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자가용 없이 손잡고 걸으며 산다
우리는 평생 자가용 없이 손잡고 걸으며 산다
  • 김두호
  • 승인 200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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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백건우 부부의 특별한 사랑과 삶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 사진 김우성] 백건우 윤정희 부부와 마주 앉으면 그냥 말없이 얼굴만 바라보아도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생긴다. 생각만으로 그림이 그려지고 수많은 그들의 이야기들이 환상이나 꿈처럼 반짝이며 살아난다. 그들의 움직이는 동화(童話)는 1972년 뮌헨올림픽이 열리던 해 유럽에서 로맨스가 시작되던 시절부터 36년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프랑스와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헝가리,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쉬지 않고 들어오는 콘서트 초청은 이미 2010년도 일정까지 넘어서고 있다. 백건우 윤정희 부부는 그렇게 1년에 절반쯤을 바늘과 실이 되어 화려한 도시의 연주 여행으로 보낸다. 그들은 어디서나 최고의 귀빈이며 예술인 대접을 받는다. 저명한 부부를 맞이하는 세계 음악팬들은 그들의 행선지와 머무는 도시의 공연 일정 등 활동 정보는 수시로 접하고 있어서 연주와 관련된 이야기는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필자는 한국영화의 큰 별이었고 트로이카 1세대의 주역인 윤정희, 그리고 부군 백건우 천재 피아니스트와 오래 전부터 친분을 나누어 왔고 인터뷰도 처음은 아니다. 이번에 <인터뷰365>는 모처럼 음악 이야기를 비켜나 두 사람이 별로 밝히지 않았고 기자들이 쉽게 질문할 수도 없었던 또 다른 그들만의 삶의 이야기로 관심을 돌려보았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아름다운 여배우’ 부부의 일상이 언제나 특별하고 럭셔리할 것으로 생각들 한다.



(처음에는 윤정희 여사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백건우 선생은 다른 미팅이 있어서 잠시 후 합류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 장소인 세종문회화관 커피숍에는 조용한 자리가 없었다. 두 시간 뒤에 잡아 둔 저녁식사 예약 레스토랑으로 인터뷰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부군에게 장소 변경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분명히 그런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나중에 필자가 첫 약속 장소로 달려가 부군을 모셔올 수 있었지만 그런 사태가 벌어지리라고는 평소 그들을 잘 알고 있다는 필자도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그리고 인터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로 부인 윤정희 여사가 받아냈다. 부부의 생각들이 대부분 일치해서 하나로 답변을 정리했다. 물론 질문에 따라 부군이 대신 답변한 내용도 있다.)





아니, 두 분이 서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니 무슨 이유인가?


하하하. 우리끼리니까 고백하겠다. 우리 부부는 핸드폰 하나를 둘이 사용한다. 파리에서든 서울에서든 한 개의 핸드폰이 두 사람 손을 오고 간다. 그런데 오늘 내가 여기로 먼저 오면서 핸드폰을 가져와 미스터 백(부인은 연애시절부터 부군을 곧잘 그렇게 호칭한다)과 연결이 안 된다.



아무리 동심일체라 해도 현대인 부부는 핸드폰을 각자가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도 드문 사례일 것이다. 불편하지 않는가?


불편하지 않다. 벨이 울리면 우리는 서로 받으라고 옥신각신한다. 아직 우리 부부는 이런 현대식 속물이나 물질의 노예가 되는 생활에 오히려 불편함과 부담감을 갖고 있다. 쉽게 첨단기술 문화에 동화되고 익숙해지지 않은 탓일 게다.



<고인돌>의 만화가 박수동 화백이 ‘시간의 속박감’ 때문에 평생 시계를 차지 않고 산다. 두 분의 핸드폰에 대한 거리감도 좀 비슷한 처지 같다. 사실 30년이 넘는 결혼생활에서 잠시도 떨어져 산 적이 없으니 굳이 핸드폰 두 개가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영화 출연으로 헤어져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핸드폰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은 함께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자가용 승용차를 사지 않고 사는가?


물론이다. 변한 게 없다. 우린 파리에서 자동차의 필요성을 안 느끼며 산다. 지하철과 버스의 교통편에 익숙하고 특별히 급하면 영업용 택시를 부른다. 불과 몇 초면 달려온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손잡고 걷는 습관이다. 시간에 안 쫓기면 우린 어디서든 걷는다. 모스크바든 뉴욕이든 걸어가면서 구경하고 이야기하며 산다. 정말 거리는 우리가 사는 또 하나의 즐겁고 행복한 공간이다. 우리의 많은 시간과 삶이 세계 도처의 거리에서 만들어졌다.





거리가 삶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아름답다. 지금도 옛날 살던 집(파리에 있는 자택 아파트)에 사는가? 쉬지 않고 울리는 피아노 소리에 이웃들이 불편해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30여년을 한 집에서 산다. 큰 아파트도 아니다. 딸은 독립해서 살고 있으니 우리가 사는 공간은 충분하다. 피아노 소리가 쉬지 않고 날 수 있지만 한 번도 이웃의 항의를 받은 일이 없으니 그 소문은 누가 짐작해서 만든 모양이다. 파리 도심에서 지하철로 15분 거리에 있는 우리 동네는 이웃 간에 정을 듬뿍 나누면서 가족처럼 서로 초대하며 사랑을 주고받는 곳이다. 가방을 들고 나오다가 주민과 마주치면 우리가 택시를 타고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흔들어 주고 간다. 각 분야의 전문인들인 중산층이 사는데 연주회에 초청을 하면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좋아한다. 연주회가 있을 때는 현관에 이웃들이 꽃을 갖다놓는다.



세계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끝없이 이어 온 연주 여행에서 수많은 일화들이 만들어졌을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비화를 듣고 싶다.


연주를 앞두면 우린 십자가 앞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신을 모은다. 홀에 들어가는 시간이 다가오면 나의 마음과 몸은 절반쯤 초주검 상태에 빠진다. 긴장과 두려움 때문이다. 남편이 언제나 ‘걱정하지 마’하고 어깨를 감싸며 위로하지만 성공적인 연주에 작은 흠이라도 생길까봐 그렇게 떨며 매번 앞자리에 가지 못하고 객석의 뒷 구석에 앉는다. 그리고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눈을 감는다.



그러다가 앙코르와 천둥치듯 박수소리가 터질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낄 것 같다. 어떤 때 행복한가?


훌륭한 연주회로 반응을 남기고 둘이서 홀가분하게 부부로 돌아가 자유롭게 그 도시의 낯선 골목길을 헤맬 때다. 모든 것을 잊어 먹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닐 때가 짜릿하다.



필자가 파리를 방문할 때마다 윤정희 백건우 부부는 뒷골목 깊숙이 들어가 매우 특별한 요리 맛을 구경시켜 주곤 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그들은 맛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즐기는 미식가였고 진기하고 새로운 음식을 탐닉하는 음식 연구형 식도락가였다. 파리에서 맛보게 한 대표적인 요리가 밀가루로 만든 아랍 요리와 정체불명의 육식 요리였다. 입안에서 고소한 고기 맛이 별미였던 육식 요리를 시키면서 그들은 설명을 식후로 미루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개구리 튀김 요리였다.



파리에서 먹었던 개구리 요리는 별미였다. 그러나 미지의 도시에서 잘못 음식을 시켜 고생한 적도 많을 것 같다.


우린 걷는 걸 좋아해 구경을 실컷 하고 그중에 호기심이 가는 음식점과 요리를 선택한다. 미리 많은 정보를 종합하기 때문에 실패한 일이 별로 없다. 아, 그리고 연주 여행을 하는 세월을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실감하는 게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현지에서 만나는 동포들의 늠름한 모습들도 인상적이다. 특히 한국영화와 영화인들, 감독이나 배우들이 해외에서 인기가 높고 지명도가 국제화되었다는 점에서도 자랑스러울 때가 많았다.





이제 윤 여사는 자신의 활동보다 부군의 매니저를 겸한 동반자로 매우 고달픈 내조를 하고 있다. 간혹 힘들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남편이 평생 변함없이 영화를 좋아하듯이 나도 클래식 음악마니아로 평생 변함이 없다. 우린 그래서 살기가 편하고 서로의 입장을 쉽게 이해한다. 음악작업도 영화배우가 철야 촬영을 하며 연기생활을 하던 작업과 별로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니다. 무대 연주, 녹음작업, 청중과의 만남 등 모두 서로 맥이 통하는 일들이다.



백 선생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별나다는 것은 소문이 나 있다. 지금도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지?


화제가 되는 작품은 주로 집에서 본다. 최근에 감명 깊게 본 작품은 <타인의 취향>이었다. 영화를 나는 음악만큼 사랑한다. 영상자료원에서 지난해 ‘윤정희 데뷔 40주년 기념’ 작품 상영주간에 <강명화> 등 우리 부부가 함께 트로이카시대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영화들이 재미있고 출연 배우(윤정희)가 매력적이었다.



살다보면 부부가 서로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다른 부부들과 대조적으로 낭만과 멋이 있는 시간을 가질 것 같다.


천만에. 실망스러운 이야기지만 우린 그런 걸 빈번하게 잊어 먹고 산다. 지난 3월 14일에도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린 모르고 있는데 “아빠 엄마 결혼기념일 축하해” 하고. 24시간 함께 살다보니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한다.



날마다 결혼기념일같이 살고 있으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모든 생활 태도가 너무 서민적이고 소박하다. 눈부시게 동경을 받고 있는 국제적인 예술인 부부라면 모든 의식주가 아주 럭셔리하고 명품 쇼핑이나 고상한 취미 생활을 즐기며 살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우리에게 그런 건 불편하다.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겉치레와 사치는 더욱 싫어한다. 심플하게 사는 게 좋다. 우리 딸이 간혹 시시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보이는지 “체통 좀 지키세요” 하며 농담 삼아 경고한다.





오로지 하나뿐인 따님은?


바이올린을 전공했는데 연주활동과 교직활동을 하며 독립해서 잘 살고 있다.



작년 연말에 예술의전당에서 8차례 연속 2만여 객석에 남긴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 콘서트는 거장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면모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행사로 평가된다. 앞으로의 주요 연주 일정은?


2010년까지 스케줄이 들어와 있다. 내년에 이탈리아 시실리 공연이 기대된다. 로마나 밀라노 같은 곳은 친숙하지만 시실리는 안 가 본 아름다운 섬이다.



언젠가 윤 여사는 영화감독을 생각하고 있었다. 변함이 없는지? 그리고 부부에게 또 다른 꿈이 있다면?


감독은 함부로 덤빌 수 없는 작업이다. 지금은 감독보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의 연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은 지금 이대로 건강하게 현재의 컨디션을 유지했으면 하는 게 전부다. 열심히 연주 여행을 다니고 부지런히 걸어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윤정희 백건우 부부, 백건우와 윤정희 부부와의 만남은 언제나 특별한 느낌과 여운을 남게 한다. 그들은 소문과 다르게 사는 방식이 너무 편하고 소박하며 평온하기 때문이다. 쉽게 사는 모습에서 사랑과 행복과 평화가 느껴진다. 그들은 차가 없이 걸어 다니는 거리의 삶을 소중하게 활용하므로 건강하고 늘 날씬한 체격을 유지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는 바로 윤정희 백건우 부부처럼 겉으로 보여주는 요란한 멋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고 소리 없이 속으로 멋을 느끼는 부부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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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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