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으로 광주5‧18 후유증을 조명한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으로 광주5‧18 후유증을 조명한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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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 프리의 여성 버전, 총 없이 강렬한 충격 안겨
사진=정중헌
연극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공연 장면./사진=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연극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11월 1일 까지, 대학로 자유극장)는 상황에 따라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소재를 극적으로 잘 풀어낸 웰 메이드 작품이다. 

제목처럼 내용 전개가 불편(필자 개인의 소견 또는 편견일수도...)했지만 마지막 한 방으로 연극의 매력을 총 맞은 것처럼 얼얼하게 안겨주었다.

역시 정범철이었다. 그가 쓰고 연출하는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내공이 단단해 볼 때마다 감탄하고 감동했는데 이번 작품도 그랬다. 남자 위주 혼성 버전이 호평을 받고 있어 보려던 참에 여자 버전을 먼저 관람했는데 배우들 연기와 앙상블이 좋아 만족했고, 남자들 공연을 더 보고 싶어졌다.

이 작품의 주제는 한 개인(또는 집단)의 트라우마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연속적 피해를 당한 당사자에게 그 후유증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작가는 총기가 있다면 총알 아끼지 않고 쏘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절절한 피해자의 복수욕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작가 정범철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에 맞춰 이 작품을 썼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고 생각하는 한 인간이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운 과거의 사람들을 찾아가 총으로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소품으로도 총은 나오지 않지만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포즈만으로도 섬뜩하고 충격적이다. 상대를 향한 사정거리가 짧아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연극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여자 버전에서 주인공은 노윤정 배우가 맡은 차명숙이다. 택시운전사인 그는 택시 안에 손님이 놓고 내린 총기로 고교 때 이념을 강요한 선생 노혜자(권남희 역), 운동권으로 잡혀 감옥생활 중 자신을 성폭행한 구동희(정아미 역), 자신이 만든 저예산 영화를 혹평한 심미희(박선옥 역), 그리고 친구 김영실(조주경 역)과 바람피운 남편 이지석(박원진 역) 등을 찾아다니며 사과하라고 윽박지르고 따지다가 끝내는 총으로 응징하고 복수한다.

픽션이지만 차명숙은 광주에서 태어나 5.18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던 아버지를 잃고, 대학에서 운동권으로 활약하다가 영실의 밀고로 옥살이 중에 구동희에게 성폭행 당하고 결혼하지만 남편은 영실과 동거중임을 알게 된다. 그는 “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휩쓸려 왔어”라고 절규한다.

결말을 모르면 이야기들이 불편하다.

총으로 연쇄 살인을 해도 잡히지 않는 설정도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회상 또는 악몽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라스트를 대하면 이것이 연극이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관객이 많은 것도 이 같은 연극성이 강하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사진=정중헌
연극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출연 배우들./사진=정중헌

연출을 겸한 정범철은 심플한 무대에서 오직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소도구 없이 대사와 음악과 조명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르고 이념 논쟁 또한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대사 위주로 작품을 끌고 가는 저력이 정범철 작 연출의 장점이다.

순전히 배우들이 끌어가는 무대에서 6명의 배우들은 매끄러운 연기력에 치밀한 앙상블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차명숙 역 노윤정은 조역 연기만을 봤는데 이번에 주역을 맡아 극 전반을 이끄는 응집력 뿐 아니라 감정의 기복과 힘의 조절로 많은 대사와 감정연기를 한 치도 흐트럼없이 해냈다. 열연이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사진=정중헌
연극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영실 역 조주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해 이야기를 견인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안정감 있게 표출하며 극을 잘 받쳐주었다. 선생님 역 권남희 배우 역시 당당하게 실력발휘를 했다. 믿고 보는 배우 정아미의 구동하 역은 도도함과 비굴함을 오가는 감정의 고저 배분이 일품이었다. 영화평론가 역 박선옥은 카리스마 있게 배역을 소화했다.

여성버전에서 청일점인 지석 역 박원진은 극 후반, 판타지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중요한 역할을 분위기 있게 해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의식이 엇갈리는 시대에 작 연출의 정범철은 '불편한'을 전제로, 5.18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연극으로 심도 있게 조명해냈다. 이번에 시도한 젠더 프리 공연도 멋진 성과였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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