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혼다 토모쿠니 위원장] 한국인과 헌혈로 혈연 맺고 사는 일본인 혼다 박사
[김두호가 만난 혼다 토모쿠니 위원장] 한국인과 헌혈로 혈연 맺고 사는 일본인 혼다 박사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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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국어교육 석박사 거친 일본특수교 교사 출신
- 88올림픽 때 한국에 빠져 한국여성과 결혼
- ‘아이리스’ 출연 등 배우 활동에 국민건강 운동, 일본어 강의로 30년
서울대 헌혈의 집에서 16년 동안 꾸준히 헌혈봉사를 해온 일본인 혼다 토모쿠니(本田知邦) 박사는 얼마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적십자 헌혈 유공자 금장메달’을 받았다. 모교인 서울대총동창회 회보는 ‘한국에 피 나누는 일본인 혼다 토모쿠니 동문 – 70세까지 100회 달성하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실었다. 일본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1987년 한국에 온 그는 서울대 국어교육 석박사를 거쳐 한국어 교육학자이자, UN합창단 한국 국제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틈틈이 연기 활동도 한다. 드라마 '아이리스'에도 출연 했다. 영화 ‘군함도’와 ‘밀정’ 오디션도 봤지만 한국어가 유창해 탈락했다며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여성과 결혼해 아들딸 낳고 33년째 한국에서 살고있는 일본인 혼다 토모쿠니(本田知邦 /1962∼ / UN합창단 한국 국제협력위원장) 박사는 의식세계와 삶의 절반쯤은 한국인이다.

일본 토호쿠후쿠시(Tohokufukushi)대학에서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직에 있다가 1987년 한국에 온 그는 뒤늦게(2001-2017) 서울대에서 국어교육학으로 석, 박사과정을 거쳐 한국어 교육학자가 되었다. 영주권(F-5)을 가진 일본인으로 살면서 활동해 온 이력을 들여다보면 혼다박사의 다채롭고 열정적인 활동 영역에 경외감이 따른다.

일본어 국정교과서를 비롯해 ‘일본학개론’ ‘오아시스 일본어’ 등 각종 일본어 교육 관련 저서가 15권에 이른다. EBS(교육방송) 중급 일본어회화 강좌로 7년간 인기를 모았고, 국회에서 일본문화 특강, 서강대 일본어 강사와 서일대 교수, 유한대, 인덕대, 정화예술대에서 비즈니스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은 대학이나 단체의 인문학 특강 초청도 받는다.

그의 활동 중 특별한 부문은 사회봉사 영역이다. 몇 해 전 모교인 서울대총동창회 회보가 ‘한국에 피 나누는 일본인 혼다 토모쿠니 동문 – 70세까지 100회 달성하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실었다.

내용은 서울대 헌혈의 집에서 16년 동안 꾸준히 헌혈봉사를 해와 대한적십자사가 50번째 헌혈을 하는 혼다박사에게 ‘적십자 헌혈 유공자 금장메달’을 수여한 미담 기사였다. 그는 “일본인 피가 한국인 몸에 들어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비록 작은 봉사지만 국경을 넘어 한국과 일본이 화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앞으로도 쉬지 않고 헌혈을 계속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회 봉사활동으로 UN합창단 한국실행위원회의 국제협력위원장을 맡아 오래전부터 음악공연을 통한 평화운동에도 참여해 왔다. UN합창단은 UN본부 직원들이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2차대전 직후인 1947년에 창립한 단체다. 지난 70주년에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를 공연장소로 선정해 DMZ에서 출발, 국내 순회공연이 개최되기도 했다.

또 열정을 쏟고 있는 활동은 ‘하이컨디션 범국민 건강운동’이다. ‘웰빙’ ‘힐링’에 이어 신개념 건강 운동으로 등장한 ‘하이컨디션’은 ‘황금 쾌변 춤’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황금색 쾌변이 남녀노소 건강에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하이컨디션’ 범국민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여기에 틈틈이 배우가 되어 연기 활동도 한다. 영화 <사랑>에서 일본대사역, 인기 TV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함장역으로 출연했다. 한국인이 되어 한국 속에 살며 좋은 일, 하고 싶은 일을 가리지 않고 즐기며 사는 일본사람 혼다박사를 만났다.

박달재에서 연인을 만나다

 혼다 토모쿠니(本田知邦) 박사/사진=인터뷰365

- 도대체 내 나라 내 고향, 정든 가족 친지들을 두고 한국으로 건너와 살게 된 사연부터 듣고 싶다.

하계 올림픽 개최를 한 해 앞두고 나라 안이 들떠 있던 1987년에 7명의 친구들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다. 전국을 두루 관광하다가 제천의 ‘울고 넘는 박달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내가 한국에 빠진 시발점이다. 이듬해 결혼하고 6년 뒤 영주권을 받았다. 아내는 병원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다가 퇴직금을 받아 새로운 삶을 꿈꾸며 관광하던 길에 나를 만났다.

- 이주까지 하게 된 것은 아내가 발목을 잡은 것인가, 본인이 좋아서 인가?

양쪽 다 이유가 된다. 꾸불꾸불 박달재 고개를 힘들게 넘어가야 하듯이 결혼하기까지도 넘기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호칭할 때 으레 ‘일본놈’이라 하지 않는가. 처가댁 어른들이 왜 많은 남자를 두고 하필 일본놈과 결혼하느냐고 반대해 시간이 걸렸다.

- 어떻게 설득했는가?

아내가 10남매 집안의 8번째로 사위 하나 쯤 ‘일본놈’ 데려와도 큰 문제거리로 삼지 않을 거라는 내 짐작이 맞아들어 갔다. 우선 친밀감을 주기 위해 장모님 전신 마사지를 해 드리고 머리 염색도 해 드리며 합격 점수를 따는 데 성공했다.

- 일본에서는 대학 졸업 후 교사생활을 했다는데.

토호쿠후쿠시(Tohokufukushi)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초중고교 모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공이 봉사와 헌신을 필요로 하는 특수 학생을 지도하는 교직이기 때문에 고향인 후쿠시마의 타이라에 위치한 특수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투병생활 아버지 생각하며 헌혈 봉사

- 일본에서 살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가?

내가 3살 때 아버지가 별세하셨다. 남동생이 있고 세 번째 임신을 한 어머니는 유산의 고통을 겪으며 그로부터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사셨다. 보육원 교사로 활동하시고 지역의 노인복지센터 관장 일도 하시며 매우 진보적이고 포용력이 남다른 분이다. 지금도 83세로 고향에 생존해 계시지만 자식에게 공부는 뒷전으로 돌리게 하고 운동을 권장했다.

내 동생도 교직(교장)에 있고 조카 세 명 중 두 명도 교사가 되어 교육자 집안이 됐다. 나도 한국에서 주 직업은 일본어 교수로 살았다.

-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보다 운동을 더 권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생활이 어려워 나는 어릴 때부터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는 아예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서 중학교 때는 야구선수로 운동에 몰두했고, 고교 때는 일본 궁도(弓道), 대학 때는 합기도에 몰입해 체력을 탄탄하게 유지하며 살았다.

대학 4학년 때 취업이 걱정되어 교사 동아리(교사지망생)에 40명 중 꼴찌로 들어가서 공부에 집중, 일등으로 지정학교에 부임하는 기록을 남겼다.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을 앞에 두고 혼신의 체력을 쏟아내 성과를 내듯이 한번 멋지게 공부해 보자는 결심이 뜻대로 통했다.

서울대 헌혈의 집에서 16년 동안 꾸준히 헌혈봉사를 해온 일본인 혼다 토모쿠니(本田知邦) 박사는 얼마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적십자 헌혈 유공자 금장메달’을 받았다. 모교인 서울대 총동창회 회보는 ‘한국에 피 나누는 일본인 혼다 토모쿠니 동문 – 70세까지 100회 달성하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실었다. 혼다 박사는 70세까지 100회를 목표로 두 달에 한 번씩 찾아가 헌혈을 하겠다는 목표다. 그는 "피를 뽑을 때마다 내 피가 한국인 환자의 몸 안에 들어가 따뜻한 한일관계 우정의 피가 되어주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사진=혼다 씨 제공

- 헌혈 봉사를 20년 넘게 실행하며 대한적십자사 유공자 금장 메달까지 받은 경력도 남다른 사연이다.

어린 시절 암으로 투병하시며 헌혈 받은 피를 많이 수혈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도 환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할 때 캠퍼스 안에 있는 적십자 헌혈집을 발견하고 70세까지 100회를 목표로 두 달에 한 번씩 찾아가 헌혈을 하고 있다. 피를 뽑을 때마다 내 피가 한국인 환자의 몸 안에 들어가 따뜻한 한일관계 우정의 피가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 UN합창단 한국실행위원회 국제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어떤 내용의 활동인가?

UN본부 직원들이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활동으로 1947년에 출범시켰다. 창설 70주년 때인 2017년에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을 공연 장소로 선정해 비무장지대와 평창 광주 등지에서 음악회를 개최했다. 지금도 음악활동을 통한 평화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재작년에는 UN본부에서 공연도 하고 카네기홀의 무대에 서기도 했다. 나의 꿈은 언젠가 평양에서 멋지게 음악회를 개최하는 데 있다.

- 조금 전 가방 안에서 끄집어내 보여준 ‘신개념 하이컨디션 건강댄스 체조’ 홍보 팸플릿은 어떤 건강댄스인가?

내가 뜻있게 참여하고 있는 신개념 건강 캠페인이다.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사는 프로그램으로 ‘웰빙’을 내세우고 이어서 ‘힐링’, 이제는 ‘하이컨디션’이란 신개념 교육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하이컨디션을 위한 프로그램이 건강댄스 체조인 일종의 ‘똥춤’으로 볼 수 있는 ‘황금쾌변 댄스’이다. 내용을 직설적으로 설명하면 초등학생에서 치매 위기의 노인들까지 황금 똥을 누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 목표다. 쾌변은 쾌식 쾌면과 3대 건강요소로 꼽힌다. 성인병, 변비, 다이어트, 똥배, 스트레스, 치매, 우울증까지 쾌변을 불러내는 하이컨디션 건강댄스 보급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그리고 외치고 다니는 소리는 “대변소변”이다. 즉 크게 변하려면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는 것이다.

혼다 토모쿠니(本田知邦) 박사(사진 왼쪽)가 필자에게 가방 안에서 ‘신개념 하이컨디션 건강댄스 체조’ 홍보 팸플릿을 꺼내 보였다. 건강댄스 체조인 ‘황금쾌변 댄스’ 보급에 나섰다. 그는 "초등학생에서 치매 위기의 노인들까지 황금 똥을 누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나는 외바퀴 자전거를 타며 산다

- 정말 분주하게 사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평온한 직업인 교사로 있다가 사표를 던지고 한국으로 올 때 친구들은 다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만류했다. 가방 하나만 들고 와 교육 비자(E-2)를 받고 원어민 일본어 강사로 활동하며 IMF 때도 넥타이 매고 찾아온 직장인들을 상대로 하루 11시간씩 강의를 다녔다. 하하..그 때 번 돈 지금도 쓰고 있다. 그러다가 7년을 두고 EBS 일본어 강좌를 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 배우 활동도 한다는 데.

주변 사람들은 나를 만능 엔터테이너로 인정한다. 인기 TV드라마였던 ‘아이리스’에서 잠수함 함장으로 출연하고 영화 ‘사랑’에서는 일본대사 배역을 해냈다. 그런데 영화 ‘군함도’와 ‘밀정’오디션을 봤으나 한국어가 너무 유창하다는 이유로 떨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멋진인생(박정식)’을 불렀지만 인정을 받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한일앤카(토롯)대회에 출연하여 ‘무조건(박상철)’을 부르며 큰 호응을 받았고, 북한사투리 노래자랑에서는 ‘너를 위해(임재범)’로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아이리스’ 출연 등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혼다 토모쿠니(本田知邦) 박사./사진=혼다 씨 제공

- 자녀를 비롯해 가족을 소개할 수 있는가?

아내(박귀옥 / 朴貴玉)와 1994년생 딸과 1996년생 아들이 있다. 아내는 소방서 의용소방대원으로 있다가 지금은 돌봄 선생님으로 옮겼다. 틈틈이 배드민턴 동호회 임원으로 현장을 뛰며 심판도 보고 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일본사람인데도 일본어를 못한다. 딸은 혼혈로 이지매(따돌림) 당할까봐 일찍 태권도를 배우게 했더니 교등학교까지 선수생활을 하며 5단 사범 자격을 취득했다. 서원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10살 연상의 실업자 청년을 만나 결혼하려할 때 엄마는 반대했지만 나는 찬성했다. 바닥에 있으면 올라갈 길 밖에 없다고 통과시켰다. 사위는 기대했던 대로 배관 기술자가 되고 돈을 벌어 TV부터 사들고 온 뒤 꾸준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아들은 명품 빈티지 점포를 운영하며 스스로 독립해서 산다. 유럽으로 좋아하는 축구관람을 다니며 즐겁게 산다.

- 자신의 인생철학을 함축해 성장하는 젊은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겨 달라.

나는 살면서 내가 외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곡예사의 인생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외발 자전거는 멈추면 한 방에 쓰러진다. 쉬지 않고 뛰듯이 바퀴를 돌려야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간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니 몸이 좀 고달파도 근심 걱정거리가 내 머리에 끼어들 여지가 없어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평생을 두고 강의활동을 해오며 느끼고 발견한 인생의 가치관과 철학이 있다. 남을 대할 때 1명이라도 100명을 대하듯이 존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하고, 반대로 100명 앞에서는 1명을 상대하듯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하면 사회생활이 행복해진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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