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작품 편수로 본 배우 출신 감독 (68)
[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작품 편수로 본 배우 출신 감독 (68)
  • 정종화 영화연구가
  • 승인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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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기획·노래까지 만능 엔터테이너 최무룡, 16편 영화감독
- 액션 활극의 박노식, 14편 영화 작품에 감독과 주연으로 활약
- 빈틈없는 올 콘티의 완벽 연출자 '땡볕'의 하명중
- 명 배우는 명 감독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 신성일의 감독 데뷔작 '연애 교실'
- 국내 세 번째 여성 감독, 스타 최은희의 영화 '민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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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 100년의 역사를 통해 1500여 명의 감독이 탄생해 스크린을 수놓았지만 배우 출신 스타가 메가폰을 든 연기자도 30명에 이른다.

영화 편수를 많이 발표한 배우 출신 감독을 빅 파이브로 선정해 '레디 고우!'를 외쳤던 그들의 활약상을 살펴봤다.  

1960년대 김진규와 신영균 그리고 신성일과 더불어 충무로 신화를 창조한 최무룡은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최무룡은 일찍이 순수한 연기 외에도 1957년 유현목 감독의 '잃어버린 청춘'을 제작하는 등 영화 기획에도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음은 물론, 미성의 목소리로 '꿈은 사라지고' '아들의 심판'과 '외나무다리'등 많은 영화 주제가를 불러 공연 무대의 슈퍼 스타로 인기를 떨쳤다.

최무룡은 2백 여 편에 출연한 배우 생활로는 한계가 있었던지 1965년 김지미와 함께 살면서 최초로 감독 데뷔작 '피어린 구월산'을 내놓았다. 당시 반공영화가 정부시책에 순응해 많이 제작되었는데, 이 영화는 간첩으로 위장한 북한 출신의 신영균이 구월산에 잠입해 탄약고를 폭파하며 신출 괴몰하지만, 휴전협정 체결로 구월산 부대가 해체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렸다.

최무룡은 '아리랑'으로 민족혼을 영화로 불태운 춘사 나운규의 일대기인 '나운규의 일생'을 비롯해, '서울은 만원이다', '지하여자대학', '제3지대' 등, 1987년 '덫'까지 16편으로 가장 많은 작품을 연출했다. 

박노식 감독 주연의 '인간 사표를 써라' 포스터
박노식 감독 주연의 '인간 사표를 써라' 포스터

박노식은 1956년 이강천 감독의 전쟁 영화 '격퇴'로 영화배우가 됐다. 처음엔 '느티나무 있는 언덕'과 '두 남매', '꽃 피는 가족'과 같은 멜로물의 연기로 호감을 보였으나, 1960년 정창화 감독의 '햇빛 쏟아지는 벌판'과 '내 청춘 한은 없다'로 액션 배우의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호쾌한 성품의 호주가이기도 했던 그는 1960년대 후반에는 연기가 아닌 주먹으로 인해 불상사를 야기하며 경찰서를 분주하게(?) 드나든 이력이 있다.

박노식은 '박노식 감독 주연의 이색 액숀 거작!'이란 포스터 선전을 앞세운 1971년 '인간 사표를 써라'를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프', '쟉크를 채워라', '집행유예', '폭력은 없다' 등 14편에 걸친 전 작품 모두 연기와 함께 감독까지 하는 영화 열정을 보였다.

김유정 소설을 영화화한 '땡볕' 

하명중은 형 하길종 감독의 '화분', '수절', '한네의 승천'에 출연하면서 현장의 연출 감각과 콘티의 포토제닉을 형으로부터 체득했다. 그는 '불꽃'과 '족보', '사람의 아들' 등 각종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명성을 떨쳤다.

중앙고교 시절 야구부에서 스포츠 생활을 한 하명중(본명 하명종)은 연기자로서 만족을 할 수 없어 1983년 '겨울여자'의 조해일 소설 '×(엑스)'로 감독으로 변신했다.

첫 데뷔작인 알파벳의 의문 부호로 대중의 관심을 벗어나 다음 해 김유정 소설을 영화화한 '땡볕'에 조용원과 함께 출연해 절찬을 받은 그는 베를린 영화제 본선 경쟁부문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작품 선택에 주도 면밀함은 물론 올 콘티와 로케 헌팅 등 완벽을 추구하는 하명중은 오태석 원작 '태'를 내놓고 5년 후 동심의 세계를 펼친 '혼자 도는 바람개비'와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2007년 부인과 아들 둘이 총동원된 패밀리 영화를 만들어 최인호 소설에 보답했다. 그는 6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배우 신성일이 첫 메가폰을 잡은 영화 '연애교실'
배우 신성일이 첫 메가폰을 잡은 영화 '연애교실'

2018년 '로맨스 빠빠'에서 누나와 남동생으로 공연한 최은희와 신성일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 7개월 차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이들은 만인이 동경한 스타이자 감독 이력을 지닌 거성(巨星)이었다. 

신성일은 1960년 '로맨스 빠빠'로 출발해 2013년 '야관문'에 이르기까지 반세기를 영원한 청춘스타로 군림했다. 1971년 정인식과 정영일의 예명을 각각 '신영일'과 '나오미'로 내세운 영화 '연애교실'은 이봉조 영화음악의 솜사탕 무드에 새로운 스타일의 청춘 영화로 신성일 스타 감독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었다.  

그 후 '어느 사랑의 이야기'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떨쳤다. 1974년 이장희가 부른 '그건 너'를 영화화해 연출과 출연까지 하며 노래의 인기에 상승 기류를 타려 했으나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배우이자 감독 최은희<br>
배우이자 감독 최은희/사진=한국영상자료원

우리나라 여성 감독은 30여 명에 이른다. 1955년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의 영화 '미망인', 1962년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에 이어 최은희 스타가 1965년 시대물 '민며느리'로 앵글파인더로 현장을 지휘하며 연기까지 1인 2역을 소화하는 영화 열정을 보였다. 

당시 남편인 신상옥 감독은 감독과 주연을 맡아 고군분투하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촬영 현장을 찾았는데, 최은희 여사가 "연출을 기댄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더 이상 오지 말라"고 말한 에피소드는 충무로의 전설로 남아있다.  

‘민며느리’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약한 최은희/사진=한국영상자료원
영화 ‘민며느리’에서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약한 최은희 

그 후 '공주님의 짝사랑'과 '총각 선생' 등 3편의 영화를 남긴 최은희는 북한에서 탈출해 1990년 '마유미'로 신상옥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로 공동 연출하며 부부애를 발휘하였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60여 년간 한국영화와 국내 상영된 외국영화 관련 작품 및 인물자료를 최다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자료 수집가이면서 영화연구가 겸 영화칼럼니스트.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제작된 영화의 제작배경과 배우와 감독 등 인물들의 활동이력에 해박해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는 별칭이 따름. 인터넷과 영상자료 문화가 없던 시절부터 모은 포스터와 사진, 인쇄물 등 보유한 자료 8만여 점을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단성사에 설립중인 영화 역사관에 전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0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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