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이룬 감독의 꿈...33년차 배우 정진영의 용기있는 도전 (종합)
40년 만에 이룬 감독의 꿈...33년차 배우 정진영의 용기있는 도전 (종합)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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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영, 17살 꿈, 57세에 이뤄...'사라진 시간' 영화 감독 첫 데뷔작
- 시나리오 단계부터 조진웅 주인공으로 염두..."초고 보낸지 하루 만에 '하겠다"고 해"
 21일 '사라진 시간' 온라인 제작 보고회에 참석한 정진영 감독과 배우 조진웅/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열일곱 살 고교 시절 꿈꿔왔던 영화감독의 꿈을 쉰일곱에 이뤘네요. 감개무량합니다. 꿈같기도 하고..." 

영화 '사라진 시간'으로 40여 년간 꿈꿔온 영화감독에 도전한 연기 인생 33년 차 관록의 배우 정진영의 목소리는 감격스러움이 묻어났다. 

21일 신인감독으로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그는 "갑자기 감독이라고 얘기하니까 떨리고 긴장된다"며 "어젯밤에 잠을 못 잤다"며 긴장한 모습이었다. 

천만 영화 '왕의 남자',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등에서 묵직한 연기력으로 국내 대표 연기파 배우로 불리는 정진영의 첫 감독 데뷔작은 '사라진 시간'이다.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미스터리 추리극이다.  

정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하루 평균 3시간만 자면서 영화 연출에 매달렸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엄청난 보약을 먹은 것처럼 힘이 나더라"며 "너무너무 행복했다"고 밝게 웃었다. 

정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조진웅을 주인공으로 염두했다고 밝혔다. 그의 제안에 조진웅은 다음날 바로 흔쾌히 섭외에 응했다며 "기뻤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날 조진웅은 정진영을 향해 '선배님' 대신 '감독님'이라고 부르며 "작품에 상당히 미묘한 맛이 있었다"며 "해저 몇 천 미터 속에서 보물이 나온 기분이었다. 천재적인 스토리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들의 일문일답. 

 21일 '사라진 시간' 온라인 제작 보고회에 참석한 정진영 감독과 배우 조진웅/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오랜 숙원이었던 감독 데뷔의 꿈을 이뤘다. 소감은.

정진영 감독(이하 정 감독)= 쑥스럽긴 한데 어릴 적 꿈이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연기를 하면서 배우를 하게 됐다. 30대 초에 연출부에서 한 작품 한 적이 있긴 했지만, 배우를 하면서 연출을 할 능력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연출이 워낙 어렵고 방대한 작업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 보니까. 사실은 포기라고 말하는게 맞다. 그러다가 4년 전부터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할 수 있는 방식과 사이즈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17살 때 꿈을 쉰 일곱에 이루게 됐다. 하하.  

- 40년 만에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게 된 배경엔 어떤 갈증을 느꼈던 건가.  

정 감독 = 제가 50대 후반이다. 갈증보다는 용기를 낸 거다. 영화 연출은 못할 일이다고만 생각해왔다. 영화를 만들었다가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에 겁났던 것 같다. 겁만 내다가 내 인생이 지나가겠구나 싶더라. 비판을 감수하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는 뻔뻔함과 용기를 갖게 됐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겁은 난다. 

- 실제 연출을 해보니 어떻던가. 

정 감독 =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나 촬영을 하면서 행복하고 재미있었다. 하루에 평균 3시간 정도 잤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엄청난 보약을 먹은 것처럼 힘이 나더라. 너무너무 행복했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컷

- 시나리오 작업 당시부터 형구 역할에 배우 조진웅을 염두해놓았다고. 

정 감독 = 내가 배우일 때 감독님들이 나를 염두해 놓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말을 들으면 거짓말인 줄 알았다. 하하. 그런데 실제 시나리오를 쓰면서 인물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다 보면 배우를 대입해 쓰게 된다. 조진웅 씨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의 연기를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진웅 씨가 그동안 해온 큰 작업들에 비해 소박하게 판을 꾸렸기 때문에 과연 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또 내가 선배라는 점에서 후배 배우에게 부담을 줄까봐 망설였다. 책을 진웅 씨에게 보내면서 빨리 거절당해야지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거절당하면 다른 곳으로 가자는 마음을 갖고 초고가 나온 날 바로 보냈다.  

- 시나리오를 본 조진웅의 답은 어땠나. 

정 감독 = 그다음 날 바로 답이 왔다. 하겠다고. 말로 형연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기뻤고, 고마웠다. 그날 함께 술을 마셨는데, 저는 기쁨에 술을, 진웅 씨는 의혹의 술을 마신 것 같다. 하하. 

- 의혹의 술이라니?

조진웅 = 왜 저를 염두에 둔건지, 굳이 왜 저였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 작품에 상당히 미묘한 맛이 있더라. 뭐라 설명할 수는 없다. 정진영 감독님이 썼다는 인식이 없다면, 글만 보면 해저 몇 천미터 속에서 보물이 나온 기분이랄까. 본인이 정말 쓰셨냐, 원작이 있는 것 아니냐 몇 번을 물어봤을 정도였다니까. 조금이라도 표절이 없었는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말해달라 했다. 그래서 의혹의 술인 거다. 하하. 천재적인 스토리에 감탄했다. 

 21일 '사라진 시간' 온라인 제작 보고회에 참석한 배우 조진웅/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영화 '독전', '끝까지 간다'와 드라마 '시그널'에 이어 또다시 형사 역할을 맡았다. 이번엔 어떤 형사인가. 

조진웅 = 기존과 다르다. 일상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생활형 형사다. 다른 캐릭터의 경우 집요하거나 막무가내이고, 정의를 위해 직진하는 모습 등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었다면, 형사 ‘형구’는 생활 밀접형 형사이지 않을까 싶다. 

- 평범한 형사였다가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스토리다. 구상한 배경이 궁금하다. 

정 감독 = 사는 게 뭔가, '나'라는 존재는 뭔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 얘기를 하다가 이 스토리를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하나둘씩 쌓아 나갔다. 4년 전 감독을 하고 싶어서 두 개의 글을 썼는데, 익숙한 내용인 것 같아서 버리고 새로 쓴 거다. 제 연출 기회가 이 한 편일 수도 있는데, 내게 있는 한 번의 기회에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했고 이 이야기를 하게 됐다. 사실 유머러스한 요소도 많고 재미있게 만들고도 싶었다. 관객분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스토리를 이끌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그렇게 구성했다. 

 21일 '사라진 시간' 온라인 제작 보고회에 참석한 정진영 감독과 배우 조진웅/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배우가 아닌 감독 정진영은 촬영 현장에서 어땠나. 

조진웅 = 연기 대신 메가폰을 잡았다는 포지션만 달랐다. 작품을 향한 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많은 배우들에게, 특히 제게 귀감이 된 분이다. 배우 출신 감독의 롤 모델을 제시한 분이라고 느꼈다. 작업을 할 때 혼란스럽지 않았고,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많이 배웠다. 

- 배우로서의 경험이 연출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

정 감독 = 배우로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배우들이 준비를 잘 해오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서는 배우가 준비해온 것을 충분히 믿고 가면 된다. 배우는 감정을 전달하는 매우 예민한 존재다. 어딘가 삐끗하면 장애물이 생기는데, 그걸 만들어주면 안 되거든. 감정 디렉션을 할 때는 옆에서 속삭였다. 감정은 감독과 배우만 아는 비밀과 같다. 배우의 감정을 보고 스태프도 놀라야 하거든. 그런데 크게 말하면 스태프들은 배우가 그 감정을 디렉션에 따라 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래서 속삭이면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배우였기에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조진웅 = 배우로서 현장 경험이 많은 감독님이 현장을 이해하는 것도 내겐 귀감이 됐다. 편하게 일할 수 있었던 장이 될 수 있었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컷

-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촬영신이 있다면.

정 감독 = 진웅 씨가 홀로 술을 마시는 원테이크 신이다. 극 속 형구가 술을 마시는 단순한 장면인데, 복잡한 그의 심리가 묘사된 신으로 제가 가장 감탄하고 '애정' 하는 신이다. 시나리오 작업 당시부터 카메라 이동 없이 배우의 심리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당초 1분 30초의 원테이크 영상을 기획했다. 한 신으로서도 긴 신이다. 

촬영 당일날 진웅 씨한테 컷을 안 할 테니 하고 싶은 대로 계속하라고 했더니 6분이 넘어가더라. 찍고 나서 한 컷을 자르는 건 모험이었기에 최대한 길게 쓰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 저 배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조건 길게 쓸꺼라 했다. 앞을 조금 잘랐는데, 제가 감탄하는 장면이다. 

조진웅 = 컷을 안 하시더라. 배우가 감독이 컷을 안 하는데, 본인이 끊어? 그런 경우가 어딨나. 하하. 저도 갈 때까지 가봤다. 어느 정도가 지나니 무아지경까지 가는 순간이 있었다. 연극할 때처럼 신명나던 순간이었다. 

- 영화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정 감독 = 기존의 영화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점에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제가 초짜이고 첫 작품이긴 하지만, 기존 영화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시나리오도 그렇게 쓰였다. 잃을게 별로 없다는 마음도 있었다. 이 작품 뒤로 제 작품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좀 자유롭게 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자유로움과 색다름을 전달하고 싶었다. 

- 6월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소감이 궁금하다. 

정 감독 = 시작점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로 독립 영화 스타일로 하려고 했다. 진웅 씨가 캐스팅되면서 조금 더 볼륨을 키웠지만, 저 예산 영화라 할 수 있다. 상업 영화와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이야기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조심스럽다. 앞으로 연출 작업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 개봉을 하고 관객의 평가, 기자들의 평가, 주변의 평가들이 어떨지 궁금하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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