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우리나라 영화계의 형제 감독(88)
[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우리나라 영화계의 형제 감독(88)
  • 정종화 영화연구가
  • 승인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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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토오키 영화의 개척자, 이필우-이명우 형제...1935년 '춘향전'의 위업
- 1957년 최초의 해외영화제 '시집가는날'의 이병일 감독과 동생 이성구 감독
- 나운규 20주기인 1957년 '아리랑'를 재현한 김소동 감독과 동생 김한일 감독
- '바보들의 행진'의 하길종 감독과 동생이자 배우 출신 감독인 하명중의 '땡볕'의 연출력
우리나라 토오키 영화의 개척자 이필우-이명우 형제 감독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 100년사에서 '토오키(talkie, 유성영화)'기술은 획기적인 위업으로 꼽힌다. 이 기술을 개발해 16년간의 무성영화 시대를 마감하고 1935년 본격적인 발성영화 시대를 개척한 이필우와 이명우 형제를 잊을 수 없다.

일찍이 형제의 부친은 구리개(지금의 을지로 입구)에서 시계포를 운영하며 점포명을 '이필우 시계포'로 달았는데, 이필우와 다섯 살 아래 동생인 이명우를 남겨 놓고 1904년 세상을 떠났다. 형제는 환등기와 일제 활동사진기를 만지고 외국영화를 보며 영사기사와 촬영기사의 꿈을 키웠다.

이명우 춘향전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

형 이필우는 1920년 무성영화 '지기'와 1926년 '장한몽'을 찍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촬영기사가 된다. 동생 이명우도 1927년 '운명'으로 촬영을 맡아 영화계의 형제로 등극하게 된다.

두 형제는 1935년 동생이 감독하고 형이 촬영과 녹음 및 현상을 담당해 10월 3일 단성사에서 역사적인 토오키 시대를 열었다.

이필우는 무성영화 '멍텅구리'와 '홍련비련'을 감독했고, 이명우는 발성영화 '춘향전'의 후광을 업고 '홍길동전'과 19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연출력을 과시했다.

형제 감독인 이병일-이성구 감독. 형인 이병일 감독의 영화 '시집가는날'은 한국영화 역사상 국제 영화제에 최초로 진출한 작품이다. 

또 다른 형제 감독으로는 한국영화 역사상 국제 영화제에 최초로 진출한 영화 '시집가는날'의 이병일 감독과 동생 이성구 감독이 있다.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은 한일 국교 정상화 전인 1957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 영화제에 처음 출품되어 최우수희극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1942년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경사'로 맹진사가 판사댁 아들 미언(최현)을 사위로 맞이하려 하지만 그가 절름발이 라는 소문에 딸(김유희) 대신 몸종(조미령)을 시집보내며 벌어지는 소동을 회화적으로 그렸다. 

동생 이성구(본명 이병영)는 이 영화 연출부에서 형을 보좌했다. 그는 영화 '자유결혼'과 '청춘일기' 현장에서 감독 수업을 거쳐 1960년 새로운 시대의 청춘상을 보인 '젊은 표정'에서 "레디고우"를 외쳤다. 1978년 '무상'까지 48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메밀꽃필 무렵'과 '장군의 수염' 그리고 70㎜ '춘향전'은 잊을 수 없다. 부인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 이은심 여사다.

김소동 김한일
 형제 감독인 김소동 감독과 동생 김한일 감독

195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끈 김소동 감독과 김한일 감독도 형제 감독이다. 

1911년생 김소동 감독은 1930년을 전후해 단성사에서 나운규의 '아리랑'과 '사랑을 찾아서'와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를 보면서 영화에 심취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예술 방면에 애착을 가진 김 감독은 영화 클럽을 만들어 해방 후인 1947년 '모란등기'를 선보였다. 1956년 '왕자호동과 낙랑공주'를 내놓은 같은 해 동생 김한일도 정비석 원작 '나비야 청산가자'를 '여성의 적'으로 개명한 영화로 데뷔했다.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을 못 잊은 형 김소동 감독은 나운규 20주기 기념으로 1957년 장동휘를 픽업해 무성영화 그대로 재현한 영화를 내놓아 작품성과 흥행성에 크게 성공했다.

형은 '돈'과 '오! 내고향' 등 5편의 영화를, 동생은 춘원 이광수 소설인 '그여자의 일생', '진리의 밤', '내가 낳은 검둥이' 등 6편을 남겼다. 

하길종 하명중
형제 감독인 하길종 감독과 동생 하명중 감독

하명중 감독의 형인 하길종 감독은 1975년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 격인 '병태와 영자'가 충무로3가 스카라 극장에서 상영중이던 1979년 2월 28일 뇌졸중으로 타계했다.

하 감독은 미국 UCLA에서 스필버그와 함께 영화 연출 수업을 받고 아서 팬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1970년 귀국해 1972년 '화분'으로 데뷔했다. 이후 '바보들의 행진'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6년 차이의 동생 하명중(본명 하명종)은 영화배우로 활약하며 '불꽃'과 '사람의 아들'등 10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형의 영화인 '화분'과 '수절', '한네의 승천'에서 연기력을 보이며 미국에서 수련한 연출스타일을 체득한 하명중은 1983년 묘한 제목인 'X'(엑스)로 감독으로 변신한 후 '땡볕'으로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다. 연기자 답지 않은 치밀한 콘티로 '태', '혼자도는 바람개비' 등 6편의 영화를 내놓았으며, 형의 7편과 더불어 우리영화 100년사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영화계를 누빈 이들 형제 감독들은 메가폰의 함성을 스크린에 포효시켰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60여 년간 한국영화와 국내 상영된 외국영화 관련 작품 및 인물자료를 최다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자료 수집가이면서 영화연구가 겸 영화칼럼니스트.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제작된 영화의 제작배경과 배우와 감독 등 인물들의 활동이력에 해박해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는 별칭이 따름. 인터넷과 영상자료 문화가 없던 시절부터 모은 포스터와 사진, 인쇄물 등 보유한 자료 8만여 점을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단성사에 설립중인 영화 역사관에 전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0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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