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고통 맞이한 백건우 심경고백
[김두호가 만난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고통 맞이한 백건우 심경고백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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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장 착각하고 출연 준비 모습 마음 아파..."최선을 다해 돌봐야 할 사람"
- 윤정희 알츠하이머 깊어가도 체력은 건강해
평생토록 곁을 떠나지 않고 영화배우 윤정희와 삶을 함께 해온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피아니스트./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피아노’와 영화배우 ‘윤정희’, 지난 평생토록 곁을 떠나지 않고 삶을 함께 해온 두쪽 가운데 한쪽이 불치의 질환으로 고통을 겪게 되면서부터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마음에 슬픔이 스며들었다. 연주여행을 동반하며 꿈과 사랑을 나누던 아내가 발길을 멈추면서 그의 가슴에는 어딜 가도 온전하지 못한 걱정들이 짙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2017년은 베토벤, 지난해 쇼팽에 이어 올해는 슈만의 곡으로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국내 팬들을 위한 전국 투어 연주회를 멈추지 않았다. 슈만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선율 뒤에 정신병을 앓고 자살을 시도하는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한 슈만의 고뇌가 있다는 사실에 백건우의 이번 슈만 곡 선택의 깊은 연주 의미도 따르고 있다.

아내 윤정희가 알츠하이머로 시련을 겪고 있다는 근황을 감추지 않고 지난해 공개적으로 밝힌 뒤에는 홀가분함 보다 오히려 주변 친지들의 과민한 관심과 진행상황을 궁금해 하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과 우려감이 오히려 피로감을 더해 그는 지친 듯이 보였지만 애써 고통을 감추며 감정을 절제하고 말을 아꼈다.

지난 11월 6일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개최하는 제10회 아름다운예술인상에서 공로상 수상자인 아내 윤정희를 대신해서 시상금과 상패를 전달받은 자리에서 마침내 눈물로 토해내는 소감을 밝혀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한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지켜보는 관중석을 잠시 슬픔에 빠지게 했다. 그는 생각을 해가며 한마디 한마디를 문장으로 준비해온 소감을 몇차례 울먹이며 낭독했다.

영화인 여러분,

오늘은 참 영화적인 날이네요. 일생을 평가해준 귀한 공로상을 시상하는 날, 본인은 영화의 나라 불란스에서 가족의 사랑으로 둘러싼 평화롭고 평온한 나날을 지내고 있고 제가 대신 이 뜻 깊은 상을 전하는 역할을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알츠하이머는 날이 가면 갈수록 메모리가 축소되어 가면서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가까운 것을 안고 살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항상 90세까지 영화 촬영을 하고 싶다고 습관적으로 말했는데 지금도 맑은 날에는 여전히 스케쥴이 뭐지? 촬영준비 해야지, 의상은 준비됐어? 몇시 약속이야? 하면서 항시 그랬듯이 머릿속에는 시나리오와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다행히도 안정된 생활과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은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우리 딸 진희가 대견하다고 느껴집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50여년 가까이 맺은 변함없는 사랑을 잘 전달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 

제10회 아름다운예술인상에서 공로상 수상자인 아내 윤정희를 대신해 참석한 백건우는 준비해온 소감을 몇차례 울먹이며 낭독했다. 
제10회 아름다운예술인상에서 공로상 수상자인 아내 윤정희를 대신해 참석한 백건우는 준비해온 소감을 몇차례 울먹이며 낭독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아내에게 전달할 공로상패를 안고 지난 11월 25일 파리로 돌아갔다. 떠나기 전 틈틈이 시간을 함께 하면서 들려준 심경을 정리했다.

 ‘백건우 건배사’를 아세요?

백건우 피아니스트/사진=인터뷰365

- 혹시 요즘 건배사 중에 ‘백건우 건배사’가 인기라는데 들은 적이 있으세요?

있어요. 누가 ‘백건우 건배사’의 유래가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회장단 송년모임에서 시작되었다면서 카톡으로 보내준 걸 받아 봤어요. ‘백 – 백살까지 / 건 – 건강하고 / 우 – 우아하게 살자’도 있고 또 ’우‘자에는 ’우정을 나누며 살자‘라는 말도 쓰인다고 하더군요. 내 이름을 좋은 의미로 외쳐준다니 잠시 우울한 마음을 잊게 해줍니다.

- 인생은 늘 기분 좋은 일만 일어나면 행복한데 아주 오랫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커플로 알려져 왔던 부부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돌변해서 증세를 드러내는 병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조금씩 기억장치들이 정상 상태에서 벗어나 분별력을 잃거나 불안정한 언행을 나타내게 되는 것 같아요.

2008년 필자와 인터뷰 당시 백건우 윤정희 부부
2008년 필자와 인터뷰 당시 백건우-윤정희 부부. 1년 내내 이어지는 세계 각국 연주 여행길에도 늘 함께였던 잉꼬 부부였다./사진=인터뷰365DB 

- 윤정희 여사가 그럼 알츠하이머 증세를 나타낸 시기가 오래 전부터였습니까?

그렇습니다. 마지막 출연 작품이 2010년 제작 공개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였지요. 진희 엄마(윤정희)가 2시간 20분짜리 대작의 전편을 혼자 이끌어가다시피 해서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 참 흐뭇하고 자랑스러웠지요.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감독의 내밀한 노력과 고통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크랭크 인이 되어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배우의 집중력과 감정 표현의 리듬이 쉽게 정돈이 안 되어 애를 먹었다고 해요.

- 알츠하이머는 기억 상실이 주 증세로 나타나는데 10년 전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느낌을 보였군요.

진희 엄마가 와인을 마시거나 처신이 조심스러운 식사자리에서 술잔이 오고가면 제가 일찍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나는 습관이 생긴 것은 그보다 더 아주 오래되었어요. 언젠가 스페인 연주여행길에서는 새벽 4시 심야에 호텔 침대 내 곁에 잠자다가 사라지기도 했어요. 정신없이 호텔 안을 돌아다니며 찾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잠옷 바람으로 움츠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해 충격을 받은 사건도 있어요. 오래전 멕시코 연주 행사 때는 공연 후 지휘자가 주최한 만찬자리에서 두 차례 지휘자를 혹평해 당혹감을 못 참은 지휘자가 자리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진 일 등 잠깐씩 그렇게 본인 의지와 다른 엉뚱한 말이나 행동이 나타날 때가 많았어요. 그러나 대개는 취중의 일로 생각하고 심각하게 병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 1년 내내 이어지는 세계 각국 연주 여행길에 반드시 부인을 동반한 것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국내 공연 일정에도 빠진 적이 없었고 가끔 음악회에 가보면 윤 여사는 앞자리보다는 뒤쪽 자리에서 조용히 부군의 연주 공연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하며 행여 실수나 하지 않을까 매번 가슴을 조인다”는 고백을 직접 본인에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객석의 아내 가슴 안에는 온통 부군의 연주 음악이 신앙이고 인생의 전부라는 느낌으로 들렸습니다.

알고 있어요. 나도 진희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평생을 두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살아왔고 진희 엄마도 나의 피아노 연주 음악에 자신의 영혼을 바치며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늙어가는 것과 병이 찾아오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인생이 인간의 숙명이니 최선을 다해 간병을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 지금 어디서 누가 돌보고 있는지요?

우리 딸 진희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가까운 곳에 모시고 법적 보호자로 엄마를 최선을 다해 돌봐주고 있어요.

- 따님도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977년생이니 올해 만 43살이군요. 프랑스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간병인이 있지만 진희 가족이 함께 엄마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데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나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다 뿐 식성이나 몸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편입니다. 연주일정으로 파리를 떠나 있을 때가 많고 공연 준비에도 소홀하게 할 수 없어서 내가 곁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아 온갖 오해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해요.

내 아내는 여전히 남편인 나와 직계가족이라고 하나 뿐인 우리 딸이 최선을 다해 돌봐야 할 사람입니다.

‘건반 위의 구도자’가 따라 붙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10살 때 피아노의 신동으로 나타나 국립관현악단과 협연을 시작으로 15살 때 줄리아드 스쿨로 떠난 뒤 폭넓은 레퍼토리와 서정적인 피아니즘의 세계적인 연주자로 살아가는 그의 이름 곁에 늘 함께 머물렀던 영화배우 윤정희.

1976년 꿈의 도시 파리에서 부부로 만난 한국영화 트로이카시대의 주역 윤정희와의 아름답고 길었던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로맨스 판타지는 이제 전설이 되는 세월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필자와 함께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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