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멕시코 이민사를 다룬 '작지만 큰' 연극 '돈데보이'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멕시코 이민사를 다룬 '작지만 큰' 연극 '돈데보이'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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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스포라의 한에 맞춘 무거운 주제를 군중신 연출과 배우들의 캐릭터 연기로 형상화
- 극단 유목민의 '돈데보이', 소월아트홀에서 개막...19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대형연극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20세 초 한인들의 멕시코 이민사를 다룬 묵직한 연극 한 편이 긴 장마를 헤치고 무대에 올랐다.

극단 유목민이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을 받아 소월아트홀에서 개막한 '돈데보이'(8월 11~16일)는 한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 :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민족 집단)를 조명한 역사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극장이지만 19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대형연극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푸르른 날에'를 쓴 정경진 작가의 희곡을 경기대 손정우 교수가 연출했다. 정경진 작가는 멕시코 한인 유민사를 절망의 상항으로 접근했다. 1905년 지상낙원이라는 허울에 속아 영국 상선 알포드 호에 승선한 1033명의 한인들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애니깽(용설란의 일종) 농장에 팔려가 노예처럼 혹사 당 하다가 계약 만료로 오갈 데 없어 국제 고아가 돼버린  유민의 한을 다루고 있다.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제목 '돈데보이'는 “어디로 갈까요”라는 뜻이다. 난민들의 애환을 애절하게 노래한 멕시코 출신 가수 티시 히노호사가 부른 '돈데보이'와 동명의 제목이다. ‘애니깽’으로 불리는 한인들의 멕시코 이민사는 소설과 영화, 다큐로도 다루어졌지만 이 연극에서 더 비극적으로 형상화괸 느낌을 준다.

“미치거나 죽거나, 막다른 길에 몰린 유민의 한(恨)”. 작가 정경진은 고립무원의 땅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린친 유민들의 처절한 삶 그 자체뿐 아니라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없어지고 멕시코 국적마저 얻지 못해 국제 미아가 돼버린 한인들의 디아스포라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같은 주제 의식이 이 연극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한정된 시공간에서 한인들의 수난사를 보여주는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살인적인 노동과 착취에 가까운 임금, 자살을 선택할 만큼 가혹한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가급적 많이 형상화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연극이 너무 어둡고 절망적이어서 관극의 피로도가 엄습하는 느낌을 주었다.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디아스포라는 뜻에는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집단의 의미도 들어있다. 실제 동토의 땅에 버려진 중앙아시아 한인들은 그 역경 속에서도 풍속을 유지하고 집단농장의 영웅도 되었다. 

이 작품에서도 하와이와 멕시코로 운명이 갈린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절망의 땅에서 탈출해 지구 곳곳을 전전한 한인 캐릭터도 그려지지만 총에 맞아 죽고, 농장주의 노리개가 되는 등 척박한 장면들에 가리워져 분위기를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물론 애니깽은 우리의 흑역사이고 실제로 그들의 처한 상황은 처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보호해줄 나라가 없는 유민들의 한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 절망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해외에 나가 유목민처럼 떠도는 디아스포라는 지금도 도처에 있지만 그들에게도 애환이 있게 마련이다.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온 멕시코 이민 1세는 단 한명도 없다"는 설명처럼 출구가 막힌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계속 짓밟히고 죽어나가는 상황의 연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비상구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손정우 연출은 드넓은 시공을 무대 전환없이 오직 인물들의 캐릭터와 연기로 펼쳐내고자 했다. 무대에서 다루기에는 스케일이 큰 소재다보니 러브라인도 넣고, 멕시코풍도 넣고, 복잡한 심리는 춤으로 표현하고... 여러 장치를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이를 상쇄할 뭔가가 있을 것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를테면 무대에서 풀리지 않은 응어리들이 영상으로 보여준 교민의 구한말 애국가 노래가락에서 풀리는 느낌을 주는 것처럼...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돈데보이' 공연장면/사진=극단 유목민

극단 유목민의 '돈데보이'는 거대한 주제를 다소 무겁게 다루기는 했지만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이야기를 분절없이 매끄럽게 끌어나갔다.

이민선 통역과 애니캔 농장 감독으로 1인 2역을 해낸 이태훈은 정형화된 현장 감독 캐릭터를 벗어나 한인 피가 섞인 혼혈로서의 갈등도 내비추는 개성 연기를 펼쳤다. 이화영 또한 전형적 조선여인에서 멕시코인 행색까지 외연과 내면의 변신을 보여주었다.

김종헌 역을 맡은 최승일이 중견다운 연기력을 보였고, 마리아 역 홍은정의 호연이 군중 속에서 돋보였다. 이수덕 역 이승현, 석만부 이민영과 석만모 진영진, 조광복 역 정대곤 등이 군중 속에서도 맡은 인물의 개성을 잘 살려냈다. 

배우 이태훈과 이화영의 공연 연습 장면./사진=극단 유목민
배우 이화영과 이태훈의 공연 연습 장면./사진=극단 유목민

이 연극의 장점은 군중신을 효율적으로 연출한데 있다. 18명의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루면서 개인기를 살려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갔다. 생음악으로 연주한 멕시코풍의 기타 선율도 좋았지만 콘트라베이스의 묵직한 저음은 작품 분위기와 잘 맞았다.

민간극단에서 이만한 규모의 작품을 해냈다는 점은 평가할만 하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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