951년, 국민의료법이 공포될 때 접골 침술 구술사 등이 의료유사업자에 포함되면서 자격시험이 생길 뻔했으나, 5·16으로 들어선 새 정권은 국민의료법을 다시 개정하면서 의료유사업자 조항을 삭제해버렸다. 구당같이 해방 이전에 침구사 면허를 딴 사람을 제외하고 건국 이후 정식 침구사는 한 명도 없는 셈이다.

요청을 거듭한 끝에 어렵게 구당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올해로 아흔 넷인 선생은 방송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정정했으며 논리정연한 달변가였다. 집무실 안까지 들이닥치는 사람들로 인해 중간중간 인터뷰가 중단되기도 했다.

- 기존의 통념을 깨는 화상치료 과정을 목격한 시청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마저 의심이 나면 화상 입은 환자를 직접 데리고 와서 카메라로 찍어주세요. 단, 시일이 많이 지나면 안 됩니다. 침술로 치료를 받은 화상환자는 흉터가 없습니다. 흉터가 뭐냐면 바로 ‘조직파괴’입니다. 빨리 치료하면 조직이 파괴되지 않고 나으니까 흉터가 생기지 않는 것이죠.

- 화상침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된 겁니까?

화상환자들의 고통을 지켜봐오면서 이런 걸 한 번 고칠 수 없을까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여드름이 많이 난 사람에게 침을 놓아보니까 잘 낫는 겁니다. 나중에는 화상 입은 지 한 달이 지난 사람에게 놓아봤더니 또 나아요.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 겁니다. 하나하나 조금씩 시도해 본 것이 결국에는 분명히 낫는다는 걸 알았고, 흰쥐를 대상으로 연구를 거쳐 완성된 것입니다.

- 하지만 누구라도 화상을 입으면 우선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습니까?

침술이 화상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의사는 침술로 화상치료를 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고발이라도 하면 영업정지를 당해요. 침뜸봉사단체 ‘뜸사랑’ 부회장이던 분이 양의사였습니다. 그 분도 침술로 화상치료를 했다가 영업정지 45일 당했습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줘야 하는 것이 의료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 간호사가 있고 안과 내과 등으로 구분이 되어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침구사를 둬서 나쁠 게 뭐가 있겠냐는 겁니다. 누가 좋겠습니까. 환자가 좋은 것 아니에요.

-추석 연휴기간 이틀에 걸친 방송 출연이 그런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겠습니다.

아무렴요. 이번에 KBS에서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어떤 단체를 위해서,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구십 사년이나 살았으니까 많이 살았죠. 허허. 우리나라에 ‘밤사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가 있어요. 늙은이는 암만 건강해도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저도 죽음을 앞둔 입장에서 환자들을 위해서 방송에 나가 이런 게 있다하고 얘기한 겁니다.

-서양의학에 동양의학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의사들이 침을 놓는다고 하면 보통 이상하게들 생각하지요. 하지만 의사가 침놓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의료인의 목적은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독 이렇게 ‘내 것 네 것’ 찾게 만들어 놓았지요. 의료인에게는 내 것 네 것이 없습니다. 의사가 침술로 병을 고치는 게 절대 흉이 아니고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침은 금속으로 만든 쇠꼬챙이가 아니면 안 된다면서요? 침이 우리 몸에 작용하는 원리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침을 두고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없는 영원한 의료기구라고 합니다. 침뜸을 이야기 할 때 ‘기혈’ 그럽니다. 침은 기운을 움직이고 뜸은 혈, 피를 움직이는 거예요. 발전소로부터 온 전기로 저 형광등이 켜지려면 쇠로 만든 줄로 해서 연결되잖아요. 우리 몸 안에는 전기가 있습니다. 침도 말하자면 전기를 켜는 겁니다. 우리 몸 안에 음양이라는 게 전기예요. 침으로 해서 전깃줄을 이어주는 건데 어떤 게 전깃줄이냐, 병원에서 빈혈이라고 하면 철분을 먹입니다. 우리 몸 안의 철분이 뭡니까. 몸 안에 뻣뻣한 철사줄이 이어져 있으면 몸을 못 움직이겠죠? 그래서 몸 안의 전깃줄은 가루입니다. 가루가 뭐냐, 혈관이예요. 혈관 안의 피가 바로 쇳가루입니다. 옛날에도 어지러우면 철분을 먹었죠. 칼을 숫돌에 갈아서 쇠가 닳은 물을 먹기도 하고. 또 소 지라가 완전히 철분입니다. 그걸 먹기도 하고. 우리 몸 안에 그 같은 쇠줄이 시원찮아서 피가 제대로 못가면, 시리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죠. 그러면 침을 놓아 전기를 잘 가게 만드니까 병이 없어진다는 이치입니다.
 

-쑥뜸은 부작용이 없다고도 하셨는데...

맞습니다.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 뜸의 최고 장점입니다. 또 자리만 잡아 놓으면 집에서도 얼마든지 뜰 수 있으니까 시간적 장점이 있을 것이고. 돈이 안 든다는 장잠도 있습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쑥뜸 뜨는 걸 보면 크기가 어른 손톱만 하던데 선생께서는 쑥뜸의 크기가 쌀알 반톨만 하게 작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뜸을 크게 하면 적어도 100일 동안은 고름이 계속 나와요. 뜸이라는 건 고름 만들어내는 요법입니다. 고름이 흡수되어서 효과가 나게 하는 것이죠. 올해 초 중국 상해를 가니까 중의대에서 박사 한 분이 폐암 간암을 뜸으로 고친다고 해서 찾아뵈었는데 옛날식으로 뜸을 크게 뜨고 고약을 붙여서 고름이 계속 나오게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옛날에는 크게 떴어요. 그런데 ‘무극보양뜸’이라고 해서 이게 여덟 개 혈의 열두 자리입니다. 한 군데서 고름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많이 만들어내요. 같은 요법인데 고생스럽고 지저분하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선친 어깨 너머로 침술을 배우기 시작하셨다는데, 선친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셨습니까?

옛날 우리 의료문화는 돈이 전부가 아니었어요.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일 년 내내 와도 그냥 치료해줍니다. 들에서 일하다가도 누가 아파서 찾아왔다고 하면 얼른 들어가셔서 치료해주시고 했던 것이 제가 본 선친의 모습입니다. 근묵자흑이라잖아요. 꼭 어떻게 해라 뭐라가 아니었고 그저 보고 들은 것뿐입니다. 부모님의 은덕으로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일찍 알게 됐습니다.

구당(灸堂) 김남수 옹

-봉사에 열정을 쏟고 계신 것도 선친께 배운 자연스러운 가르침과 무관치 않겠지요.

옛말에 약값은 있어도 침값은 없다는 말이 있었어요. 의원이 병을 잘 고친다고 하면 사람들이 몰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의원이 돈 생각 나서 병을 못 고치게 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침값은 없다’고 한 거죠. 반대로 환자에게는 ‘공짜로는 병 안낫는다’고 했어요. 자진해서 안 받게 하고 자진해서 주게 해놓은 거죠. 옛 어른들이 하던 거 보면 정말 숭고해요. 이 얼마나 잘 한 겁니까. 봉사단에 침을 맞으러 오시는 노인분들에게 돈 한푼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안하셔서 주머니에 사탕도 넣어주시고 음료수도 사오시고 하는데 그것도 그냥 그분들 잡수시라고 받지 않지요.

-외국에서도 침뜸을 놓아주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에 방송에 나간 것 때문에 하루 7~8백 명이 침술원으로 몰려왔어요. 처음 겪어보니까 견디지를 못해서 미국으로 갔어요. 오리곤주에 완전 백인들만 사는 곳을 갔는데 당시 미국 사람들이 침뜸하는 거 고발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고발당한다는 생각으로 분명한 걸 알려주기 위해 침뜸을 놓아줬는데 전부 그렇게 고마워 할 수가 없었어요. 그곳에서 한 달 있다가 워싱톤, 뉴욕, LA, 알래스카까지 다녀왔는데 가는 곳마다 다 좋아해요. 침통 하나만 짊어지면 세계 어느 곳도 갈 수 있어요. 젊은이라고 못하고 늙어서 못하는 거 아니예요. 다리 두 개가 없어도 할 수 있어요. 팔이 없어도 지시를 해가며 입으로 할 수 있어요. 까만사람 흰사람 노란사람 차별도 없고, 종교도 가리지 않는 게 침뜸입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우리 의학은 ‘과학의학’이 아닙니다. ‘균형의학’이에요. 몸의 균형이 틀어지면 병이 오는 것이거든요. 작은 부스럼 하나도 몸의 균형이 틀어져서 생기는 겁니다. 서양의학은 균 찾아서 균 죽이고 사진 찍은 걸 토대로 칼로 자르고, 자꾸 아프다고 하면 다른 사람 것하고 바꿔 끼고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 항암제로 계속 생명이 있을 때까지 먹게 하는 것 아닙니까. 치료라는 게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기존의 양방 한방을 배척하고 침뜸만 하자는 게 아닙니다. 단지 침뜸이라는 훌륭한 우리 의술을 같이 활용해 달라는 겁니다.

-남들 같으면 벌써 은퇴하셨을 연세에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요.

노인들 병은 한정 없어요. 노인들 병에는 침뜸밖에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라도 당연히 일손을 못 놓지요.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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