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배우 송승환의 무대 복귀작 '더 드레서'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배우 송승환의 무대 복귀작 '더 드레서'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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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력 약화 극복하고 노배우의 마지막 열정 중후한 연기로 펼쳐
사진=정동극장
연극 '더 드레서'로 9년만에 무대로 복귀한 배우 송승환./사진=정동극장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배우 송승환이 서울 정동극장이 기획한 연극 시리즈 첫 탄으로 막을 올린 로널드 하워드 작, 장유정 각색 연출의 ‘더 드레서(The Dresser)’의 ‘선생님’ 역으로 9년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11월 23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가진 ‘더 드레서’ 초청공연에는 박양우 문체부 장관과 이순재 박정자 강부자 정동환 윤석화 등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 시력 약화라는 악조건을 딛고 다시 ‘배우로의 인생’을 연 송승환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수도권 코로나 방역이 2.5단계로 격상되고 서울시가 ‘시민 멈춤’을 선포한 날에 송승환을 집중 조명시킨 영국 작가 하우드의 ‘더 드레서‘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연극과 배우와 그의 드레서(공연 중 연기자의 의상 전환을 돕고 의상을 챙기는 사람)의 열정과 우정을 담고 있어 요즘 세태와 오버랩 되는 묘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작가로 유명한 로널드 하우드는 “선생님”으로 불리는 노배우(송승환)의 마지막 투혼과 이를 지탱시키는 드레서(안재욱)의 케미를 그린 ‘더 드레서‘를 통해 ‘전쟁도 막지 못한 연극 정신’을 부각시켰는데, 오현경 배우 이후 오랜만에 다시 올려져 관객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정동극장이 연극으로 회귀하면서 매력 있는 배우 송승환을 초빙, 맞춤형 캐릭터로 ‘더 드레서‘의 셰익스피어 전문 퇴역 배우 ‘선생님’을 맡긴 전략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아역 배우에서 출발한 송승환은 대사가 없는 넌버벌 공연 ‘난타‘를 빅히트 시키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 직후에 글씨는 물론 사물을 보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약화 되는 희귀 질환으로 외부 활동 자체가 힘든 위기에 처했다. 천만다행으로 병세가 멈춰 가까운 물체만 흐릿하게 볼 수 있게 되면서 TV드라마 출연했고 이번에 연극 무대에서게 된 것이다. 60대 전성기에 배우로서 가장 큰 시련을 겪다가 이를 극복하고 다시 선 무대에서 혼신을 다하는 송승환의 재기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성원을 보냈다.

그가 이번 작품에서 맡은 역은 ‘선생님’으로 불리는 퇴역 배우다. 그의 곁에는 16년 동안 무대 뒤 분장실에서 그림자처럼 그를 돕는 노먼이 있다. 고령으로 인한 질병도, 전쟁의 포화도 연극 무대를 향한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1942년 영국의 한 지방도시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관객들은 두 남자의 브로맨스에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정동극장
연극 '더 드레서'로 9년만에 무대로 복귀한 배우 송승환./사진=정동극장

이번 무대에서 작위는 받지 못했지만 ‘Sir‘로 불리는 ‘선생님’ 역을 맡은 송승환은 석양을 바라보는 노배우의 고독과 연민, 연기에 대한 공포와 애착, 인간에 대한 애증의 다층적 캐릭터를 에너지 넘치게 소화해냈다.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인 그는 공연을 앞두고 대사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려 전율하기도 한다. 늘 해오던 ‘리어왕‘의 첫 대사가 생각나지 않아 드레서 노먼에게 도움을 청하다가 이내 신경질를 부리는 장면에서 송승환 특유의 개성을 드러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관객은 극장의 객석을 메웠고 우여곡절 끝에 막이 올랐는데 이번에는 왕관을 쓴 킹 리어 역 배우가 겁에 질려 등장하기를 거부한다. 이 장면에서 송승환은 배우의 속성과 캐릭터의 진면목을 때로 중후하게, 때로 폭발적으로 연기해 냈다.

대사 위주로 펼친 1막은 좀 지루했으나 인터미션 후 2막은 극 증 극, 연극 속의 연극, 막의 앞과 뒤를 생동감 있게 대비 시켜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분장실을 중심으로 무대를 연결시킨 오필영의 무대디자인이 안정감을 주었고, 공습과 폭격 소리를 실감 나게 재현한 김기영의 음향, 리어왕의 망토를 멋지게 디자인한 조문수의 의상, 인물의 표정을 음영으로 살려낸 구윤영의 조명 등 스탭들의 뒷받침이 돋보였다.

송승환을 위한 작품이긴 하지만 타이틀롤인 노먼 역 안재욱의 경쾌하면서도 세심한 연기가 송승환을 잘 받쳐주었다. 특히 안재욱은 선생님이 분장실 의자에서 숨을 거둔 후 허탈한 노먼의 독백 장면을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로 연기해 작품의 대미를 감동으로 이끌었다.

연극 '더 드레서'의 배우 송승환과 안재욱./사진=정동극장

연기진의 앙상블도 좋았다. 사모님 역 정재은은 무대 위의 선배 배우와 남편으로 느끼는 캐릭터의 양면성을 세련되게 보여주었다. TV 드라마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쳐온 송영재가 광대 분장으로 무대 배우다운 아우라를 보여주었다. 맷지 역 이주원, 옥슨비 역 임영우도 자신의 역할을 잘 해냈다.

‘더 드레서‘의 백미는 연극적이면서도 현실에 와닿은 명징한 대사들이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리어왕으로 분한 송승환이 객석을 향해 “전쟁의 포화를 뚫고 극장을 찾아주신 관객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대사는 코로나로 전시를 방불케 하는 요즘의 팬더믹 재유행과 중첩되어 실감을 더했다.

40년 전에 쓴 희곡의 대사들이 현실처럼 관객에게 와닿는 것은 셰익스피어라는 위대한 작가와, 무대 뒤의 세계를 아는 작가(로널드 하워드)만이 해낼 수 있는 글의 힘 때문 아닐까.

이날 송승환은 커튼콜을 두 번 했다. 한번은 극중에서 ‘리어왕‘ 공연을 끝내고, 또 한번은 ‘더 드레서‘ 공연을 끝내고 나서다. 첫 커튼콜은 박수만 받았지만, 실제 커튼콜에서는 일부 관객이 기립해 환호했다.

배우들과 커튼콜을 마친 송승환은 마이크를 잡았다. “시력 약화로 못하게 될 줄 알았던 연극을 다시 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는 요지였다.

1년 내 코로나 블루로 가뜩이나 우울한데 방역 강화로 또다시 가슴을 옥죄는 시기에 송승환의 무대 복귀와 ‘더 드레서‘가 전하는 ‘2차 대전도 막지 못한 연극 정신’은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이럴 때일수록 연극의 위로와 카타르시스가 더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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