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김혜자는 옛날에 섹시했다
뿔난 김혜자는 옛날에 섹시했다
  • 김두호
  • 승인 200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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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데뷔 시절 젊은 그녀의 추억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본인이 싫어하겠지만 옛날 이야기를 하려니 나이를 먼저 밝혀야겠다. 이제는 원로급 선배 연기자가 된 김혜자는 올해 67살이다. <엄마가 뿔났다>(KBS-TV 주말극)로 오랜만에 안방 드라마의 주역으로 복귀해 주목을 받고 있는 그녀의 지금 모습이나 배역이 다 같이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인다. 그녀가 주로 출연해온 김수현의 드라마는 의례 시작부터 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쾅쾅 터져 나온다. 예측할 수 없는 사태로 드라마를 재미있게 전개시키면서 등장인물들의 정곡을 콕콕 찌르는 대사 처리가 여전히 일품이다.



김수현의 홈드라마에서 김혜자의 엄마역은 매번 ‘금상첨화(錦上添花)’로 윤기가 난다. 이번에도 김혜자는 근심 걱정이 바람 잘 날 없는, 세탁소 주인집 보통 가정의 엄마로 나온다. 생각과 삶의 행태가 대조적인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면서 시아버지에 시누이와 한지붕 밑에서 애환을 만들어 간다.



김혜자가 김수용 감독(현재 예술원 회장)이 연출한 <만추>에 출연한 것은 1981년의 일이다. <만추>는 1966년 이만희 감독이 신성일 문정숙을 출연시켜 크게 히트했던 작품을 김수용 감독이 김혜자와 정동환에게 맡겨 다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두 남녀의 강렬하고 열정적인 정사 장면이다. 감옥에서 8년 만에 모범수로 휴가를 얻어 귀향길에 오른 여자 장기수와 도피중인 위폐범의 만남. 함께 타고 가던 열차가 고장으로 잠시 멈춰 선 틈을 타 산속에서 벌이는 두 남녀의 애정행위는 시간의 압박과 억눌렀던 욕망의 분출로 인해 격렬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만추(晩秋)의 붉은 단풍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정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 애정 신에서 어느 한 순간 여주인공의 자그마한 액션이 자극적으로 관객 눈에 클로즈 업 된다. 절정에 이른 여자의 희열을 여주인공이 남자의 다리를 쓸어내리는 발가락의 연기로 묘사하는 부분이다. 그 영화의 시사회가 끝났을 때 필자는 김수용 감독과 정일성 촬영기사에게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감독의 연출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물었다. 김수용 감독은 “여주인공(김혜자)이 스스로 보여준 연기에서 비롯됐다“고 대답했다.



<만추>는 그 후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부인 이멜다 여사가 의욕적으로 만들었던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차지했으나 권력의 붕괴와 함께 영화제가 사라지면서 <만추> 여우주연상 영예도 묻혀 버려 안타깝다. 김혜자는 그렇게 30여 년 전부터 노련하고 창의성이 있는 프로 연기자였다. 기자들도 호감을 느끼는 취재 대상들이 있기 마련인데 필자는 연기자 김혜자와 만나 틈틈이 인터뷰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오래전에 금연을 했지만 그녀는 담배를 참으로 맛있게 피우는 애연가였다. 그녀와 함께 담배를 피우면 담배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김혜자는 연극으로 시작해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만추>도 연기활동 15년 만에 첫 영화였다. 그 후 2002년 <마요네즈>란 영화에 출연했는데 최근 흥행영화 <괴물>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연기자로 오래전부터 흠모했다는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마더>라는 영화를 기획, 주연으로 김혜자의 출연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김혜자의 영화배우 활동도 다시 재개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김혜자 머릿속에는 불행한 어린이를 돕는 유니세프 활동으로 가득 차 있다. 또 국제 자선구호 단체인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빈곤국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틈이 나면 오래전부터 이디오피아나 우간다 등 아프리카를 찾아가 직접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다. 언젠가 인천공항에서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혼자서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왠일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아프리카에서 오는 길”이라고 말하고 혼자서 가방을 들고 나서는 것을 보고 가슴이 시큰해 오는 것을 느꼈다.



연희동에 살 때 그녀의 집을 방문한 일도 있지만 그녀는 드라마 속의 엄마 상(像)처럼 별로 꾸미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오래전에 부군이 타계했지만 살아 있을 때도 부군이나 가족이 노출되는 것을 싫어했다.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 출가시키며 사업을 하는 부군과 행복하게 살았지만 가족들이 사생활의 노출로 자유롭지 못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호하려는 엄마의 배려 때문이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부드러우면서 다정다감하고 그러면서 이성적인 엄마’의 모습은 드라마 밖에서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오랜 세월 필자가 알고 있는 김혜자의 실존 모습이며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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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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