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식모 3형제'와 '이복 3형제' (83)
[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식모 3형제'와 '이복 3형제' (83)
  • 정종화 영화연구가
  • 승인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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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출부와 가사도우미로 변천한 우리시대의 여성상 '식모'
- 가부장적 시대의 유산 배다른 '이복형제'의 갈등
- 오늘날 가사도우미 '식모3형제'의 효심과 우애
- 배다른 3형제가 빚어내는 가정 비극의 애환 '이복 3형제'
1964년 임권택 감독의 '10자매 선생'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한국 영화 1세기에 숱한 영화들이 저마다의 타이틀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흥행에 도전한 에피소드는 천일야화를 무색할 정도다.

영화 타이틀에서 보통 형제나 자매를 지칭하는 2인칭 제목은 많았다. 그러나 50~60년대 제목에는 그 숫자가 크게 늘었다. 산아 제한이 없던 그 당시 자식은 '다다익선(?)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1958년 작곡가 박시춘이 감독한 '딸 7형제'가 최다 타이틀이었으나 1964년 임권택 감독의 '10자매 선생'이 이 기록을 깨트렸다. 1962년에는 엄앵란이 막내 공주로 출연한 '7공주'가 선보이기도 했다. 

1969년 김화랑 감독의 '식모 3형제' 장면. 6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로 인기를 떨쳤던 문희, 남정임, 고은아가 출연했다.

1969년 김화랑 감독은 '식모 3형제'를 선보였는데, 6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로 인기를 떨쳤던 '흑맥'의 문희, '유정'의 남정임, 그리고 문예영화 '갯마을'로 독보적인 청순미를 보인 고은아가 합세해 60년대 말 사회상의 현실을 풍자와 애환으로 엮어 보였다. 

당시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온 처녀들의 상당수는 식모로 일을 했다. 사전적 의미의 '식모'는 '남의 집에서 고용되어 부엌일을 맡아하는 여자'로 풀이된다. 농촌과 도시의 빈부차가 심했던 당시 식모는 대가족이 거주하는 집에서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하는 부엌일이 대부분이었다. 

'식모 3형제'는 아버지의 환갑잔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한 세 자매가 직업소개소를 찾아가는 도중 어느 골목에서 청년을 만나 식모를 구한다는 세 가정의 집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막내 지향(문희)이 일하는 집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홀아비(이낙훈)와 외동딸 상희(안인숙)가 사는 집으로 말괄량이 기질이 많아 사사건건 갈등과 풍파를 겪는다. 두 번째 집에선 둘째 지순(남정임)이 일하게 되는데, 사업실패 후 무위도식하는 남편(구봉서)과 실권을 쥐고 이는 부인(도금봉)은 5년 차 부부로 자식이 없는 집안이다. 세 번째 집은 큰 언니 지숙(고은아)이 일하게 된다. 안방마님(윤인자)의 친정이 부자로 남편(김희갑)이 엄처시하로 살지만, 아들(오현경)과 함께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부전자전(?)의 모습을 보인다.   

앞서 식모란 타이틀로 제일 먼저 영화화한 박구 감독은 1964년 '식모'를 비롯해, 1969년 '식모의 유산'을 연출했다. 희극 영화의 1인자 심우섭 감독은 1968년 구봉서를 출연시켜 '남자 식모'의 인기를 업고 속편 '남자 식모'로 지방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1970년 '팔도 식모'까지 등장하는, 그야말로 '식모'의 전성시대를 누렸다. 

1960년 김화랑 감독의 '5형제'

형제 수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영화는 1958년 '딸 7형제'와 라스트 씬에서 합동결혼식을 하는 '아들 7형제'이지만, 실제론 1960년 김화랑 감독이 양훈·양석천·김희갑·구봉서와 막내로 합세한 후라이보이가 나온 '5형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도 '아들 3형제'와 '유쾌한 3형제와 40인의 처녀'가 있다. 일찍이 김화랑 감독은 1961년 '이복형제'에서 최무룡과 황해를 대립시켜 김지미와의 갈등을 보여줬다. 

1971년 전우열 감독의 '이복 3형제'에서는 1950년대 미남스타 최무룡이 배다른 큰형으로, 1960년대의 청춘스타 신성일이 파란 많은 이복동생, '미워도 다시 한번'과 '꼬마신랑'의 아역스타 김정훈이 이복자식으로 출연한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유치한 사건 설정과 산만한 줄거리로 호화 배역에 역행하는 작품이 되어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증오와 갈등으로 얼룩진 이복 3형제의 비애!"란 선전 문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을 뿐이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60여 년간 한국영화와 국내 상영된 외국영화 관련 작품 및 인물자료를 최다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자료 수집가이면서 영화연구가 겸 영화칼럼니스트.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제작된 영화의 제작배경과 배우와 감독 등 인물들의 활동이력에 해박해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는 별칭이 따름. 인터넷과 영상자료 문화가 없던 시절부터 모은 포스터와 사진, 인쇄물 등 보유한 자료 8만여 점을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단성사에 설립중인 영화 역사관에 전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0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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